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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개 1:1-15 구멍 난 주머니와 흔들리는 영혼

삶의 허무라는 '구멍 난 주머니'에 신음하는 우리를, 하나님은 '말씀'으로 흔들어 깨우시어 마침내 은혜의 집을 짓는 일꾼으로 세우십니다.

*

우리는 모두 성실한 건축가입니다. 저마다 '나의 집'을 짓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더 안락하고, 더 근사하고, 더 튼튼한 '판벽한 집'(학 1:4)을 짓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갑니다. 그것이 이 '질펀한 삶의 현실'을 버텨내는 유일한 길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애써 쌓아 올린 그 집에서 참된 안식과 평화를 누리지 못합니다. 많이 거둘 요량으로 씨를 뿌렸으나 손에 쥐는 것은 보잘것없고, 아무리 먹고 마셔도 영혼의 허기는 채워지지 않습니다(학 1:6).

학개 선지자가 꿰뚫어 본 것은 바로 이 비극적인 아이러니입니다. 우리의 수고가 '구멍 난 주머니'에 재물을 넣는 헛됨이 되어버린 이유. 그것은 우리가 정작 가장 중요한 집, 곧 우리 영혼의 성전이신 '하나님의 집'은 황폐하도록 내버려 둔 채(학 1:9), 오직 '나의 집'에만 몰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폐허가 되었다는 것은, 삶의 거룩한 중심을 잃어버렸다는 뜻입니다. 존재의 닻을 내릴 항구를 잃어버린 배처럼, 우리의 삶은 안락한 집 안에서조차 위태롭게 표류합니다. '나'라는 우상에 갇혀버린 현대인의 자화상이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를 향해 하나님은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피라"(학 1:5, 7)고 준엄하게 말씀하십니다. 이 음성은 우리를 정죄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감각한 잠에서 우리를 흔들어 깨우는 사랑의 경종입니다. 고통스러운 현실의 가뭄(학 1:11)은, 실은 우리를 메마르게 하는 진정한 원인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낯선' 초대장입니다.

이 이야기기의 가장 감동적인 반전은 백성들의 반응에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기적은 "여호와께서... 마음을 흥분시키셨다"(학 1:14)는 데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결단이나 의지로 이 거대한 삶의 방향 전환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폐허가 된 영혼을 안고 절망하던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그분의 영이 우리를 '흥분'시킬 때, 비로소 새로운 일이 시작됩니다. 우리의 연약한 마음이 하나님의 열정으로 '진동'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나의 집'이라는 감옥에서 걸어 나와 '주님의 집'을 짓는 거룩한 노동에 참여하게 됩니다.

신앙은 완벽한 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황폐한 삶의 터전이라도 주님과 함께 다시 지어가는 '아슬아슬한 희망'의 여정입니다. 오늘 나의 구멍 난 주머니를 아파하시는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우리의 '삶이 메시지'가 되는 은혜의 집을 함께 지어 올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

학개 1:1-15 구멍 뚫린 전대와 하나님의 집

헛된 자기 욕망을 채우려 애쓰며 구멍 뚫린 전대에 재물을 모으는 연약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먼저 다가와 참된 삶의 터전을 건축할 용기와 소명을 값없이 불어넣어 주십니다.

*

우리가 사는 시대는 참으로 역동적이지만, 그 변화의 속도는 가히 파시스트적이라 할 만큼 빠릅니다. 삶은 분주하고 마음은 자꾸 허청거립니다. 사람들은 매일 수많은 광고에 노출되며, 제품의 질을 따지기보다 ‘기호’를 구매하여 자기의 사회적 위신이 올라간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오히려 자기 속의 허함을 내보이는 가련한 시도일 뿐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더'의 삶을 추구하지만, 정작 영혼의 심지는 깊이 박히지 못한 채 작은 바람 앞에서도 위태롭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의 모습이 바로 이 시대 우리의 초상입니다. 그들은 고통의 땅에서 구원받아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그들의 영적 나침반은 엉뚱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학개 1장 4절은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자신의 잘 꾸며진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는 준엄한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 곧 공동체의 거룩한 중심은 내버려 둔 채, 오직 자신의 안락과 외적인 번영에만 몰두하는 외화내빈(外華內貧)의 현실이었습니다.

이러한 자기중심적인 삶의 결과는 끔찍할 정도로 정직합니다. 6절은 이들이 헛된 욕망을 좇아 사는 삶을 “구멍 뚫린 전대”에 삯을 넣는 것에 비유합니다(학 1:6). 우리는 열심히 뿌리지만 수확이 적고,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합니다. 소비와 축적을 통해 만족이라는 종착지에 당도하려 하지만, 욕망이 추동하는 삶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아서, 우리는 결코 영원한 샘물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어찌 보면, 고통의 시험보다 더 이기기 어려운 것이 바로 풍요의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허망한 삶을 사는 백성들을 단죄하기 위함이 아니라, 살 길을 열어주기 위해 개입하십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학개를 통해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영광을 얻으리라”(학 1:8)고 명령하십니다.

이 명령은 징벌이나 고된 의무의 강요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인애(헤세드)가 담긴 값없는 초대입니다. 우리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비루먹은 삶을 당신의 구원 이야기의 일부로 삼아주시겠다는 선포입니다.

진정한 복음은 우리의 헌신이나 도덕적 우월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 안에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백성들과 지도자들이 이 명령에 순종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때” (학 1:12), 14절은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매”라고 기록합니다. 그들이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의지가 강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그분의 긍휼로 그들을 당신의 거룩한 목적에 동참하도록 초청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헛된 채움 대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분의 집을 세우는 일에 동참할 때, 우리는 비로소 구멍 뚫린 전대 대신 영혼의 쉼터참된 만족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는 마치 난파선이 폭풍우 속에서 하나님의 굳건한 품에 닻을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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