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7:15-25 칼 없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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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이란 내 손에 무기를 갖추고 나서는 일이 아니라,
두 손이 이미 다른 것으로 가득 차서 칼 쥘 자리가 남지 않은 채로 서 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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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병원 채플에서 말씀을 전합니다. 앞자리에는 오래 앓아 오신 어르신이 늘 같은 자리에 앉으십니다. 찬송을 부르실 때 그분은 한 소절씩 늦으십니다. 반주가 앞서 가고 회중이 앞서 가는데 그분의 목소리는 언제나 반 박자 뒤에서 따라옵니다. 그런데 한 번도 중간에 그만두시는 법이 없습니다. 놓친 소절은 놓친 채로 두고 끝까지 부르십니다. 그 손에 들린 것은 오래 만져 반들반들해진 찬송가 한 권뿐입니다. 쥔 것도 없고 앞설 힘도 없는 손인데, 저는 그 손이 도리어 그 예배당을 붙들고 있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펴 드신 모든 분의 하루에도 늦어도 끝까지 가는 그 노래가 함께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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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이 일어섭니다. 적진에서 꿈 이야기를 엿듣고 돌아온 그는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눕니다. 그리고 그 손에 무엇을 들려 주었는지 보십시오.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삿 7:16). 나팔과 빈 항아리와 횃불입니다. 칼도 창도 활도 없습니다. 열세 만이 넘는 군대가 골짜기에 누워 있는데, 그들에게로 밤길을 내려가는 손에는 소리 나는 물건과 빈 그릇과 작은 불씨뿐이었습니다. 어제 하나님은 삼만 이천을 삼백으로 줄이셨습니다. 오늘은 그 남은 삼백의 손에서마저 무기를 거두십니다. 사람을 줄이시더니 이제는 손에 쥔 것까지 줄이십니다. 하나님의 덜어 내심에는 이렇게 끝이 있습니다. 비우고 또 비우신 다음에야 일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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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 장면은 더 놀랍습니다.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이르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하고"(삿 7:20). 왼손에 횃불, 오른손에 나팔입니다. 두 손이 다 찼으니 칼 쥘 손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빈손인 사람들이 외친 말이 하필 칼이다였습니다. 손에 없는 것을 입으로 외친 것입니다. 그 순간 항아리가 깨집니다. 횃불은 처음부터 있었으나 그릇에 갇혀 있는 동안에는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릇이 깨어진 다음에야 빛이 나왔고, 한밤중에 삼백 개의 불이 사방에서 한꺼번에 터졌습니다. 깨뜨림은 잃는 일 같지만 실은 감추어 둔 것을 내어놓는 일이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자주 만나는 순서도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새것을 주시기 전에 우리 안의 것을 가두고 있는 그릇부터 깨뜨리십니다.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깨어진 자리로만 빛은 밖으로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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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한 줄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각기 제자리에 서서 그 진영을 에워싸매 그 온 진영의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삿 7:21). 삼백 명은 서 있었습니다. 뛴 사람들은 도리어 미디안이었습니다. 원문은 서다라는 동사 하나와 달리다, 부르짖다, 도망하다라는 세 동사를 나란히 놓아 두 무리를 뚜렷이 갈라 놓습니다. 무장한 쪽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빈손인 쪽은 가만히 서 있습니다. 싸움의 승패가 손에 쥔 것이 아니라 발이 서 있는 자리에서 갈린 셈입니다. 서 있다는 것은 자기가 선 곳이 누구의 땅인지 아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믿음은 결국 버티고 서는 힘이고, 그 힘은 날마다의 묵상에서 조용히 자랍니다. 그들이 서 있을 수 있었던 까닭은 용감해서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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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칼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성경은 이 대목을 숨기지 않고 밝힙니다.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삿 7:22). 칼은 하나님의 손에 있었습니다. 사람의 손에는 나팔과 횃불이 들려 있었고, 하나님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거룩한 전쟁의 본래 모습입니다. 훗날 겟세마네에서 한 제자가 칼을 뽑았을 때 주님은 그것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하셨습니다. 주님은 무장이 다 풀린 손으로 십자가에 오르셨고, 그 빈손에 못이 박히던 자리에서 온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의 승리는 사람의 손이 비어 있을 때 가장 또렷해집니다. 미디안을 무너뜨린 칼도 밖에서 온 칼이 아니라 그들 안에 이미 있던 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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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밝은 이야기에도 그늘이 한 줄 지나갑니다. 군호는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 곁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섰습니다. 빈손이던 사람이 승리한 뒤에 어떤 손이 되는지를 사사기는 곧이어 보여 줍니다. 여덟 장에 이르면 기드온의 손에는 정말 칼이 들려 있고 그 칼끝은 동족을 향합니다. 빈손으로 시작한 사람이 가장 위험해지는 때는 실패한 다음이 아니라 이긴 다음이었습니다. 저 자신도 일이 잘 풀린 날 저녁에 더 많이 넘어졌습니다. 잘된 날에는 기도가 짧아지고 말이 길어집니다. 그래서 오늘의 묵상은 이기고 난 뒤의 손을 향합니다. 은혜를 받은 손일수록 그 손이 무엇을 새로 쥐는지 살펴야 합니다. 빈손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어느새 채워진 손이 무서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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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포도주 틀에서 끝납니다.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이고"(삿 7:25). 기드온이 처음 등장한 자리가 바로 포도주 틀이었습니다. 미디안이 무서워 밀을 숨겨 타작하던 그 구덩이에서 이제 적장이 쓰러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웅크렸던 자리를 기억해 두셨다가 바로 그곳을 반전의 무대로 삼으십니다. 오늘 우리 교회도 손에 쥔 것이 자꾸 줄어드는 시대를 지납니다. 그러나 줄어드는 것이 곧 물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쥔 것이 없어도 나팔은 불 수 있고 깨어진 자리에서는 반드시 빛이 납니다. 곁에 있는 한 사람에게 건네는 밥 한 끼와 전화 한 통이 오늘 우리 손에 들린 나팔이고, 그 소리가 닿는 자리마다 어둠이 한 뼘씩 물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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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 채플의 앞자리를 생각합니다. 반 박자 늦게 따라오는 목소리, 오래 만져 반들반들해진 찬송가 한 권뿐인 손, 그리고 끝까지 닫히지 않는 입. 세상의 셈법으로는 빈손이지만 그 손은 끝까지 노래를 놓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손도 그런 손일 것입니다. 그분은 무엇을 쥐었는지가 아니라 어디에 서 있는지로 사람을 세시는 분이십니다. 늦어도 괜찮고 가벼워도 괜찮습니다. 오늘 하루 손이 가벼워 마음이 허전하시거든, 그 빈자리가 바로 하나님이 칼을 드실 자리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두 손에 나팔과 횃불이 들리고, 그 손이 선 자리마다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번지는 복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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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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