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06:30-40 아버지의 뜻을 따라 하늘에서 내려와, 믿는 자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시는 생명의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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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무리들이 가버나움까지 예수님을 찾아와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다"며 예수님께도 믿을 수 있는 표적을 요구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모세가 준 떡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하늘의 참 떡'이 있음을 말씀하시며, 예수님 자신이 바로 그 '생명의 떡'임을 선포하십니다. 나아가 예수님은 자신에게 오는 자를 결코 내쫓지 않으시고, 아버지께서 주신 자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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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문화적 배경 :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면 '제2의 모세'로서 광야 시절의 만나와 같은 기적을 다시 베풀어 줄 것이라는 기대(랍비 문헌 등)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병이어 사건을 겪고도, 모세가 40년 동안 만나를 먹였던 것과 비교하며 더 지속적이고 큰 표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 신학적 배경 : 본문에는 요한복음 특유의 "나는 ...이다(Ego Eimi)"라는 자기 선언이 등장합니다. 이는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하신 신적 자기 계시와 연결됩니다,. 즉, 예수님은 떡을 주는 분을 넘어, 생명을 주는 하나님 본체이심을 드러내십니다.
#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보여달라", "더 확실한 보장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며 우리의 삶을 피곤하게 합니다. 하지만 오늘 주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표적이 아니라,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배고프지 않은 참된 만족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세상의 떡이 아닌 하늘의 생명으로 채워지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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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33절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나님의 떡 : 모세가 아닌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세상에 생명을 주는 '하늘의 참 떡'을 내려주시는 공급자 하나님.
무리들은 예수님께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을 수 있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들은 성경(시 78:24)을 인용하며 조상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은 것처럼 예수님께도 그런 기적을 요구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하늘에서 떡을 내린 이는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며, 지금도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고 계신다"고 정정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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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도 그 영적 의미('표적')를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육신의 배를 채울 '또 다른 기적'을 요구합니다,. 그들은 떡을 준 주체를 모세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그 원천이 '내 아버지'이심을 밝히십니다. 여기서 '참 떡'이란 가짜와 대비되는 개념이라기보다, 그림자(만나)에 대비되는 '실체'이자 '완전한 떡'을 의미합니다. 만나는 육신의 생명을 잠시 연장시켰을 뿐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참 떡은 세상에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시선을 과거의 모세나 눈앞의 떡에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그분이 보내신 영적 실체로 옮겨가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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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매일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일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도 모르게 예수님께 "내 사업 잘되게 해주는 표적", "자녀 성공하는 표적"만을 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썩어 없어질 떡이 아니라, 우리 영혼을 살리는 '하늘의 참 떡'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육신의 필요도 채워주시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하루, 눈에 보이는 문제 해결보다 내 영혼이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양식으로 채워지기를 먼저 구하는 성숙한 신앙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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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36절 나는 생명의 떡이니 : 자신에게 오는 자가 결코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게 하시는, 참된 만족이자 '생명의 떡'이신 성자 예수님.
사람들이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라고 요청하자, 예수님은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않는다고 지적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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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내가 생명의 떡이다"라고 선언하심으로,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이자 영생의 원천임을 밝히십니다,. 여기서 '온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은 같은 의미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약속하셨던 주님은 이제 '결코 주리지 않는 떡'이 되십니다. 그러나 무리들은 예수님을 눈앞에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육신의 눈으로 기적은 보았으나, 믿음의 눈으로 그 기적이 가리키는 예수님의 신성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참된 믿음은 눈에 보이는 증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 앞에 인격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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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는 풍요로운 듯하나 영적으로는 기갈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많은 현대인이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돈, 쾌락, 인정, 중독 등 '세상의 떡'을 찾아 헤매지만, 먹을수록 더 목마를 뿐입니다. 여러분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할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라는 무리들의 요청이 오늘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다만, 육신의 배부름이 아니라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함을 누리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주님은 지친 여러분의 영혼을 결코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으시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만족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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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40절 아버지의 뜻과 성도의 견인 : 아들을 믿는 자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심으로 구원을 완성하시는 신실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보내신 이(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함입니다. 그 뜻은 아들에게 주신 자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 곧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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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락은 우리 구원의 확실성을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으로 설명합니다.
성부의 주권 : 구원은 사람이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사람들을 아들에게 '주시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성자의 순종과 보전 :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여, 자신에게 오는 자를 '결코 내쫓지 않으십니다'. 여기서 '내쫓다'라는 표현은 강한 부정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으시겠다는 강력한 의지입니다.
종말론적 완성 : 구원은 단순히 현재의 평안에 그치지 않고, '마지막 날'의 부활로 완성됩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를 끝까지 붙드셔서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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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로 자신의 연약함과 죄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지는 않을까?", "내가 구원에서 탈락하지는 않을까?" 염려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붙드십시오. 우리의 구원은 나의 어떠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붙들고 계시는 예수님의 신실하신 약속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내쫓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실수하고 넘어져도, 주님은 나를 잃어버리지 않으십니다. 이 '성도의 견인'의 은혜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가장 큰 위로입니다. 광양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어떤 시련이 와도, 우리를 마지막 날까지 책임지시는 주님의 손길을 신뢰하며 담대하게 살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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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썩어질 양식을 위해 분주하게 살아가는 저희에게 찾아오셔서,
예수님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주리지 않는
참된 생명의 떡이심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의 표적과 기적을 쫓던 우리의 시선을 돌려,
하늘에서 내려오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는 연약하여 자주 넘어지고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약속하신
주님의 음성을 붙듭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까지 지키시는 주님의 그 신실하신 사랑 안에 거하게 하옵소서.
광양사랑의교회 모든 성도가 세상의 배고픔을 예수님으로 채우며,
우리에게 주신 영생의 기쁨을 이웃에게 전하는
복된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시며 부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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