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1:14-19 막간 - 말씀의 통치를 받는 교회 : 일곱째 나팔: 마침내 도래한 그리스도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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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나팔의 끔찍한 재앙과 두 증인의 순교와 승천이라는 막간이 끝난 후, 마침내 일곱 번째 나팔이 울려 퍼집니다. 독수리가 예고했던 세 번째 ‘화(禍)’가 임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일곱째 나팔은 이 땅에 또 다른 재앙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가장 영광스러운 승리의 선포를 알립니다. 이 선포는 인류 역사의 모든 갈등과 고난의 목적지이며, 핍박받는 교회가 붙들어야 할 궁극적인 소망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의 모든 주권이 마침내 하나님과 그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고, 그분의 영원한 통치가 시작된다는 소식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역사의 최종 승리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보여주며, 그 승리한 왕을 어떻게 예배하고 섬겨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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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5절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세상 나라의 왕으로 통치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 위대한 선포: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로

인류 역사의 절정은, 이 땅의 모든 헛된 권세가 무너지고 세상 나라의 주권이 온전히 우리 주님과 그리스도께로 옮겨져, 그분의 영원한 통치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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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화가 지나가고 셋째 화, 곧 일곱째 나팔이 불자, 하늘에서 큰 음성들이 나서 선포합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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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화(禍)의 역설 : 땅에 속한 자들에게 일곱째 나팔은 마지막 ‘화’, 즉 최종적인 심판과 멸망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과 환희의 소식, 즉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알리는 복된 소식입니다. 같은 사건이 누구의 편에 서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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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 이 선포는 요한계시록 전체의 핵심 주제이며,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 나라 사상의 정점입니다. ‘세상 나라’는 로마 제국으로 대표되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스스로 왕 노릇 하려는 인류의 모든 정치, 경제, 문화 체제를 상징합니다. 이 모든 거짓된 왕들의 시대가 끝나고, 이제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식적으로 그 모든 통치권을 회복하시고 영원히 다스리실 것을 선포하는 대관식 장면과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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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그러나 아직’의 완성 : 이 선포는 ‘이미 그러나 아직 아니’(already but not yet)라는 신학적 긴장의 완성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의 초림과 십자가, 부활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이미’ 이 땅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주님의 재림 때에 ‘아직 아니’의 장막을 걷고 온전히 완성될 것입니다. 일곱째 나팔은 바로 그 최종적인 완성의 때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하늘에서는 이 승리가 이미 확정된 사실이기에, 마치 과거에 일어난 일처럼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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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던 엄혹하던 때에 우리 주님은 왕으로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나셨습니다. 당시 세상은 로마의 황제가, 그리고 유대에는 헤롯이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에 진짜 왕은 우리 주 예수님이라는 것을 천사를 통해 계시하시고, 마침내 진짜 왕이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의 황제와 헤롯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왕이시고, 로마가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참된 평화를 가져온 것이며, 로마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악의 무리를 심판하여 물리쳐 이기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는 이 복음이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롬 1:2-4).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나라(통치, 왕권)로서 이 땅에 이미 오셨고, 하나님나라의 도래에 대해서 선포하고 증거하고 가르치시며 전파하시고(복음서), 제자들에게 이 나라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라 하신 것입니다(사도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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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어느 나라에 속하여 누구의 통치를 받고 있습니까? 세상은 여전히 돈과 권력, 쾌락이 왕 노릇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 나라의 시민인 동시에, 이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속한 하늘의 시민입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충성의 대상은 세상의 그 어떤 권력이나 가치관이 아니라, 오직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이 정체성을 분명히 할 때, 우리는 세상의 흥망성쇠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장차 완성될 그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며 오늘의 삶을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역사 가운데서 많은 나라와 왕들이 있었으나 모두 다 망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런 나라가 영원할 것이라 여기며 헛된 우상과 부질없는 것들을 주인삼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가되면 자신들이 그토록 믿었던 주인에게 배반을 당하고 우상은 듣지도 보지도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생명을 얻게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나라에 부화뇌동하고 살아가는 눈과 귀와 심령이 어둡고 강퍅한 인생이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영원한 나라는 우리 주님이 왕되신 하나님의 나라라 유일합니다. 교회된 우리는 지금 그렇게 우리 주님과 이 땅에서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미와 아직의 긴장 속에서 왕노릇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이 복음을 따라 회개하고 우리 주님이 만왕의 왕되심을 믿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는 완성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주의 말씀과 주의 발자취를 따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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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17절 하나님은 교회의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전능의 왕이신 분이십니다. 

: 교회의 경배: 전능하신 왕께 드리는 합당한 반응 

그리스도의 영원한 통치가 선포될 때, 구원받은 교회(이십사 장로)는 그 위대하신 왕께 엎드려 경배와 감사를 드리는 것으로 합당하게 반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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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그들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라고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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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려 경배와 감사 : 만왕의 왕의 등극 앞에서 피조물이 보일 수 있는 가장 합당하고 유일한 반응은 바로 ‘예배’입니다. 이십사 장로, 즉 신구약의 모든 성도를 대표하는 교회는 자신의 모든 영광(보좌)을 버리고 그분 앞에 완전히 엎드림으로써, 모든 주권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고백합니다. 만왕의 왕되신 하나님을 만난 인간의 가장 합당한 반응은 예배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것들의 참된 주인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주 되심에 대한 고백은 모든 삶의 우선순위에 우리 주님이 계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루의 첫 시간을 예배로 시작하고, 일주일의 첫 날을 주님께 예배하며 시작하고, 월삭을 에배로 드리고, 송구영신하면서 한해의 시작을 예배로 시작한다는 것은 우리의 하루, 일주일, 한달, 일년, 그리고 일평생의 생사화복이 우리 주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믿으며 주님의 것이고 주님의 주권과 왕되심을 고백하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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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던” : 이 찬양에는 중요한 신학적 변화가 있습니다. 이전의 찬양에는 항상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표현이 있었습니다(계 1:4, 8; 4:8). 그러나 여기서는 ‘장차 오실 이’가 빠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그분께서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의 시대가 끝나고 통치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감격적인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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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이(Pantokrator) : 이 칭호는 하나님께서 그 어떤 세력도 거스를 수 없는 절대적인 힘으로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분임을 강조합니다. 교회의 예배는 바로 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신뢰의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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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님께 드릴 예배는 세 가지입니다. 함께 드리는 공동체 예배, 그리고 개인적으로 드리는 개인 예배, 또 삶을 통해서 드리는 예배가 그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제의적 예배의 상세한 설명과, 제물에 대한 설명과, 먹는 것과 마시는 것등의 모든 생활에서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여 거룩한 삶 곧 합당한 예배자로 살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예배가 일치될 때, 곧 우리가 믿는 것과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일치될 때, 그 예배가 하나님이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순종하며 고백하며 살아갈 때 그것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합당한 예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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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예배는 단순히 일주일에 한 번 드리는 종교의식이 아니라,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왕 되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통치에 순종하는 삶 그 자체입니다. 하루의 첫 시간을 기도로, 한 주의 첫날을 공적 예배로, 내 삶의 모든 우선순위를 주님께 내어드리는 것이 바로 왕에 대한 합당한 경배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과 아는 것, 그리고 행하는 것이 일치될 때,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거룩한 산 제사가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거룩한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날마다 우리 하나님을 예배하며 우리의 왕이시며 만왕의 왕되신 주님께 합당한 예배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일주일 혹은 일년에 한두번이 아니라 매일 매순간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거룩한 예배자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부르셨고, 그렇게 우리는 매일 예배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나의 삶이 주님이 받으실 합당한 예배자로서 거룩하고 흠없는 언행심사로 산 제물 되어 주께 열납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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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9절 하나님은 합당한 반응 여부에 따라 상과 벌을 분명하게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 왕의 통치: 심판과 상급, 그리고 언약의 보증

왕의 통치는 두 가지 결과, 즉 당신을 대적하는 자들에 대한 공의로운 심판과 당신을 경외하는 종들에게 주시는 영광스러운 상급을 가져오며,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변치 않는 언약에 근거하여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장로들은 계속해서 노래합니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들을 심판하시며, 주의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가 이르렀다고 선포합니다. 그때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쏟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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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운명 (심판과 상급) : 왕의 통치가 시작되자, 세상은 두 부류로 명확히 나뉩니다.

  1. 심판과 멸망 : 그리스도의 왕 되심에 ‘분노’하고 대적했던 이방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탐욕으로 ‘망하게 하던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와 심판이 임합니다. (이는 시편 2편의 주제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2. 상급과 구원 : 반면,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신실했던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 그리고 크고 작은 자를 막론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모든 자들’에게는 약속된 상급, 즉 영원한 구원과 영광이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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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성전과 언약궤: 이 모든 심판과 상급의 선포가 끝나는 순간, 하늘 성전이 열리고 그 안에 있던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입니다. 이것은 이 장의 클라이맥스이자, 교회를 향한 가장 큰 위로의 상징입니다. 언약궤는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의 변치 않는 언약적 신실하심을 상징했습니다.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던 유일한 근거는, 언약궤 뚜껑 위 ‘속죄소’에 뿌려진 희생의 피였습니다. 마지막 심판의 때에 이 언약궤가 보인다는 것은 다음을 의미합니다.

  1. 하나님의 모든 심판과 구원은 당신의 신실하신 언약에 근거하여 이루어집니다.

  2. 하나님의 백성은 심판의 번개와 우레 속에서도,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새 언약의 속죄 은혜로 말미암아 안전하게 보호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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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왕이 나타났을 때 세상의 반응은 둘로 나뉩니다. 순종과 불순종(입니다. 하나님은 합당하게 반응하는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이들은 끝까지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도록 참으시고 기다리시고 기회를 주시고 여러가지로 사인을 주어도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분노하고 대적하고 불순종하며 심지어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섬기고 우상을 숭배하며 땅을 망하게 하는 이들은 멸망 시키실 것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을 정복 곧 잘 관리하며 청지기로 대리 통치자로 살라 하시며 축복하신 주님의 명령을 불순종한 이들이 땅을 망하게 하는 이들입니다. 왕같은 제사장으로 우리를 택하시기 위해 그리스도의 희생과 대속으로 다시 살리신 은혜를 거절하고 끝내 스스로 왕이 되고 하나님 아닌 것을 섬기며 종노릇 하는 이들이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입니다. 땅에 속한 자이면서 스스로 선 땅을 오염시키고 죽이며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 것입니다. ‘죽은 자’라는 표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땅에 속한 자, 죄인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잃었기에 살아 있으나 참 생명 없이 죽은 자인 것입니다. 

이러한 언약을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실 것을 일곱 인과 일곱 나팔에 동일하게 나타나는 번개와 음성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을 통해 확신시켜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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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장차 하나님 앞에서 받게 될 상급과 구원은 우리의 행위나 공로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 즉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근거합니다. 하늘에 있는 언약궤는 이 사실을 우리에게 확증시켜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 심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히브리서 11장 6절의 말씀처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고" 소망 가운데 담대히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흔들리는 세상이 아니라, 변치 않는 하나님의 언약 위에 굳건히 서 있습니다.

시편 2편 _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2: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고난의 여정 속에서도 부르심의 상과 마침내 구원하실 그 상을 바라보며 약속의 주님, 신실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의지하며 오늘을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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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세상 나라를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게 하신

전능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 아닌 것들을 왕으로 모시고 종노릇하면서

입술로만 주를 고백하며 삶의 우선순위를 혼돈하며 살고 있는

어리석음이 여전히 내 삶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 

곧 하나님나라를 예수 그리스도로 임하게 하시고

우리고 그의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택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합당한 예배로 왕노릇 하며 살게 하신 은혜로 감사드립니다. 

온전한 예배자로 흠없는 거룩한 산 제물로 살기 원합니다. 

주께서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것을 기억하며

분노와 불순종과 어리석음과 땅을 망하게 하는 일은

우리 삶에 그 모양이라도 버리게 하옵소서. 

온전한 순종과 믿음으로 주의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매순간 매일 매주 매월 매년 그리고 일평생

우리 주님의 통치에 순종하며 

주의 나라에 온전히 거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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