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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1-14 두려움의 안개를 걷어내는 다정한 손길, 내 삶의 ‘길’이 되신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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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기적과 같은 모범답안을 요구하며 길 잃은 현실에 절망하는 대신, 불안에 떠는 우리 삶 한복판에 친히 ‘길’과 ‘진리’로 찾아오신 주님과 깊이 대화하고 공감(묵상)하며 그분의 넉넉한 은총의 품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는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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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얼어붙었던 대지의 빗장을 풀고, 메말랐던 나뭇가지마다 생명의 수맥이 차올라 기어코 연둣빛 새싹을 밀어 올리는 2026년 3월의 경이로운 봄날입니다. 저마다의 무거운 삶의 짐을 짊어지고 오늘이라는 시간의 강을 건너오신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모호함과 짙은 회의 속에서도 여전히 진리의 빛을 갈망하며 길을 묻고 계신 모든 분께 생명이신 주님의 평화를 전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늘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내일 당장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안심할 수 있는 '지도'나 '내비게이션'을 찾기 위해 분주합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요한복음 14장의 다락방 풍경 역시, 다가올 거대한 상실과 미지의 미래 앞에서 공포에 질려 길을 잃어버린 제자들의 창백한 얼굴들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떠나심을 예고하시자, 제자들의 마음은 격랑이 이는 바다처럼 요동쳤습니다. 도마는 절망 섞인 목소리로 묻습니다.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요 14:5). 우리에게 명확한 목적지와 도달할 방법을 달라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애처로운 부르짖음입니다.


그 두려움의 한복판에 주님의 음성이 고요히, 그러나 묵직하게 내려앉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그리고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도 아름다운 선언을 들려주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이기주 작가는 언어의 본질을 살피며 "말은 나름의 온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자들의 입에서 터져 나온 질문들은 불확실성이라는 공포에 짓눌려 영혼마저 얼어붙게 하는 차가운 언어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을 향해 던지신 예수님의 이 말씀에는, 벼랑 끝에 선 연약한 영혼들을 기어코 살려내어 품으시려는 가장 뜨거운 '사랑의 온도'가 담겨 있었습니다. 주님은 불안해하는 제자들에게 복잡한 지도나 수행의 방법론을 던져주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내가 바로 그 길이다. 나를 믿고 내 안에 머물라"며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영적인 눈은 여전히 어두웠습니다. 빌립이 나서서 요구합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요 14:8). 빌립은 하늘이 쩍 갈라지고 천둥과 번개가 치며 나타나는 압도적이고 장엄한 신의 현현을 바랐던 것 같습니다. 송민원 교수는 그의 책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에서, 우리가 성경을 읽거나 하나님을 대할 때 이미 자기 안에 확고하게 설정해 놓은 얄팍한 ‘모범답안’을 비워내야 한다고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빌립은 자기가 만들어 놓은 '영광스럽고 스펙터클한 신'이라는 모범답안에 갇혀 있었기에, 지금 곁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함께 눈물 흘리시며 고통의 길을 걸어가시는 예수님 안에 온전한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독일의 고백교회 목회자였던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리스도는 타인을 위한 존재"라고 말하며, 우리가 하나님을 신비하고 막연한 환상 속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그 구체적인 삶 속에서 발견해야 한다고 통찰했습니다.


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때로 신앙의 길을 걷다 보면 "나는 왜 이토록 흠이 많고 자격이 없을까?", "내 기도는 왜 응답받지 못하고 늘 제자리걸음일까?" 하며 깊은 회의와 자책감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잣대에 비추어 보거나 빌립처럼 놀라운 기적만을 바라는 모범답안을 쥐고 있을 때, 우리의 신앙은 끝없는 율법의 짐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한동일 변호사가 성경을 강독하며 맹인 바르티매오의 기도를 빌려 고백했던 그 절실한 외침을 기억해 보십시오. "랍보니, 우트 비데암(Rabboni, ut videam.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우리는 닫힌 눈을 떠야 합니다. 한동일 변호사는 인간이 지녀야 할 가장 위대한 자각이 바로 "나는 은총이 가득한 사람입니다"라는 고백이라고 역설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길을 잃지 않고 완벽하게 정답을 찾아내는 똑똑함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울고 있는 우리 곁으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찾아오시어 "내가 너의 길이 되어 주겠다"고 손 내미시는 그 맹렬하고도 다정한 은총에 달려 있습니다.


이 압도적인 은총을 우리 삶으로 모셔 들이기 위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묵상을 다시 생각하다』의 저자들은 묵상에 대해 우리 영혼을 다독이는 깊은 통찰을 들려줍니다. 권연경 교수는 묵상을 가리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대화"라고 말합니다. 성경의 문자를 머리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 떠는 내 이름을 부르시며 안심하라고 위로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온 인격을 다해 응답하는 친밀한 사귐입니다. 또한 송인규 교수는 묵상을 "공감(Empathy)"이라고 정의합니다. 근심에 휩싸인 제자들의 마음에 나의 불안을 포개어 넣고, 나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 앞에서도 묵묵히 '길'을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그 애타는 심정에 깊이 공감하며 내 자아를 무장해제시키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혹시 지금 짐짓 믿음이 좋은 척 애쓰고 있지만 속으로는 길을 잃을까 두려워 떨고 계십니까? 무언가 더 적극적으로 봉사하고 헌신해야만 주님이 나를 사랑하실 것이라는 강박에 짓눌려 계십니까? 이제 그 무거운 증명의 짐을 십자가 앞에 모두 내려놓으십시오.


예수님은 "내가 행하는 그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요 14:12)라고 믿음의 사람들을 향해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위대한 일은 우리가 강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길이요 진리이신 주님의 은혜를 밥처럼 먹고 마시며, 그 사랑 안에 온전히 머무를 때 우리 안의 성령께서 친히 이루어 가시는 기적입니다. 이번 한 주간, 막연한 두려움과 세상의 소음에는 귀를 닫고, "내가 너의 길이다"라고 속삭이시는 주님의 따뜻한 음성을 묵상하며, 세상이 줄 수 없는 넉넉한 평안 속을 걸어가는 복된 광양사랑의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은 캄캄하고 낯선 골목길을 걷는 '어린아이의 걸음'과 같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아이는 지도가 없어도, 방향을 알지 못해도 결코 두려워하거나 길을 잃지 않습니다. 아이의 작은 손을 꽉 쥐고 있는 분이 바로 다름 아닌 그 길을 가장 잘 아는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이끄는 손길 자체가 곧 아이에게는 가장 안전하고 완벽한 '길'이 됩니다. 내 힘으로 삶의 복잡한 미로를 풀려다 지쳐버린 그 수고를 멈추고, 친히 우리의 '길'이 되어 찾아오신 주님의 은총의 손을 묵상으로 꽉 마주 잡을 때, 우리는 비로소 모든 근심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의 집으로 평안히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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