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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2:1-10 궁정의 안락함을 떠나 폐허로 향하는 '두려운 걸음'

진정한 용기는 인간의 두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의지가 아니라, 연약한 우리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선한 손'에 대한 확신을 품고 폐허의 길을 걷는 순례자의 자세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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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려움 속에서 응답하다

페르시아 궁정의 화려함 속에서 느헤미야는 왕의 술 관원이라는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루살렘 폐허의 소식을 들은 후, 넉 달 동안 침묵과 금식 속에서 깊은 성찰(省察)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왕 앞에 서게 되었을 때, 그는 평소와 다른 '슬픈 기색'을 숨기지 못했습니다(느 2:1-2). 왕의 "어찌하여 얼굴에 슬픔이 있느냐"는 질문은 느헤미야에게 기회이자 동시에 실존적 위협이었습니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그 순간, 느헤미야는 "크게 두려워하여" 왕에게 간절히 아뢰었습니다.

인문학자들은 인간의 행위를 '합리적 이성'의 산물로 보지만, 신앙의 영역에서 가장 위대한 행동은 종종 이성과 상식을 뛰어넘는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시작됩니다. 느헤미야가 보인 이 두려움은, 그가 얼마나 자신의 연약함과 처한 상황의 엄중함을 깊이 인식했는지 보여줍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어서 놀라운 고백을 기록합니다. 그가 요청한 모든 것이 이루어진 이유에 대해, "하나님께서 선한 손으로 나를 도우시므로"라고 말입니다(느 2:8).

느헤미야의 용기는 그 자신의 강한 의지나 뛰어난 언변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그를 움직이고 계셨던 하나님의 '선한 손'에 대한 놀라운 신뢰의 응답이었습니다. 우리 신앙의 회의적인 순간들은 종종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부담감에서 시작되지만, 느헤미야의 이야기는 우리가 행동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배후에서 길을 예비하시고, 환경을 조성하고 계신다는 은혜의 진리를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의 '걸음'은 곧 그분의 선재적(先在的) 사랑에 대한 감사함의 표현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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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폐허를 걷는 순례자의 시선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곧바로 일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삼 일간 머문 후, 밤에 은밀히 성벽을 살폈습니다(느 2:11-16). 이 밤의 순례는 재건 사업의 가장 중요한 단계입니다. 무너진 성벽은 곧 과거 이스라엘의 죄와 불순종의 결과이자, 현실의 고통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폐허의 진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마음으로 품어 안았습니다.

신앙은 때로 화려한 성공 스토리나 교훈적인 강령으로 오해되곤 하지만, 진정한 신앙은 질펀한 삶의 현실에 단단하게 발을 딛고 서 있는 것입니다. 폐허를 외면하지 않고 그 냄새와 비참함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것. 느헤미야의 밤의 정찰은 바로 이 '현실 직시'의 중요성을 가르쳐 줍니다.

상황을 파악한 후,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비전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당하고 있는 환난을 본즉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느 2:17). 이 말에 백성들은 "우리가 건축하자 하고 곧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시작하려 하매"라고 응답합니다(느 2:18).

이 '선한 일'은 의무감이나 율법적 강요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폐허를 딛고 새로운 연대의 공동체를 이루어 수치를 벗고자 하는, 은혜에 감격한 자들의 자발적인 결단입니다. 이는 곧 타인의 고난을 나의 고난으로 끌어안는 사랑에서 시작되는 회복의 첫걸음입니다. 우리가 무너졌던 자리, 신앙에 회의를 느꼈던 바로 그 지점이, 오히려 하나님의 긍휼이 공동체의 비전으로 변주되는 은총의 땅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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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느헤미야의 선한 시작은 곧바로 산발랏, 도비야, 게셈이라는 냉소적이고 적대적인 세력의 조롱에 직면합니다(느 2:19). 그들은 재건축을 왕을 배반하는 '반역'으로 몰아붙이며 공동체의 희망을 꺾으려 합니다.

하지만 느헤미야의 마지막 응답은 단호하며, 그 중심에는 오직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느 2:20).

우리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늘 주변의 냉소와 조롱, 그리고 스스로의 연약함이라는 장벽에 부딪힙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인간적인 권리(기업, 권리, 기억될 바)를 주장하는 대신, 하늘의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형통'이라는 언약적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가 힘을 내어 선한 일을 하려 할 때마다, 우리는 늘 우리 힘의 한계와 외풍에 노출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회복은 우리의 '노력'이나 '능력'이 아닌,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선한 손'과 그분의 변치 않는 긍휼에 근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약속을 붙들고 폐허의 길을 걷기 시작할 때, '형통'이라는 이름으로 그 일을 반드시 완성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그 은혜의 길 위를 묵묵히 걷는 순례자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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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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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2:1-20 에세이: 궁중의 슬픔과 밤의 순례, 하나님의 선한 손길을 따라

안정된 궁중의 안락을 벗어던지고 폐허로 향한 느헤미야의 담대한 첫걸음은, 연약한 인간의 준비와 간구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선한 손길이 빚어낸, 세상 변화를 향한 거룩한 순례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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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질문, 응답의 시간

느헤미야는 왕의 술 맡은 관원이라는 안락하고 높은 자리에 있었습니다(1:11). 하지만 그는 내면의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비애(悲哀)를 숨길 수 없었습니다. 오직 왕만이 누릴 수 있는 풍요와 위세 속에서, 그의 얼굴은 수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2:1-2). 진실을 가리는 화려한 궁정에서, 그의 슬픈 얼굴은 가장 정직한 현실 고발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은 이들은 밖으로 향한 눈보다는 안으로 열린 눈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들은 세상을 향해 묻습니다. '나는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인가?'. 느헤미야의 내면은 이미 무너진 고향 예루살렘의 고통으로 병들어 있었습니다. 그 고통의 무게는 그의 얼굴빛을 통해 아닥사스다 왕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2:2). 왕의 "왜 수심이 가득하냐"는 질문은 느헤미야에게 떨어진 역사의 호출이었고, 그가 수개월간 준비했던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두려움 속에서도 지혜롭게 응답했고(2:4), 놀랍게도 왕은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허락했습니다(2:7-8). 그가 여정을 떠나고, 건축 자재를 얻고, 군대 장관과 마병의 호위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능란한 화술이나 지위에 기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2:8, 2:18) 가능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은혜로운 일의 배후에는, 우리가 스스로 이룰 수 없다고 절감하는 순간 열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하기를 기다리지 않으시고, 우리가 넘어지고 실패할 때에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이야말로 하나님의 은총이 유입되는 통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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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허 속으로, 고독한 밤의 순례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 며칠을 머물다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몇 사람만 데리고 밤중에 성벽을 조사하기 시작합니다(2:11-13). 이 밤의 여정은 단순히 행정적인 시찰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삶을 돌아보는 깊은 성찰의 시간, 곧 순례였습니다.

삶은 때로 우리를 '점-시간' 속으로 내몰아 지속적인 성찰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가장 어둡고 고독한 시간, 무너진 성벽의 잔해 속에서 진정한 현실과 대면했습니다(2:13-15). 폐허의 깊이를 아는 이만이 그 위에서 희망을 말할 수 있습니다. 무너진 '골짜기 문', '용 샘', '거름 문' 등을 지날 때, 그는 단순히 벽돌을 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의 영적, 도덕적 타락의 역사를 읽어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갈 길이 없었던 지점 ('왕의 못' 근처)에 이르렀을 때, 그는 자신의 무력함과 함께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이룰 수 없다는 확신을 얻었을 것입니다.

신앙인에게 '떠나라'는 명령은 늘 울려 퍼지는 하나님의 우렁우렁한 요구입니다. 이는 애집(愛執)하는 것을 만들지 않고, 익숙하고 편안한 일상을 벗어나 고통받는 이들의 현장으로 나아가라는 부름입니다. 느헤미야는 이 고독한 밤의 순례를 통해, 눈에 보이는 현실 너머에 작동하는 하나님의 역사 섭리를 분별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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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의 불꽃을 지피는 사람들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 계획을 반대하는 이들(산발랏과 도비야)의 조롱과 위협에 직면하지만(2:19), 그의 대답은 확고합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성공하게 하시리니..."(2:20). 이 성공은 인간적인 영달이나 자기 과시를 위한 것이 아니며, 단지 성벽을 다시 쌓는 물리적인 행위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절망의 나락 속에 누워있던 공동체의 존재 자체를 다시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가 홀로 '옳은 길'을 걸으려 할 때 세상은 종종 우리를 덜 떨어진 사람으로 취급하거나, 비웃음과 모욕을 던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의 칭찬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다 어려움을 겪어도 투덜거리지 않을 순례자의 본분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무너진 곳에 새로운 시작을 허락하시며, 불의한 현실과 싸우는 이들에게 궁극적 패배는 없다고 약속하십니다. 무너진 성벽의 폐허 위에서 길을 찾는 느헤미야처럼, 우리 삶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랑과 평화의 태피스트리를 짜는 새로운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존재이며, 그분의 선한 손이 지금도 우리를 붙들고 계시다는 든든한 신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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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이 모호하고 불안할 때, 우리는 마치 칠흑 같은 밤바다를 항해하는 제자들 같습니다. 사나운 물결과 어둠 속에서 안간힘을 쓸 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분(예수)이 잔잔히 바다 위를 걸어 우리에게 다가와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말씀하시는 그 순간, 비로소 우리의 배는 가야 할 땅에 이르게 됩니다. 느헤미야의 여정 또한 이와 같이, 하나님의 현존이 두려움과 절망을 넘어 우리를 이끄는 구원의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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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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