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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4:1-23 흙먼지 속에서 피어나는 아슬아슬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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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두 손에 든 호미와 칼의 긴장이야말로, 연약한 순례자들을 친히 지키시며 일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제적인 은총에 대한 실존적인 응답이다.

*

신앙의 여정은 '만사형통'이라는 안이한 구호와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그것은 구약성경 느헤미야 4장이 생생하게 증언하듯, 흙먼지와 눈물이 범벅된 노동의 기록입니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세우려 할 때, 대적 산발랏과 도비야는 비웃음(1-3절)과 무력 위협(8절)으로 맞섰고, 백성들 내부에서는 파편이 너무 많아 더 이상 힘이 빠져 일할 수 없다는 절망감(10절)이 피어올랐습니다. 우리 질펀한 삶의 현실 속에서도 이와 같은 위협과 좌절의 잔해가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합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이 노동을 계속하게 하는가?" 느헤미야 4장은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실존적인 대답을 제시합니다. 바로 '두려움 속의 노동'입니다.

# 호미와 칼의 영성: 긴장 속의 순례

대적의 위협 앞에서 느헤미야는 백성들을 재정비합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무기를 들게 하고, 절반은 파수꾼이 되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유명한 명령을 내립니다. "일하는 자는 한 손에는 일을 하고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고"(17절). 이 이미지는 단순한 전술이 아닌, 그리스도인의 삶을 관통하는 영적인 긴장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한 손에 호미(trowel), 즉 일상의 소소하고 반복적인 노동과 사랑의 섬김을 들고 공동체와 세상을 일구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 손에는 칼(sword), 즉 세상의 조롱과 위협, 그리고 우리 안의 깊은 절망과 싸워 이겨야 하는 경계(vigilance)의 무기를 쥐고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니체(F. Nietzsche)가 말했던 허무주의적 투쟁이 아닙니다. 이 긴장의 한복판에서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외칩니다.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14절).

이것이 핵심입니다. 노동을 지속하게 하는 힘은 우리 자신의 강인함(strength)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크심과 우리가 지켜야 할 사랑하는 존재들에게서 옵니다. 무너진 성벽을 세우려는 우리의 시도는, 우리가 이룰 성과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기어이 회복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선제적인 은총에 대한 믿음이 낳은 자발적인 응답인 것입니다.

# 포기하지 않는 잠: 은혜의 지속성

신앙에 대해 회의를 품는 이들이여, 그리고 더 적극적인 삶을 망설이는 이들이여. 연약한 우리의 모습을 보십시오. 성벽을 쌓는 이들은 옷을 벗지 않고 잠을 잤고, 심지어 물을 길러 갈 때도 무기를 놓지 않았습니다(23절). 이 지칠 줄 모르는 '포기하지 않는 잠'은 우리 삶의 비극이자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은혜의 풍경입니다. 우리의 삶은 결코 안락한 휴식이 주어지지 않는 순례자의 길과 같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칼을 들고 절망과 싸워야 하지만, 그 모든 투쟁과 노동 속에서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희망 속에서 버티고 있기 때문에, 친히 우리의 약함을 당신의 일하심의 근거로 삼으십니다. 교훈적으로 "더 열심히 일하라"고 다그치는 대신, 느헤미야 4장은 이렇게 속삭입니다. "너의 지친 손을 보아라. 그 손에 호미를 쥐고 있다면, 칼을 쥘 힘도 내가 줄 것이다. 그리고 그 싸움의 목적은 너의 의무가 아니라, 너를 향한 나의 끊임없는 사랑과 네가 지켜야 할 이웃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우리 광양사랑의교회 성도들이여, 무기가 있기에 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싸워야 하기에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세상에 대한 메시지가 되게 하시는 그 은혜를 붙들고, 호미와 칼, 두 손의 긴장 속에서 아슬아슬하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는 희망의 성벽을 계속 쌓아 나갑시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

느헤미야 4:1-23 조롱의 불길과 양손의 신앙

무너진 성벽 앞에서 조롱하는 세상에 맞선 느헤미야 공동체의 기도와 노동은, 연약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한 은혜가 위협 속에서도 평화를 엮어내는 길임을 증언한다.

*

# 멸시의 언어, 불가능의 선언

폐허의 깊이를 깨닫고 재건의 길을 떠난 느헤미야와 백성들에게 쏟아진 것은 환영이 아니라 조롱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은 유다 사람들이 '미약하다'며 "이들이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비웃었고(2절), 암몬 사람 도비야는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고 멸시했습니다(3절).

이 멸시의 언어는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 나라의 꿈 자체를 무화(無化)시키려는 폭력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 엮어가는 헌신이 너무나 보잘것없어 보였을 것입니다. 돌멩이 하나하나를 쌓아 올리는 이들의 고독하고 지루한 노동은 세상의 효율과 속도의 논리 앞에서 늘 '비합리적'이며 '덜 떨어진' 시도로 취급받기 마련입니다. 마치 생명의 신비 앞에서 경탄할 줄 아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모든 것을 이익의 척도로만 재려는 현대인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역사는 언제나 경탄할 줄 아는 평범하고 연약한 이들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열어왔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완벽하기를, 혹은 패배하지 않을 영웅이기를 요구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무력함의 심연 속에서 자신에게 희망을 걸 수 없어 하늘만 바라볼 때 다가와 위로하시는 분입니다.

# 한 손에는 연장, 한 손에는 무기

느헤미야 공동체는 조롱에 맞서 두 가지를 병행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4-5절), 동시에 파수(把守)에 힘썼습니다(9절). 그들은 성벽에 둘러서서 절반은 일을 하고, 절반은 창과 방패를 들고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16절). 심지어 건축자들은 한 손으로는 일을 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병기를 잡았다고 기록됩니다(17절).

이 모습은 신앙인의 실존을 가장 명징하게 보여줍니다. 우리의 삶은 그저 "착하게만 살면 된다"는 개인적 덕성이나 윤리적 실천에 머물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헌신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우리를 좌절시키고 타락시키려는 세상의 거친 물결과도 맞서야 합니다. 한 손의 연장은 우리의 일상적 소명, 즉 맡겨진 자리에서의 성실한 노동과 헌신을 의미합니다. 다른 한 손의 무기는 불의한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영적인 분별력과 거룩한 결기를 상징합니다.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님을 기억하고 싸우라"고 권면했습니다(14절). 이 싸움의 동력은 그들의 힘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는 확신(20절)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신적 집요성과 견고성으로 육화되는 사랑이며, 우리가 캄캄한 하늘 아래서도 마주 잡을 손 하나가 되어 평화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조롱과 위협의 소리가 끊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앙에 회의가 드는 것은 어쩌면 앎과 모름 사이, 확신과 회의 사이에 걸린 외줄을 타고 사는 인간의 숙명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완벽하게 무기를 잘 다루거나 성벽을 빈틈없이 쌓아 올리는 능력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희망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고 계시다는 든든한 신뢰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자기 삶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조율하며, 사랑의 직물을 짜는 작은 걸음을 꾸준히 내디딜 뿐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마치 거친 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와 같습니다. 거센 파도와 바람이 몰아칠 때, 우리는 노를 젓는 노동(연장)과 동시에 닻을 내리는 결단(무기)을 병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배가 흔들려도 끝내 난파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붙드는 닻의 힘이 아니라 폭풍우 속에서도 우리를 붙들어주시겠다는 선장 되신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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