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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06:1-13 그루터기에 남기신 거룩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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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를 성전 환상 중에 뵙습니다. 스랍들은 여섯 날개 중 넷으로 얼굴과 발을 가리고 둘로만 날며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라고 화답하고, 그 소리에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가득합니다(1-4절). 거룩하신 왕 앞에서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 탄식하지만, 스랍이 제단 숯불을 그 입에 대어 악을 제하고 죄를 사합니다(5-7절). 이어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는 주의 음성에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자원하고, 백성이 끝내 듣지 못하고 완악해져 땅이 황폐하기까지 이르는 심판의 신탁을 받습니다. 그러나 베임을 당한 나무의 그루터기처럼,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로 남으리라는 회복의 약속이 마지막에 놓입니다(8-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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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야 6장은 흔히 예언자의 '소명장(召命章)'으로 불리지만, 예레미야(렘 1장)나 에스겔(겔 1-3장)의 소명 기사가 책의 서두에 놓이는 것과 달리 이사야에서는 6장에 놓입니다. 김필회 교수는 이 배치에 주목하여, 6장의 일차적 관심이 예언자 개인의 부르심 자체보다 '하늘 어전회의(divine council)에서 결정된 이스라엘의 운명', 곧 심판의 결정을 백성에게 전달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6장의 강조점은 13절의 '남은 자'가 아니라 심판에 맞춰져 있습니다.

# 역사적으로 웃시야 왕(주전 786-734년)은 40여 년의 긴 통치로 유다에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안정을 가져왔습니다. 북왕국 여로보암 2세 시대와 맞물려 근동 정세도 유다에 우호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웃시야가 죽고 난 즈음(주전 740년경) 물러났던 앗수르가 다시 서진(西進)하기 시작하면서, 9세기부터 7세기 근동을 좌우한 앗수르 세력의 팽창이 온 세계를 요동치게 만듭니다. 바로 그 국제정세가 흔들리기 시작하는 문턱에서, 이사야는 "높이 들린 보좌"—국제정세가 요동쳐도 지상의 영향을 받지 않는 크고 견고한 보좌—에 앉으신 참된 왕을 봅니다. 인간 왕 웃시야의 죽음과 하늘 왕 여호와의 즉위가 선명하게 대조됩니다.

# '스랍(seraphim)'은 성경에서 오직 이곳에만 등장하는 천상적 존재로, 지성소의 그룹(cherubim)과 구별됩니다. 지근거리에서 하나님을 모시는 존재조차 그분의 거룩함에 생명을 잃지 않으려면 날개로 온몸을 가려야 한다는 사실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절대적 간격을 보여줍니다. '거룩 삼창(Trisagion)'은 히브리어의 최상급 표현 기법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비교를 거절하는 절대적 차원임을 선포합니다. 이 본문은 훗날 요한복음 12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미리 본 장면으로 재해석되며(요 12:41), 사도들은 이사야가 뵌 그 보좌의 왕을 성육하신 그리스도로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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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절 거룩하신 만군의 여호와, 온 땅을 통치하시는 왕

하나님은 국제정세가 요동칠지라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보좌에 앉으신, 온 우주의 참된 통치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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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주를 뵙고, 그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한 것을 봅니다. 스랍들은 여섯 날개 중 둘로 얼굴을, 둘로 발을 가리고 둘로만 날며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서로 화답합니다. 그 소리에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고 성전에 연기가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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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회 교수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라는 시간 표지를 4절의 하나님의 왕권에 비추어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단순한 연대기가 아니라, "유다와 예루살렘의 진짜 왕이 누구인지"를 묻는 신학적 선언입니다. 인간 왕은 아무리 오래 통치해도 결국 죽어 그 자리를 비우지만, "높이 들린 보좌"와 "성전에 가득한 옷자락"은 여호와 왕권의 우주적 크기와 절대성을 상징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옷자락만 보는데, 그 옷자락만으로도 온 성전이 가득 찹니다.

스랍의 자세는 하나님의 절대 권능을 웅변합니다. 세 쌍의 날개를 가졌으나 두 쌍으로 몸을 가리고 한 쌍으로만 나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그 피조물 사이에 상존하는 절대 간격의 표현입니다. 그분의 권능과 거룩하심은 어떤 피조물과도 비교를 거절합니다. 거룩 삼창에 이어지는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는, 국제정세가 아무리 요동쳐도 온 땅이 그분의 왕권 아래 있음을 선포합니다. 문지방 터의 요동함은 신현(神顯, theophany)의 변형된 형태로,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 산과 땅이 흔들리고 구름과 연기가 그분을 가리는 그 임재의 표징입니다.

이는 신구약을 관통하는 하나님 나라 신학의 핵심입니다. 시편 기자가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것이로다"(시 99:1)라고 노래했고, 요한계시록의 네 생물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계 4:8)라고 찬양하는 그 보좌가, 바로 이사야가 뵌 보좌입니다. 요한은 이 환상을 두고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요 12:41)고 밝히며, 그 보좌의 왕을 성육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증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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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웃시야가 죽던 해와 다르지 않은 시대를 삽니다. 몇 년의 임기, 기껏 100년 남짓한 수명, 아무리 쌓아도 손에서 빠져나가는 부와 권력—온 땅의 주이신 하나님 앞에서 이 모든 것은 한낱 순간이요 미미한 존재일 뿐입니다. 정권이 바뀌고 경제가 흔들리고 국제 질서가 재편될 때마다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사 7:2) 요동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요동치는 정세 위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그 보좌를 보는 믿음의 눈입니다. 광양사랑의교회 성도의 가정과 일터에도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밀려옵니다. 그러나 참된 예배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세상 뉴스에 먼저 반응하기 전에, 온 땅에 충만하신 그분의 영광 앞에 먼저 엎드리는 것—그것이 흔들리는 세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첫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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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절 우리의 부정함을 정하게 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성자 예수님은 부정한 죄인이 스스로 정결할 수 없음을 아시고, 제단의 불로 친히 악을 제하고 죄를 사하시는 정결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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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왕을 뵌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때 스랍 중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핀 숯을 그의 입술에 대며,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고 선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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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하나님의 갑작스러운 현현 앞에서 이사야는 죽음의 두려움을 경험합니다. 김필회 교수는 여기서 중요한 통찰을 제시합니다. 이미 하나님을 볼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사야가 깨끗하다는 전제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부정한 자에게 하나님의 거룩함은 파괴적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사야는 왜 자신을 "입술이 부정한 자"라 고백할까요? 그것도 홀로가 아니라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이 본문의 깊이가 있습니다. '입술의 부정'은 단순히 말이나 음식 규정의 위반이 아니라 전인격적·총체적 부정을 뜻하며, 입술은 10절의 '마음, 귀, 눈'과 함께 전체를 대표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부정함은 전이(轉移)됩니다. 부정한 물건이나 사람과 접촉하면 자신도 부정해지듯, 이사야는 부정한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했기에 부정합니다. 그의 죄 고백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이스라엘 전체의 부정에 자신을 일치시키는 공동체적 고백입니다.

바로 그렇기에 그의 죄 사함도 한 개인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전형(典型)'이 됩니다. 김필회 교수의 표현대로, "죄를 인정하고 고백한 이사야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죽음의 영역에서 생명의 영역으로 옮겨진 사건은, 죄로 심판받게 될 이스라엘에게 미래의 구원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모범적 사례"입니다. 정결은 이사야의 노력이 아니라 제단의 불—장차 골고다에서 온몸으로 타오르실 그리스도의 대속을 예표하는 그 불—로부터 왔습니다. 히브리서가 "그리스도의 피가 하물며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히 9:14)라고 증언하는 그 정결의 원형이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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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예배는 언제나 자기 인식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진실로 대면한 사람은 결코 "나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의 위기는 상당 부분 이 정직한 자기 대면의 부재에서 옵니다. 우리는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도 마치 나만은 그 부정과 무관한 듯 살아가려 합니다. 이사야의 고백은 "저들이 문제"라는 손가락질이 아니라 "나도 그들 중 하나"라는 자기 일치입니다. 교회의 부끄러운 자리, 사회의 불의한 구조 앞에서 우리가 먼저 배워야 할 것은 남을 정죄하는 언어가 아니라 나를 그 자리에 포함시키는 회개의 언어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복음은, 그렇게 정직하게 무너진 자리에 제단의 불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격이 아니라 그분의 은혜가,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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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3절 심판하시고 또한 회복하시는 하나님, 그루터기의 거룩한 씨

하나님은 완악한 백성을 심판하시되, 철저한 황폐 속에서도 '거룩한 씨'를 그루터기로 남겨 새 시작을 예비하시는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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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는 주의 음성에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자원합니다. 그러나 그가 받은 사명은 역설적입니다. 백성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그들의 마음이 둔해지고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될 것입니다. "어느 때까지니이까"라는 물음에 주님은 성읍이 황폐하고 사람이 멀리 옮겨져 땅이 황량해지기까지라고 답하십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해도 그루터기는 남듯,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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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부정이 제거된 이사야는 이제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그 앞에 나아가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자원은 하나님의 속량(贖良)에 대한 응답입니다—정결케 하신 은혜가 헌신을 낳습니다. 그러나 김필회 교수가 강조하듯, 본문의 일차적 관심은 이사야의 자원과 파견이 아니라 하늘 어전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을 알리는 데 있습니다.

그 내용이 충격적입니다. 예언자의 통상적 사명이 백성을 회개시키는 것인데, 이사야는 오히려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개역성경의 부드러운 번역보다 직역이 그 날카로움을 드러냅니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마라. 너희는 보고 또 보아라, 그러나 깨치지는 마라." 이 부조리해 보이는 명령은, 예언자의 선포가 거절당할 것까지 하나님의 계획 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심판 결정과 이스라엘의 책임이 하나로 연결됩니다. 한편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거절을 미리 아시고 심판 계획에 반영하시며, 다른 한편으로 이스라엘은 완고하게 말씀을 거절했기에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자진하여 악을 선택하며 멸망의 길로 내달리는 백성에게, 심판은 이미 확정적으로 결정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어느 때까지니이까"라는 이사야의 물음과 "때까지니라"는 하나님의 답변 사이에는 역설적 소망이 숨어 있습니다. 멸망에도 '끝나는 때'가 있다는 것은, 그 이후에 새로운 시작이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나라의 멸망이 역설적으로 완악함의 끝이 되고, 멸망이 자기 죄의 결과임을 인정할 때 이사야의 경우처럼 은총에 의한 구원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13절은 성경에서 가장 분명하게 신학적 '남은 자(remnant)' 사상을 담은 구절입니다. 베임을 당한 나무의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돋듯, 거룩한 씨가 남아 다시 자랍니다. 이 '거룩한 씨'는 훗날 11장의 "이새의 줄기에서 난 한 싹"(사 11:1)으로, 마침내 그루터기 같은 베들레헴에서 나신 그리스도로 이어집니다. 정경적으로 이사야 6장의 심판은 결코 마지막 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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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본문은 우리를 불편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백성을 완악하게 하신다는 말씀은, 값싼 위로에 익숙한 신앙에 균열을 냅니다. 그러나 여기에 오늘 한국 교회를 향한 준엄한 물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 또 듣지만', 정말 '깨닫고' 있습니까? 매일 묵상하고 설교를 듣되 삶은 조금도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 반복되는 들음이 도리어 마음을 둔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두렵게 살펴야 합니다. 은혜의 홍수 시대에 도리어 감격을 잃어버린 우리 자신을 정직하게 마주해야 합니다.

동시에 이 본문은 절망하는 이에게 가장 깊은 소망을 줍니다. 삶이 베임을 당한 그루터기처럼 초라하게 남았을 때, 교회가 세상의 조롱 앞에 밑동만 남은 듯 보일 때, 하나님은 바로 그 잘린 자리에 '거룩한 씨'를 심어두셨습니다. 황폐한 땅을 끝으로 여기지 않으시는 그분의 신실하심이, 우리의 실패를 새 창조의 자리로 바꾸십니다. 광양사랑의교회의 부르심도 여기 있습니다. 화려한 숲이 아니라 남겨진 그루터기, 그러나 그 안에 생명의 씨를 품은 거룩한 남은 자로서, 이 시대의 황폐함 한가운데 조용히 새싹을 틔우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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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거룩하시고 거룩하시고 거룩하신 만군의 여호와여, 

국제정세가 요동치고 인간의 왕들이 뜨고 지는 

이 흔들리는 세상 한복판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는 주의 보좌를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웃시야가 죽던 해에도 주는 여전히 참된 왕이셨듯, 

우리가 무엇을 잃고 무엇에 두려워하는 그 순간에도 

주는 온 땅에 충만하신 영광의 왕이심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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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거룩하심 앞에 설 때, 우리가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는 자임을 정직하게 고백합니다. 

남을 손가락질하기 전에 저 자신을 그 부정한 자리에 포함시키게 하시고, 

스스로 정결할 수 없는 우리에게 

제단의 불-십자가에서 타오르신 그리스도의 대속-을 대어 

악을 제하시고 죄를 사하신 그 은혜를 날마다 새롭게 누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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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듣고 또 들으면서도 깨닫지 못하여 

마음이 둔해지는 완악함에서 우리를 건지소서. 

반복되는 은혜가 도리어 감격을 앗아가지 않게 하시고, 

오늘 이 말씀 앞에 진실로 돌이키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의 삶과 교회가 베임을 당한 그루터기처럼 

초라하게 남을지라도, 주께서 그 자리에 심어두신 

거룩한 씨를 기억하게 하소서. 

황폐함을 끝으로 여기지 않으시는 주님, 

우리교회를 이 시대의 남은 자로 세우사, 

조용히 그러나 신실하게 새 생명의 싹을 틔우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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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고백했던 이사야처럼, 

정결케 하신 은혜에 응답하여 우리도 주의 부르심 앞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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