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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7:1-10 그 말씀이 삶이 되기까지

하나님의 은혜는, 무너진 절망의 자리에서조차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며 그 생명을 나누려는 연약한 결심을 통해 우리 삶에 깃듭니다.

*

삶이 무너진 자리, 모든 것이 폐허가 된 것 같은 절망의 한복판에 서 본 이들은 압니다. 한때 우리를 지탱해주던 신념들이 빛바래고, 견고하다 믿었던 일상의 성벽이 허물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존재의 가장 깊은 질문과 마주합니다. '나는 누구이며, 이 폐허 위에서 무엇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가?' 이것은 먼 과거, 바벨론 포로기를 견디고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존적 물음이었고, 또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물음이기도 합니다.

에스라는 바로 그 절망의 한복판에 서 있던 사람입니다. 그는 제사장이자 "여호와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스 7:6)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현실은 참담했습니다. 성전은 재건되었을지 모르나,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이방의 땅을 떠돌고 있었습니다. 신앙은 희미한 기억이 되었고, 삶은 방향을 잃었습니다. 이 황폐함 속에서 에스라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성경은 그가 "결심하였었더라"(10절)고 짧게 기록합니다. 이 결심은 차가운 이성이나 영웅적 의지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너진 삶의 터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으려는 한 영혼의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혜나 경험이 아닌, '말씀'에서 그 길을 찾기로 합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스 7:10)

이 한 문장에는 한 문명이 다시 일어서는 순서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연구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히브리적 사유에서 '연구'는 그 말씀 앞에 자신을 세우고, 그 말씀이 내 삶을 조명하도록 허락하는 '들음'의 행위입니다. 낡은 교리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내 삶에 말을 거시는 하나님의 생생한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둘째는 '준행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머리에만 머물 때, 그것은 우리를 교만하게 하거나 정죄하는 율법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그 말씀을 '살아내기로' 결심합니다. 말씀이 우리의 질펀한 삶의 현실 속으로 들어와, 우리의 손과 발이 되고, 우리의 태도가 될 때, 비로소 생명이 됩니다. '삶이 메시지다'라는 고백처럼, 말씀은 우리의 서투른 순종을 통해 비로소 이 땅에 육신을 입습니다.

우리는 이 '준행' 앞에서 얼마나 자주 망설입니까? 우리의 연약함을 알기에, 실패할 것을 알기에 첫걸음조차 떼기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에스라의 결심 이전에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었으므로"(9절)라는 놀라운 은혜의 서문을 먼저 기록합니다. 우리의 결심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선하시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마지막은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연구하고 준행하며 살아낸 삶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생명의 나눔입니다. 누군가를 판단하고 교정하는 날카로운 지식이 아니라, 폐허 속에서도 싹을 틔우는 생명을 함께 맛보자고 초대하는 따뜻한 손길입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어쩌면 신앙의 문턱에서 여전히 망설이는 길벗 여러분. 우리는 모두 각자의 폐허를 안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에게 '더 강해지라'고 명령하시는 대신, '말씀'이라는 생명의 밧줄을 내려 주십니다. 그 말씀을 연구하고, 서툴지만 살아내려 애쓰며, 그 과정에서 만난 은혜를 나눌 때, 우리는 비로소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그분의 선한 손을 신뢰하며, 오늘 그 말씀 앞에 조용히 우리 마음을 열어보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


에스라 7:1-10 연구하고, 준행하고, 가르치기로 결심한 은총

말씀을 향한 전적인 헌신은, 우리의 연약한 몸부림 이전에 이미 우리를 붙드신 하나님의 끈질긴 은총이 빚어낸 거룩한 순종입니다.

우리는 지금 돈의 지배 아래서 삶의 모든 가치를 소유와 지위로 치환하려는 세상의 논리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경탄의 능력을 잃어버렸고,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지 못합니다. 헛헛한 느낌 때문에 뭔가 위안거리를 찾지만 참된 위안은 늘 저만치에서 가물거립니다. 마치 생명의 리듬이 파괴된 채, 욕망의 쇠항아리를 하늘이라 여기고 사는 비참한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영혼을 잃은 좀비 같은 이들이 거리를 헤매고, 고립감공허감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에스라 7:1-10은 포로 귀환 후 초라한 재건의 현장에서, 한 인물의 견결한 결심을 통해 이 허청거리는 시대에 어떻게 다시 삶의 중심을 세울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제사장 아론의 16대 손인 에스라는 학자이자 율법 학자였습니다(에스라 7:6). 그의 등장은 단순히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공동체의 정체성을 재건하려는 위대한 순례의 시작이었습니다.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배경은 분명했습니다.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그의 위에 있으므로"(에스라 7:6, 9). 그의 성공은 그의 탁월한 능력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행하신 변함없는 긍휼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10절은 이 은총의 서사 속에서 에스라가 스스로 내린 결단을 강조합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이스라엘에게 율례와 규례를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더라"(에스라 7:10).

이 결심의 순서는 우리에게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먼저 연구(study)하고, 다음으로 준행(practice)하며, 마지막으로 가르치는(teach) 일입니다. 진정한 연구는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거울 삼아 자기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며, 진리에 대한 집중(執中)을 통해 삶의 군더더기, 곧 헛된 욕망의 쇠항아리를 벗어던지는 ‘덜의 삶’으로의 개종입니다. 신앙은 지성의 희생이 아니며, 자꾸 묻고 생각함으로써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입니다. 에스라는 먼저 이 깊은 내면의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이 연구는 준행, 즉 실천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삶으로 번역되어야 함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실천의 과정은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고단한 순례의 길이지만,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긍휼로 우리를 붙들고 계신다는 확고한 헤세드 때문입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지금 삶의 무거움 앞에서 신앙에 회의를 느끼는 이들이여,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율법을 완벽히 준수해야 하는 의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긍휼변함없는 신뢰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이 끈질긴 은총에 힘입어 에스라처럼 말씀 앞에 단정하게 꿇어앉아 경탄의 능력을 회복하고,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고통받는 이들에게 연민을 느끼며, 생명과 평화의 태피스트리를 짜는 덜의 삶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주님의 길을 따르는 뚜벅뚜벅한 발걸음이며, 절망을 뚫고 희망을 심는 거룩한 사명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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