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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개 2:10-23 그대, 하나님의 인장 반지여

거룩은 전염되지 않으나 부정은 쉽게 번지는 연약한 우리 삶의 자리에, 하나님께서는 친히 찾아오시어 우리를 당신의 권위를 드러내는 ‘인장 반지’로 삼으십니다.

*

가을빛이 깊어지면 나무들은 잎을 떨구며 자신의 본래 모습을 드러냅니다. 우리 신앙의 여정도 이와 같아서, 화려한 잎사귀들이 다 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우리 영혼의 민낯과 마주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한 학개서의 말씀은 바로 그 벌거벗은 우리 내면의 실상을 아프게 건드립니다.

학개 선지자는 제사장들에게 묻습니다. “거룩한 고기를 싼 옷자락이 다른 음식에 닿으면 그것이 거룩해지느냐?” 제사장들은 “아니오”라고 답합니다. 반면 “시체를 만져 부정해진 자가 다른 것에 닿으면 그것이 부정해지느냐?”는 물음에는 “그렇다”라고 답합니다. 참으로 서늘한 통찰입니다. 거룩함은 저절로 전염되지 않지만, 부정함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갑니다. 건강한 사람 곁에 있다고 저절로 건강해지지는 않지만, 감기에 걸린 사람 곁에 있으면 쉽게 옮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것이 ‘죄의 중력’ 아래 놓인 인간의 실존입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때때로 예배당당 뜰을 밟는 것만으로, 혹은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거룩해졌다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거룩은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수련’과 ‘은총’을 통해 빚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무너진 마음, 쉽게 낙심하고 회의에 빠지는 연약함은 내버려 두면 독버섯처럼 퍼져나갑니다. 이것이 우리가 절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바로 이 절망의 끝자락에서 시작됩니다. 우리의 부정함이 온 삶을 뒤덮을 것 같은 그 순간, 하나님은 놀라운 반전을 선언하십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학 2:19) 우리의 자격이나 공로 때문이 아닙니다. 여전히 비루하고 흔들리는 우리네 삶이지만, 하나님은 그 연약함조차 품어 안으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스룹바벨을 향해 “내 종아, 내가 너를 택하고 너를 ‘인장 반지’로 삼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인장 반지가 무엇입니까? 왕의 권위와 소유를 확인하는 도장입니다. 찢기고 상한 우리를, 여전히 죄의 유혹에 넘어지는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가장 소중한 증표로 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마치 깨진 그릇을 금으로 이어 붙여 더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는 ‘킨츠기(Kintsugi)’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깨어진 틈 사이로 당신의 은혜를 흘려보내십니다.

시몬 베유는 “중력과 은총”에서 모든 자연적인 것은 아래로 떨어지는 중력을 따르지만, 오직 은총만이 우리를 위로 끌어올린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본성이 부정함을 향해 미끄러져 내려갈 때, 우리를 붙드시는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입니다.

신앙생활이 버겁게 느껴지십니까? 내 안의 모순 때문에 괴로워하고 계십니까? 기억하십시오. 거룩은 내가 만들어내는 성취가 아니라, 나를 인장 반지로 삼으신 그분의 손길에 온전히 붙들려 있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신실하심’ 때문에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하루,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그분의 옷자락을 붙드십시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이 알 수도 줄 수도 없는 평화, 그 신비한 은총의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

학개 2:10-23 오염된 헌신과 인치심의 은총

우리의 영적 오염은 헌신의 열매마저 무력하게 만들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 이전에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는 약속과 연약한 지도자를 '인치심'으로써 흔들리지 않는 희망을 선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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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는 성과와 외적인 규모로 모든 것을 재단하려는 욕망의 중력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자기 이익에 발 빠른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며, 스스로 쌓아 올린 안락한 삶의 구조(판벽한 집)에 만족할 때, 우리의 영혼은 점점 납작해지고 맙니다. 진정한 자기 성찰 없이 외적인 종교 행위에 몰두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외화내빈(外華內貧)의 길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학개 2장 10-14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재건을 시작했음에도 여전히 영적인 어려움을 겪는 이유를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제사장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거룩함의 전이(轉移)와 부정함의 전이에 관한 것입니다. 거룩한 고기를 옷자락에 쌌다고 해서 다른 것에 거룩함이 옮겨가지 않지만(학 2:12), 부정함을 입은 사람이 다른 것에 닿으면 그 모든 것이 부정해집니다(학 2:13). 이는 율법의 냉정한 가르침을 통해, 백성들의 삶의 방식과 마음가짐(영적 상태)이 부정함으로 가득 차 있기에, 그들의 헌신적인 성전 건축 행위마저도 ‘불순한 행위’로 오염될 수밖에 없음을 드러냅니다.

이처럼 우리의 노력이 구멍 뚫린 전대에 삯을 넣는 것처럼 허망하게 느껴질지라도, 하나님은 이들을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18-19절에서 하나님은 “너희는 오늘 이전 곧 아홉째 달 스무이삿날 곧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연보하여 보라"고 촉구하십니다. 이는 그들이 성전 건축에 다시 마음을 두기로 결단한 바로 그 날부터, 과거의 징벌과 결실 없음의 저주를 끝내고 축복을 베풀기 시작하시겠다는 값없는 은혜의 선포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완벽한 행위가 아니라, 일어서려는 그 작은 헌신을 사랑으로 맞이하시며, 심고 물 주는 것은 우리가 하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십니다.

더 나아가 20-23절은 절망과 혼돈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궁극적인 희망의 근거를 제시합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시고(학 2:21), 열국의 강성한 나라들(로마 제국이나 당시의 바벨론 같은)이 파멸할 것을 예고하십니다. 이 혼란스러운 심판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은 연약한 지도자 스룹바벨을 ‘인(印, signet ring)’**으로 삼겠다고 약속하십니다(학 2:23).

고대 사회에서 인장은 왕의 권위와 진정성을 보증하는 가장 중요한 표식이었습니다. 스룹바벨이 특별한 힘이나 지혜(지혜, 힘, 재산) 때문에 선택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인애(헤세드) 때문에, 그가 세상의 모든 것이 흔들릴 때에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언하는 푯대가 될 것임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 약속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고 때로는 실패를 경험하며 넘어진다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거룩한 목적에 동참하도록 부르시며, 이미 우리를 당신의 작품으로 인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우리가 겪는 고난을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공동체로서 서로 연결되어 그리스도의 몸(성전)으로 함께 지어져 가도록 용기와 소명을 불어넣어 주시는 사랑의 현존입니다.

하나님의 인치심은 마치 광야를 걷는 이들이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손에 쥐어진 ‘하나님의 지팡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능력과 상관없이 우리를 보호하고 인도하시겠다는 굳건한 약속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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