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05:01-15 경쟁과 절망의 자리에 찾아오셔서 말씀의 권능으로 생명을 주시는 자비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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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은 '베데스다'라는 연못가를 찾으십니다. 그곳에는 수많은 병자가 물이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들어가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38년 된 병자를 보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십니다. 병자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도움을 호소하자, 예수님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씀으로 그를 즉시 고치십니다. 이 날은 안식일이었기에 유대인들은 병자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을 비난합니다. 이후 예수님은 성전에서 그 사람을 다시 만나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경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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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지리적 배경 : '베데스다(Bethesda)'는 히브리어로 '자비의 집(House of Mercy)'이라는 뜻입니다. 예루살렘 양문 곁에 위치한 이곳에는 다섯 개의 행각이 있었고, 당시 전설에 따르면 천사가 가끔 내려와 물을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만이 낫는다는 미신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 사회적 배경 : '자비의 집'이라는 이름과 달리, 이곳은 가장 힘센 자, 가장 빠른 자만이 구원을 얻는 비정한 '무한 경쟁'의 현장이었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경쟁에서 밀려 소망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 신학적 배경 : '38년'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광야에서 방황한 기간(신 2:14)을 상기시킵니다. 이는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고질적인 절망의 상태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이 절망의 시간에 찾아오셔서 안식일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참된 안식과 회복을 주십니다.

#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는다"고 말하지만, 오늘 우리 주님은 "경쟁이 아닌 은혜로 산다"고 말씀하십니다. 3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절망의 자리에 누워있던 한 병자에게 찾아오셔서, 그를 일으켜 세우신 예수님의 능력이 오늘 여러분의 삶에도 동일하게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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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절 낫고자 하느냐 - 절망을 깨우시는 질문 : 경쟁에서 밀려 절망 속에 누워있는 자를 찾아오셔서, 잃어버린 소망과 의지를 일깨우시는 긍휼의 주님.

예수님은 베데스다 연못 행각에 누워있는 수많은 병자 중 38년 된 병자를 주목하십니다. 예수님은 그의 병이 이미 오래된 줄 아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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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명절의 화려한 축제 장소가 아니라, 고통과 신음이 가득한 베데스다로 향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시선은 가장 비참하고 소망 없는 자에게 머뭅니다. 38년이라는 세월은 그가 낫겠다는 희망조차 포기하게 만드는 긴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신 것은 몰라서가 아닙니다. 오랜 절망으로 인해 무기력해진 그의 의지를 일깨우고, 미신적인 기대가 아닌 주님을 향한 소망을 품게 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형편을 다 '아시고'(6절) 찾아오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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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나는 너무 늦었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없어"라고 생각하며 영적인 무기력증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38년 된 병자처럼 베데스다(세상)의 행운만을 막연히 기다리며 누워있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찾아와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네 가정이, 네 일터가 회복되기를 진정으로 원하느냐?" 이 질문 앞에 "주님, 그렇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라고 반응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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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절 일어나 걸어가라 - 말씀의 권능 : 미신이나 인간의 도움이 아닌, 창조의 권능이 담긴 말씀으로 병자를 즉시 일으키시는 생명의 주님.

병자는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갑니다"라고 하소연합니다. 예수님은 그 변명을 듣지 않으시고 단호하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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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는 치유의 방법이 오직 '경쟁에서 이겨 연못에 들어가는 것'뿐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나를 넣어줄 사람(인맥, 후원자)이 없다"고 한탄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경쟁 사회의 비정함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물에 넣어주시는 대신, 말씀으로 그를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의 치유 방식은 선착순 경쟁이 아닙니다. 창조주이신 예수님의 말씀("일어나라")이 임하는 순간, 38년의 질병은 떠나가고 근육에 힘이 생기는 새 창조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더 이상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주체적인 존재로 회복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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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생의 문제 해결을 위해 '나를 밀어줄 사람'이나 '기막힌 타이밍(물이 동할 때)'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곤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해결책은 예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세상은 "남을 밟고 올라가야 산다"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내 말을 듣고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패배감과 열등감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십시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발을 내디딜 때 기적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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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3절 안식일의 주인과 율법주의 : 생명을 살리는 은혜보다 율법의 규례를 더 중요시하는 형식주의와 대조되는, 참된 안식을 주시는 안식일의 주인.

이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병 나은 사람에게 축하 대신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정죄합니다. 병자는 자기를 고쳐준 이가 시킨 일이라고 변명하지만, 정작 그분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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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율법주의의 비정함이 드러납니다. 38년 만에 일어난 기적 앞에서도 유대인들은 '안식일 규정 위반'만을 따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생명을 살리는 것보다 규칙을 지키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가 '생명을 살리고 쉼을 주는 것'임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고침 받은 사람은 육체는 나았지만, 아직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영적 무지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나를 낫게 한 그'라고만 지칭하며, 유대인들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책임을 전가하는 연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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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앙생활이 생명을 살리는 본질보다 형식과 규례에 얽매여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 안에서 누군가의 회복과 성장을 기뻐하기보다, "왜 저렇게 해? 절차가 틀렸잖아"라며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율법의 잣대보다 생명의 역사를 귀하게 여기는 따뜻한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는 문제 해결(치유) 자체보다 문제를 해결해 주신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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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5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하라 : 육체의 치유를 넘어 영혼의 거룩함을 요구하시며,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전인적인 구원으로 이끄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그 후에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사람은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가 예수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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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그를 육체적으로만 고치신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도 온전케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다시 찾아오신 예수님은 육체의 질병보다 더 무서운 영원한 심판("더 심한 것")을 경계하십니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말씀은 단순히 도덕적인 훈계를 넘어, 이제는 은혜받은 자답게 죄의 습관을 끊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라는 준엄한 명령입니다. 그가 유대인들에게 예수를 알린 행위는 문맥상 예수님을 고발하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예수님이 세상에 드러나는 계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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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받은 이후가 더 중요합니다. 병이 낫고, 사업이 회복되고, 문제가 해결된 후에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다시 예전의 죄악 된 습관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은혜를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육체의 건강뿐 아니라 영혼의 거룩함을 요구하십니다. 오늘 하루, 내 삶에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주님의 음성을 새기며 거룩한 성도로 구별된 삶을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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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경쟁과 비교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38년 된 병자처럼 무력하게 누워있던 저희를 

찾아와 주시니 감사합니다.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다"며 사람을 원망하고 

환경을 탓하던 저희에게, 

주님은 오늘 "일어나 걸어가라"는 생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주님, 이제는 세상의 헛된 방식이나 요행을 바라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능력을 의지하여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저희를 묶고 있던 오랜 절망과 패배의 자리를 걷어차고, 

믿음으로 걸어가게 하옵소서. 

또한 육체의 문제 해결에만 머물지 않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주님의 엄중한 말씀을 기억하며 

거룩한 성도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가 율법의 정죄보다 생명의 회복을 기뻐하는 

참된 자비의 집이 되게 하시고, 

고통받는 이웃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죄와 절망에서 일으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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