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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9:17-27 찢긴 옷자락 사이로 스며드는 온기, 십자가 아래서 피어난 새로운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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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타인의 고통을 제비 뽑아 나누는 세상의 차가운 탐욕을 내려놓고, 십자가 위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시며 우리를 ‘새로운 은총의 가족’으로 묶어주시는 주님의 맹렬한 사랑을 내면 깊숙이 ‘새김질(묵상)’하는 영적 연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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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 제 생명의 무게를 묵묵히 밀어 올리며 찬란한 봄꽃들을 터뜨리는 4월의 아침입니다. 생명이 약동하는 이 아름다운 계절의 한복판에서도, 저마다 십자가처럼 무거운 일상의 짐을 짊어지고 오늘이라는 순례의 길을 걷고 계신 광양사랑의교회 교우 여러분, 그리고 삶의 막막함 속에서 짙은 회의를 안고 진리를 묻고 계신 모든 분께 평화의 주님이 주시는 다정한 위로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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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참으로 냉혹합니다. 타인의 아픔 앞에서도 나의 이익을 먼저 계산하고, 누군가의 상실을 나의 소유를 늘리는 기회로 삼으려는 이기심이 쉴 새 없이 작동합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요한복음 19장의 골고다 언덕 풍경은, 무고하게 죽어가는 생명 앞에서도 철저히 자신의 몫을 챙기려는 세상의 비정한 민낯과, 그 모든 폭력을 알몸으로 받아내시며 새로운 사랑의 질서를 창조하시는 예수님의 숭고함을 묵직하게 대조하여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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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라 하는 곳으로 걸어가셨습니다(요 19:17).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 십자가 아래의 군인들은 예수님의 옷을 취하여 네 깃으로 나누고 속옷까지 제비 뽑아 나누어 가집니다(요 19:23-24). 죽음의 고통 속에서 피 흘리는 이를 머리맡에 두고 그의 낡은 옷가지를 나누며 희희낙락하는 군인들의 행동은, 타인의 생명을 오직 물질적 가치로만 환산하는 영하의 온도, 곧 영혼을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가장 차가운 폭력의 온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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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십자가 아래의 군인들을 보며 분노하지만, 가만히 성찰해 보면 우리 역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남의 눈물을 딛고서라도 나의 안락을 쟁취하려는 세속의 욕망이 우리 안에도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동일 변호사는 『한동일의 믿음 수업』을 통해 자신의 꺾인 마음을 고백하며 이렇게 갈파했습니다. "어쩌면 인간이 신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봉헌물은 '매일 매 순간 결심한 것들에 대한 반복된 실패'일 거라고요." 우리는 늘 경건하게 살겠다고 다짐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세상의 이익 앞에서 무너지고 마는 숱한 실패의 파편들을 안고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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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그 실패하고 이기적인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차가운 십자가 아래 서 있는 사랑하는 어머니와 제자 요한을 굽어보시며, 인류 역사상 가장 뜨겁고 위대한 선언을 하십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요 19: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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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은 예수님의 겉옷을 찢어 발기며 세상을 분열시켰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도 찢겨진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꿰매어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하셨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가족의 모범답안은 철저히 '혈연'과 '이해관계'에 묶여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그 편협한 모범답안을 산산조각 내셨습니다. 이제 십자가 아래에 서 있는 자들은 핏줄이 달라도, 각자의 상처와 실패를 딛고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 '진정한 가족'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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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맹렬한 십자가의 은총을 우리 삶에 오롯이 모셔 들이기 위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김기현 목사님은 묵상을 가리켜 "새김"이라고 정의합니다.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하듯,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고 십자가 위에서 새로운 가족으로 묶어주신 주님의 그 절절한 사랑의 말씀을 마음의 위장에 담아두고 주야로 씹어 삼켜, 마침내 내 영혼의 피와 살이 되게 하는 치열한 과정이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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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찰스 링마는 디트리히 본회퍼의 사상을 빌려 "사색 기도(묵상)는 하나님을 우리 삶으로, 그리고 염려스러운 상황으로 초청하는 것"이라고 통찰했습니다. 묵상은 고요하고 평안한 골방에 머무는 것만이 아닙니다. 옷이 찢기고 조롱당하는 십자가 아래의 참혹한 곁으로, 그리고 상처 입어 뿔뿔이 흩어진 우리 삶의 염려스러운 한복판으로 십자가의 주님을 초청하여 그분의 낯선 평화를 덧입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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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혹시 신앙의 길을 걸으면서 "나는 왜 번번이 결심만 하고 다시 이기적인 군인들처럼 세상의 탐욕 앞에 무너질까?" 자책하며 깊은 우울에 빠진 분이 계십니까? 훌륭한 헌신의 열매를 증명해 내야만 하나님이 나를 자녀로 삼아주실 것이라는 무거운 율법의 강박에 짓눌려 계시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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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스스로 완벽해져야 한다는 그 무거운 짐을 십자가 아래 가만히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티 없이 맑은 영웅이라서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한동일 변호사의 고백처럼, 우리의 '반복되는 실패'조차도 주님은 다 아십니다. 주님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적거벗은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마지막 남은 호흡까지 내어주시며, "내가 너의 어머니, 너의 가족, 너의 든든한 피난처가 되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흔들리지 않는 우리의 굳센 의지가 아니라, 당신의 모든 것을 잃으면서도 우리를 끝내 안아주시는 주님의 다함 없는 긍휼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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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 주간, 타인의 것을 빼앗아 내 겉옷을 삼으려던 세상의 차가운 습관을 버리십시오. 그리고 우리를 십자가의 보혈로 엮어 새로운 가족으로 부르시는 주님의 은혜를 묵상으로 깊이 새김질하며, 서로의 상처를 따뜻하게 덮어주는 평안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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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 여정은 버려지고 찢어진 천 조각들을 한 땀 한 땀 이어 붙여 만드는 '조각보(Patchwork Quilt)'와 같습니다. 세상은 볼품없이 낡고 작아진 천 조각(우리의 실패와 상처들)을 쓸모없다며 가차 없이 잘라내어 버리려 합니다. 십자가 아래의 군인들 역시 주님의 겉옷을 무참히 찢어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재봉사이신 주님은 그 찢겨지고 버려진 상처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거두어, '은총'이라는 견고하고 부드러운 실로 다시 이어 붙이십니다. 내 힘으로 완벽한 비단옷을 짜 입으려는 수고를 멈추고, 주님의 십자가 아래 머물며 그분의 꿰매어 주시는 손길(묵상)에 우리를 온전히 내어맡길 때, 우리의 남루한 삶과 공동체는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조각보로 덮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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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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