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34-43 영적 어둠과 사람의 영광을 좇는 세상을 향해, 빛이 있을 동안에 믿어 참된 생명을 얻게 하시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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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는 율법을 근거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고 주장하며, 인자가 들려야(십자가 죽음)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말고 빛을 믿어 빛의 아들이 되라고 촉구하신 후 몸을 숨기십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표적을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믿지 않았는데, 요한은 이것이 이사야의 예언(눈을 멀게 하시고 마음을 무디게 하심)이 성취된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한편, 관리(지도자) 중에서도 예수를 믿는 자가 많았으나 바리새인들로 인한 출교의 두려움 때문에 신앙을 드러내지 못했으며,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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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문화적 배경 :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압제에서 자신들을 해방시켜 줄 영원하고 강력한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유대 사회에서 회당으로부터의 '출교'는 단순한 종교적 징계를 넘어, 사회적, 경제적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는 무서운 사회적 사형 선고를 의미했습니다. 지도자층조차도 이 출교의 위협 앞에서는 자신의 신앙을 숨길 수밖에 없을 만큼 당시의 종교 권력은 폭력적이었습니다.
# 신학·정경적 배경 : 본문은 요한복음 전반부인 '표적의 책'을 결론짓는 중요한 단락입니다. 수많은 표적 앞에서도 완악함으로 일관한 유대인들의 불신앙을 구약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사 53:1, 6:10)의 성취로 해석합니다. 이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박탈하는 결정론적 숙명론이 아니라, 빛을 지속적으로 거부한 자들이 맞이하게 되는 사법적 유기(내버려 두심)라는 구원 역사적 차원의 설명이며, 역설적으로 속히 빛을 믿으라는 강력한 호소입니다.
# 철학·인문학적 배경 : 본문은 인간이 가진 '인식의 틀(편견)'과 '사회적 인정 욕구'를 날카롭게 고발합니다. 무리는 자신들이 가진 율법적 지식의 틀에 갇혀 고난받는 진리를 거부했고, 지도자들은 무리에서 소외될까 두려워 진리보다 대중의 평판과 사람의 영광을 선택했습니다. 이는 눈앞에 진리(로고스)가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기득권과 체면 때문에 진리를 외면하는 인간의 실존적 비겁함을 보여줍니다.
# 세상은 끊임없이 눈에 보이는 영광과 사람들의 인정이라는 잣대로 우리를 평가하려 하지만, 오늘 주님은 우리를 영원한 참빛이시며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생명의 자리로 초청하십니다. 오늘 요한복음 12장의 말씀을 통해, 우리 내면의 숨겨진 두려움과 어둠이 물러가고, 빛의 자녀로서 당당히 살아갈 영적 용기를 회복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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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절 내 생각의 틀에 갇힌 신앙
인간의 제한된 지식과 편견을 뛰어넘어, 십자가의 고난(들림)을 통해 영원한 구원을 완성하시는 섭리의 하나님.
무리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살아 계시다고 배웠는데, 어찌하여 당신은 인자가 높이 들려야 한다고 하십니까? 그 인자는 도대체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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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구약 성경(율법)을 통해 다윗의 후손으로 올 메시아가 영원한 왕국을 세울 것이라는 약속을 알고 있었습니다(삼하 7:12-13, 사 9:7). 그러나 그들은 이사야 53장에 나타난 '고난받는 종'으로서의 메시아 예언은 철저히 배제한 채, 자신들의 정치적 욕망에 부합하는 승리와 영광의 메시아만을 취사선택하여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들려야 하리라(십자가의 죽음)"고 말씀하시자, 그들의 신학적 틀이 깨어지면서 혼란에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입맛대로 편집할 때, 눈앞에 서 계신 참된 그리스도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영적 맹인이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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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도 이 무리들과 같이 '내가 만든 예수'를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질병을 고쳐주시고, 자녀를 성공시키며, 내 사업을 번창하게 해주는 영광의 주님만을 원하고, 자기 부인과 희생, 십자가를 요구하시는 고난의 주님 앞에서는 "이 인자가 도대체 누구냐?"며 모른 척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우리가 진짜 붙들어야 할 분은 내 욕망을 채워주는 알라딘의 요술램프가 아니라, 나를 살리기 위해 친히 십자가에 높이 들리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 경험과 알량한 성경 지식의 틀을 깨트리고,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영적 성숙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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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36절 빛이 있을 동안에 걸으라
어둠 속에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참 빛으로 다가오사, 믿음의 결단을 촉구하시며 빛의 자녀로 삼으시는 구원의 주님.
예수님은 무리의 신학적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으시고,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라. 빛을 믿어 빛의 자녀가 되어라"고 말씀하신 후 그들을 떠나 숨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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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논쟁 대신 가장 시급한 실존적 결단을 촉구하십니다. 여기서 '빛'은 참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자신을 의미하며, '어둠'은 하나님을 떠난 무지와 죄악, 그리고 사탄의 지배를 뜻합니다. "잠시 동안"이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공생애 십자가 사역의 때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동시에, 인간에게 주어진 구원의 기회가 영원하지 않다는 긴박성을 부여합니다. 빛이 비칠 때 걷지 않으면 결국 어둠에 붙잡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목적지도 모른 채 파멸을 향해 걷게 됩니다. "빛의 아들(자녀)이 되리라"는 말씀은 단순히 윤리적으로 착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과 온전히 연합하여 생명의 본질이 바뀌는 새 창조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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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내일의 성공을 위해 오늘의 행복과 영적 결단을 끊임없이 유예하도록 우리를 속입니다. "돈을 좀 더 번 후에, 아이들이 대학에 간 후에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겠다"고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바로 지금" 믿고 순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기회는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직장과 가정에서 우리를 집어삼키려 호시탐탐 노리는 욕망과 두려움의 어둠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지금 내게 주신 말씀의 빛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이 순간, 미루어두었던 회개와 헌신을 결단하여 어둠의 지배를 끊어내는 빛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권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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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41절 불신앙의 비극과 예언의 성취
수많은 증거 앞에서도 고의로 진리를 외면하는 인간의 완악함을 심판하시며, 구약의 예언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성취하시는 주권자 하나님.
예수님께서 수많은 표적을 행하셨음에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이것이 "주께서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마음을 무디게 하셨다"는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기록하며, 이사야가 예수의 영광을 보고 이 말을 했다고 증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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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전반부의 결론에 해당하는 뼈아픈 구절입니다.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고,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며,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등 창조주만이 하실 수 있는 명백한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이사야 6:10과 53:1을 인용한 것은, 하나님께서 억지로 그들을 못 믿게 만드셨다는 운명론적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 스스로 끊임없이 진리를 거부하고 빛을 미워한 결과,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완악한 상태 그대로 사법적으로 내버려 두신(유기) 비극적 상태를 묘사한 것입니다. 이사야가 성전에서 보았던 만군의 여호와의 영광이 바로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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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눈앞에 기적을 보여주시면 믿겠다"고 말하는 세상 사람들을 봅니다. 그러나 불신앙의 원인은 증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진리 앞에 자신의 삶을 바꾸기 싫어하는 마음의 완악함에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매 주일 쏟아지는 말씀의 은혜(표적)를 경험하면서도, 일상으로 돌아가면 여전히 내 고집과 자아를 꺾지 못해 영적 맹인처럼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정보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우리의 영적 감각은 도리어 무뎌지기 쉽습니다. "주님, 제 굳은 마음을 기경하여 주시고, 영안을 열어 일상 속에 역사하시는 주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라고 애통하며 기도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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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43절 사람의 영광인가, 하나님의 영광인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는 인간의 비겁함과 위선을 책망하시며, 온전한 신앙 고백을 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
지도자(관리) 중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많았으나, 바리새인들 때문에 회당에서 쫓겨날까 두려워 믿는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요한은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정곡을 찔러 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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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교(아포쉬나고고스)'는 유대 공동체에서 사회적, 경제적, 종교적으로 완전히 매장당하는 끔찍한 형벌이었습니다. 관리들은 지적으로는 예수가 옳다는 것을 알았으나, 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요한은 두 가지 '영광(독사, doxa)'을 대조합니다. '사람의 영광'은 세상의 평판, 지위, 인맥, 다수의 인정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영광'은 세상에서는 버림받을지라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칭찬과 인정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마음의 동의를 넘어, 삶의 현장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고 그에 따른 불이익까지도 기꺼이 감수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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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와 직장 문화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날카로운 도전입니다. 산업 현장에서, 혹은 사람들과의 모임에서, 여러분은 예수 믿는 사람임을 당당히 드러내고 계십니까? 혹시라도 승진에 불이익을 당할까 봐, 무리에서 은근히 따돌림(왕따)을 당할까 봐, 회식 자리나 불의한 관행 앞에서 침묵하며 '은밀한 그리스도인'으로 숨어 있지는 않습니까?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소외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인정이라는 잠시 피다 지는 안개 같은 '사람의 영광'을 위해, 영원토록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맙시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번 한 주,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나의 일터와 가정에서 빛의 자녀로서 당당히 믿음을 선포하는 용기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뜨겁게 격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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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만물의 주관자이시며, 어두운 세상에 참된 빛으로 오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의 닫힌 눈과 무뎌진 마음을 향해,
빛이 있을 동안에 걸어오라고 애타게 부르시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는 무리들처럼 얄팍한 내 생각의 틀에 갇혀
주님의 일하심을 의심했고,
이사야 시대의 백성들처럼 말씀을 들으면서도
마음을 돌이켜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완악한 자들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무엇보다 지도자들처럼, 진리를 알면서도
세상에서 손해 보고 따돌림당할 것이 두려워 침묵하며,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했던
우리의 비겁함을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광양의 치열한 삶의 현장과 일터 속에서 어둠에 타협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 광양사랑의교회 모든 장년 성도들이 사람들의
엇갈린 시선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당당히 삶으로 선포하는
'빛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게 허락하신 오늘이라는 시간 동안,
미루지 않고 온전한 믿음으로 주님과 연합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복된 가정과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빛이 되시며,
십자가에 들리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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