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12-19 예수님은 겸손한 모습으로 예언을 성취하시며 당신의 영광과 구속의 때를 계시하시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오신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 날, 수많은 순례자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나와 예수님을 맞이하며 "호산나!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은 한 어린 나귀 새끼를 얻어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는데, 이는 "시온의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는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에는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 후에야 성경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이 예수님께 이루어졌음을 기억했습니다. 한편, 예수님 때문에 나사로가 살아난 것을 본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증언했고, 이로 인해 대중의 폭발적인 반응을 본 바리새인들은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구나"라며 좌절했습니다.

*

# 역사/문화적 배경 : 종려주일 (Triumphal Entry): 이 사건은 유월절 일주일 전,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 직전에 발생한 '종려주일' 사건입니다. 유월절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대거 모여드는 시기에 일어났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과 파급력이 매우 컸습니다. / 종려나무 가지 : 당시 유대인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승리, 독립, 그리고 메시아 왕국을 상징하는 표식으로 여겼습니다. 이 가지를 흔드는 행위는 로마의 압제로부터 유대 민족을 해방시킬 정치적 메시아, 즉 다윗 왕조의 재건을 바라는 열망을 표현하는 행위였습니다. / 호산나 : 'Hosanna'는 히브리어로 "구원하소서!"라는 뜻을 가진 간절한 기원이자, 동시에 다윗 왕조의 메시아를 맞이할 때 외치는 환호성이었습니다(시 118:25-26).

# 신학적/정경적 배경 : 예언의 성취 (스가랴 9:9) :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 새끼를 타신 것은 우발적인 행동이 아니라, 스가랴 9장 9절의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라는 말씀을 의도적으로 성취하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군사적 통치자가 아닌, 평화와 겸손의 메시아 왕이심을 선포하는 신학적 행위입니다./ 영광과 성령의 깨달음 : 16절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 후에야 모든 것을 깨달았다는 것은, 성령의 조명이 없이는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경의 진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완성됩니다.

# 철학적/인문학적 의의 : 권력의 역설 : 왕의 입성 방식은 대개 군마나 전차를 통한 위풍당당한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낮고 평화로운 짐승인 나귀 새끼를 타심으로써, 세상의 폭력과 강압에 기반한 권력이 아닌, 사랑과 섬김에 기반한 하나님 나라의 권력의 역설적 모델을 제시하십니다. / 군중심리와 진리 : 군중은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했지만, 그들의 기대는 정치적 해방에 머물렀습니다. 이는 인간이 표면적인 기적에는 쉽게 열광하지만, 진리의 깊은 의미(예수님의 십자가)는 쉽게 깨닫지 못하는 인간 이성과 감정의 한계를 인문학적으로 보여줍니다.

*

# 12-13절 성자 하나님은 사람들의 환호와 외침을 통해 메시아적 왕권을 공적으로 선포하십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인 수많은 무리가 다음 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님을 맞이하러 나갔고, 큰 소리로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은 찬송을 받으소서!"라고 외치며 환영했습니다.

.

요한은 이 단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많은 사람들의 메시아적 기대와 환호를 통해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자 구원자이심을 공적으로 인정하게 하신 분임을 증거합니다.

"큰 무리"는 유월절 순례자들까지 포함한 대중의 열광적인 반응을 보여줍니다. 13절의 "호산나(Ὡσαννά, 호산나)"는 시편 118편 25절의 인용으로, 본래 "지금 구원하소서"라는 의미였으나, 메시아적 왕을 환영하는 구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대중이 예수님을 정치적 해방자, 즉 다윗 왕조의 메시아로 인식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군중은 예수님을 정치적 왕으로 기대했지만, 그들의 환호는 구약의 예언(시 118:26)을 성취하며 예수님의 메시아적 신분(신성)을 공적으로 선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 외침은 단순한 대중의 열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정점에 달했음을 알리는 구속사적 나팔 소리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순간에 대중의 환호를 묵인하시며, 당신의 왕권을 명백히 인정하셨습니다.

구약에서 솔로몬이 왕위에 오를 때 백성들이 "솔로몬 왕 만세"를 외치며 나팔을 불었던 사건(왕상 1:39)과 같이, 이 장면은 예수님의 왕적 대관식을 연상시키지만, 예수님의 왕권은 솔로몬의 왕권과는 차원이 다른 영원한 통치권입니다.

.

개인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왕으로 모시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돈, 명예, 성공)에 대한 '호산나'를 외치는 대신, 예수님만이 나의 주권자이심을 공적으로 선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선포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구체적인 행위로 나타나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가정의 주인'임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가정의 중요한 결정들을 주님의 뜻 안에서 내리는 주권적 고백을 삶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세상의 기준(인기, 규모, 영향력)으로 환호를 받는 것을 추구하는 대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만 '호산나'를 외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유월절 순례자들처럼, 교회는 세상의 모든 압박과 유혹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자 왕이심을 담대하게 선포해야 합니다. 교회의 예배와 선교는 이 메시아적 선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직장과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주변의 시선이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만이 유일한 진리이심을 확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대중이 원하는 정치적 메시아가 아닌, 겸손과 섬김의 왕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때로는 세상에서 '손해'나 '고립'으로 이어질지라도, 우리는 이 길을 기쁨으로 선택하고 걷는 신앙의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

# 14-15절 성자 하나님은 구약의 예언을 겸손과 평화의 방식으로 성취하시는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한 어린 나귀 새끼를 얻어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시온의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는 예언을 이루기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

요한은 이 단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예언(스가랴 9:9)을 의도적으로 성취하시며, 강한 군사력이 아닌 겸손과 평화의 방식으로 통치하시는 참된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증거합니다.

14절의 "나귀 새끼(ὀνάριον, 오나리온)"는 어린 나귀를 의미하며, 이는 짐을 지거나 농사를 짓는 데 사용되는 가장 낮은 짐승이었습니다. 고대 왕들은 전쟁에 나갈 때 군마를 탔지만, 평화로운 목적이나 낮은 신분으로 입성할 때 나귀를 탔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은 자발적인 겸손평화로운 의도를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15절의 "두려워하지 말라(μὴ φοβοῦ, 메 포부)"는 구절은 메시아 왕의 통치가 백성에게 두려움이나 억압이 아닌, 안식과 평화를 가져다줄 것임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나귀 타신 사건은 그분의 왕권이 세상의 폭력적인 정복 방식(말/군마)이 아닌, 희생과 평화(나귀)를 통해 이루어지는 영적인 왕권임을 선언합니다. 예수님은 군중이 기대하는 정치적 독립 전쟁의 리더가 아니라, 죄와 사망으로부터 영원한 구원을 가져올 평화의 왕이셨습니다. 이 행동은 예수님의 사역이 철저히 하나님의 계획과 예언을 따라 이루어지고 있음을 증명하며, 예수님 자신의 신뢰성과 권위를 확증합니다.

구약의 스가랴 9장 9절 예언의 성취는, 메시아의 통치가 다윗 왕의 무력 통치 방식(정복)을 넘어선 영적이고 윤리적인 통치 방식이 될 것임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또한, 빌립보서 2장 6-8절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본체시나 스스로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고 선언한 것처럼, 나귀를 타신 행동은 그분의 자기 비하(케노시스)의 정점에 있는 공적인 행위였습니다.

.

현대 사회는 힘과 속도(군마)를 중요하게 여기며, 겸손과 느림(나귀)은 무능이나 패배로 치부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가치관을 거부하고, 겸손과 평화라는 예수님의 통치 방식(나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직장이나 사회에서 자신의 힘과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섬김과 양보를 통해 그리스도의 평화를 실천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힘으로 가족을 지배하려 하기보다, 스스로 낮아져 섬김의 본을 보이는 겸손한 리더십을 실천할 때, 가정에 진정한 평화(두려워하지 말라)가 임합니다.

교회는 세상적인 성공 공식(재정적 풍요, 화려한 건물, 정치적 영향력)을 추구하는 대신, 겸손과 희생의 나귀 길을 걸어야 합니다. 교회의 성장은 세상의 권력이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섬김과 낮아짐을 통해 그리스도의 평화의 복음을 전할 때 이루어짐을 믿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처럼, 교회는 세상의 핍박이나 조롱을 두려워하지 않고, 평화와 정의를 실천하는 사명을 완수해야 합니다.

직장과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 리더십은 폭력과 강압이 아닌, 정의와 겸손에 기반해야 합니다. 부하 직원들을 존중하고, 공정한 절차를 따르며,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지 않는 자세는 곧 나귀를 타신 예수님의 통치 방식입니다. 다양한 시사와 문화 속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폭력적인 현상들에 대해, 그리스도인은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의 관점에서 화해와 겸손의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

# 16절 성령 하나님은 제자들의 경험적 기억을 통해 성경의 진리를 조명하여 깨닫게 하시는 진리의 영이십니다.

제자들은 이 나귀를 타신 예수님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 후에야 비로소 성경 말씀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일이 예수님께 이루어졌음을 기억해 냈습니다.

.

요한은 이 단락을 통해 성령 하나님은 제자들의 경험적 기억을 되살려 성경의 진리를 조명하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영광)을 통해서만 구속사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게 하시는 진리의 영이심을 증거합니다.

"깨닫지 못하였더라"는 단순히 몰랐다는 것을 넘어, 지적 이해가 부족했음을 의미합니다. 반면, "기억하고"는 '나중에 회상하다', '기억해내다'는 뜻으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과거의 경험을 재해석하는 행위를 나타냅니다. "영광을 받으신 후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승천을 포함하는 구속 사역의 완성 시점을 가리킵니다.

이 구절은 성령의 사역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제자들은 나귀 타신 예수님의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보았지만, 그 사건이 구속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스가랴 예언의 성취)는 성령의 조명(예수님의 영광 후)이 있을 때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성경의 진리는 인간의 지식이나 경험만으로는 온전히 이해될 수 없으며, 성령의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라는 최종적인 렌즈를 통해서만 올바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깨달음은 단순한 지식의 증가가 아니라,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의 필연성을 인정하는 신앙의 성숙을 가져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자기에 관하여 기록된 것을 자세히 설명하여 주시니라" (눅 24:27)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성경 전체를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해석해 주시는 성경 해석의 원리와 성령의 조명 사역을 예표합니다.

.

개인의 신앙생활에서 '깨달음의 지연(遲延)'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현재 겪고 있는 고난이나 이해되지 않는 사건(나귀를 타신 모습)이 있을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성령의 조명(영광을 받으신 후)을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거나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과거의 경험이나 현재의 삶을 통해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배우자나 자녀와의 갈등이나 어려움 속에서, 성령님께서 그 사건이 가진 구속사적 의미성경적 교훈을 깨닫게 해주시도록 함께 기도하고 대화해야 합니다.

교회는 성경을 읽고 가르칠 때, 성령의 조명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겨야 합니다. 지적인 강의나 프로그램의 효율성(인간적 방법)만으로는 복음의 깊은 진리를 깨달을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모든 성경 공부와 예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영광)이라는 중심 주제를 통해 성경 전체를 해석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공동체의 기억(간증, 역사)을 되살려 교회의 정체성과 사명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직장과 세상 속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사건, 시사, 문화적 흐름(정치, 경제 등)을 성경적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세상의 현상을 인간의 지식으로만 해석하게 되지만, 성령의 조명이 임하면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경고를 '기억'해 낼 수 있습니다. 이 깨달음을 바탕으로, 세상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른 윤리적, 사회적 판단을 내리는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

# 17-18절 성부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표적을 통해 믿음을 확증하고 구원의 기회를 제공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 함께 있었던 무리가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언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또 다른 무리들이 예수님을 맞이하러 나온 것은, 그들이 예수님께서 이 표적을 행하셨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요한은 이 단락을 통해 성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놀라운 표적(나사로의 부활)을 통해 사람들의 믿음을 확증하시고, 이 증언과 소문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제공하심을 증거합니다.

"함께 있었던 무리"는 나사로 부활 현장의 목격자를 가리키며, 그들의 "증언하매"는 '계속해서 증언하다', '증거를 제시하다'는 의미의 미완료형 동사로, 그 증언이 끊임없이 확산되었음을 보여줍니다. 18절의 "표적(τὸ σημεῖον, 토 세메이온)"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로서, 예수님을 보기 위해 나온 사람들의 동기였습니다.

나사로의 부활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의 신성을 증명하는 최고의 표적이었습니다. 이 표적을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은 복음 전파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이며, 이 증언을 통해 믿음의 역사가 확산됩니다. 성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을 통해 이루어진 객관적인 사실(표적)을 인간의 입술을 통한 주관적인 증언(마르튀스)으로 세상에 전달하시며, 이를 통해 믿지 않는 이들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계속 제공하십니다. 예수님을 맞이하러 나온 사람들의 동기가 표적에 대한 '소문'이었다는 것은, 복음이 가진 파급력과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가장 큰 표적을 증언하는 것이 그들의 핵심 사역이었으며(행 4:33), 이 증언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믿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행 2:41).

.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삶에서 행하신 '나사로 부활과 같은 표적'에 대해 끊임없이 증언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 치유, 삶의 변화, 위기 극복의 경험들은 세상에 전해야 할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직장이나 사회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추상적인 교리보다는 나의 삶을 변화시킨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가정에서도 부모의 신앙 간증은 자녀들의 믿음을 확고히 하는 가장 강력한 증언이 됩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간증 문화를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경험한 그리스도의 능력을 교회 안팎으로 '증언하매' 확산시킬 때, 이는 주변의 불신자들에게 예수님을 믿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됩니다. 교회는 말씀의 선포뿐만 아니라, 나사로 부활과 같은 세상 속에서의 구체적인 섬김과 회복의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의 표적을 실현하고 증언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나눔 모임과 묵상이 담긴 찬양예배를 통해서 이를 확대 정착해 가고 있습니다. 귀한 의미들을 잘 기억하고 유지해 갈 수 있길 원합니다. 

직장과 세상 속에서 우리의 윤리적이고 성실한 삶 자체가 증언의 역할을 합니다. 이는 나사로의 부활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여든 것처럼, 우리의 삶의 열매를 보고 사람들이 우리가 믿는 예수님께 관심을 가지게 하는 통로가 됩니다. 거짓과 탐욕이 만연한 세상 속에서 정직하게 일하고 이웃을 섬기는 모습은, 가장 강력한 복음의 증거(표적)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세상에 구원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

# 19절 삼위일체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반대와 방해를 무력화시키시고 당신의 구원 계획을 성취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모든 상황을 보며 서로 말했습니다. "보라, 너희가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구나. 온 세상이 그를 따라갔으니 말이다."

.

요한은 이 단락을 통해 인간의 모든 악한 음모와 반대(바리새인들의 노력)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 것) 앞에서 무력하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성취됨을 증거합니다.

"아무 이익도 얻지 못하는도다"는 '너희의 노력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좌절감을 표현합니다. "온 세상(ὁ κόσμος, 호 코스모스)"은 문자 그대로의 전 세계가 아니라, '매우 많은 사람들' 또는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을 과장하여 표현한 것으로, 바리새인들이 느낀 위협과 절망의 크기를 반영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제거하려 했고(11:47-48), 나사로마저 죽이려 했지만(12:10), 그들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더욱더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는 인간의 힘과 권력이 진리의 확산을 막을 수 없으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 역사는 인간의 모든 반대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성취됨을 보여줍니다. 바리새인들의 이 절망적인 고백은 역설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성공적이었음을 증명하는 외부의 증언이 됩니다. 그들이 '온 세상'이라고 표현한 것은, 예수님의 사역이 결국 유대 민족을 넘어 온 세상(이방인 포함)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구속사적 예고의 역할을 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 생활을 허락하셨을 때, 백성들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절망했지만, 하나님은 포로 생활 중에도 당신의 백성을 보존하시고 때가 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키셨습니다. 이는 인간의 절망적인 상황과 반대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은 계속됨을 보여줍니다. 사도행전에서 가말리엘이 "이 일이나 이 사상이 사람에게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행 5:38-39)라고 말한 것은, 바리새인들의 절망적인 고백과 유사하게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노력을 초월함을 보여줍니다.

.

신앙의 길을 걸을 때, 좌절과 반대에 부딪힐 때가 많습니다. 이때 바리새인들의 "아무 이익도 얻지 못하는도다"라는 고백을 기억하며, 인간의 모든 반대와 방해는 궁극적으로 무력하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나의 연약함이나 주변의 비난 때문에 주저앉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고 인내해야 합니다. 가정 내에서 믿음의 전수를 방해하는 모든 세속적이고 영적인 방해 공작 앞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며 담대하게 믿음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비판과 반대에 직면할 때, 위축되거나 절망하는 대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권을 신뢰해야 합니다. 세상 권력과 세속적인 가치관(바리새인의 노력)이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노력'을 할지라도,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계획은 좌절되지 않고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 방식으로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이 확신을 바탕으로 세상의 시류에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강하고 담대한 증인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직장과 세상 속에서 불의한 권력이나 시스템이 진리를 억압하려는 '노력'을 볼 때, 그리스도인은 분노나 절망에 빠지는 대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를 확신해야 합니다. '온 세상이 그를 따르리라'는 이 말씀은, 궁극적으로 모든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앞에 무릎 꿇게 될 것(빌 2:10)이라는 종말론적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이 소망을 가지고 세상의 어떤 부정적인 현상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정의와 진리를 위해 끈기 있게 싸우는 승리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

# 거둠의 기도

겸손과 영광의 왕이신 삼위일체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오늘 요한복음 12장 본문을 통해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한 왕권을 묵상합니다. 

세상의 화려한 힘(군마)이 아닌 

평화와 섬김의 방식으로 통치하시는 주님을 

저희 삶의 유일한 왕으로 환영하며 "호산나" 외치게 하옵소서.

성령 하나님, 저희의 어리석은 마음을 조명하시어, 

저희가 경험하는 모든 삶의 사건들과 고난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영광)이라는 

구속사적 렌즈를 통해 성경의 진리로 깨달아지게 하옵소서. 

저희의 연약한 기억을 붙들어 과거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하옵소서.

저희가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의 살아있는 증인이 되어, 

저희의 삶의 변화와 간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나아오는 구원의 기회를 제공하게 하옵소서. 

바리새인들의 절망적인 고백처럼, 

저희를 향한 세상의 모든 반대와 방해가 결국은 아무 소용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구원 계획만이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 방식으로 성취될 것을 확신하며 살게 하옵소서.

겸손한 왕이시며 영원히 승리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55 요한복음 12:20-33 예수님은 자신을 희생하여 많은 생명을 살리시는 '한 알의 밀알'이자 만민의 구원자이십니다. new 평화의길벗 2026.03.13 1
1054 요한복음 12:12-19 예수님은 새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평화의길벗 2026.03.11 1
» 요한복음 12:12-19 예수님은 겸손한 모습으로 예언을 성취하시며 당신의 영광과 구속의 때를 계시하시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평화의길벗 2026.03.11 1
1052 요한복음 12:01-11 예수님은 자신의 장례의 날을 준비하십니다 평화의길벗 2026.03.10 1
1051 요한복음 12:1-11 예수님은 헌신적인 사랑의 향유를 받으시고, 당신의 죽음과 구원을 예비하시는 메시아이십니다. 평화의길벗 2026.03.10 2
1050 요한복음 11:47-57 예수님은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되게 하십니다 평화의길벗 2026.03.09 3
1049 요한복음 11:47-57 예수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희생되신, 온 세상의 구원자이십니다. 평화의길벗 2026.03.09 2
1048 요한복음 11:38-46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평화의길벗 2026.03.08 2
1047 요한복음 11:38-46 예수님은 생명의 권세를 가지신, 죽음을 이기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평화의길벗 2026.03.08 1
1046 요한복음 11:28-37 예수님은 우는 자들과 함께 우시는 분이십니다. 평화의길벗 2026.03.07 4
1045 요한복음 11:28-37 죄와 사망의 권세에 거룩하게 분노하시며, 우리의 곁에서 눈물 흘려 우시는 체휼과 긍휼의 예수 그리스도 평화의길벗 2026.03.07 2
1044 요한복음 11:17-27 썩어가는 절망의 무덤 앞에서 참된 부활과 영원한 생명(Ego Eimi)으로 선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평화의길벗 2026.03.06 3
1043 요한복음10:22-42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평화의길벗 2026.03.04 5
1042 요한복음 10:22-42 영원한 생명을 주시며, 아버지와 하나 되어 전능하신 손으로 자기 양을 끝까지 보호하시는 참 목자, 예수 그리스도 평화의길벗 2026.03.04 2
1041 요한복음10:01-21 예수님은 양의 목자와 문이시며 선한 목자이십니다. 평화의길벗 2026.03.03 4
1040 요한복음 10:01-21 양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목숨을 내어주심으로 참되고 풍성한 생명을 주시는 선한 목자요 양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 평화의길벗 2026.03.03 2
1039 요한복음09:24-41 예수님은 심판하러 세상에 오신 인자이십니다. 평화의길벗 2026.03.02 7
1038 요한복음 9:24-41 세상의 교만을 심판하시고, 상처받은 영혼을 찾아가 참된 빛과 구원을 주시는 생명의 주님 평화의길벗 2026.03.02 4
1037 요한복음09:13-23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십니다 평화의길벗 2026.03.01 4
1036 요한복음 09:13-23 맹목적인 종교의 틀과 세상의 두려움을 넘어, 참된 안식과 빛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평화의길벗 2026.03.01 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53 Next
/ 5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