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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05:01-13 묵은 누룩을 제하고 십자가의 순전함으로 빚어지는 거룩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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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고린도 교회 내에 이방인들조차 꺼리는 심각한 근친상간의 음행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오히려 교만해져 이를 애통해하거나 징계하지 않는 태도를 강하게 책망합니다. 바울은 그 영혼의 궁극적인 구원과 교회 공동체의 거룩성을 지키기 위해 그 범죄자를 사탄에게 내어주어(출교) 육신을 멸하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이어서 유월절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근거로, 교회가 악하고 악의에 찬 '묵은 누룩'을 내버리고 순전함과 진실함의 '새 덩어리'가 되어야 함을 선포합니다. 마지막으로, 교회가 세상의 불신자들과는 복음을 위해 계속 교제해야 하지만, 교회 안에 있으면서 고의로 범죄하는 거짓 형제들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판단하고 공동체에서 쫓아내어 영적 순결을 유지해야 함을 교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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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및 문화적 배경 : 1세기 고린도 도시는 상업적 번영과 함께 성적 부도덕이 극에 달한 곳이었습니다. 특히 아프로디테 신전의 창기들을 중심으로 문란한 성문화가 만연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아내(계모)를 취하는 죄'는 타락한 1세기 로마법과 헬라 이방 문화에서조차 수치스럽게 여기며 금지했던 심각한 패륜이었습니다.

# 신학 및 사상적 배경 : 고린도전서 5장의 음행 문제는 앞선 1-4장의 '지혜와 분쟁' 문제와 분리된 독립적 사건이 아닙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헬라의 이원론(육신은 무가치하고 영혼만 중요하다는 사상)과 '과실현된 종말론(이미 완벽한 영적 상태에 도달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들은 은사를 받은 자신들의 '영적 신분'에 도취되어 육체로 짓는 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바울은 교회가 '육신에 속한 자'의 상태에 머물러 세속적 가치관으로 공동체의 거룩을 파괴할 때 결국 심판과 멸망의 위험에 처할 수 있음을 강력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5장은 바로 이러한 영적 교만(푸시오오)이 어떻게 끔찍한 도덕적 타락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며, 십자가 복음의 본질인 거룩성을 회복할 것을 촉구하는 본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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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절 이방인도 꺼리는 죄악 앞에서의 어처구니없는 영적 교만

하나님은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해 깊이 애통해하며 회개하는 상한 심령을 원하시고, 거짓된 영적 우월감으로 죄를 덮어두는 교만을 엄위하게 책망하시는 거룩하신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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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고린도 교회 중에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음행, 즉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는 자가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럼에도 교인들은 오히려 교만해져서 이 일을 통한히(슬프게) 여기지 않고 그 범죄자를 교회 중에서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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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락에서 바울은 음행한 당사자보다 그것을 방치하고 있는 '교회 공동체의 태도'를 더 매섭게 질타합니다. 바울은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푸시오오)"라고 탄식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이 복음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었고 영적으로 성숙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육체적인 범죄마저도 자신들의 영적 지위를 뒤흔들 수 없다는 기괴한 우월감에 빠져 범죄자를 관용하고 심지어 자랑거리로 삼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값싼 도덕적 방종으로 전락시킨 행위입니다. 바울이 원했던 교회의 정상적인 반응은, 지체가 죄에 빠졌을 때 그것을 공동체 전체의 수치로 여기며 가슴을 치고 통곡하며 회개하는 '애통함(펜데오)'이었습니다. 교회를 향한 바울의 분노는, 당신의 신부가 세속의 오물로 더럽혀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는 우리 주님의 거룩한 질투이자 맹렬한 사랑의 표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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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대한민국 교회는 규모의 성장과 외형적 화려함을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로 포장하며, 그 내부에 곪아 터진 도덕적 타락은 은폐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목회자나 중직자, 혹은 사회적 유력자가 성적 범죄나 재정 비리, 갑질을 저질러도 "은혜로 덮자"거나 "교회의 덕을 세우자"는 미명 하에 징계를 회피하곤 합니다. 그러나 죄를 보고도 애통해하지 않는 관용은 사랑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와 똑같은 '영적 교만'이자 공동체를 파괴하는 맹독입니다. 광양사랑의교회 공동체 안에서 나와 우리의 지체가 죄악에 넘어졌을 때, 우리는 이를 섣부른 용서로 덮으려 하기 전에 먼저 십자가 앞에서 통곡하며 가슴을 찢는 애통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진정한 복음은 죄에 대해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거룩한 야성을 동반함을 가정과 직장 속에서 증명해 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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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절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단호한 사랑의 징계, 출교

하나님은 죄로 오염된 우리의 육신을 단호하게 치리하심으로 우리가 영원한 멸망에 빠지지 않고 주 예수의 날에 궁극적인 구원을 얻도록 이끄시는 참된 긍휼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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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몸으로는 떨어져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그 범죄자를 이미 판단(정죄)했다고 선언합니다. 주 예수의 이름과 능력으로 교회가 모일 때, 그 사람을 사탄에게 내주어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받게 하라고 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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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이 무시무시한 선언은 교회 권징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다"는 것은 그 사람을 하나님의 보호가 있는 거룩한 공동체(교회) 밖으로 쫓아내어, 세상(사탄의 영역)으로 추방하는 '출교(Excommunication)'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극단적인 징계의 목적은 영원한 멸망이 아니라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받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여기서 육신의 멸함이란, 교회 밖에서의 극심한 영적, 육적 고통을 통해 죄의 비참함을 깨닫고 자신의 세속적 욕망(육신)을 철저히 부수게 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즉, 징계는 미워서 버리는 형벌이 아니라, 질병에 걸린 환자의 썩은 살을 도려내어 생명을 살려내는 '외과 수술'과도 같은 목회적 사랑의 극치입니다. 교회를 정결케 하시는 동시에 한 영혼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구원하시려는 십자가 주님의 뜨거운 구애가 이 단호한 책망 속에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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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교회는 '징계(치리)'를 상실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교회의 치리가 두려워 교회를 떠나면 그만인 소비자 중심의 종교 쇼핑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권징이 없는 교회는 참된 교회의 표지를 상실한 사교 모임에 불과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매를 드는 부모의 심정처럼, 우리 공동체는 죄에 빠진 형제를 방관하지 않고 올바른 길로 돌이키기 위한 거룩한 치리 시스템과 영적 권위를 회복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자녀의 잘못된 행동을 맹목적인 사랑으로 묵인하는 것은 결국 영혼을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직장에서도 부정한 이익과 타협하려는 나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사탄에게 내어주는 듯한 철저한 자기 부인(육신의 멸함)을 거칠 때, 비로소 우리의 영혼은 종말의 날에 부끄럽지 않은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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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절 십자가 보혈로 이루어진 새 덩어리와 순전함의 회복

예수님은 친히 유월절 어린 양으로 희생되사, 우리를 과거의 악독한 누룩에서 해방시켜 순전하고 진실한 새로운 피조물(새 덩어리)로 빚어내시는 구원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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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경고하며, 너희는 누룩 없는 자로서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해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고 명합니다. 이는 우리의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이미 희생되셨기 때문이며, 따라서 악의에 찬 누룩이 아니라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무교병으로 명절을 지키라고 권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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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음행 문제를 다루면서 구약의 유월절과 무교절 모티프를 끌어옵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양의 피로 구원을 받은 후, 일주일간 집 안의 모든 누룩을 철저히 찾아내어 제거하고 무교병을 먹었습니다. 바울은 "적은 누룩(죄악의 영향력)이 온 덩어리(교회)에 퍼진다"는 속담을 인용하며, 고린도 교회가 허용한 단 하나의 죄악이 전체 공동체를 파멸로 몰고 갈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주목할 점은 바울의 복음적 논리입니다. 바울은 "너희는 (이미) 누룩 없는 자"라고 선언합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거룩해진 것이 아니라, 유월절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전한 의인(무교병)으로 선언하셨다는 '칭의'의 사실입니다. 바울은 이 이미 주어진 영광스러운 신분(Indicative)에 근거하여, 그러므로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Imperative)고 성화의 삶을 촉구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가 악독과 부패의 찌꺼기를 안고 살아가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배신 행위임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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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으로 은밀한 죄를 가볍게 여깁니다. 그러나 내 안의 음란물 시청, 재정적 탐욕, 혹은 사람을 미워하는 '적은 누룩'은 결코 내 개인의 영성에만 머물지 않고 내가 속한 가정과 교회 전체의 생명력을 서서히 갉아먹는 치명적인 독양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세상의 능력주의, 기복신앙, 파당 짓기라는 묵은 누룩에 깊이 오염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삶의 자리에서 유월절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내 영혼의 구석구석에 숨겨진 죄의 누룩을 대청소하는 치열한 영적 전투를 벌여야 합니다. 직장에서 부정한 거래나 거짓된 관행에 타협하라는 유혹을 받을 때, "나는 십자가 보혈로 깨끗해진 누룩 없는 무교병이다"라는 거룩한 정체성을 선포하십시오. 세상이 이해하지 못할 '순전함과 진실함'의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세상은 우리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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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3절 세상을 향한 포용과 교회를 향한 거룩한 분별력

하나님은 세상의 불신자들을 향해서는 선교적 포용과 긍휼을 베푸시되, 거룩해야 할 교회 안에 침투한 악에 대해서는 타협 없이 심판의 잣대를 세우기를 원하시는 거룩과 선교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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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이전 편지에서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고 했던 말이, 세상의 불신자들을 피하라는 뜻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형제라 일컬으면서 음행, 탐욕, 우상 숭배 등을 행하는 자들과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라는 뜻이었음을 해명합니다. 세상 사람들을 심판하는 것은 하나님의 몫이지만, 교회 안의 사람들은 교회가 스스로 판단하고 악한 자를 내쫓아야 한다고 결론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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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심각한 오해를 바로잡습니다. 교인들은 바울의 이전 권면을 핑계로, 세상의 불신자들과 완전히 격리된 채들만의 폐쇄적인 종교 집단(마치 쿰란 공동체처럼)을 만들려 했거나, 반대로 어차피 세상 사람들을 다 피할 수 없으니 교회 안의 범죄자도 그냥 안고 가자고 합리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윤리적 경계선은 명확합니다. 성도들은 부패한 세상 밖으로 도피하는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 한가운데로 뚫고 들어가 불신자들을 접촉하고 복음의 빛으로 섬겨야 하는 '선교적 존재'입니다. 따라서 불신자들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고 그들을 긍휼로 대해야 합니다. 반면, 교회 안에 들어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표(형제라 일컫는 자)'를 달고 있으면서도 고의적이고 반복적으로 죄(음행, 탐욕, 우상숭배, 비방 등)를 짓는 자들에 대해서는 타협 없는 단호함을 보여야 합니다. 이들과 "함께 먹지도 말라(성찬과 식탁 교제의 단절)"는 명령은,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내부의 거룩과 영적 순결이 생명처럼 보존되어야 함을 뜻합니다. 교회를 순결한 신부로 지키시려는 주님의 엄위하신 보호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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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모습은 바울의 권면과 정반대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불신자들을 향해서는 정죄와 혐오의 칼날을 서슴없이 들이대면서 소통을 단절합니다. 그러나 정작 교회 안에서 유력한 자들이 저지르는 탐욕, 횡령, 성범죄, 이단적 가르침에 대해서는 "사랑으로 덮자",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이다"라며 내부적 적폐를 옹호하고 방관합니다. 우리는 이 뒤틀린 시선을 십자가 앞에서 교정해야 합니다. 직장과 세상 속에서는 믿지 않는 자들의 허물을 비난하기보다 그들의 고통과 상처를 보듬고 십자가의 긍휼을 흘려보내는 선교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내 자신과 우리 공동체 내부를 향해서는 말씀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어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관을 버젓이 교회에 끌고 들어오는 이기적인 욕망과 탐욕, 세속주의자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긋고 진리의 순전함을 수호하는 것만이, 벼랑 끝에 선 한국 교회가 세상의 소망으로 다시 회복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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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며 참된 사랑의 본체가 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 

오늘 바울의 애끓는 책망을 통하여, 거짓된 영적 교만에 빠져 죄악을 품고도 

애통해하지 않았던 고린도 교회의 민낯이 

바로 오늘날 한국 교회와 우리 교회, 그리고 내 속사람의 

부끄러운 실상임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합니다. 

주님, 우리를 위하여 친히 유월절 어린 양이 되사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아무 자격 없는 저희를

'누룩 없는 거룩한 새 피조물'로 삼아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십자가의 엄청난 은혜를 값싼 방종으로 더럽히지 않게 하시고, 

내 안의 은밀한 음란과 탐욕, 시기와 세속주의의 묵은 누룩을 

날마다 말씀의 빛 앞에 드러내어 철저히 도려내는 

거룩한 야성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죄에 병든 영혼을 살려내기 위해 뼈를 깎는 징계의 매를 들 수 있는 

참된 목회적 사랑이 우리 공동체 안에 회복되게 하옵소서. 

불신자들로 가득한 어두운 세상 속에서는 그들을 정죄하는 재판관이 아니라 

그들의 상처를 보듬는 긍휼의 통로가 되게 하시고, 

거룩을 훼손하는 교회 내부의 타협과 세속화 앞에서는 

타협 없는 진리의 수호자가 되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하옵소서. 

흠 없고 순전한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 공동체를 날마다 새롭게 빚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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