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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4:08-22 빼앗긴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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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불순종하는 예루살렘 사람들의 패역함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위기상황에서 야훼의 도움을 기대하며 계약을 맺고 율법의 준수를 선언하며 노예를 해방하지만, 상황이 일시적으로 호전되자 다시 계약을 파기하고 순종을 거절하며 해방시킨 이들을 다시 노예로 삼았습니다. 이들의 위선적 태도는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만들어 결국 회군한 바벨론 군대의 손에 넘어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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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1 하나님 앞에서의 약속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키는 것이 옳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었을 때에 아마도 성 안의 불안요소를 줄이고 전투병들을 얻기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호의적 개입을 유도해 바벨론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시드기야는 백성과 계약을 맺고 히브리 종들을 해방시킵니다(8-10절). 그러나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도우러 올라오는 애굽 군대를 막기 위해 잠시 포위를 풀자(21절; cf. 37:5), 호전된 상황에 마음이 바뀐 종의 주인들은 해방시켰던 이전 종들을 다시 붙잡아 종으로 부립니다(11절). 성전에서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보아 6년 동안 섬긴 종의 해방이 아니라 모든 히브리 종들의 해방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자유시민으로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할 수 있었던 히브리인들 가운데 일부는 특히 (흉작이나 질병 또는 사고로 인한 노동력의 상실로 발생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빚에 떨어져 땅과 집을 잃고 소작농이 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자신을 종으로 팔기도 했습니다. 주전 609년 요시야 왕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유다 사회가 경험하는 정치적 격변, 특히 주전 598/7년에 있었던 바벨론에 의한 첫 번째 예루살렘의 포위공격은 유다에 경제적 파탄을 초래했습니다. 이런 어려움의 일차적인 피해자는 부자보다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유다 멸망 직전에 많은 히브리 사람들이 종의 신분으로 전락했음을 추측하기에는 별다른 무리가 없습니다. 

어려울 때, 아플 때, 변고가 생겼을 때, 다급하게 뭔가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께 약속(서원)했던 것을 상황이 호전되고 나면 마음이 바뀌어 합리화 정당화 왜곡 변심 변절하여 약속을 깨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약속하는 일도 신중해야 하고, 약속하고도 신실해야 하며, 약속 이행에 있어서도 진실해야 합니다. 그보다 먼저 그런 약속이나 맹세가 필요없을 정도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허나 우리의 연약함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보다 약속 불이행의 경우가 더 많으니 그럴 경우 하나님께 진실한 마음으로 사정을 아뢰어 용서를 구하는 자세가 그나마 주님을 만홀히 여기지 않는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쯤이야, 그정도야 하는 생각은 이미 불신과 불의의 첫단추를 꿰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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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4 하나님 앞에서 해방과 자유는 구원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야훼께서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을 이끌어내어 해방시키실 때 이들과 계약을 맺고(13절) 종이 된 히브리 사람은 제 칠 년이 되는 해에 자유롭게 놓아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14절). 이스라엘은 자신이 한 때 애굽에서 종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신 15:12-18). 애굽으로부터 해방은 과거에 속한 일회적 사건이 아닙니다. 히브리 종들을 안식년에 해방시켜줌으로써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거듭 현재화되어야 할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신의 과거를 잊고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이웃을 종으로 착취합니다. 

6년을 섬긴 히브리 종을 제 칠 년에 해방시킬 것을 명하는 규정은 출 21:2-6과 신 15:12-18에 나옵니다. 전자에서는 남종만(cf. 출 21:7), 후자에서는 여종까지 포함됩니다. 34:9, 16에 의하면 예레미야는 신명기 규정을 염두에 두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경외의 대상이며, 사람은 부림과 사용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의 대상입니다. 사물은 잘 다스리고 사용하고 나눠야 할 것입니다. 이 세가지 원리가 십계명의 정신입니다. 특별히 사람을 향하여 대하는 자세는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득이하게 종이 된 이들을 끝까지 종속되지 않도록 일정한 기간에 다시 해방시켜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노예의 굴레가 상속되거나 종속되지 않도록 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 앞에서 다 동등한 존재입니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 아닌 것의 종노릇 하던 데에서 하나님은 구원하사 자유와 해방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늘 기억하게하고, 우리가 이전에 종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해 절기와 더불어 안식년마다 노예를 해방시키는 것과 희년의 제도를 둔 것입니다. 그 정신을 생각한다면 이와 같이 노예를 해방했다가 다시 노예를 삼는 행위는 결국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했기에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힌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과 자유와 해방을 얻은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를 사로잡는 모든 사망의 종노릇 하는데에서 해방되어 부활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일과 일상의 삶에서 늘 되새기며 그 은혜를 상기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과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도 늘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질서와 우리를 향한 정체성과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는 것 또한 일평생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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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6 약속을 깨는 행위는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행위입니다. 

유다 백성은 야훼 면전에서, 그분의 이름으로 불리는 성전에서 계약을 체결하고 종의 해방을 선포햇습니다(15절). 그러나 이들은 해방시켜 자유롭게 놓아주었던 예전 종들을 다시 잡아다가 종으로 삼았습니다. 야훼의 이름으로 맺은 계약을 위반하였기에 이들은 율법 규정(출 21:2; 신 15:12)을 범할 뿐만 아니라 야훼의 이름을 더럽히게 됩니다(16절). 이들의 계약 위반은 그 계약을 주관하신 야훼의 의지에 반하는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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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22 하나님은 불순종한 이들을 심판하기 위해 칼과 전염병과 기근에게 자유를 줍니다. 

계약을 체결하고 자유를 선포했다가 이를 실행하지 않고 이웃에게서 다시 자유(해방)를 빼앗은 자들을 야훼께서 ‘칼과 전염병(흑사병)과 기근’에 붙이실 것입니다(17절). 이것들을 의인화하여 자유를 준다고 표현 합니다.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하라는 당신의 말을 거절한 자들에게 야훼께서 죽음의 자유를 선포하심으로써 이들이 전쟁에 쓰러져 멸망 당하게 하십니다. 이들을 세상 모든 나라들에 공포의 대상이 되게 만드십니다. 계약을 체결할 때 송아지를 두 쪽으로 쪼개는 것처럼 위반한 자들이 그처럼 쪼개짐을 당할 것입니다(18절). 계약에 참여한 자들을 모두 원수들의 손에 넘겨서 그들의 시체가 하늘의 새와 들짐승의 먹이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19-20절). 상황이 호전되자 해방시킨 종을 다시 종으로 삼은 것처럼(11절), 그분께서는 물러난 바벨론 군대를 다시 불러와서 계약을 파기한 예루살렘을 폐허로 만드십니다(22절). 

18b절(‘송아지를 두 조각으로 가르고 그 사이를 지나가다’)은 계약의 조인을 보여주는 오래된 의식입니다. 창세기 15장에도 계약 체결의 유사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계약을 체결할 때 그 규정들을 선포하면서 짐승을 두 조각으로 쪼개 서로 마주 보게 놓고 계약을 체결하는 자들이 그 사이로 지나가는 의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는 짐승이 쪼개진 것처럼 계약을 파기하는 자의 운명도 그렇게 될 것을 보여주는 일종의 저주의식에 속합니다. 

21절(‘너희에게서 떠나간 바벨론 왕의 군대’)은 주전 588년에 유다를 돕기 위해 애굽의 군대가 출정한 사건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37:5). 주전 589-570년에 애굽을 통치한 호프라(Hophra)는 예루살렘을 구출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합니다. 느부갓네살은 일시적으로 예루살렘의 포위를 풀고 애굽 군대와 싸워 승리합니다. 애굽은 더 이상의 간섭을 포기합니다. 

“예루살렘 백성은 노예를 해방하겠다는 서약식을 요란하게 행했습니다. 성전에서 하나님과의 ‘계약’을 선언했고, 조각난 송아지 사이로 걸어가는 의식을 행하여 맹세를 깨드리면 이 송아지처럼 심판받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런 거창한 예배가 무색하게 그들은 노예에게 주었던 ‘자유’를 곧바로 거두어들였습니다. 그 변심의 대가로 칼과 전염병과 기근이 ‘자유’를 얻어 예루살렘을 삼킬 것입니다. 순종없는 내 삶을 화려한 예배로 가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_매일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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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도 주님 앞에서 주님과 이웃과의 약속에

신실하지도 진실하지도 온전하지도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사람을 향하여서도 하나님의 정의를 따라

존귀한 존재로 대우하기는 커녕

주님이 원치 않는 사용의 대상으로 사람들을 봤습니다. 

우리가 이전에 종이었던 것도 기억하고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자유와 해방의 은혜 주셨음을 기억하고

우리도 그렇게 우리의 은혜의 복음을 나누고

이웃들에게 하나님의 선하고 기뻐하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사랑하며 정의와 공의를 세워가게 하옵소서. 

주님이 우리에게 정의와 자유를 주신 것처럼

우리도 그 뜻이 이 땅위에 이루어지길 힘쓰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의 대적들이 

더이상 우리를 유린하지 않도록 

그렇게 우리를 지키고 보호해 주실 믿습니다. 

주여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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