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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2:1-15 강의 이름을 묻던 나루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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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이란 내 귀에 익은 말씨로 형제를 검문하는 파수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억양을 품고 흘러가시는 하나님의 강물에 나 또한 서툰 발음 그대로 몸을 맡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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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는 쉽볼렛이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어떤 무리에 속한 사람인지를 가려내는 말버릇이나 암호, 안에 있는 이들만 아는 구호를 가리킬 때 씁니다. 그런데 이 낱말은 영어가 만든 말이 아닙니다. 삼천 년 전 요단 강가의 한 나루턱에서 건너온 말입니다. 사전에 실린 뜻은 담담하지만, 그 말이 처음 쓰인 자리에는 피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말은 때로 문이 되고 때로 높은 벽이 됩니다. 한 사람의 목숨이 이 두 음절을 어떻게 발음하느냐에 달려 있던 날이 있었습니다. 그 나루턱의 이야기를 오늘 아침 함께 펼쳐 봅니다. 오늘 이 글을 펴 드신 모든 분께, 서툰 말씨 그대로도 넉넉히 받아 주시는 주님의 평화가 강물처럼 흘러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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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몬을 이긴 입다에게 에브라임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너와 네 집을 불사르리라"(삿 12:1). 싸움에는 오지 않던 이들이 승리 뒤에 몫을 따지러 온 것입니다. 입다는 분명 그들을 불렀지만 그들은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막 외동딸을 잃은 아버지에게 네 집을 불태우겠다는 말은 칼보다 아팠을 것입니다. 암몬 왕에게는 긴 편지를 보내 설득하던 입다가 형제에게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칼을 뽑습니다. 기드온이 같은 불평을 부드러운 말로 달랬던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리고 싸움은 요단 강의 얕은 여울목, 나루턱으로 옮겨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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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르앗 사람들이 나루턱을 막고 건너려는 이마다 묻습니다. "쉽볼렛이라 발음하라 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그렇게 바로 말하지 못하고 십볼렛이라 발음하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 강 나루턱에서 죽였더라"(삿 12:6). 쉽볼렛은 흐르는 강물을 뜻하는 말입니다. 강을 건너려는 사람에게 강의 이름을 불러 보라고 한 것입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쉬'를 '시'로 내는 말버릇 때문에 그 이름을 끝내 바로 부르지 못했습니다. 에브라임은 그동안 길르앗을 우리에게서 도망한 자들이라고 깎아내렸는데, 그 말이 그대로 돌아와 이제 자기들이 도망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남을 낮추던 이름이 자기 운명이 되었습니다. 교만한 혀는 칼보다 먼저 제 주인을 겨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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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오래 멈추어 묵상하게 됩니다. 발음 하나가 사람 전체를 대신합니다. 그가 어떤 아버지이고 어떤 이웃인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기도해 왔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습니다. 말씨를 가려내는 귀는 놀랍도록 밝았지만 그 말씨 뒤의 얼굴을 보는 눈은 감겨 있었습니다. 그렇게 죽은 이가 사만 이천 명이었습니다. 뒷날 베냐민 지파가 잃은 수보다도 많습니다. 더 두려운 것은 이 이야기 어디에도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임하셨다는 말도, 여호와께서 넘겨주셨다는 말도 없습니다. 사람의 분노와 사람의 검문만 남은 자리에서 이스라엘은 외적이 아니라 자기 형제를 치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침묵이야말로 본문이 들려주는 가장 무서운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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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경은 이 나루턱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오순절 예루살렘에 성령이 임하시자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난 곳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들었습니다(행 2:8, 11). 바벨에서 흩어졌던 말들이 그날 한자리에서 같은 복음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가지 발음으로 백성을 가려내지 않으시고 모든 말씨로 당신의 일을 들려주셨습니다. 김기석 목사는 상류의 맑은 물이 섞이기를 꺼릴 때 하류는 흘러드는 탁한 물줄기까지 한 몸으로 품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흐르는 강입니다. 입다 뒤에 온 사사들은 자녀와 나귀를 늘려 갔지만(삿 12:14), 참된 왕은 나귀 새끼 한 마리를 빌려 타고 오셨습니다. 발음을 검문하던 나루턱이 모든 억양이 함께 건너는 여울로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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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산문집 『쉴만한 물가』를 엮으면서 저는 사투리를 표준어로 고치지 않았습니다. 고치는 순간 그 말을 쓰던 사람들과 그 시절이 함께 사라진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앞에서 제 귀를 다시 돌아봅니다. 글에서는 사투리를 지켰으면서, 교회 안에서는 익숙한 신앙의 용어와 기도의 말투로 사람을 가늠해 온 것은 아닌지 부끄럽습니다. 기도의 말이 조금 서툴다는 이유로, 성경 용어를 아직 모른다는 이유로 마음속에서 한 사람을 바깥에 세워 둔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남의 입보다 제 귀부터 말씀 앞에 내어놓습니다. 묵상은 남의 발음을 교정하는 자리가 아니라 내 귀가 세운 검문소를 허무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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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도 저마다의 쉽볼렛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역의 억양, 세대의 말투, 진영의 낱말 하나로 상대가 어느 편인지를 재빨리 가려냅니다. 몇 마디만 듣고 그 사람의 신앙 전체를 판정해 버리기도 합니다. 옳은 말을 하는지보다 우리 말을 쓰는지가 먼저 들립니다. 그렇게 가려낸 뒤에는 그 사람의 말을 더는 듣지 않습니다. 가정과 일터도 다르지 않습니다. 부모의 말법을 닮지 않은 자녀, 회사의 말투를 아직 익히지 못한 신입, 우리말이 서툰 이웃은 늘 나루턱 앞에 섭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발음 시험이 아니라 건너오라는 손짓입니다. 나루턱에 선 그들의 불안을 우리도 한때 알았습니다. 오늘의 묵상이 누군가를 향해 그 손짓을 먼저 내미는 용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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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 년이 지나도 쉽볼렛은 여전히 누군가를 가르는 말로 쓰입니다. 그러나 그 말의 본뜻은 흐르는 강물입니다. 강은 누구의 발음도 묻지 않고 목마른 모든 이에게 물을 내어 줍니다. 사람들은 강의 이름으로 문을 닫았지만 하나님은 그 강을 모든 이를 위해 흐르게 하셨습니다.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 왕은 발음이 아니라 마음을 물으시고, 베드로의 갈릴리 말씨마저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으며,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우리를 먼저 불러 그 강을 건너게 하십니다. 오늘 여러분의 서툰 기도와 낯선 억양이 주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아니라 기쁨이 되기를, 그리고 여러분의 입술이 누군가에게 건너오라는 첫 초대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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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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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sIRoPBL9Ui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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