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02:01-16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목적과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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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교회를 갑작스럽게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사역 의도와 진정성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자신의 복음 전파가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순수한 목적과 자기희생적인 태도에서 비롯되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동시에 그들이 환난 가운데서도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유대에 있는 교회처럼 고난을 견뎌내는 것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격려합니다. 이 본문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합당한 자세와 복음을 받는 자의 올바른 반응을 동시에 교훈하며, 이 모든 것의 궁극적인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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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절 하나님의 복음을 힘써 전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을 환난 중에도 담대하게 하시고,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까지 감찰하여 오직 당신만을 기쁘시게 하려는 순수한 동기를 기뻐 받으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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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에 가기 전 빌립보에서 극심한 고난과 능욕을 당했지만, 하나님의 힘을 힘입어 복음을 담대히 전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간사함이나 부정한 마음, 속임수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유일한 목적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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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일행이 빌립보에서 겪었던 고난은 복음 사역이 결코 순탄치 않은 길임을 보여주지만, 그들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힘은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가능했습니다. 이는 바울이 본질적으로 고난에 강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어려움을 능히 감당할 수 있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당시 돈과 명성을 좇아 청중의 구미에 맞는 말을 하던 순회 철학자들과 자신을 명확히 구분하며, 자신의 복음 전파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도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그가 순수하고 진실한 동기로 복음을 전했음을 변호하는 것입니다.
그의 사역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의 인정이나 영광이 아닌,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바울의 사역이 내적인 동기와 외적인 행위 모두 하나님 앞에서 투명하게 이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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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생활과 사역의 동기가 어디에 있는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를 좇아 자신의 명예, 성공, 경제적 이득을 목적으로 삼거나, 목회자의 성취욕이나 교회 성장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복음의 본질을 놓치고 왜곡할 위험이 있습니다.
환난 중에도 오직 하나님만을 힘입어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바르게 감당할 수 있으며, 그 열매는 우리 자신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잘못된 의도나 자기 이익, 특별히 목회자의 성취 욕망을 이루기 위한 불순한 의도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말씀 사역이나 목양이 사람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는 일인지, 아니면 자신의 제자를 만들려는 것인지 냉철하게 점검해야 합니다.
선한 의도와 목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목양하며 사역해야 하며, 우리 안에 있는 간사함이나 부정, 속임수는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특히 복음의 능력이 아닌 간사한 방법, 부정한 수단, 사람을 속이는 언행으로 복음을 전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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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절 하나님의 복음을 목숨 걸고 전하는 것은 깊은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권위를 버리고 자녀를 양육하듯 섬기는 자들을 통해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시며, 그들의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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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아첨하거나 탐심을 품지 않았으며, 하나님이 이에 대한 증인이심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르듯이 유순하게 행동했습니다. 이는 데살로니가교회를 향한 깊은 사모함과 사랑 때문이었으며, 이로 인해 복음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바치기를 기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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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자신과 동역자들이 사람에게서 영광을 구하지 않았고, 오히려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유모(트로포스)' 비유는 매우 중요합니다. 유모는 원래 남의 자녀를 돌보지만,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을 '자기 자녀'처럼 여겨 하나님의 자녀들을 맡아 양육하는 자신을 비유한 것입니다. 이는 친자녀를 돌보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교회를 섬겼음을 의미하며, 단순한 사역자가 아닌 영적인 부모의 심정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복음의 능력이 훼손되지 않도록 사도로서의 권리(예: 재정적 지원)를 포기하고, 대신 자기희생적인 사랑으로 섬겼습니다. 그의 사역은 복음의 고결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는 겸손과 깊은 사랑에 기반을 두었습니다.
'사도'라는 표현은 보내심을 입은 자들이라는 의미로, 바울 일행이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은 자라는 확신을 보여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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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역의 자세는 선한 의도와 선한 양심으로 행해야 하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투명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사람들의 존경이나 칭찬을 얻기 위해 감언이설과 탐심을 애써 가리면서 행하는 일은 결국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와 사역의 본질은 권위주의가 아니라 사랑과 희생에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리더십이 세상의 경영 방식인 '피라미드식 구조'나 'CEO형 리더십'에 영향을 받아 권력과 권위에 집중하는 경향을 경계해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가정, 교회, 공동체에서 사랑의 원리를 따라 겸손히 섬겨야 합니다. 진정한 영적 권위는 직위나 학위에 있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기희생적 봉사를 실천할 때 생겨납니다.
복음의 일꾼으로서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권위를 가졌음에도, 우월의식을 갖고 상대를 깔보거나 무시하여 무례한 언행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거나 반감을 사는 일은 잘못된 행동이며, 스스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능력을 폄하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사역처럼 사랑의 원리를 따라 복음을 전하고, 목양에 있어서는 마치 자녀를 기르는 것처럼 겸손히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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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2절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백성으로 합당하게 행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그의 나라와 영광으로 부르시고, 그 부르심에 합당한 거룩하고 흠 없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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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밤낮으로 수고하며 일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의 사역이 거룩하고 옳고 흠 없었음은 데살로니가교회와 하나님께서 증인입니다. 바울은 아버지의 심정으로 성도들 각 사람에게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했는데, 이는 그들을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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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면서 동시에 자비량으로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이는 당시 돈을 받고 지혜를 팔던 떠돌이 철학자들과 자신을 구별하고, 복음이 가진 은혜의 가치를 퇴색시키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의 사역은 단순히 복음을 선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복음이 삶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 몸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따라야 할 모범(튀포스, τύπος)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비유에 이어 아버지의 비유를 사용하여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성도들을 훈육하는 역할을 강조합니다. 이는 이제 막 믿기 시작한 성도들을 새로운 공동체의 규범에 맞게 '재사회화'하고,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따라 살도록 이끌기 위함입니다.
이 모든 사역의 목표는 성도들이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바울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은 성도들의 궁극적인 목적지이며, 그곳을 향해 가는 여정으로서 현재의 삶을 거룩하고 흠 없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바울은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일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밤낮으로 일했고, 주님의 일이 혼자 할 수 없음을 알았기에 교회의 도움을 받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감당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투명하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길 힘썼으며, 품어 줘야 할 때, 가르쳐야 할 때, 따끔하게 충고해야 할 때를 잘 분별하고 처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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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은 예배당 안에서의 종교 활동에 국한되지 않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바울처럼 우리의 직업과 일터는 복음을 전하는 또 다른 사역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신앙과 삶을 분리하는 이원론적 사고를 버리고, 모든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진다는 청지기적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한 영적 투쟁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투명하게 살기 위해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과 우리의 정체성, 한계, 하나님 앞에 합당한 모습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에 힘입고, 진실함과 정직함으로 행하며, 사랑의 원리를 따라 아낌없이 나누고, 주어진 것에 자족하며 다른 이들에게 부담을 끼치지 않아야 합니다.
때로는 함께해야 하고 한계를 인정하며 도움을 받을 줄도 아는 자세로 일하며, 아버지의 마음으로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되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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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절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믿으며 역사를 경험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통해 믿는 자들 가운데 실제로 역사하시며, 그들을 변화시키시는 살아계신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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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일행이 끊임없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는 데살로니가교회가 그들이 전한 말씀을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것이 진실로 그러하며, 그 말씀이 믿는 자들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고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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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전한 복음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의 순전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그 말씀이 단순히 인간의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가 담긴 계시임을 믿었고, 이는 그들이 복음을 위해 기꺼이 고난을 감수하는 것으로 증명되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복음이 그들 속에서 "역사하는"(에네르게이타이, ἐνεργεῖται) 능력으로 표현합니다. 이 '역사(役事)'는 수고나 행위(에르곤, ἔργον)와는 다른, 성령의 능동적인 사역을 의미합니다. 즉, 성도들의 변화와 성장은 그들 자신의 힘이 아니라, 그들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인해 일어난 것입니다.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에서 전한 복음의 결과로 교회가 세워진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증명하며, 바울 일행은 이러한 역사에 대해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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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합니다. 강대상에서 선포되는 말씀이나 개인적으로 묵상하는 성경을 단순히 지식이나 정보, 또는 좋은 교훈 정도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받을 때, 그 말씀이 우리 삶 속에서 능력이 되어 역사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오늘날 '강대상 무오설'과 같은 잘못된 주장으로 말씀을 오용하는 경향을 경계하고, 오직 성경 말씀의 권위에만 의존해야 합니다.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는 이 사명과 정체성, 주권을 따라 바르게 전해야 하며, 듣는 이들도 이 말씀에 합당하게 믿음으로 반응할 때 그에 대한 역사는 말씀의 능력, 즉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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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6절 하나님의 교회는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받는 고난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고난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되는 증거로 삼으시며, 궁극적으로 공의로운 심판을 통해 보응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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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아 그들의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이 고난을 초래한 유대인들이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복음을 대적하여 죄를 채우고 있다고 비판하며, 하나님의 노하심이 그들에게 임할 것을 선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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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 고난을 받는 것은 그들의 믿음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대에 있는 초대교회가 핍박받았던 것과 같은 '참된 교회의 모습'을 따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는 고난이 성도들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바울의 신학적 확신을 반영합니다. 바울은 이 고난이 결코 헛되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인정받는 표(엔데이그마, ἔνδειγμα)가 된다고 말합니다.
바울의 비판은 모든 유대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고 교회를 핍박하는 특정 유대인 집단을 향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바울 일행을 쫓아냈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고 모든 사람의 대적이 되어 이방인이 구원받는 것을 금하여 자신들의 죄를 채웠습니다.
"노하심이 끝까지 저희에게 임하였느니라"는 과거 시제는 예루살렘 멸망(A.D. 70년)을 가리킨다기보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확정되었음을 강조하는 예언적 완료형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로마의 지배하에서 다른 주(主)와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은 그 자체로 반역이었으므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은 세상으로부터 고난과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복음을 따라 살아가는 여정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여정, 즉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죽는 고난의 여정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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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존재입니다. 오늘날에도 복음의 가치와 충돌하는 세속적인 문화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영적, 사회적 압박과 대립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겪는 고난은 우리를 연단하고, 하나님께 합당한 자로 세우는 과정이 됩니다.
동시에 우리는 핍박하는 자들에게도 선으로 대해야 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사랑으로 반응할 때, 비로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온전히 증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부인하고, 말씀을 전하는 이들을 멀리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대적하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에 대해 여전히 불만을 가진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모든 죄에 대해서는 마지막 날에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서 행한 대로 보응하실 것이므로, 고난으로 시작되는 이 여정을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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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며
우리를 불러 주의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
고난과 능욕가운데서도 주님이 주신 힘으로
모든 간사함과 부정과 속임수를 버리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복음을 전하고 우리의 언행심사를 점검하기 원합니다.
사람의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며
겸손히 하나님 앞에 행하길 원합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사랑의 원리를 따라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섬기며
사람들을 주의 백성으로 잘 양육하게 하옵소서.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힘써 일하되 투명하게 일하고
거룩하고 옳고 흠없이 행하기를 힘쓰며
아버지의 마음으로 권면과 위로와 경계하는 말을
잘 듣고 또 전할 수 있는 처신을
지혜롭게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투명하게 살아가며
순전한 마음과 사랑으로
주의 일에 충성된 종이게 하옵소서.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할 때에
하나님께 듣는 마음, 하나님의 믕성으로 듣기 원하며,
그 말씀을 묵상하는 과정 속에서 묵상의 능력 경험케 하옵소서.
복음과 함께 받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말씀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길 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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