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04:01-14 편견의 장벽을 넘어 찾아오셔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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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들의 견제를 피하여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려던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부정하게 여겨 꺼리는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기로 작정하십니다. 수가라 하는 동네의 야곱의 우물 곁에 이르러, 피곤하여 앉아 계시던 예수님은 정오(낮 12시)에 물을 길으러 온 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 좀 달라"고 요청하십니다. 유대인 남자가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을 거는 것에 놀란 여인에게,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선물'이며 '생수'를 주는 이임을 계시하십니다. 여인이 야곱의 우물물에 매여 있을 때, 예수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약속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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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문화적 배경 : 사마리아인은 과거 앗수르의 침공(B.C. 722년) 이후 이방 민족과 혼혈이 된 역사를 가지고 있어, 순수 혈통을 중시하는 유대인들에게 '개' 취급을 받으며 멸시당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갈릴리로 갈 때 사마리아를 피해 요단강 동편(베레아)으로 우회하곤 했습니다. 또한, 대낮 '여섯 시'(유대 시간, 우리 시간으로 정오 12시)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시간이라 사람들이 물 길으러 나오지 않는 때입니다. 이 시간에 나온 여인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야만 하는 사연이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 지리적 배경 : '수가'는 구약의 세겜 근처로, 야곱이 요셉에게 준 땅과 가깝습니다. 이곳의 '야곱의 우물'은 깊이가 깊어(약 30m 이상) 두레박 없이는 물을 길을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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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 사람들의 시기와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시되, 구원 계획을 위해 의도적으로 사마리아를 통과하시는 주권자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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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세례 사역이 요한보다 더 흥왕하다는 소문을 들은 줄 아시고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려 하십니다. 이때 예수님은 통상적인 우회로가 아니라,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고 결정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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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투옥 소식(마 4:12)과 바리새인들의 시기심을 아시고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고자 이동하십니다. 그러나 이 이동은 단순한 도피가 아닙니다. 4절의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라는 헬라어 표현은 '신적 필연성(divine necessity)'을 의미합니다. 지리적으로 가까워서가 아니라, 그곳에 구원받아야 할 영혼이 있기에 반드시 가셔야만 했던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유대인들이 만든 차별과 증오의 경계선을 예수님은 사랑의 필연성으로 넘어섭니다. 예수님의 행보는 세상의 평판이나 인기 관리가 아니라, 오직 아버지의 뜻(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매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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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에도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사마리아와 같은 고난의 땅, 혹은 내가 꺼리는 관계의 영역이 있습니다. 혹시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이나 원치 않는 환경이 있습니까? 그것을 우연이나 재수 없는 일로 치부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그곳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고 하실 때는, 그곳에서 만나주실 주님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내가 편견 때문에 피해 다니는 사람이나 장소는 없습니까? "저 사람은 절대 예수 안 믿을 거야", "저 지역은 힘들어"라고 선을 긋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의 사랑은 '반드시' 그 선을 넘습니다. 이번 주간, 내가 의도적으로 피했던 그 사람에게 따뜻한 안부 인사라도 건네는 것이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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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0절 물 좀 달라 하시는 하나님의 선물 : 육신을 입고 피곤함을 느끼시는 참 사람이시며, 편견의 장벽을 허물고 먼저 다가와 '하나님의 선물'을 주시는 은혜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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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수가라 하는 동네, 야곱의 우물 곁에 앉으십니다.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그대로 앉으신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으러 오자 "물 좀 달라"고 요청하십니다. 여자가 유대인 남자가 왜 자신에게 말을 거느냐고 놀라자, 예수님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주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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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신 예수님 : 창조주께서 피조물의 몸을 입고 더위와 갈증, 피로를 느끼십니다(1:14). 이는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동정)하시는 대제사장이심을 보여줍니다(히 4:15).
장벽을 넘으시는 사랑 : 당시 유대 랍비들은 길에서 여자와 대화하는 것을 금기시했고, 사마리아인을 부정하게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성별, 인종, 종교적 정결례의 거대한 장벽을 깨고, 가장 소외된 여인에게 먼저 말을 거심으로 그녀의 존엄성을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의 선물 : 예수님은 여인에게 물을 구하는 척하셨지만, 실상은 여인에게 '생수'를 주려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킵니다. 세상은 조건을 보고 거래를 하지만, 하나님은 거저 주시는 '선물(은혜)'로 다가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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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우리의 가장 목마르고 피곤한 시간,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정오'에 찾아오십니다.
위로 : 삶의 현장에서, 혹은 가정에서 지치고 고단하십니까? 예수님도 그 피곤함을 아십니다. 우물 곁에 주저앉으신 예수님이 여러분 곁에 앉아 "많이 힘들지?"라고 위로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가진 자격이나 의로움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려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선물'로 오십니다. 내 알량한 자존심을 내려놓고, "주님, 저는 목마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신 예수님이 필요합니다"라고 고백합시다. 또한 우리 주변에 소외된 이웃, 다문화 가정, 혹은 관계가 껄끄러운 이들에게 먼저 "물 한 잔 주시겠어요?"라며 말을 거는 작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복음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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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4절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 : 일시적인 세상의 물과 대조되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성령의 생수를 주시는 생명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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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예수님이 두레박도 없이 깊은 우물에서 어떻게 생수를 얻겠느냐고 묻습니다. 야곱보다 더 크냐고 반문합니다. 예수님은 "이 물(야곱의 우물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선언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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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우물 vs 예수님의 생수 : 여인은 전통과 조상(야곱)이 준 우물에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이 물'은 마시면 다시 목마른 세상의 만족(쾌락, 성취, 사람의 인정 등)을 상징합니다. 반면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생수'입니다. 원어적으로 '고인 물(cistern)'이 아니라 '흐르는 물'을 뜻하며, 영적으로는 성령님을 의미합니다(7:38-39).
솟아나는 샘물(allomenou) : 14절의 '솟아나는'이라는 단어는 본래 '뛰어오르다, 춤추다'라는 역동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세상의 기쁨은 외부에서 채워 넣어야 하기에 금방 고갈되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성령)은 내면 깊은 곳에서 옹달샘처럼 계속 솟구쳐 오르는 생명력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생(Eternal Life)의 삶입니다(성령님이 춤추시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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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는 '목마름의 사회'입니다. 더 좋은 집, 더 높은 지위, 자녀의 성공이라는 '야곱의 우물'을 파느라 분주합니다. 그러나 그 물은 마실수록 더 갈증이 납니다(소금물과 같습니다).
내면 점검 : 여러분은 지금 무엇으로 목을 축이려 하십니까? "이것만 해결되면 살 것 같다"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또 다른 갈증을 부를 수 있습니다.
해결책 : 진정한 해갈은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내 안에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매일 아침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할 때, 우리 영혼의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성령의 샘물이 터집니다. 이 생수를 마시는 자는 상황이 어려워도 기뻐할 수 있고, 가진 것이 없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번 한 주, 세상의 두레박을 던져버리고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음껏 들이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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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편견과 차별의 벽을 넘어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가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저희 또한 세상의 시선과 평판에 갇혀 있거나,
인생의 무더위에 지쳐 우물가에 주저앉아 있지는 않은지요.
오늘 이 시간, 목마른 저희 심령에 찾아와 주셔서
"내가 너를 안다, 내가 너에게 생수를 주겠다"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는 여전히 마시면 다시 목마를 세상의 물을 구하며 살 때가 많습니다.
야곱의 우물보다 더 크신 예수님,
이제는 세상의 헛된 것에서 만족을 찾지 않게 하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영원히 솟아나는 성령의 생수로 채워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속에서 터져 나오는 기쁨과 생명력이
우리 가정과 일터, 그리고 이 광양 땅의 메마른 곳을 적시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생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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