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07:14-24 세상의 편견을 넘어 오직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시며 생명 살리는 율법의 완성을 이루신 참되신 주님
*
초막절 명절 중간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가르치십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정식 교육을 받지 않고도 성경을 깊이 아는 것에 놀랍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스스로의 영광이 아닌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기에 참되다고 선언하십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율법을 자랑하면서도 정작 율법을 어기며 자신을 죽이려 하는 그들의 위선을 지적하십니다. 무리들이 귀신이 들렸다며 조롱하자,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행하는 것을 예로 드시며,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강하게 고쳐준 일로 분노하는 그들의 모순을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할 것을 촉구하십니다.
*
# 역사·문화적 배경 : 본문의 배경은 가을의 추수 감사 축제인 '초막절'입니다. 당시 랍비 사회에서는 유명한 스승 밑에서 정식으로 신학 교육(글, grammata)을 받는 것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정규 랍비 교육을 받지 않은 갈릴리 목수 출신의 예수님이 탁월한 권위로 성경을 풀어 가르치시자 유대인들은 충격과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 신학·정경적 배경 : 본문은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영광', 그리고 '외모(문자적 율법주의)'와 '공의(율법의 본질인 사랑과 생명)'의 첨예한 신학적 대립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파괴자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심으로 율법의 참된 목적을 성취하시는 분임을 스스로 논증하십니다.
# 철학·인문학적 배경 : 이 단락은 인간의 '인식론적 한계'를 다룹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쌓은 경험과 전통, 눈에 보이는 학벌이나 출신(외모)이라는 편견의 안경을 끼고 진리를 재단하려 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이성이나 스펙을 넘어,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실천적 의지를 통해서만 바르게 인식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 세상은 끊임없이 눈에 보이는 겉모습과 스펙으로 우리를 평가하고 줄 세우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묵상할 요한복음 7장의 말씀은 세상의 얄팍한 기준을 뛰어넘어 우리 중심을 보시며 참된 생명과 진리로 초대하시는 주님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을 통해 세상의 잣대에 지친 우리의 영혼이 참된 위로를 얻고, 주님의 공의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영적 통찰력을 회복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 14-18절 참된 교훈과 하나님의 영광
오직 자기를 보내신 성부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여 그분의 영광만을 구하시는 참되신 성자 하나님.
.
명절 중간에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대인들은 그가 배우지 않았음에도 어떻게 글(성경)을 아는지 놀랍니다. 예수님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자는 이 가르침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알 수 있다고 하십니다.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을 구하지만,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며 그 속에 불의가 없다고 선언하십니다.
유대인들은 가르침의 참된 내용보다는 예수님의 '출신'과 '학력'이라는 외형적 자격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어떻게 글을 깨우쳤는지를 변호하시는 대신, 교훈의 '출처'가 바로 성부 하나님이심을 밝히십니다. 진리를 분별하는 시금석은 지적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순종의 의지'입니다. 순종하려는 마음 없이 소유하기만 한 지식은 오히려 진리를 거스르는 독이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상이나 철학을 전하며 자기 영광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철저히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셨기에 그분의 말씀은 완벽한 진리이며 그 안에 불의가 없는 것입니다.
.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학벌, 스펙, 배경으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직분이나 신앙 연수를 나의 영광을 구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철저히 자기를 비우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셨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큐티를 하는 목적도 지적 허영심을 채우거나 내 영광을 구하기 위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 오늘 이 말씀대로 순종하겠습니다"라는 결단이 있을 때, 비로소 말씀이 진리임을 삶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나의 스펙을 자랑하거나 이웃의 겉모습을 평가하는 세속적 가치관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참된 제자가 됩시다.
*
# 19-20절 율법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자들의 위선
율법의 참된 정신을 잃어버린 인간의 위선을 날카롭게 책망하시고 억울한 모욕 속에서도 진리를 선포하시는 주권자 하나님.
.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향해 모세가 율법을 주었으나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한 사람도 없으며, 오히려 나를 죽이려 한다고 지적하십니다. 그러자 무리들은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느냐?"라며 적반하장으로 예수님을 모욕합니다.
.
유대인들은 스스로 율법의 철저한 수호자라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율법의 본질(생명과 사랑)은 버려둔 채 껍데기만 붙들고 있으며, 도리어 율법의 완성자이신 생명의 주님을 살해하려는 끔찍한 위선자들임을 폭로하십니다. 이에 정곡을 찔린 무리들은 "귀신이 들렸다"고 조롱합니다. 이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당신은 미쳤다"는 극심한 모욕의 표현이었습니다. 진리를 알지 못하는 영적 맹인들은 진리 자체이신 분을 정신병자로 치부해 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모욕과 억울함 앞에서도 분노로 맞서지 않으시고 온유함으로 진리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
우리는 종종 나의 신앙적 지식과 전통을 기준으로 타인을 쉽게 정죄합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높이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형제를 미워하고 시기한다면, 우리 역시 율법을 어기며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또한 직장이나 일상에서 우리가 진리와 양심을 따라 정직하게 살려고 할 때, 세상은 우리를 향해 "너만 잘났냐, 미련하다, 미쳤다"라며 조롱할 수 있습니다. 그때 억울해하거나 같이 혈기를 부리지 마십시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 숱한 조롱을 감내하셨습니다. 세상의 비난 속에서도 주님의 온유하심을 닮아, 미움을 사랑으로 덮으며 묵묵히 사명의 길을 걷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격려합니다.
*
# 21-23절 안식일 논쟁과 참된 치유
율법의 조문에 얽매인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치시고, 생명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는 거룩한 일을 통해 안식을 완성하시는 생명의 하나님.
.
예수님은 앞서 베데스다 연못에서 행하신 '한 가지 일'(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일)로 인해 그들이 분개하고 있음을 짚으십니다. 그러면서 너희도 모세의 율법(실상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안식일에도 아이에게 할례를 행하면서,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몸 전체(전신)를 건강하게 해준 일로 어찌 노여워하느냐고 반문하십니다.
.
유대인들은 율법에 따라 아이가 태어난 지 8일째 되는 날에는 그날이 안식일이라도 반드시 할례를 행했습니다. 할례는 신체의 일부를 베어내어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거룩한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논리는 명쾌합니다. "신체의 일부를 훼손하면서까지 언약을 지키는 행위가 안식일에 허용된다면, 하물며 38년 동안 고통받던 한 인간의 '전신(全身)'을 온전케 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이 어찌 안식일을 범하는 일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참된 목적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형식적 규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결핍과 고통에 빠진 생명에게 샬롬(평강)과 회복을 주어 '진정한 안식'을 누리게 하는 데 있음을 천명하십니다.
.
이 말씀은 오늘날 한국 교회에 깊은 반성을 촉구합니다. 우리는 예배당의 질서나 전통, 행정적인 절차(할례)를 지키기 위해 정작 한 영혼을 위로하고 살리는 일(전신을 건전케 함)을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 안의 각종 규칙과 제도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광양사랑의교회 공동체는 어떤 상황에서도 '생명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합니다. 부부 사이의 갈등이나 직장에서의 업무 처리에서도,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차가운 법의 잣대보다, 상처 입은 영혼을 온전하게 회복시키는 따뜻한 긍휼을 먼저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
# 24절 외모가 아닌 공의로운 판단
인간적인 편견과 눈에 보이는 외모를 뛰어넘어 진리와 긍휼의 기준인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참된 재판장 예수 그리스도.
.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향해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고 단호하게 명령하십니다.
.
'외모로 판단한다'는 것은 표면적인 지식, 출신, 겉으로 드러난 규례 준수 여부만으로 사람과 사물을 섣불리 단정 짓는 인간의 한계를 지적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갈릴리 출신이라는 배경과 안식일에 일했다는 표면적 현상만 보고 창조주를 죄인으로 취급했습니다. 반면 '공의롭게 판단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눈과 마음으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차가운 율법주의의 안경을 벗고, 생명과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거룩한 의지에 기초하여 영적 분별력을 발휘하라는 준엄한 촉구입니다.
.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타인을 '외모'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입고 있는 옷, 타고 다니는 자동차, 아파트 평수, 혹은 그 사람의 과거 실수 하나로 전체를 재단해 버립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공의롭게 판단하라"고 하십니다.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내 눈에 있는 율법주의와 편견의 들보를 빼내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외형적 조건 뒤에 감추어진 상처와 눈물, 그리고 그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는 영적 시력을 구하십시오. 우리 교회가 세상의 스펙으로 서로를 가늠하지 않고, 십자가의 공의와 사랑으로 서로를 깊이 품어주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
# 거둠의 기도
진리와 생명이 되시며, 우리의 참된 재판장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겉모양과 전통에 얽매여 생명의 주님을 몰라보고
도리어 조롱했던 유대인들의 무지와 교만이,
바로 우리 안에 숨겨진 위선임을 깨닫고 회개합니다.
주님, 지식의 유희나 나의 영광을 구하기 위해 말씀을 이용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순종의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의 화려한 스펙과 외모로 이웃을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했던
우리의 얄팍한 시선을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주옵소서.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세상이 우리를 몰라주고 비방할지라도,
억울함을 인내하시고 오직 아버지의 영광만을 구하셨던
예수님의 온유함을 배우게 하옵소서.
우리 광양사랑의교회 모든 장년 성도들이 차가운 율법의 잣대를 내려놓고,
한 영혼의 전신을 온전하게 회복시키시는
주님의 생명 살리는 사역에 기쁨으로 동참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가
공의와 사랑이 강물처럼 흐르는 거룩한 처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빛이시며 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