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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 20110619(나훔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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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훔1장1절-8절-20110619-주일낮예배
* 설교제목 :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 설 교 자 : 라종렬 목사
* 성경본문 : 나훔 1:1~8
1 니느웨에 대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2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3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이로다
4 그는 바다를 꾸짖어 그것을 말리시며 모든 강을 말리시나니 바산과 갈멜이 쇠하며 레바논의 꽃이 시드는도다
5 그로 말미암아 산들이 진동하며 작은 산들이 녹고 그 앞에서는 땅 곧 세계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들이 솟아오르는도다
6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
7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8 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 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I. 도입이야기
* 과거 유교적 관념이 강했던 시대에는 남편이 다른 여자를 취한다고 해도 아내는 질투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질투를 하는 것은 여자를 쫓아낼 수 있는 구실인 이른바 칠거지악(七去之惡) 중의 한 항목으로 삼기도 하였습니다.
- 그러나 독일 속담에서는 "질투가 없는 곳엔 사랑이 없다"고 하였으며, 조셉 에디슨(Joseph Eddison)은 "질투는 자기가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동등하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나오게 되는 고통이다"고 하였습니다.
-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설명할 때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표현한 부분들이 있는데, 신 4: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오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 여러분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란 말은 독점적으로 받아야 할 것에 대한 권리를 당연히 주장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는데, 칼빈 역시 이러한 뜻으로 이해하였습니다.
- 출34:14에 보면,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 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란 표현은 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한 백성들이 그 외의 다른 대상에게 애정과 헌신을 바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택한 백성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신에게 돌아올 고유한 영광이나 찬양이 다른 대상에게 엉뚱하게 돌아갈 때, 그리하여 그 백성들의 영혼이 헛된 우상에게 빼앗길 때, 당신의 속성상 우러나오는 그러한 공의로써 그러한 행위를 질투하시는 것입니다.


II. 몸말
■ 배경
* 나훔서의 저자 나훔은 스바냐, 하박국, 예레미야 등의 선지자와 동시대 인물로 그 뜻이 위로자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 요나가 회개를 촉구한 니느웨가 수도인 앗수르는 한때 북이스라엘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막대기로서 쓰임받았지만, 이들이 행한 잔인한 정복은 결국 자신들이 책임져야 했고, 멸망을 자초한 일이었습니다. 이들은 전쟁을 통해 패한 민족과 마을에 모든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정책으로 유명합니다. 그렇게 마을을 초토화 시킨 후에 다른 사람들을 이주시켜 반란의 싹을 처음부터 완전히 제거해 버리는 잔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 거기에다가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는 철옹성 같은 성벽(마차 6대가 동시에 갈 수 있는 성벽 두께)이 겹으로 있는 도성으로 당시 최강국이었기에 그들의 교만은 하늘을 찔렀고, 무자비함과 권력과 힘으로 패권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결코 멸망은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 그러나 나훔은  BC 721년 북이스라엘이 멸망한지 100여년이 지난 뒤에 남 유다에서는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이 일어난 직후에 당시 고대근동의 패권을 치지하고 있던 이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한 것입니다.
- 남유다에서는 종교개혁을 통해서 신앙에 대한 중요한 회개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였는데 당시 약소국이던 유다의 선지자가 앗수르의 멸망을 예언한다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나훔은 묵시의 글로 앗수르와 니느웨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 아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불가능한 것 같은 이 예언이 실제로 이루어졌음을 알고 있는 우리에게 나훔서가 말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 본문의 배경
- 오늘 나훔서의 서두에 해당되는 본문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에 대한 성품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 오랜세월 거룩한 백성으로 합당하게 살지 못한 유다도 나름의 종교개혁을 통해서 돌아섰지만, 앗수르같은 악한민족이 흥황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부분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악을 방치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 화두
* 한때 하나님의 자비의 대상이었던 니느웨는 이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나훔은 니느웨가 술에 취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3:11). 여기서 나훔이 가리키는 것은 니느웨 성읍이 쓰디쓴 찌끼가 들어 있는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들은 망했습니다.
* 나훔이 소개하는 하나님의 성품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앞에 감사와 찬양을 결단하고 합당하게 반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석의과 해석과 적용
1.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공의)
*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 하나님은 오직 자신만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기에 거짓 신이 숭배받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또한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노하기를 더디 하신다고 말하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그렇게 하신 것처럼, 자기 백성에게 자신을 계시하신 내용입니다.
- 그러나 인내하고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성품은, 마치 하나님이 어떤 처벌을 하지 않는 것이 절대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뜻을 가리키지 않는것처럼, 하나님이 무관심하시다는 뜻을 암시하는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됩니다.
- 하나님의 인내와 가정된 신적 무관심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 전능하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철저히 진리에 충실하고, 보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 하나님은 죄책을 처벌하지 않고 놓아두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훔도 하나님이 니느웨를 처벌하실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 우리 삶에도 끝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삶과 죄에 대해 해명해야 합니다.
- 그래서 우리는 늘 깨어서 선한 일을 도모해야 하며,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해명도 통하지 않습니다.
- 심판자 되시는 하나님은 전능하고, 온전히 거룩하고, 단호하고, 항상 정확합니다. 어떤 호소나 회피가 불가능합ㄴ다.
- 하나님은 모든 민족의 왕과 거민에게 해명을 요구하실 것이니다. 앗수르, 유다, 이라크, 미국등등. 그러나 이 모든 민족은 지나가지만 우리는 끝나지 않습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게 될 터인데, 누가 그 앞에서 제대로 설 수 있겠습니까?
- 우리는 철저히 순종하고 있지도 못합니다. 해명도 안됩니다. 이러한 죄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 곧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인이라면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이해해야 합니다
- 질투에 대한 우리의 인간적 경험을 가정하면, 질투를 죄와 분리시켜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에 대한 배타적 경배를 질투하시며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는지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상상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자신에게 성실하고, 또 우리가 우리의 유익을 위해 자신에게 최대한 성실하기를 바라십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을 반대하는 자라고 해도, 우리의 감정과 애정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반대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놓여 있어야 합니다.

*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서 어떤 경쟁자가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빼앗아 가고 있습니까?
-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의 감정을 지배하는 데 있어 누가 하나님과 다투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원수들에 대해 참지 못하십니다. 이런 경쟁자가 누구인지 또는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고, 그것들에 대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하는 것을 기뻐하시니까요.
= 오늘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2.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사랑)
* 심판의 날은 하나님의 대적들에게는 재앙이지만, 하나님 백성인 주 안에서 쉴 곳을 찾는 성도, 겸손한 사람, 통회하는 성도에게는 가장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주시는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독생자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신 것도 오직 하나님의 선하심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상황에서도 선하시기에 신실한 백성들은 어떤 어려움과 곤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사랑을 받게 됩니다.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일에 은혜로우시도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은 다 보호하시고 악인들은 다 멸하시리로다(시 145:17-20)”

*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하여 두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7)” 우리가 곤경에 처했을 때에 하나님은 굳건한 요새가 되십니다.
- 그러므로 땅과 산들이 바다 가운데에 놓여 흔들려도 우리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요새는 한시적이 아니라 영속적입니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는 약속입니다(마 28:20절 참조).

* 하나님의 선하심의 또 다른 의미는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신다”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를 보호하신다는 점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아십니다. 이는 체험적으로 친밀하시다는 뜻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아버지가 자식을 아끼고 보살펴 사랑하는 마음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백성의 모든 바람과 고통과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죄는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함께 표출하셨습니다.
“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 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나 1:8)”

* 하나님은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어 그곳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하십니다.
- 결국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만민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일입니다. 이 일에 방해되는 사탄의 세력을 흑암으로 몰아 쫓아내는 근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바로 이를 위한 출발점입니다. 따라서 이런 징벌 단계는 필연적인 과정이며 이 징벌 곧 심판의 역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와 하나님의 선하심과 공의의 표현이며 증거인 것입니다.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골 2:13-14)”



III. 마무리 이야기
* 오늘 말씀에서 고백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 질투하시는 하나님(오직 하나님), 보복하시는 하나님(언약으로 인하여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반드시 이루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반드시 심판이 따릅니다), 무한한 권능의 하나님(그 앞에 설자가 없습니다. 그의 분노와 진노를 감당할자도 없습니다), 모든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 모든 만물의 주관자 하나님이십니다.
= 나훔 당시 득세하는 앗수르를 향한 예언은 비록 유다의 죄악에 대해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결국 유다에게 경고가 되기도 하고 위로도 되었습니다.
- 초강대국이었던 앗수르의 영광도 하루아침에 무너졌습니다. 자신들이 행했던 대로 보응을 받았고, 그런 강대국도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설 수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것들의 유한한 한계들을 깨달을 수 있게 합니다.

* 앗수르가 마셔야 했던 그 잔을 오늘날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위해 똑같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셨습니다.
-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을 때, 언급하신 잔은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하는 잔입니다. 그리스도는 이 잔을 마실 만한 죄를 범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그분에게 돌아서면, 여러분의 죄와 저의 죄를 위해 그 잔을 마셨습니다.
* 신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심판이 확실히 어떤 성읍에 임한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에게 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 아들에게 임했을 때, 하나님의 원수들과 우리의 원수들을 굴복시켰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음을 통해, 그리스도는 “우리르 ㄹ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그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습니다.”(골2:14·15)
* 최후의 전쟁은 어떤 단순한 성읍의 멸망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수들에 대한 궁극적 심판과 하나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다스림의 확립으로 구성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책임지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앞에 합당하게 반응하며 상처입은 위로자 되시는 주님앞에 위로받고 온전한 신뢰와 믿음과 소망가운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기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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