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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6:10-21 악의 세계에 대한 재앙 - 일곱 대접 3


일곱 대접 재앙의 다섯, 여섯, 일곱째 재앙에 대한 환상이 이어집니다. 이 재앙들은 출애굽의 열 가지 재앙과 계속 연결됩니다. 다섯째 재앙은 흑암의 재앙, 여섯째는 큰 강 유브라데 강이 마르는 재앙이 임하자 온 천하 왕들이 개구리 같은 귀신의 영을 모아 큰 날의 전쟁을 위해 아마겟돈에 모입니다. 일곱째 재앙은 큰 지진으로 큰 성과 만국의 성과 바벨론이 무너지는 큰 재앙입니다.  


# 10-11절 하나님의 심판은 회개가 목적인데도 땅에 속한 이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다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짐승의 왕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않습니다. 

*

집승의 왕좌는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 개인 짐승(13장)입니다. 그는 사탄이 왕좌를 주어서 앉게 되었습니다(13:2). 이들에게 내리는 재앙은 애굽의 바로왕과 같습니다. 어둠이 임한 것은 악의 영역과 빛되신 하나님의 영역을 구분하는 표현입니다. 심판을 위해서 이들을 구별하시는 것이니다. 어둠에 속할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섬기지 않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알아도 영화롭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 처럼 섬기며 우성을 섬긴 것입니다. 어둠에 속했기에 빛되신 주님을 불편해하고 알아보지 못하고 계속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혀를 깨무는 것 같은 두려운 고통 속에서도 돌이키기는 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비방합니다. 

애굽의 바로왕이 재앙이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아홉번째 흑암재앙이 왔어도 그는 깨닫지 못하고, 그 이전에 쏟아진 재앙으로 많은 이들이 고통을 당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행위를 돌이키지 않고 오히려 더 강퍅해 졌습니다. 사람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자신들의 행위를 회개하기는 커녕 모든 것이 하나님 탓이라고 오히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는 말을 서슴지 않습니다. 이것은 결국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일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의 정당성이 더욱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

우리는 어둠이 아니라 빛에 속한 빛의 자녀입니다. 이를 앞서 해를 입은 여자(12장)로 표현했습니다. 우리로 이전에 불의한 죄에서 대속하셔서 빛의 자녀 되게 하셨으니 날마다 빛되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세상에 빛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세상은 불편해하고 비방할 것이지만 어둠에 속한 자들의 당연한 반응이기에 우리는 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빛을 비춰야 할 것입니다. 



# 12-16절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도둑같이 임하고 깨어 있는 자는 복을 받습니다. 

여섯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니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됩니다. 또 사탄의 삼위 일체인 용, 짐승, 거짓선지자의 입에서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 곧 귀신의 영이 나옵니다. 이들이 이적을 행하면서 온 천하 왕들을 모아서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대비해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모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이 도적같이 임할 것이기에 깨어서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않고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

유브라데 강은 동방의 왕들 즉 앗수르와 바벨론 파르티아 제국과 같은 큰 나라들이 이스라엘로 쳐들어 올때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었습니다. 이 강이 범람할 때나 평소에는 군대가 쉽게 건널 수 없기에 경계가 되지만 이 강이 마른 재앙이 임했다는 것은 결국 침략자들이 거침없이 이스라엘로 쳐들어 올 수 있는 경계가 무너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교회와 세상을 구별하는 경계가 모호해 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이 변했다기 보다는 결국 교회가 세상과의 구별이 모호해 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공동체인 교회는 세상과 다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공동체인데 그 맛을 잃어버리면 결국 세상과의 구별이 불분명해 집니다. 이것은 결국 영적 타락과 세속화 되어 버린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사탄의 삼위일체 곧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의 입에서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 곧 귀신의 영이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을 모읍니다. 그래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보입니다. 유브라데 강과 마찬가지로 아마겟돈도 실제 이스라엘의 지명중에 하나이지만(므깃도나 갈멜산등의 지명으로 봅니다) 그 의미는 마지막 심판이 이루어지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아마겟돈 전쟁(16:12∼16), 백마 탄 재림 예수님과 두 짐승 전쟁(19:11∼21),  사탄의 곡과 마곡 전쟁(20:7∼10)은 모두 동일한 전쟁입니다). 그리고 아마겟돈 전쟁도 어떤 물리적 전쟁이 아니라 최후 심판의 날의 다른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습니다. 사탄은 이미 패한 자인데 그들이 아무리 세상의 왕들을 규합한다고 한들 이미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지만 이미 지는 싸움을 할 뿐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악의 이적과 꾀임에 결코 마음을 빼앗기거나 부정에 물들어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끝까지 이들과의 경계를 두고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이 온 천하 임금들을 모으고 전능하신 이 곧 하나님의 큰 날(예수님의 재림의 날)에 교회를 대적하려 하지만 결국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니 교회는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말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재림에 일어나는 최후의 전쟁입니다. 곧 심판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전쟁은 천년왕국의 끝에 있는 전쟁입니다. 한 때, 두 때 반  때 후의 전쟁입니다. 더불어 이 전쟁은 물리적 전쟁이 아니라 영적 전쟁입니다. 

주님은 그래서 교회를 향하여 이 시기까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교훈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서에서 그리고 교회를 향하여 주님도 사도들도 늘 깨어 있어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이 갑작스럽게 예기치 않은 때에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극적으로는 옛사람의 옷을 벗고 적극적으로는 바른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살아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벌거벗고 다니지 않고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 것이고, 그렇게 주의 말씀을 따라 깨어 살아가는 자가 진정 복있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이미 시편 1편에서도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오직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그 말씀을 묵상하는 자라고 하면서 계속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교훈하는 말씀입니다. 

*

교회가 거룩함을 지키고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바른 말씀의 교훈을 믿고 따르며 지키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곧 주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 복있는 자의 길이며 형통한 길입니다. 

시편 1:1-6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여호수아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 17-21절 하나님의 심판은 아무리 큰 권세라 할지라도 피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일곱째 천사가 대접을 공중에 쏟으니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되었다 합니다. 이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습니다. 전무 후무한 지진입니다. 그래서 큰 성과 만국의 성들과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산악도 간 데 없습니다. 큰 우박 재앙이 심히 크게 내리니 사람들이 하나님을 비방합니다. 

*

일곱번째 인과 나팔과 대접 모두 동일하게 우레와 음성과 지진과 우박등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가 있을 때 쓰는 표현들입니다. 차이점은 일곱 대접에는 다른 모든 심판을 포괄하고 요약하는 뜻으로 다른 심판 시리즈보다 훨씬 더 강도를 강조해서 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실제로 물리적인 현상이기보다는 그 심판의 강도가 크고 불가항력적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래서 큰 성 바벨론으로 요약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등의 총체적인 멸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심판은 세상 자체에 대한 종말적인 심판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멸망한 이유는 결국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었다는 표현을 통해서 그들이 죄악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니 모든 것이 철저하게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14장 8절에서 바벨론 멸망을 말했고, 이제 17-18장에서 완전하고 상세하게 큰 성 바벨론의 멸망에 대해서 다시 언급합니다. 그만큼 세상의 헛된 왕들과 우상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것들이 철저하게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 큰 재앙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회개하거나 깨닫기는 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비방합니다. 

*

하나님은 결코 죄악을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오래 참으시고 기회를 주시고 긍휼을 베푸시기에 잠시 간과하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런다고 우리가 긴장의 끈을 늦추고 그런 세상에 섞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악인들은 늘 자신들의 죄악을 회개하기보다는 남탓 합니다. 아담이 그랬습니다. 자신의 죄를 하나님이 지어주신 여자 때문이라 했고, 여인은 뱀 때문이라 핑계하며 남탓하고 결국 자신의 죄를 부인합니다. 앞서 흑암의 재앙에서도 그랫고, 애굽의 아홉번째 재앙때에도 그랬습니다. 부디 우리에게도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오거든 우리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겸손히 자기를 돌아보고, 그래도 알 수 없거든 이 일을 통해 자신을 향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또한 물어야 합니다.  



# 거둠의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새 백성 삼으시고

거룩한 주의 백성에 합당한 그리스도로 옷입게 하시며

날마다 주의 말씀을 통해서 이긴 자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깨어 살아갈 수 있는 경고의 말씀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패역한 세대와 구별된 백성으로 살기 바라시는 주님의 뜻을 외면하고

세상과 구별없는 언행심사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께서 주시는 경고와 징계가 있을 때에

속히 회개하고 그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는 마음과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는 결단력을 허락하옵소서.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는 

개구리 같은 더러운 귀신의 영들이 온갖 이적을 행하며

온갖 감언이설로 우리를 미혹하고 넘어뜨리려해도

(엡 6:11-17)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게 하옵소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게 하옵소서. 

이는 악한 날에 우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오니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갖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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