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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여호와만 의지하라 - 20010731(열왕기하16: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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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16장1절-20절-20110731-주일낮예배
* 설교제목 : 오직 여호와만 의지하라
* 설 교 자 : 라종렬 목사
* 성경본문 : 열왕기하 16:1~20
1 르말랴의 아들 베가 제십칠년에 유다의 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니
2 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간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고
3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4 또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5 이 때에 아람의 왕 르신과 이스라엘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싸우려 하여 아하스를 에워쌌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6 당시에 아람의 왕 르신이 엘랏을 회복하여 아람에 돌리고 유다 사람을 엘랏에서 쫓아내었고 아람 사람이 엘랏에 이르러 거기에 거주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7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8 아하스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냈더니
9 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점령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기르로 옮기고 또 르신을 죽였더라
10 아하스 왕이 앗수르의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제단을 보고 아하스 왕이 그 제단의 모든 구조와 제도의 양식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냈더니
11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대로 모두 행하여 제사장 우리야가 제단을 만든지라
12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 제단을 보고 제단 앞에 나아가 그 위에 제사를 드리되
13 자기의 번제물과 소제물을 불사르고 또 전제물을 붓고 수은제 짐승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
14 또 여호와의 앞 곧 성전 앞에 있던 놋 제단을 새 제단과 여호와의 성전 사이에서 옮겨다가 그 제단 북쪽에 그것을 두니라
15 아하스 왕이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침 번제물과 저녁 소제물과 왕의 번제물과 그 소제물과 모든 국민의 번제물과 그 소제물과 전제물을 다 이 큰 제단 위에 불사르고 또 번제물의 피와 다른 제물의 피를 다 그 위에 뿌리라 오직 놋 제단은 내가 주께 여쭐 일에만 쓰게 하라 하매
16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의 모든 명령대로 행하였더라
17 아하스 왕이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내고 물두멍을 그 자리에서 옮기고 또 놋바다를 놋소 위에서 내려다가 돌판 위에 그것을 두며
18 또 안식일에 쓰기 위하여 성전에 건축한 낭실과 왕이 밖에서 들어가는 낭실을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옮겨 세웠더라
19 아하스가 행한 그 남은 사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0 아하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다윗 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I. 도입이야기
* 우리 신앙은 늘 도전과 시험의 연속입니다.
- 섰다 할 때, 좋다고 할 때, 다 되었다고 생각될 때 여전히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II. 몸말
■ 배경
* 열왕기서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왜 자신들이 이렇게 끌려왔는지 왜 하나님으로부터 이러한 벌을 받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기록된 책입니다.
- 그래서 열왕들의 우상숭배의 극렬한 죄악상을 낱낱이 고하고 선지자들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서 얼마나 이들이 선을 떠나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했는지,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결과로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 첫째로 이들은 이러한 역사를 분명히 인식하고 전철을 밟지 말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의 신보다 약해서 이스라엘을 내어준 것이 아니라 이들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여 오래도록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범죄한 이스라엘을 심판한 결과라는 것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 둘째로 비록 죄악으로 말미암아 바벨론으로 끌려왔지만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시기에 언제든지 그들이 회개하면 용서하실 준비가 되어 있고, 다시 출바벨론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열왕들의 이야기가운데서 끊임없이 선지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전하는 말씀은 하나님께 돌아와 그분의 계명을 지키라는 것이었으며 언제고 순종하면 다시 용서받을 수 있기에 행동과 예언으로 회개를 촉구했던 것입니다.
- 셋째로 비록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고 성전을 불타버리고 포로로 끌려와 있지만 이들은 아직도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포로된 이들에게까지 선지자를 보내셔서 소망과 힘을 주시는데 다윗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새로운 출애굽을 기대하게 하는 소망을 주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 열왕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대신한 통치자이며 겸손히 하나님의 대리통치에 임하면서 그 어떤 일보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했습니다.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신 오늘 교회된 우리에게도 동일한 교훈을 주고 있는 책입니다.


* 본문의 배경
- 앗수르가 팽장정책을 펼치고 있는 불왕(디글랏 빌레셋)때 근동에 있던 북이스라엘, 아람, 남유다의 정치적인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갑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20세이 남유다의 왕위에 오르게 된 아하스왕은 신앙과 정치력 사이에서 갈등하게 됩니다.

■ 화두
*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서 메시야 예언에 해당되는 유명한 임마누엘에 관한 말씀이 이 아하스를 향한 하나님의 위로의 메시지였습니다.
- 아하스는 이 놀라운 임마누엘의 약속과 위로에도 불구하고 결국 악인의 길, 여로보암의 길로 가고 맙니다. 우리가 반면교사로 여길 부분들과 이를 통해서 다시한번 하나님의 약속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 석의과 해석과 적용
1. 아하스의 영적 배경, 위기의 순간에 우상을 숭배하는 아하스(1~4)
* 16장의 역사적 배경은 앗수르의 부흥기에 맞닿아 있습니다. 즉, 디그랏 벨세셀 3세가 강력한 군사력을 동원하여 주변국가를 통폐합을 주도하였던 시기였습니다.
- 특히 선왕들은 조공을 받기 위해 군사적인 공격을 단행하였지만, 디글랏 벨레셀은 침략한 나라들을 자신의 국가에 병합시켜 속국으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 그의 생각은 서부 팔레스틴 지역의 목재와 광물과 같은 자원을 원했을 뿐 아니라 지중해를 통한 무역로 확보에 큰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앗수르의 침략은 동부 지중해 연안을 비롯한 대부분 팔레스틴 지역에까지 확대되었으며, 앗수르의 침략에 굴복한 이 지역 국가들은 앗수르의 속국으로 디글랏 빌레셀에게 조공을 바쳤습니다.

* 이러한 상황에서 유다 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고(2)”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지극히 부정적인 것이며 곧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가 이제는 거의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 더욱이 아하스는 유다 역사상 처음으로 인신제물을 불태우는 의식을 시도했던 왕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3) 이것은 그를 이스라엘 열왕들의 죄(왕하 17:17절)와 유다 왕국 역사상 최고의 악한 왕인 므낫세(왕하 21:6절)의 죄와 결속시키는 범죄였습니다. 아하스는 가나안 족속들의 가증한 관습들을 답습한 셈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하스를 여로보암과 므낫세와 같은 반열의 죄인으로 올려놓은 동인이 되었습니다.
- 아하스가 왕위에 오를 때 나이가 20살이었는데, 나라가 급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계속 반 앗수르 동맹에 가입할 것을 촉구했던 르신과 베가는 아하스에게 더욱 위협을 가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하스는 친 앗수르 정책을 펴는 것이 국가 존립에 이롭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여기에는 남쪽 국경을 접하는 애굽의 간섭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 이러한 위기 순간에서 아하스가 선택한 돌파구는 여호와 하나님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우상숭배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특이한 점은 어떤 모양이든지 앗수르 종교와는 관련되지 않았으며, 그가 장려하거나 허용했던 종교적 관습들은 명백하게 가나안 종교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입니다.


2.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정치적 해법(5~9)
* 아하스의 인신제사와 같은 적극적인 우상숭배에도 불구하고 르신과 베가 즉, 암몬과 북 이스라엘의 동맹은 아하스를 더욱 압박하였고 급기야 유다는 군사적인 침략을 당하게 됩니다. 이 때에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는 북 이스라엘의 선지자였지만, 이사야 7장에서는 주로 남 유다의 아하스 왕에 대한 충언과 예언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드렸더라(사 7:2)”
- 르신과 베가의 연합공격은 유다를 완전히 무너뜨리지는 못했으나 아하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이 연합동맹국은 요단 동편과 아카바만 남쪽의 모든 유다 지역을 점령하였으며, 특히 엘랏 도성도 차지하여 아하스에게 압박을 더욱 가중시켰습니다. 이때에 아하스가 누구를 의지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바뀔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사스는 이런 절대 절명의 위기 순간에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 이사야에 의하면 르신(암몬)과 베가(북 이스라엘)의 연합 공격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분명히 선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하스는 이러한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앗수르를 선택하였습니다.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사 7:4)

* 아하스는 앗수르에게 구원을 요청하기 위해 먼저 디글랏 빌레셀 3세에게 서신을 보내게 됩니다. 이 서신에서 아하스는 디글랏 빌레셋에게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는데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의 왕으로서는 굴욕적인 언사를 사용하였습니다.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7)” 여기서 당신의 신복이란 철저한 복종을, 당신의 아들이란 완전한 의존을 의미했습니다. 즉, 아하스는 자신을 앗수르 왕에게 철저히 복종할 뿐 아니라 완전히 의존하는 존재로 소개하였던 것입니다.
-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백성의 대리자로서의 위치를 완전히 망각하는 행위이며 다윗 왕조의 신학적인 정체성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나아가 아하스는 성전과 왕궁의 보물들을 앗수르 왕에게 조공으로 바쳤습니다. 이는 예물보다는 뇌물의 성격이 강한 조공이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아하스는 국가의 대사를 위하여 사용해야 할 성전 및 왕궁의 재물들을 뇌물의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웠습니다.
-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입장에서는 어차피 암몬을 공격할 계획이 있었으며 결국에는 다메섹을 멸망시켰습니다(BC. 737). 북 이스라엘은 이전에 앗수르에게 빼앗기고 멸망직전까지 가지만 베가가 호세아의 반란으로 정권을 빼앗기자, 호세아가 앗수르에게 항복함으로써 일단 멸망은 면하게 됩니다.


3. 이방제단 건축과 계속되는 조공(10~20)
* 아하스의 조공을 받은 디를랏 빌레셀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반 앗수르의 연합동맹국을 무력화시키고 르신을 처단하였습니다. 이렇게 아람과 북 이스라엘 연합군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난 아하스 왕은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기 위해 다메섹을 방문하기에 이릅니다. 이는 종주국과 봉신국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어쩌면 한국 대통령 당선자는 반드시 미국을 방문한다는 전례를 들춰야 할 것까지는 없지만, 씁쓸합니다.
- 아하스는 그곳에서 다메섹의 크고 화려한 제단을 보고 마음을 빼앗길 만큼 감탄하였습니다. 이 제단에 대해서 구체적인 설명은 없지만, 대체로 승리의 제국 앗수르의 신들을 위한 제단이었기 때문에 심히 위협을 받아왔던 아하스가 더욱 그랬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곧장 제사장 우리야에게 전갈을 보내 이 제단 양식 그대로 새로운 제단을 짓도록 명령하였습니다.
- 이러한 아하스의 명령은 앗수르의 직접적인 종교 탄압에 의한 압력 때문인가? 아니면 주종관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무언의 압력이 있었는가? 아니면 아하스가 스스로 봉신국으로써 모범적인 행위로 봐야 하나? 즉 요즈음 유행 말로 알아서 스스로 기었나? 그러나 고대 근동시대에 앗수르는 속국이 반역하지 않는 한 그들의 내정에는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들의 종교의식도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정치적인 영향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 손치더라도 이 같은 아하스의 태도는 그의 자발적인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 그뿐 아니라 아하스는 기존의 성전 기물들을 앗수르 왕의 조공으로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아하스는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는 모든 신앙의 유산들을 팔아먹는 어리석은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누구와 비교되지 않습니까? 서울도성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하여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얻어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했던 어리석었던 어떤 한 장로를 연상하게 만듭니다.
- 일단 정치적인 고려나 봉신국가의 지위는 이 종교제의적 혁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아하스가 앗수르 양식의 제단의 본을 따랐다는 전제가 유용한가? 하는 점입니다. 그가 그려서 보냈던 제단의 형태를 그대로 제사장 우리야가 건축했느냐의 문제입니다. 당시의 각종 신당의 제단은 각 나라마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건축물이라고 생각할 때에 앗수르의 신전 제단은 아주 인상적인 최신형 건축물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아하스가 새 제단을 설치하려고 하였던 동기는 바로 실제적으로 미학적인 여건들 때문에 새로운 제단을 설치하려는 의지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아무튼 그가 건축한 제단은 솔로몬 제단보다 훨씬 컸으며 실용적인 면에서도 나았습니다. 비록 실제적인 역사적 사실은 달랐을지 모르지만, 솔로몬 성전에 세워진 단 하나의 희생제단인 놋제단은 솔로몬의 방대한 자원적 희생제물들을 용납하기에는 너무나 작았고, 별도로 희생제물을 드리는 일정을 잡았어야 했습니다.
“그 날에 왕이 여호와의 성전 앞뜰 가운데를 거룩히 구별하고 거기서 번제와 소제와 감사제물의 기름을 드렸으니 이는 여호와의 앞 놋제단이 작으므로 번제물과 소제물과 화목제의 기름을 다 용납할 수 없음이라(왕상 8:64)”
- 대조적으로 이 새로운 돌 제단은 그것에 부과된 모든 희생제자를 능히 용납하고 처리할 만큼 큰 제단이었습니다(15). 그것은 계단이나 경사로를 딛고 “올라가서 옆에서(12)” 제사를 드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컸다는 점입니다. 아하스가 성전 제단을 개축한 일은 앗수르의 압력이나 명령에 따라 시행한 것이 아니라면, 결국은 하나의 긍정적인 치적으로 평가될 수는 없는가 하는 의견입니다. 만약에 이런 제단축성의 작업이 긍정적일지라도 그가 행한 배교의 행적은 무시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 안식일에 쓰기 위하여 성전에 건축한 낭실과 왕이 밖에서 들어가는 낭실을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옮겨 세웠더라(왕하 16:18)”
- ‘앗수르 왕을 두려워 하여’라는 번역은 앗수르 왕으로 말미암아로 개역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앗수르 왕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아하스 입장에서는 앗수르에게 약점을 잡히지 않기 위해서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을 성전에까지 밀고 들어왔다는 점에서 하나님께 대한 배역의 문제로 확산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교회를 이용하기도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 아하스가 하나님을 배역했다는 사실은 확실히 살펴봤습니다. 그럼에도 그 목적이 어찌하든 간에 성전에 새로운 희생제단을 설치한 것은 그가 전통적으로 성전의 후원자였음을 또한 증거로 남겼습니다. 이는 애매모호한 입장에 서 있는 물 탄 신자의 모습의 전형입니다. 아하스는 이처럼 당시 남 유다의 상황을 정확하게 반영하였습니다.
- 유다 앞에는 여전히 순종과 생명의 길과 우상숭배와 죽음의 길이 중립적인 거리에 놓여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유다는 이 자유선택의 기회를 잃게 될 것이며 죽음이 불가피한 선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아하스와 유다는 지금 우리가 망설이며 서 있는 지점인 신앙과 불신앙, 순종과 배교, 생명과 죽음의 교차로에 서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 그리스도 예수의 속량 없이는 우리는 아하스의 애매모호한 신앙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가 성전에 후원자였을지언정, 항상 배교 앞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며 이는 모든 신자에게 적용됩니다. 현재를 사는 세상에서 수 없이 죄와 타협하고도 멀쩡하게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심한 모순입니다. 결국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이 심각한 죄성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운 의지에 맡겨져 있음을 잊어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 없이는 하루 한 순간도 버틸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III. 마무리 이야기
* 아하스가 긴급한 위기에 처할 대 이사야 선지자는 열방을 의뢰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만을 의지할 것을 촉구합니다.
- 반면에 아하스는 정치적 동맹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비록 유다는 정치적 동맹을 통해 위기의 순간에서 잠시나마 벗어나지만 이후에 어떤 결과를 맞이합니까? 열왕기하18:13에서는 오히려 유다는 그토록 의지했던 그 앗수르로 부터 공격을 방아 멸망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고 증언합니다. 다시 말해서 의지의 대상이 오히려 문제의 원인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 오늘 이와 같은 일들이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운데 존재합니다.

- 정치적으로도 동맹과 연합은 거의 경제적 양육강식에 의해 이합집산되고 있습니다.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는 시대입니다. 자국의 이익에 따라서 언제든지 화해의 손에 칼이 들릴 수도 있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 개개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신뢰했던 사람이 자신의이익에 따라 우리를 배신하는 경우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어느 누구도 궁극적인 신뢰의 대상,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 십계명의 세 가지 중요한 원리는 이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경배와 신앙의 대상, 사람은 사랑의 대상, 사물은 통치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원칙을 혼돈하게 되면 우리는 죄를 범하든지, 배신을 당하든지, 역으로 멸망에 이르기도 합니다.

* 위기의 순간에 우리가 궁극적으로 의지할 대상은 누구인가?
-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8:13~14에서 만군의 여호와 그가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니라 했고 다윗은 여호와가 나의 피난처라 했습니다.
- 우리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이 다 내게로 와서 쉬라 했습니다.
= 오늘 우리의 믿음은 바로 이 신뢰의 대상을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 오직 여호와만 의지하라 부르신 주님을 경배하며 믿음으로 신뢰로 반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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