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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4:1-24 세상의 호의를 거절할 수 있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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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우리를 길들이려는 거대 제국의 화려한 보상을 단호히 거절하고, 오직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만 무릎 꿇는 거룩한 야성(野性)입니다.

*

세상은 거대한 전쟁터입니다. 창세기 14장에 등장하는 네 왕과 다섯 왕의 전쟁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제국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 싸움의 소용돌이 속에 아브람의 조카 롯이 휘말립니다. 화려해 보여 선택했던 소돔은 그를 지켜주지 못했고, 오히려 그의 모든 소유와 자유를 삼켜버렸습니다. 이것이 욕망이 이끄는 길의 끝입니다. '나'를 지켜줄 것 같았던 세상의 힘은 위기의 순간에 가장 먼저 우리를 배신합니다.

조카가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아브람의 반응은 무모해 보입니다. 그는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았습니다. 거대 제국군에 맞서기엔 턱없이 부족한 318명의 가신을 이끌고 밤길을 달립니다. 이 무모한 질주는 수평적 책임의 발현입니다. 아브람을 움직인 것은 제국의 논리인 '이익'이 아니라, 형제를 향한 '책임'과 '연민'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타자의 고통 속으로 뛰어들었고, 기적처럼 그들을 구출해 돌아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람 앞에는 두 명의 왕이 나타납니다. 한 명은 소돔 왕이요, 다른 한 명은 살렘 왕 멜기세덱입니다. 이 장면은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두 가지 유혹과 초대를 상징합니다. 소돔 왕은 말합니다.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창 14:21) 지극히 계산적이고 거래적인 제안입니다. 그는 전리품으로 아브람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려 합니다. 세상은 늘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호의를 베푸는 척하며 우리의 영혼을 '돈'과 '성공'이라는 끈으로 옭아매려 합니다.

그러나 살렘 왕 멜기세덱은 달랐습니다. 그는 빈손으로 지친 아브람에게 '떡과 포도주'를 들고 나옵니다. 그리고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는 아브람에게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승리의 원천이 하나님께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아브람은 이 순간 중대한 결단을 내립니다. 소돔 왕이 내미는 막대한 재물 앞에서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세상의 거센 파도 앞에서 신앙의 길을 고민하는 벗님들.

이것이 바로 신앙인의 기백입니다. 세상이 주는 달콤한 사탕발림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것, 내 삶의 부요함이 세상의 처세술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옴을 당당히 선포하는 것 말입니다. 아브람은 소돔 왕의 후원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친구로 남기를 선택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의 손을 잡고 있습니까? 우리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세상이 내미는 '실 한 오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눈을 들어 멜기세덱이 건네는 떡과 포도주,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바라보십시오. 그분만이 우리 영혼의 진정한 양식이며 피난처입니다. 비록 세상의 눈에는 빈손처럼 보일지라도, 세상의 호의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은총만을 의지하며 걷는 여러분의 그 걸음이 가장 부요하고 아름다운 순례의 길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

창세기 14:1-24 폭력의 시대를 건너는 ‘환대의 용기’와 ‘무릎의 승리’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타자의 고통 속으로 기꺼이 뛰어드는 사랑과, 승리의 순간에도 나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며 무릎 꿇는 겸손이야말로 성도가 걸어야 할 참된 순례의 길입니다.

*

안녕하십니까? 바람이 차가워지는 계절, 옷깃을 여미며 오늘 하루도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한 삶의 전투를 치르고 오신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께 주님의 평화를 전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세상은 흡사 창세기 14장의 배경처럼 거대한 힘과 힘이 충돌하는 전장(戰場)과도 같습니다. 네 왕과 다섯 왕이 맞붙어 싸우고,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짓밟히며, 소중한 것들이 약탈당하는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한동일 선생이 라틴어 수업에서 언급했듯 "태초에 말씀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태초에 폭력(violentia)이 있었다"고 느껴질 만큼, 인류의 역사는 힘의 논리로 얼룩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람은 조카 롯이 전쟁 포로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사실 롯은 좋은 땅을 찾아 아브람을 떠난, 어찌 보면 얄미운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주저하지 않고 집에서 기리고 훈련한 자 318명을 거느리고 단(Dan)까지 쫓아갑니다. 아브람은 시간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타자의 고통 속으로 투신(投身)했습니다. 이것은 계산된 행동이 아닙니다. 이것은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타자를 지켜내려는 '책임적 행동'입니다. 신앙은 관념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고 그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용기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야기의 절정은 전쟁의 승리 그 자체가 아닙니다. 승전보를 울리며 돌아오는 아브람 앞에는 두 명의 왕이 등장합니다. 한 명은 소돔 왕이고, 다른 한 명은 살렘 왕 멜기세덱입니다. 소돔 왕은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며 거래를 제안합니다. 이것은 철저히 세상적인 셈법입니다. 반면,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람을 축복하며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창 14:20).

오스왈드 챔버스는 이 장면을 두고 "아브람은 승리 이후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였다"고 통찰합니다. 아브람은 자신의 칼과 전술이 승리를 가져왔다고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멜기세덱의 축복을 통해 이 싸움의 진짜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리품을 취하여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하고, 십일조를 드리며 신앙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성취를 이루었을 때, 그것이 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임을 고백하는 태도, 이것이 바로 '무릎의 승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깊은 신앙의 비밀을 우리 내면에 새기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묵상은 고상하게 앉아 사색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람이 소돔 왕의 달콤한 제안을 단칼에 거절할 수 있었던 힘은, 그가 평소에 하나님을 자신의 '지극히 높으신 분'으로 묵상하고 그분의 마음에 접속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때로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세상의 거대한 힘 앞에 무력감을 느끼거나, 하나님이 정말 계신가 하는 회의가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로봇처럼 조종하지 않으시고, 아브람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의 곁에 서십니다. 우리가 타자의 고통에 응답하며 작은 용기를 낼 때, 그리고 우리의 작은 성취 앞에서도 겸손히 주님을 찬양할 때, 척박한 우리 일상은 멜기세덱의 떡과 포도주처럼 신비로운 성사(Sacrament)의 현장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완벽해서 부름받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조차도 당신의 구원 역사 속에 엮어 넣으시는 분입니다. 이제 소돔의 셈법을 내려놓고, 빈손으로 주님 앞에 섭시다. 그 빈손에 쥐어 주시는 생명의 양식을 먹고, 다시 세상 속으로, 이웃 곁으로 걸어가는 '일상의 순례자'가 됩시다.

세상의 유혹과 성공은 마치 화려하지만 금세 시들어버리는 '조화(造花)'와 같습니다. 겉보기에는 매혹적이지만 생명이 없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은총을 의지하며 걷는 믿음의 길은 거친 들판에 피어난 '야생화'와 같습니다. 비바람에 흔들리고 작아 보여도, 그 뿌리는 대지에 깊이 박혀 생명의 향기를 뿜어내며, 결국 온 들판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법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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