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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7:1-14 덜어 내신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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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이란 손에 쥔 것을 자꾸 늘려 가는 일이 아니라, 덜어 내신 자리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손을 알아보게 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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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원두를 갈다 보면 곱게 부서진 가루 위로 얇은 껍질이 떠오릅니다. 체프라는 속껍질인데, 섞여 들어가면 잔에 텁텁한 맛이 남습니다. 그래서 갈아 놓은 원두를 손바닥에 덜어 조심스레 붑니다. 무게로 치면 몇 그램도 되지 않아 저울의 눈금은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그 몇 그램이 떠난 자리에서 비로소 향이 제 모습으로 올라옵니다. 덜어 내는 일은 잃는 일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려져 있던 것을 드러내는 일이었습니다. 향은 더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걷어 내야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아침마다 그 한 번의 입김을 부는 동안, 저는 신앙에도 이런 순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 앉으신 모든 분의 하루에도 그렇게 맑아지는 시간이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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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도 자꾸만 덜어 내시는 아침이 하나 있습니다. 기드온이 군사를 모아 진을 친 날입니다.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하롯 샘 곁에 진을 쳤고"(삿 7:1). 모인 사람이 삼만 이천 명이었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포도주 틀 안에 웅크려 밀을 떨던 사람에게는 꿈 같은 숫자였을 것입니다. 골짜기 건너편 미디안 진영에 비하면 여전히 턱없이 적었지만, 세어 볼 것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놓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숫자를 보시고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많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세어 보며 안심하던 것을 하나님이 도리어 걱정하시는 순간이 있습니다. 숫자는 사람을 든든하게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잊게 하는 가장 점잖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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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의 이름이 마음에 걸립니다. 하롯은 떨림이라는 뜻입니다. 삼만 이천 명이 진을 친 그 샘의 이름이 하필 떨림의 샘이었습니다. 사람은 많았지만 마음은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숫자는 두려움을 가려 줄 뿐 없애 주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이 그 자리에서 하신 말씀은 이렇습니다.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삿 7:2). 하나님이 덜어 내시려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 한마디였습니다.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는 말, 그 말이 자라날 여지를 미리 잘라 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패배보다 자만을 더 위태롭게 보십니다. 패배는 사람을 낮추지만 자만은 하나님을 밀어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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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두려워 떠는 사람은 돌아가라 하십니다. 이만 이천 명이 떠나고 만 명이 남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많다고 하십니다. 물 가로 데려가 물 마시는 모습으로 가르시고,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은 삼백 명만 남기십니다(6-7절). 우리는 흔히 이들을 삼백 용사라 부르지만, 본문은 한 번도 그들을 용사라 부르지 않습니다. 무릎을 꿇지 않았으니 경계를 늦추지 않은 정예였다는 해석도 오래되었습니다만, 본문이 붙드는 것은 그들의 자질이 아니라 그 수가 처음의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고르신 기준은 능력이 아니라 작음이었습니다. 이 싸움을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으로 만드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물가의 시험은 자격을 가리는 시험이 아니라 두려움을 가리는 시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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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줄어든 그 밤에 하나님은 곧바로 다음 일을 하십니다. 남은 사람을 세어 보며 떨고 있었을 기드온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삿 7:10). 두려워하거든, 이라는 말이 참 따뜻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가 아니라 두렵거든 이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무엇을 덜어 내실 때 그 빈자리를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사람을 줄이신 대신 곁에 부라 한 사람을 붙여 주시고, 숫자를 거두신 대신 당신의 음성을 한 걸음 더 가까이 들려주십니다. 이것이 덜어 내심의 순서입니다. 거두시는 손과 채우시는 손이 같은 손입니다. 우리가 잃었다고 느끼는 그 밤에도 하나님은 이미 다음 걸음을 준비해 두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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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진에서 기드온이 들은 것은 꿈 이야기 한 자락이었습니다.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삿 7:13). 보리떡은 가난한 사람의 떡입니다. 밀을 살 수 없는 이들이 먹던 거친 떡이니, 메뚜기 떼처럼 누운 그 골짜기에서 가장 하찮은 물건이었습니다. 그 하찮은 것 하나가 굴러 들어와 장막을 엎습니다. 훗날 갈릴리 호숫가에서 한 소년이 내놓은 것도 보리떡 다섯 개였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가장 작은 것을 손에 드시고, 그것으로 가장 큰 것을 무너뜨리거나 먹이십니다. 우리 손에 남은 것이 초라해 보일수록 그 손은 오히려 하나님의 방식에 가까이 놓여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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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오랫동안 더하는 법만 배워 왔습니다. 사람을 더하고 건물을 올리고 프로그램을 늘리는 것이 곧 부흥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수를 세어 안심하는 신앙을 한 번도 편들지 않으셨습니다. 요즘 교회마다 줄어드는 숫자 앞에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다만 오늘 본문은 줄어듦 자체가 곧 심판인 것은 아니며 때로는 물음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무엇이 덜어져 나가고 있는지, 그 자리에서 무엇이 드러나고 있는지를 묻는 일이 우리에게 남은 묵상입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올해 내 손에서 덜어진 것을 한번 세어 보십시오. 건강이든 형편이든 곁의 사람이든, 그 빈자리에 하나님이 무엇을 두고 계신지 조용히 여쭈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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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이 묵상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난하게 만드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자랑할 말을 거두어 가시는 분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덜어지는 것이 있거든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몇 그램의 껍질이 날아간 자리에서 향이 올라오듯, 하나님도 우리에게서 자랑을 덜어 내시고 그 자리에 당신의 손을 두십니다. 삼백만 남은 아침에도 하나님은 조금도 작아지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이 삼백뿐이어도, 그 삼백을 세시는 분의 손은 여전히 온 골짜기를 덮고도 남습니다. 오늘 하루의 묵상이 손에 쥔 것을 헤아리는 자리가 아니라 그 손을 바라보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하루에도 그 맑은 향이 조용히 번져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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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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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3dktppW1Vv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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