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03:01-15 세속화된 교회를 향한 준엄한 경고와 참된 구원의 부르심
*
바울은 분파를 지어 다투는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그들이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육신에 속한 자(어린아이)'라고 강하게 책망합니다. 이어서 바울은 밭과 건물의 비유를 통해, 복음 사역자는 생명을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일 뿐이며, 성도들은 하나님께 속한 밭이요 건물임을 선포합니다. 나아가 그리스도라는 유일한 터 위에 교회를 어떻게 세울지 주의해야 하며, 만일 세속적인 재료(육신에 속한 자의 모습)로 교회를 세우면 마지막 불 심판 때에 그 공적이 불타버리고 교회 공동체가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두려운 멸망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
# 역사 및 문화적 배경 : 1세기 고린도는 번성한 상업 도시이자 헬라 철학과 수사학이 발달한 곳이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당대의 소피스트(철학 교사)들을 추종하듯, 화려한 수사학적 능력을 기준으로 바울과 아볼로 등 교회 지도자들을 평가하며 '바울파, 아볼로파' 등으로 파당을 지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신령하고 지혜로운 자'라고 자부했지만, 그 실상은 헬라의 경쟁적이고 세속적인 가치관을 교회 안에 그대로 끌고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 신학 및 사상적 배경 (이진섭 교수의 관점) : 고린도전서 3장의 본문은 전통적으로 예수를 믿지만 육신대로 사는 것을 허용하는 듯한 '육적 그리스도인(Carnal Christian) 이론'이나, 천국에서 상급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차등상급론(差等賞給論)'의 근거로 오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구원 이후의 보너스(상급)를 논하는 한가로운 자리가 아닙니다. 바울은 두 가지 비유(밭과 건물)를 통해, 교회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부하고 계속 '육신에 속한 자'로 머물러 파당을 지을 경우, 마지막 심판의 불을 견디지 못하고 '교회 공동체 전체가 멸망하여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치명적인 위험(교회의 멸망 위험)'을 경고하고 있는, 매우 엄중한 종말론적이며 교회론적인 본문입니다.
# 묵상 포인트 : "하나님은 그리스도라는 유일한 터 위에 교회를 세우시고, 성령으로 생명을 자라게 하시며, 종말의 불꽃 같은 눈으로 우리의 공적을 달아보사 세속에 물든 거짓 신앙을 심판하시고 참된 신부만을 구원으로 이끄시는 주권자이십니다."
*
# 1-4절 육신에 속한 자와 영적 미성숙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신령한 자가 아닌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 같이 할 수밖에 없어 밥이 아닌 젖으로 먹였다고 토로합니다. 그들이 아직도 육신에 속한 증거는 그들 가운데 있는 '시기와 분쟁'이며, 사람을 따라 파당을 짓는 모습입니다.
.
이 단락에서 바울이 사용한 '어린아이(네피오스)'라는 은유는 중생하여 이제 막 자라가야 하는 갓난아기라는 긍정적이고 따뜻한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바울의 주제는 '지혜'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스스로 성숙하고 지혜로운 어른이라고 자부했지만, 바울이 보기에는 '하나님의 참 지혜를 전혀 깨닫지 못하는 무지한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뼈아픈 책망이자 폄하입니다. 바울은 이들을 '육신에 속한 자(사르키노스/사르키코스)'라고 부릅니다. 비록 그들이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 들어와 있고 성령의 은사를 체험했을지라도, 실제 삶의 원동력과 방식에 있어서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연인(육에 속한 자)과 똑같이 윤리적으로 부정하고 세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명백한 증거가 바로 하나님의 십자가 지혜가 아닌 '사람을 따라 행하며' 바울파, 아볼로파로 나뉘어 싸우는 모습입니다. 교회를 향한 바울의 이 탄식은, 껍데기만 화려할 뿐 속사람은 철저히 부패한 그들을 향해, 이대로 가면 구원조차 위험해질 수 있음을 경고하시는 주님의 애끓는 심정을 대변합니다.
.
오늘날 한국 교회는 외형적인 성장과 화려한 종교적 프로그램(은사, 제자훈련 등)을 영적 성숙의 척도로 삼는 치명적인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성경 지식이 많고 교회에서 중직을 맡고 방언을 한다 할지라도,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서 누군가를 시기하고, 파당을 지으며, 정치적 이념이나 세속적 가치관(돈, 권력)을 따라 사람을 평가한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는 지각없는 '영적 미숙아'이자 '육신에 속한 자'일 뿐입니다. 광양사랑의교회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특정 목회자나 유력한 리더를 맹종하는 '팬덤 현상'이나 '끼리끼리'의 문화를 십자가에 철저히 못 박아야 합니다. 신앙의 연륜이 벼슬이 아니라, 십자가의 자기 부인을 통해 얼마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화평을 이루느냐가 진짜 어른이 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
# 5-9절 하나님의 밭과 사역자의 정체성
바울은 아볼로와 자신이 주님께서 주신 대로 고린도 교인들을 믿게 한 사역자(일꾼)일 뿐이라고 선언합니다.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지만 오직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심는 자나 물 주는 자는 아무것도 아니며, 그들은 하나님의 동역자요, 성도들은 하나님의 밭이며 하나님의 집입니다.
.
바울은 '밭을 경작하는 비유'를 통해 파당 문제의 핵심을 찌릅니다. 여기서 비유의 진정한 초점은 사역자(일꾼)가 아니라, '밭'으로 비유된 고린도 교회에 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스스로 "나는 바울의 소속이다, 아볼로의 소속이다"라며 일꾼들을 우상화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너희는 바울의 밭도, 아볼로의 밭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밭'이다!" 바울과 아볼로는 하나님의 밭에서 심고 물을 주는 '사역자(디아코노스, 식탁에서 시중드는 종)'에 불과합니다. 종들에게는 아무런 독자적 권위가 없습니다. 진정으로 생명을 잉태케 하시고 영혼을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오직 주권자이신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바울이 이 비유를 통해 "너희의 참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더 이상 사람을 따라 행하지 말라"는 강력한 교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사역자의 한계를 명확히 긋고 오직 하나님 홀로 영광 받으셔야 함을 선포하는 이 놀라운 선언은, 교회가 사람의 사유물이 아님을 천명하시는 만왕의 왕이신 주님의 절대적 주권을 보여줍니다.
.
현대 한국 교회, 특히 대형 교회들에서 나타나는 심각한 세습 문제나 목회자의 제왕적 리더십은 교회가 '하나님의 밭'이라는 이 평범한 진리를 망각한 결과입니다. 목회자와 리더들은 자신이 성도를 자라게 한다는 영적 교만과 교회를 사유화하려는 욕망을 철저히 부수고, 자신은 무익한 종(아무것도 아님)에 불과함을 고백해야 합니다. 성도들 역시 영적 성장의 동력을 특정 목회자의 카리스마나 화려한 설교 스킬에서 찾으려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진정 부흥하고 생명력을 얻는 길은, 인간적인 마케팅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예배와 삶의 현장에서 묵묵히 씨를 뿌릴 때 은혜의 단비를 내리사 영혼을 소생케 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만을 엎드려 의지하는 것뿐입니다.
*
# 10절 지혜로운 건축자와 교회의 터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따라 지혜로운 건축자처럼 교회의 터를 닦아 두었고, 이제 다른 사역자들이 그 위에 건물을 세웁니다. 바울은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고 경고하며, 그 닦아 둔 유일한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밝힙니다.
.
이제 바울의 은유는 '밭'에서 '건물(건축)'로 전환됩니다. 교회를 짓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기초(터)'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설립자로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의 복음'이라는 유일무이한 터를 견고하게 닦았다고 선언합니다. 교회라는 영적 건축물은 이 터 이외의 다른 어떤 인간적 철학이나, 수사학적 지혜, 혹은 탁월한 리더의 이름 위에 세워질 수 없습니다. 여기서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하라"는 경고는 후임 사역자인 아볼로뿐만 아니라, 교회를 세워가는 데 참여하는 모든 성도를 향한 엄중한 외침입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이라도 그 기초가 십자가의 복음에 맞닿아 있지 않고, 세상의 지혜나 육신적인 경쟁심으로 얽혀 있다면 그것은 위태로운 모래성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의 피로 닦으신 이 터가 인간의 세속적 가치관으로 오염되거나 변질되는 것을 결코 좌시하지 않으십니다.
.
오늘날 우리는 교회 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십자가의 도를 외면하고 세상의 경영 기법이나 엔터테인먼트, 심리학적 위로를 교회의 터로 삼으려는 강한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야성이 거세된 강단과, 십자가의 자기 부인이 없는 사역은 결국 공동체를 허무는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진행되는 모든 사역, 소그룹 모임, 다음 세대 교육이 과연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라는 터 위에 굳게 서 있는지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의 직장과 가정이라는 삶의 터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돈과 명예라는 세속적 터를 허물고, 주님의 말씀 위에 내 인생의 집을 조심스럽게 세워가는 영적 민감함이 시급히 요구됩니다.
*
# 10-15절 건축에 대한 불 심판과 교회의 구원 위험
건축자들이 금, 은, 보석이나 나무, 풀, 짚으로 터 위에 집을 세우면, 마지막 날에 불이 나타나 그 공적을 시험할 것입니다. 공적이 불타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불타버리면 해를 받을 것이나 건축자 자신은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선언합니다.
.
이 단락은 고린도전서에서 가장 치열한 신학적 논쟁이 있는 곳입니다. 이 본문은 전통적으로 오해되어 온 것처럼, 천국에서 성도나 사역자가 받을 '상급의 차이(차등상급론)'를 논하거나, 육신대로 살아도 구원은 간신히 받는다는 '부끄러운 구원(육적 그리스도인 이론)'을 정당화하는 구절이 결코 아닙니다. 이 비유에서 심판의 대상이 되는 '건물'은 다름 아닌 '고린도 교회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불'은 종말론적인 최후의 심판입니다. 사역자가 바라보는 '상(미스돈)'은 곧 자신이 눈물로 세운 '교회(성도들)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만일 사역자가 십자가 복음에 합당한 자재(금, 은, 보석)가 아니라, 파당을 짓고 윤리적으로 타락한 '육신에 속한 자들(나무, 풀, 짚)'로 교회를 채우고 방치한다면, 마지막 심판의 불이 임할 때 그 교회 공동체는 견디지 못하고 전소되어 버릴 것입니다. 즉, 교회가 멸망하여 구원에서 탈락한다는 무시무시한 경고입니다. 비록 사역자 자신은 자신의 신앙으로 구원을 받더라도(간신히 불에서 빠져나오듯), 그가 목표했던 '교회의 구원(상)'은 잃어버리고 마는 뼈아픈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3:1-4에서 진단한 고린도 교회의 영적 상태(육신에 속한 자)가 얼마나 치명적인 독인지, 이대로 가다가는 너희 모두가 심판의 불에 타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경고하며, 어서 빨리 십자가의 참된 지혜로 돌이킬 것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룩하지 않은 교회는 결코 하나님의 불 심판을 통과할 수 없다는 이 진리야말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맹렬한 사랑이자 공의의 발현입니다.
.
이 본문은 "한 번 구원받았으니 어떻게 살든 천국은 간다"는 한국 교회의 값싼 구원론과 안일한 신앙생활에 던지는 영적 폭탄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교회 마당만 밟으면 구원이 보장되는 줄 착각합니다. 그러나 시기하고 다투며, 세속적 성공과 이기심(나무, 풀, 짚)으로 뭉친 신앙은 종말의 불 심판을 결코 통과할 수 없습니다. 목회자는 무조건 성도가 많아지는 것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실상이 진정 십자가로 빚어진 거룩한 백성(보석)인지, 아니면 세속주의에 찌든 육에 속한 자들인지를 냉철하게 분별하는 영적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성도들 역시, 나의 일상과 신앙의 재료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불꽃 앞에서 재가 되어버릴 가짜 신앙은 아닌지 날마다 두렵고 떨림으로 점검해야 합니다. 세상의 조롱 속에서도 끝까지 십자가의 고난과 사랑이라는 '보석'으로 우리 자신과 공동체를 지어갈 때, 우리는 마침내 멸망의 불을 넘어 영광스러운 구원의 상을 얻는 거룩한 성전으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
# 거둠의 기도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삼위일체 하나님,
십자가의 은혜로 저희를 불러 하나님의 밭이요,
거룩한 집으로 삼아 주셨건만,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이 세속의 욕망과 경쟁심에 사로잡혀
'육신에 속한 자'로 살아가는 저희의 패역함을 철저히 회개합니다.
사람을 추종하고 헛된 지혜를 자랑하며
교회를 내 맘대로 재단하려 했던 교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교회의 주인이요 생명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심을
가슴 깊이 새기게 하옵소서.
사역자와 성도 모두가 인간적인 자랑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만물을 자라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는
겸손한 동역자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마지막 날 불꽃 같은 눈으로 우리의 공적을 시험하실
심판의 주님을 두려워하게 하옵소서.
나무나 풀과 같은 썩어질 세상의 논리로 우리 공동체를 채우지 않게 하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유일한 터 위에,
순종과 사랑과 십자가의 자기 부인이라는
정금과 보석으로 우리 교회를 거룩하게 지어 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종말의 불 심판 앞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아니하고,
영광스러운 구원의 상급을 누리는 흠 없는 주님의 신부로 서게 하옵소서.
우리의 유일한 반석이시요 참된 소망이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