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07:53-8:20 정죄의 돌을 내려놓게 하시는 은혜의 주님이시며, 어둠을 밝히는 세상의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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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7장 53절에서 8장 20절은 크게 두 가지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끌고 와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할 때,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심으로 위선자들을 물리치시고 여인에게 용서와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신 사건입니다(7:53-8:11). 둘째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선포하시며, 이를 믿지 않고 조롱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자신과 아버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참된 증언의 권위를 밝히시는 장면입니다(8: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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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문화적 배경 : 본문의 배경은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하나인 '초막절'입니다. 초막절 마지막 날 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 여인의 뜰에 있는 거대한 금 촛대들에 불을 밝히고 밤새 춤을 추며 찬양했습니다. 이는 과거 광야 생활 중 이스라엘을 인도했던 '불기둥'을 기념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불빛 아래서 예수님은 당신이 진정한 '세상의 빛'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또한,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라는 율법(레 20:10, 신 22:22)과 사형 집행권을 식민지 백성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로마법 사이의 딜레마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고발하려 했던 종교 지도자들의 교활한 시대적 배경이 깔려 있습니다.
# 신학·정경적 배경 : 7장 53절에서 8장 11절의 '간음한 여인' 단락은 초기 사본들(시내산 사본, 바티칸 사본 등)에는 빠져 있어 본문비평적으로 논란이 있지만, 초대 교회부터 정경으로 인정받아 온 역사적이고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학적으로 예수님은 율법의 파괴자가 아니라 완성자로서, 정죄당해 마땅한 죄인에게 '용서의 빛'을 비추어 주시는 분임을 보여줍니다. 아울러 "나는 세상의 빛이라"는 선언은 구약 출애굽기 3장 14절의 하나님의 자기 계시인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에고 에이미)"를 반영하는 것으로,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심을 강력하게 드러내는 기독론적 선포입니다.
# 철학·인문학적 배경 : 타인의 죄를 통해 자신의 의로움을 돋보이게 하려는 인간의 위선적 심리와, 군중 심리에 휩쓸려 무자비한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희생양 메커니즘'을 날카롭게 고발합니다. 지식이 도리어 진리를 가리는 교만의 도구가 되어 눈앞에 있는 빛을 보지 못하는 인간의 인식론적 한계를 보여줍니다.
#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의 허물을 들추어내고 경쟁에서 이길 것을 강요하지만, 오늘 주님은 정죄의 돌멩이를 내려놓게 하시는 크신 은혜와, 어두운 인생길을 밝히는 따뜻한 생명의 빛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굳어진 마음이 녹아내리고, 참된 용서와 빛 되신 주님을 깊이 만나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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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3-8:11 간음한 여인과 용서하시는 주님
율법의 잣대로 타인을 정죄하려는 교만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죽어가는 죄인에게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시는 구원자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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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성전에 나오신 예수님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끌고 와 묻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예수님은 몸을 굽혀 땅에 무언가를 쓰신 후 일어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무리가 어른부터 젊은이까지 모두 떠나가고, 홀로 남은 여인에게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선언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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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 종교 지도자들의 목적은 여인의 거룩함 회복이 아니라 예수님을 올무에 빠뜨리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의 율법대로 돌로 치라 하면 로마의 실정법을 어기는 반역자가 되고, 치지 말라 하면 율법을 파괴하는 거짓 선지자가 되는 진퇴양난의 함정이었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도, 로마법도 어기지 않는 명쾌한 대답을 하십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원초적 죄성을 폭로하며, 죄인이 감히 다른 죄인을 심판할 자격이 없음을 일깨우십니다. 예수님은 교활한 자들의 숨겨진 사악함과 죄인 됨을 꿰뚫어 보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 돌을 들 자격이 있는 유일한 분, 곧 죄가 없으신 심판주 예수님만이 그녀를 정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초림하신 예수님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 오셨기에 정죄를 유보하시고 용서를 선포하십니다. 이 용서는 죄에 대한 방임이 아니라, 주님 자신이 십자가에서 그 여인의 죄책을 대신 짊어지시겠다는 대속의 은혜를 전제한 위대한 사랑의 선언입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 은혜로 죽음에서 건짐을 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거룩한 명령입니다. 구원은 방종의 시작이 아니라, 죄의 사슬을 끊어내고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거룩한 삶의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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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인터넷과 SNS 발달로 인해 누군가의 작은 허물이라도 발견되면 즉시 '여론 재판'을 열어 돌매질을 가하는 무서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타인을 향한 분노와 정죄의 돌을 던지며 스스로 의롭다고 착각하는 바리새인의 모습이 혹시 내 안에는 없는지 정직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가정에서 배우자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거나, 직장에서 동료의 실수를 가십거리로 삼으며 돌을 들고 서 있지는 않습니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치라." 이 주님의 음성 앞에 서면, 우리는 모두 슬그머니 돌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흉악한 죄인들입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는 남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연약함을 품어주고 덮어주는 '용서의 용광로'가 되어야 합니다. 나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으나 주님의 십자가 은혜로 탕감받았음을 기억하십시오. 이번 한 주, 누군가를 향해 들었던 미움과 비판의 돌멩이를 십자가 밑에 내려놓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하신 주님의 따뜻한 시선으로 이웃을 바라보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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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글은 한동일 님의 <그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에서 본문에 대한 해설을 발췌한 내용입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자’ 이야기에서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율법학자 과 바리사이 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 앞에 세워놓았을 때 보였던 예수의 태도입니다. 성경은 그들이 예수에게 모세 법에는 간음한 여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당신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을 때, 예수는 그저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라고만 전합니다. 만일 예수가 쓴 내용이 중요했다면 전승 이 알려주었을 텐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그 내용보다는 행위가 더 중요했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재촉하듯 사람들이 답을 묻자 예수는 몸을 일으켜 세우며 그들을 향해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하고 말씀하신 뒤, 다시 몸을 굽혀 땅바닥에 무언가를 쓰셨다고 성경은 전하지요. 이 이야기에서 예수는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직접적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무언가로 인해 무안하고 부끄러운 사람을 빤히 쳐다본다면 그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요? 그 자리의 남성 대부분은 그 여자가 어느 집 딸이자 아내일까, 불륜 대상은 누구일까 하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했겠지만 예수는 마치 여인의 심정을 알고 있다는 듯이, 여인과 눈이 마주치는 걸 피하기라도 할 요량으로 몸을 굽혀 땅바닥에 뭔가를 쓰기만 했습니다. 통념을 깨는 행위입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가 바라는 것은 바로 통념을 깨는 것이지요.
혹자는 무슨 내용을 썼울까 궁금해하지만, 엉클어진 머리,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해 드러난 몸, 수치심 가득한 한 인간을 대하는 예수의 태도에서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 구절을 주석 하면서 ‘미세리아 miserio’ 가 ‘미세리코르디아 misericordia’ 를 만나는 순간이었다고 표현합니다. 즉 ‘비참’이 ‘자비’를 만나는 순간이었다고 말이지요.
희극작가 테렌티우스는 “인간의 본분을 안다면, 인간은 인간에게 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희극작가 플라우투스는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이다”라고 했지요. 간음하다 잡힌 여자’ 이야기에서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는 ‘인간이 인간에게 신이거나 늑대이거나 둘 중 하나!’ 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자’ 이야기는 간음하다 걸린 여자, 그 대상 자체보다 ‘그를 바라보고 있는 나’는 그에게 신인지 늑대인지, 나의 어떤 작은 부분이 내가 그에게 신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하는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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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2-20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영적 어둠과 무지에 갇힌 세상을 향해 생명의 빛으로 임하시고, 아버지 하나님과 완전한 연합 속에서 참된 진리를 증언하시는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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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무리를 향해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선포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않다"고 반발하자, 예수님은 자신이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아시기에 증언이 참되며,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와 함께하시며 나를 위해 증언하신다고 반박하십니다. 그들이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고 비아냥거리자, 예수님은 "너희는 나와 내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며 그들의 영적 무지를 지적하십니다. 이 말씀을 성전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예수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아 아무도 잡는 자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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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의 빛이니 : 초막절의 거대한 횃불들이 꺼져갈 무렵, 예수님은 물리적인 불빛을 넘어 영혼을 살리는 영원한 '참 빛'이 자신임을 선포하십니다. '나는 ~이다(에고 에이미)'는 절대적 신성의 선포이며,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죄와 사망의 어둠에서 벗어날 길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 : 바리새인들은 율법(신 19:15)의 "두세 증인의 입으로 확정하라"는 조항을 들어 예수님의 자기 계시를 독단적 주장으로 치부하고 거부합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 예수님은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십니다. 예수님 자신과,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이 두 증인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부와 성자가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완전한 일치와 연합 속에 계심을 증명하며, 예수님의 모든 사역과 말씀이 하나님의 신적 권위에 기반함을 보여줍니다.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 바리새인들의 이 질문은 육신적인 혈통(요셉)만을 생각한 뼈아픈 영적 무지의 결과입니다. 영적 어둠에 가려져 있기에 눈앞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도,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면, 아무리 성경 지식이 많아도 결국 하나님을 모르는 맹인에 불과함을 요한은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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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사는 곳의 밤은 불빛과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대낮처럼 밝지만, 현대인들의 내면은 우울증, 불안, 허무함이라는 짙은 어둠에 갇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의 풍요가 우리 영혼의 길을 밝혀주지 못합니다. 주님은 오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라"고 초청하십니다. 이 빛은 단순히 길을 밝혀주는 랜턴이 아니라, 우리 존재를 살려내는 '생명의 빛'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등대 삼아 인생의 길을 걷고 있습니까? 세상의 얄팍한 지식이나 사람들의 평가입니까? 바리새인들처럼 종교적인 껍데기는 가졌으나 정작 빛이신 예수님과 인격적인 교제가 끊어져 영적 맹인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을 아는 것이 곧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것입니다. 매일 아침 성경을 펴고 묵상하는 시간은, 내 영혼의 창문을 열어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의 생명을 내 안으로 들이는 거룩한 일광욕의 시간입니다. 우리 안에 이 생명의 빛이 충만해질 때, 직장과 가정의 어둡고 답답한 상황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도리어 내 주변을 밝히는 작은 빛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음을 확신하며 당당히 걸어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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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간음한 여인처럼 죄악과 수치심에 죽어 마땅한 저희를 향해,
정죄의 돌 대신 용서의 십자가를 내밀어 주신
그 크신 사랑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의 손에 들려 있던 교만과 비판의 돌멩이들을
이 시간 주님 발앞에 내려놓습니다.
타인의 허물을 보기 전에 내 안의 깊은 어둠을 먼저 보게 하시고,
주님이 베푸신 용서의 은혜로 이웃을 품고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두운 세상에서 방황하던 저희에게
참된 생명의 빛으로 찾아오신 예수님,
바리새인들처럼 알량한 지식과 편견으로
주님을 판단하는 영적 교만을 버리게 하옵소서.
오직 진리이신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며,
주님을 깊이 알아감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친밀하게 만나는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오늘도 땀 흘려 일하는 모든 일터와 우리네 가정마다
주님의 생명의 빛을 찬란하게 비추어 주셔서,
두려움과 불안의 어둠이 물러가고
영원한 생명의 소망이 넘쳐나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시며 영원한 빛으로 인도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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