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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9:22-45 문 앞에 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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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은 내가 지금 어느 자리에 서 있는지를 묻기 전에, 그 자리를 실제로 다스리고 계신 분이 누구신지를 먼저 묻는 데서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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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성읍의 문은 드나드는 구멍이 아니었습니다. 성벽에서 가장 두꺼운 자리에 여러 겹의 방을 내어 지은 그 문간은 그 성읍에서 가장 넓고 밝은 광장이었습니다. 장로들이 거기 앉아 송사를 들었고 계약이 거기서 맺어졌으며 장도 거기서 섰습니다. 보아스가 룻을 아내로 맞으려 했을 때에도 그는 성문에 올라가 장로 열 사람을 청해 앉히고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말을 꺼냈습니다. 문 앞은 말이 숨지 못하는 자리였습니다. 거기서 한 말은 성읍 전체가 들었고 거기 선 사람은 성읍 전체가 보았습니다. 그러니 그 자리는 영예로운 자리인 동시에 가장 위태로운 자리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 문 앞에 두 사람이 차례로 섭니다. 이 아침 말씀 앞에 앉으신 여러분의 하루에도 숨길 것 하나 없이 설 수 있는 떳떳함이 함께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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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멜렉이 세겜에서 왕으로 선 지 삼 년이 지났습니다. 겉으로는 조용한 삼 년이었습니다. 그러다 성읍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산꼭대기마다 사람을 매복시켜 지나가는 자를 털게 했다니 이미 그 길은 막힌 길이었습니다. 그 틈으로 낯선 사람 하나가 형제들을 데리고 들어옵니다. 에벳의 아들 가알입니다. 세겜 사람들은 오자마자 그를 신뢰했습니다. 밭에 나가 포도를 거두어다 밟아 짜서 잔치를 벌이고, 신당에 들어가 먹고 마시며 아비멜렉을 저주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한 장면이 나옵니다. "에벳의 아들 가알이 나와서 성읍 문 입구에 설 때에"(삿 9:35). 손님으로 들어온 사람이 어느새 그 성읍의 주인이 서던 자리에 서 있습니다. 화자는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보다 그가 어디에 섰는지를 먼저 적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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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읍 문 입구라고 옮긴 히브리 말은 페타흐 샤아르 하이르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이 본문에 한 번 더 나옵니다. 아홉 절쯤 뒤, 가알이 쫓겨난 다음 날입니다. "아비멜렉과 그 떼는 돌격하여 성문 입구에 서고"(삿 9:44). 우리말은 조금 다르게 옮겼지만 원문은 똑같은 말입니다. 가알이 섰던 그 자리에 이번에는 아비멜렉이 섭니다. 화자는 판결문을 쓰지 않습니다. 같은 낱말을 두 번 놓아 두 사람을 겹쳐 보게 할 뿐입니다. 이름도 마저 보십시오. 가알이라는 이름에는 역겹다는 뜻이 들어 있고 에벳은 종이라는 말입니다. 첩의 아들 다음에 종의 아들입니다. 왕을 바꾸면 나아지리라 믿었으나 바뀐 것은 문 앞에 선 얼굴뿐이었고, 바뀔 때마다 성읍은 더 낮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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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 선 사람이 맨 먼저 한 일은 말이었습니다. 가알은 잔칫상에서 이미 큰소리를 쳤습니다. "이 백성이 내 수하에 있었더라면 내가 아비멜렉을 제거하였으리라"(삿 9:29). 그러고는 그 자리에 있지도 않은 아비멜렉을 향해 네 군대를 증원해서 나오라고 했습니다. 없는 사람 앞에서 하는 도전은 언제나 허세입니다. 그 허세가 문 앞에서 값을 치릅니다. 산에서 군대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가알이 머뭇거리자 그의 곁에 있던 스불이 이렇게 찌릅니다. "네가 전에 말하기를 아비멜렉이 누구이기에 우리가 그를 섬기리요 하던 그 입이 이제 어디 있느냐"(삿 9:38). 네 큰소리가 지금 어디 갔느냐는 말입니다. 그 물음 한 줄에 가알이 무너집니다. 입이 앞서 나간 사람은 늘 자기 입의 크기만큼 넘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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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눈을 조금 들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지기 전에 화자가 미리 적어 둔 한 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삿 9:23). 성질이 악한 영이라기보다 악한 일을 맡아 보내진 영이라는 뜻입니다. 칠십 명의 피가 바위에 스민 뒤로 하늘은 잠잠한 듯했으나 그 삼 년은 잊으신 삼 년이 아니라 때를 재고 계신 삼 년이었습니다. 문 앞에서 벌어진 일을 눈으로만 보면 야심가 하나가 들어와 성읍을 흔들다 쫓겨난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 밑에는 흘린 피를 갚으시는 하나님의 저울이 놓여 있었습니다. 가알은 제 욕심대로 움직였을 뿐인데 그 손이 심판의 연장으로 쓰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사람의 욕심까지 손에 쥐고 일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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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그대로 일어난 일을 우리는 사실이라 부르고, 그 이면의 숨은 속사정까지 알고 나서야 진실이라 부릅니다. 오래전에 저는 이 두 낱말의 차이를 붙들고 글을 한 편 쓴 적이 있습니다. 같은 그림 앞에서 어떤 이는 민망해하고 어떤 이는 숙연해지는 까닭이 거기 있었습니다. 묵상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본문에 적힌 사건은 사실이고, 그 사건 위에 화자가 얹어 둔 스물세 절의 한 줄은 진실입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겪는 일들 앞에서도 우리는 자주 사실만 셉니다. 누가 이겼고 누가 밀려났는지만 헤아리고 그 뒤에 계신 분은 세지 않습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벌어진 일 뒤편에 놓인 하나님의 손을 한 번 더 찾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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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문 앞에 서는 일 자체가 잘못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제 본문에서 요담도 그리심 산 꼭대기에 올라가 섰습니다. 서는 일이 문제가 아니라 거기 서서 무엇을 말하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끝내 차지한 사람의 뒷모습을 보십시오. 아비멜렉은 종일토록 성을 쳐서 마침내 점령했고 "그 성을 헐고 소금을 뿌리니라"(삿 9:45) 했습니다. 다시는 여기서 아무것도 자라지 말라는 저주의 손짓입니다. 제 어머니의 성읍을 제 손으로 불모지로 만든 것입니다. 그는 이겼습니다. 그러나 이 장이 끝나기 전에 이름 없는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머리가 깨집니다. 자리를 차지하는 일과 그 자리에 끝까지 서 있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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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은 지금도 우리 곁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고 말이 숨지 못하는 자리라면 그곳이 우리의 문 앞입니다. 회의석이 그렇고 온 식구가 둘러앉은 밥상이 그렇고 교우들 앞에 서는 강단이 그렇습니다. 아침의 묵상은 그 자리에 서기 전에 우리를 잠시 앉히는 일입니다. 내가 지금 서려는 이 자리가 내 것인지 잠시 맡겨진 자리인지를 묻게 합니다. 그렇게 앉았다 일어선 사람의 말은 쉽게 커지지 않고, 쉽게 커지지 않는 말은 오래 남습니다. 묵상이 길러 주는 것은 유창함이 아니라 제 말의 무게를 아는 눈입니다. 큰소리는 문 앞에서 무너지지만 참된 말은 문을 지나 성읍 안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오늘 여러분이 서시는 문 앞마다 그런 말이 놓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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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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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Ne50qP4_8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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