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6:1-14 큰 역사를 하는 이에게 주어진 은혜의 끈
우리의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라고 고백하는 힘은,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로부터 길어 올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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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려가라'는 세상의 속삭임 앞에서
느헤미야 6장은 성벽 재건이라는 '큰 역사'의 거의 막바지에서, 가장 치명적인 위협이 다가오는 순간을 포착합니다. 산발랏과 도비야, 게셈 같은 대적들은 이제 노골적인 무력 대신 유혹과 공포라는 무기를 사용합니다. 그들은 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 성벽에서 '오노 평야'로 내려와 대화하자고 네 번이나 끈질기게 요청합니다.
이 '내려가라'는 속삭임은 비단 2,500년 전의 역사 속 음성만이 아닙니다. 일상 순례자로 이 고단한 삶을 걸어가는 우리에게도 매일 찾아오는 유혹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맡기신 소명, 곧 우리의 삶과 신앙 공동체를 정직하게 세워가는 그 '큰 역사' 위에 있을 때,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불러내려 합니다. 그 부름은 때로는 달콤한 타협의 유혹이며, 때로는 맹렬한 비난과 공포입니다. 신앙에 회의를 품는 이들에게는 "굳이 그렇게 힘들게 살 필요가 있는가"라는 냉소로 다가오고, 더 적극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너 하나 노력한다고 세상이 바뀌겠느냐"는 무기력한 현실론으로 찾아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응답은 단순하고 단호합니다.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중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 '큰 역사'는 완벽한 사람의 몫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큰 역사'라는 말을 들으면 느헤미야처럼 강인한 의지와 용기, 그리고 완벽한 도덕성을 갖춘 영웅의 활약만을 떠올립니다. 마치 신앙을 '해야 할 일'의 목록이나 '지켜야 할 규칙'으로만 여기는 교훈적 훈계의 덫에 빠지기 쉽습니다. 신앙에 회의를 느끼는 이들은 자신의 연약함과 세상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좌절하며 "나는 저런 위대한 일을 할 수 없다"고 자포자기합니다.
하지만 느헤미야가 의지한 것은 그의 개인적인 용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두려움 속에서 비밀리에 숨기를 거부하며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자가 어찌 성전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가지 않겠노라"(11절)라고 외친 것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연약함과 인간적인 한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을 담아내는 그릇이 된다는 깨달음이 없었다면, 그는 사면초가의 상황 속에서 이미 무너졌을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세우는 성벽은 우리의 힘으로 쌓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아닙니다. 그 성벽의 재료는 우리 삶의 고통과 눈물, 그리고 매일의 실패와 좌절입니다. 그리고 그 성벽을 끝까지 지탱하는 것은, 우리의 완벽함이 아니라 연약한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끝까지 그 일을 이루도록 돕는 하나님의 압도적인 은혜입니다.
# 은혜, 존재를 지탱하는 힘
느헤미야는 대적들의 끈질긴 공갈과 이간질에도 불구하고 52일 만에 성벽을 완성했습니다. 이것은 느헤미야의 헌신적인 노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노력을 가능케 한 하나님의 역사사를 강조하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성경은 그가 단지 결단하고 일어섰을 뿐 아니라, 위협 앞에서 "이제 내 손을 힘 있게 하옵소서"라고 간구했음을 기록합니다(9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우리가 가진 것의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을 향해 손을 벌리는 일, 그 기도의 불온함을 잃지 않는 일입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내려오라'는 유혹과 '두려워하라'는 공포에 노출된 아슬아슬한 희망의 여정입니다. 신앙이란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 짐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누리고' 그 사랑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때때로 흔들리고, 넘어지고, 심지어 절망할 때에도, 성벽 공사를 포기하지 않고 "내 손을 힘 있게 하옵소서"라 기도했던 느헤미야에게 임했던 그 은혜의 끈은 여전히 우리에게 닿아 있습니다.
우리의 가장 큰 힘은, 우리가 강할 때가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할 때 드러납니다. 바로 이 은혜가 우리를 세상의 비루함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고, 우리의 '큰 역사'인 이 고단한 삶의 순례를 끝까지 걸어가게 하는 원천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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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6:1-14 내려가지 않는 결단, 내면의 성벽을 지키다
무너진 성벽의 재건을 방해하려는 세상의 집요한 유혹과 거짓 앞에서 '내려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느헤미야의 단호한 결단은, 연약한 인간을 기어코 참된 소명의 길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확고한 응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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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견고한 성벽 위의 유혹
예루살렘 성벽이 거의 완성되었을 때, 역사는 안온함 대신 가장 교묘한 위협을 던져줍니다(1절). 외부의 노골적인 폭력과 조롱(느 4장)이 통하지 않자,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과 그의 일당은 느헤미야를 오노 평지(平地)로 끌어내려 해하려는 계략을 세웁니다(2절).
‘오노’는 '재앙의 평지'라는 뜻입니다. 성벽이라는 거룩한 현장에서 이탈하여, 세상의 시끄러운 소문과 위험이 가득한 곳으로 내려오라는 이들의 요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낯선 유혹이 아닙니다. 세상은 우리가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때, 우리의 주의를 흐트러뜨려 사소하고 분주한 일에 몰두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일상의 분주함 속에서, 영혼의 성찰을 허락하지 않는 분주한 일상' 속에서, '나는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잊고 살기 쉽습니다.
느헤미야는 단호하게 네 번이나 거절합니다. "내가 지금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3-4절). 이 대답은 단순히 공사 감독의 업무 보고가 아니라, 자신의 삶의 벼릿줄을 붙들고 자기의 소명을 향해 하나를 붙잡으려는 사람의 거룩한 집념입니다. 진리를 향한 충성은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는 데서 시작됩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익숙한 편안함과 이익을 벗어나, 마땅히 해야 할 일—곧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일—에 성심으로 임하는 사람입니다.
# 두려움을 넘어선 내면의 진실
느헤미야를 무너뜨리려는 다음 단계는 거짓과 공포를 활용한 심리전이었습니다. 산발랏은 느헤미야가 유다 백성을 선동하여 반역하려 한다는 헛소문을 담은 '개봉 서신'을 보냈고(5-7절), 이어 사람을 매수하여 느헤미야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성전 안으로 숨어들게 하려 했습니다(10절). 성전은 제사장 외에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기에, 이는 곧 느헤미야를 죄짓게 하여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박탈하려는 악의적인 계략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내부의 적'들이 많습니다. 바로 두려움과 허위 의식입니다. 자기의 실상을 대면하기 싫어 자기중심성이라는 울타리에 갇히려 하는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 즉 세상을 달콤한 말로 호리며 사람들의 영혼을 옥죄는 자들 앞에서 우리는 종종 확고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주저앉거나, 혹은 자기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애매하게 타협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스스로를 향해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라고 묻습니다(11절). 이 질문은 그의 연약한 자아를 내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로서의 정체성을 붙들고, 자신의 존재가 이끌려야 할 '길’을 재확인하는 용기입니다.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하나님이 보내신 줄을 깨달았다”고 기록하며(12절), 모든 위협이 산발랏과 도비야의 계략임을 간파합니다. 진실한 사람은 눈먼 채 세상의 논리에 끌려가지 않고,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과 역사를 꿰뚫어 봅니다.
# 우리의 연약함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
우리는 때로 느헤미야처럼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말할 힘이 없음을 절감합니다. 우리는 쉽게 죄의 유혹에 빠지고, 완벽하게 선을 행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실행할 힘이 없는 비참한 존재임을 바울처럼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하게 서거나 스스로 무력함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는 가장 적당한 순간입니다. 느헤미야가 외적/내적 위협 속에서 홀로 서 있을 때에도, 그를 붙들어 '내려가지 않게' 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선한 손길이었습니다(느 2:8, 2:18).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사방으로 죄어들어도 움츠러들지 않게 하시고,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는 분입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일은 결코 혼자만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진실한 마음을 품고, 그분의 사랑의 역사에 우리의 일상적 헌신을 바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연약한 몸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때, 우리는 조롱과 거짓이 만연한 이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놋쇠 성벽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내면은 마치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와 같습니다. 외부의 파도(위협)와 내부의 폭풍(두려움)이 끊임없이 몰아치지만, 배가 끝내 난파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노를 젓는 힘이 아니라, 폭풍우 속에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겠다는 선장 되신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