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3:31-38 호언장담의 허공을 채우는 침묵의 은혜, 그 사랑의 보폭으로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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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내 의지와 열심으로 주님을 끝까지 지켜내겠다는 영적 허영을 내려놓고, 우리의 참담한 실패까지도 미리 아시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품어주시는 그리스도의 은혜에 기대어 겸손히 일상의 순례를 ‘걷는’ 평화의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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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 겨울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 저마다의 고유한 빛깔로 생명을 틔워내는 경이로운 2026년 3월의 봄날입니다. 저마다의 무거운 삶의 짐을 짊어지고 오늘이라는 시간의 강을 건너오신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짙은 모호함과 신앙의 회의 속에서도 여전히 진리의 길을 묻고 계신 모든 분께 생명이신 주님의 평화를 전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세상은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증명하라고 다그칩니다. 그 거센 파도에 밀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때로 내면의 연약함을 감추고 겉으로 강한 척, 흔들림 없는 척 호언장담을 내뱉곤 합니다. 신앙의 여정에서도 우리는 종종 이런 뼈아픈 모순과 마주합니다. 오늘 우리가 펼친 요한복음 13장 후반부의 다락방 풍경은, 그 씁쓸한 인간의 허영과 그것을 덮으시는 하나님의 광활한 은혜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유다가 배신의 밤을 향해 어둠 속으로 나간 직후, 예수님은 남은 제자들을 향해 영광과 사랑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십자가라는 참혹한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에 주님이 남기신 이 유언 같은 사랑의 명령 앞에서, 베드로는 불쑥 엉뚱한 대답을 던집니다. "주여 내가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요 13:37).
이기주 작가는 언어의 본질을 살피며, 사람들이 내뱉는 말의 무게와 온도를 조명한 바 있습니다. 베드로가 내뱉은 "목숨을 버리겠다"는 말은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말은 자신의 실존적 나약함을 전혀 자각하지 못한, 허공으로 흩어지는 한없이 가벼운 언어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그 가벼운 열정을 아프게 찔러 쪼개십니다.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요 13:38).
송민원 교수는 그의 책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에서 성경을 가리켜 ‘주름 잡힌 텍스트(Wrinkled Text)’라고 통찰했습니다. 성경은 결점 없는 완벽한 영웅들의 납작한 무용담을 기록한 책이 아닙니다. 베드로처럼 뜨겁게 고백했다가도 차갑게 배신하고 마는, 모순과 나약함이라는 짙은 주름이 패인 인간들의 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김기석 목사님 역시 저서 『삶이 메시지다』에서 "사람의 마음은 천사와 악마의 투기장"이라고 짚으셨습니다. 베드로의 마음속에는 주님을 사랑하는 천사의 마음과, 죽음 앞에서 나부터 살고 보자는 악마적인 이기심이 맹렬하게 다투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가장 벅찬 은혜는 예수님의 '순서'에 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자신을 세 번 부인할 것을, 즉 그가 철저히 실패할 것을 이미 완벽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배신을 예고하시기 ‘먼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한 번도 넘어지지 않을 완벽한 존재라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결심이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질지 다 아시면서도, 닭 울음소리와 함께 찾아올 그 수치스러운 참회의 자리까지도 미리 품어 안으시며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 압도적인 은총을 우리 삶으로 모셔 들이기 위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묵상은 “평화”입니다. 내 힘과 결단으로 훌륭한 신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 남들보다 더 뛰어난 믿음을 증명하려던 영적 허영의 전쟁을 멈추고, 나의 실패조차 품으시는 하나님의 십자가 은혜 안에서 안식하는 것입니다. 또한 묵상은 “걷기”입니다. 베드로처럼 한순간의 호언장담으로 신앙의 영웅이 되려는 뜀박질을 멈추고, 매일매일 일상의 먼지 묻은 길 위에서 넘어지고 또 일어나며 주님의 은총에 기대어 뚜벅뚜벅 걸어가는 겸손한 순례입니다.
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왜 결정적인 순간에 늘 세상의 유혹 앞에 무너질까?", "내 믿음은 왜 이렇게 초라할까?" 하며 회의와 자책감에 빠져 계신 분이 있습니까? 번듯한 헌신을 하지 못해 주님 앞에 서기를 두려워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한동일 변호사는 성경과 고전을 강독하며 이렇게 갈파했습니다. “돌아봄과 바라봄은 한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깊어지고 나아가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일어나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실패한 과거를 돌아보는 회한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숱한 넘어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를 "내 형제, 내 친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그 맹렬하고 부드러운 사랑을 바라보며 다시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
베드로를 향한 주님의 예언은 정죄와 심판의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네가 무너져 내릴 그 밤, 수치심에 울음 터뜨릴 그 새벽의 끝자리에 내가 여전히 너를 향한 용서와 사랑을 들고 서 있겠다"는 거룩한 약속이었습니다.
이제, 내 힘으로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굳은 어깨의 힘을 빼십시오. 완벽해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십자가 앞에 모두 내려놓으십시오. 오늘 우리가 할 일은 대단한 신앙의 업적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신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내 곁에 있는 연약한 지체들을 향해 "서로 사랑하라"는 그 소박하지만 위대한 걸음을 내딛는 것뿐입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의 실패보다 크신 주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자유롭고도 평안한 은총의 길을 걸어가시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은 장엄한 교향곡 악보에 찍힌 ‘쉼표(Rest)’와 같습니다. 화려하게 연주되던 악기가 돌연 멈추고 적막이 흐르는 쉼표의 시간은 연주자에게는 마치 실패와 단절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고 통곡했던 그 새벽 역시 그의 인생에서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운 쉼표였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작곡가이신 하나님은 그 적막하고 수치스러운 쉼표의 시간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뼈아픈 침묵의 시간을 딛고 일어서게 하심으로, 우리 인생의 후반부를 이전보다 훨씬 더 깊고 장엄한 은총의 크레센도(Crescendo)로 울려 퍼지게 하십니다. 우리의 실패는 끝이 아니라, 더 위대한 사랑의 노래를 시작하기 위해 주님이 허락하신 거룩한 쉼표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