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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01:01-11 안락함을 찢고 폐허를 끌어안은 지도자의 첫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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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1:1-11은 느헤미야서 전체의 서론 격으로,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수산 궁에 머물던 느헤미야가 고국 예루살렘의 비참한 소식(성벽 훼파와 백성의 능욕)을 듣고 깊이 애통하며, 하나님의 언약과 긍휼에 근거하여, 민족의 죄를 대신 자복하고, 자신이 왕에게서 은혜를 입어 예루살렘 재건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형통'을 간구하는 기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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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점 및 인물 : 본문은 아닥사스다 왕 제20년 기슬르월(BC 444년경)을 배경으로 합니다. 느헤미야는 바벨론 포로 후손이었으나, 페르시아 제국에서 왕의 술 관원이라는 매우 신뢰받는 고위 관리였습니다.

  • 현실 상황 : 이미 스룹바벨과 에스라의 귀환을 통해 성전 재건과 율법 회복이 이루어졌지만, 예루살렘 성벽은 여전히 무너지고 성문이 불타, 외부의 적대 세력(산발랏 등)의 위협과 유다 백성의 큰 환난과 능욕이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성벽의 부재는 공동체의 안전한 거주와 정체성 회복에 치명적이었습니다.

  • 신학적 의의 : 느헤미야서에서 성벽 재건은 단순히 물리적 작업이 아니라, 성전 제의와 율법의 권위, 그리고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율법-성전 공동체의 온전한 회복을 의미합니다. 이 회복은 하나님의 계획 아래 이방 왕의 마음까지 감동시키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통해 이루어짐이 강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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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절 현실 직면과 영적 황폐함의 인지

하나님은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시기 위해, 편안함 속에 안주하던 종의 마음을 움직여, 고통받는 현실 속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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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 제20년 기슬르월에 페르시아 수도 수산 궁에서 안녕히 있었습니다. 그때 그의 형제 하나니와 몇몇 유다 사람에게서 예루살렘의 소식을 듣는데, 귀환 공동체는 '큰 환난'과 '능욕'을 당하고 있으며, 성벽은 허물어지고 성문은 불탄 비참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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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의 이름 뜻('여호와께서 위로하신다')과 그가 가진 '술 관원'의 안정적이고 영향력 있는 위치는 예루살렘의 '황폐'와 강렬하게 대비됩니다. 성벽은 단순히 건축물이 아니라, 유다 공동체의 안전을 보장하고,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상징하는 거룩한 도시의 방어선이었습니다. 성벽이 무너진 채 방치된 상태는 공동체에 능욕과 수치를 가져왔습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반하여 자신의 이름을 높이려 했던 바벨탑의 오만함이 낳은 결과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 없는 삶(우상숭배, 죄악)을 택했을 때 오는 영적 폐허의 기록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인간의 실패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땅 '밖', 즉 제국의 중심부에 있는 느헤미야의 마음을 감화시키심으로써, 무너진 곳을 회복하려는 당신의 구속 계획을 실행하기 시작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가 이방 왕의 통치 속에서도 빈틈없이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학적 단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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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종종 지식과 기술의 발달로 인해 물리적이고 경제적인 안정을 누리지만, 이 풍요로운 안락함은 우리를 영적 무감각에 빠지게 할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성읍(가정, 교회, 사회)이 '능욕과 환난' 속에 처해 있음을 애써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고향의 소식을 듣고 비로소 자신의 안락함을 의심했듯이, 우리는 영적, 도덕적으로 무너진 사회 현상들(예: 이익을 위해 타인의 약점을 흥정하는 행위, 정의가 사라지고 돈과 편안함을 따르는 신앙의 왜곡)을 '강 건너 불 보듯' 여기지 않고, 그것이 우리 공동체의 성벽이 무너진 결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일상의 소셜 미디어나 뉴스 피드를 통해 접하는 고통의 소식 앞에서 '앉아서 우는' 느헤미야의 자세를 취하고, 우리의 전문성과 영향력을 이 무너진 현실을 복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할 방법을 구체적으로 구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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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절 공동체의 죄를 짊어진 지도자의 애통 기도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을 깨뜨린 백성일지라도 그들을 '주의 종'이라 부르시며, 공동체의 죄를 자기 죄처럼 끌어안고 회개하는 중보자를 통해 긍휼을 베푸시는 은혜의 근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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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는 소식을 듣자마자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는 기도를 시작하며 하나님을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으로 높이고, 주를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분임을 고백합니다. 느헤미야는 백성의 죄악을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였다'고 고백하며, 백성이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 율례, 규례를 지키지 않은 죄를 중보적으로 자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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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의 애통, 금식, 기도는 그의 사역과 지도력의 본질적인 원천입니다. 그는 비탄에 빠지는 데 그치지 않고, 이 고난의 궁극적인 원인이 하나님을 떠난 공동체의 죄에 있음을 신학적으로 인식했습니다. 그의 자복은 공동체의 실패를 자신의 실패로 동일시하는 중보자적 책임을 보여줍니다. '자비' 혹은 '긍휼'(헤세드)은 용서, 인내, 사랑, 구원 등을 포괄하는 하나님의 언약적 속성입니다. 느헤미야가 이 속성에 호소할 수 있었던 근거는, 백성들이 징계를 받는 와중에도 하나님이 그들을 '주의 종'이라고 부르시며 언약을 폐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들고 계신다는 신실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 제물 되심으로 인해, 우리가 여전히 죄의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는 원리와 같습니다. 진정한 회복은 우리의 행위(징계를 멈추는 것)가 아닌, 하나님의 변함없는 긍휼과 사랑(헤세드)을 믿음으로 응답하는 회개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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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교회는 종종 죄의 고백을 형식적인 의식으로 전락시키거나, 죄에 대한 책임을 타인이나 환경에 전가하기 쉽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안위를 희생하고 공동체의 수치를 '나의 죄'로 끌어안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감정적 슬픔이 아니라, 죄의 심각성을 통감하고 삶의 변화를 갈망하는 진정한 회심의 시작이었습니다. 개인의 적용으로는,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죄나, 가정의 영적 무너짐을 볼 때, '나는 죄가 없다'고 회피하는 대신,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하며, 자발적 금식과 간절한 중보 기도를 통해 영적 각성을 촉구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영적 상태가 마치 전쟁으로 인해 뿌리만 남은 채 땅에 묻힌 듯 살아가는 절망적인 상태일지라도,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때 비로소 희망이 싹튼다는 역설적 진리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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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1절 언약과 비전에 근거한 구체적인 간구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경외하는 종들의 구체적인 청원을 들으시고, 시대적 역경을 넘어 당신의 구속사적 약속을 이루기 위해 세상의 권력까지도 주권적으로 통치하며 사용하시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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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는 기도의 근거로 이전에 모세에게 명령하신 말씀, 즉 이스라엘이 죄를 지어 흩어질지라도 회개하고 계명을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예루살렘)으로 다시 모으시겠다는 언약을 제시합니다. 그는 유다 백성을 '주의 종이요 주의 백성'이라 칭하며 회복을 간구합니다. 마지막으로 느헤미야는 자신의 직분(술 관원)을 활용하여,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왕)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라는 구체적인 도움을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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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의 기도는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성과 역사적 주권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가 인용한 모세의 언약(신 4장)은 단순히 과거의 약속이 아니라, 포로 후기 공동체의 정체성 회복과 미래 소망의 기초였습니다. 중요한 점은 느헤미야가 이 언약을 붙잡았을 때, 그의 기도가 '왕 앞에서 은혜를 입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비전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이 왕의 신임을 받는 고위 관료로서, 이 위치 자체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위한 도구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고레스나 아닥사스다와 같은 이방 왕들의 마음을 움직여, 당신의 백성을 돕고 성전을 재건하게 하십니다. 이처럼 느헤미야는 물질적 조건(권위와 자원)과 영적 목표(성벽 재건)를 단절하지 않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한 손길' 아래 놓여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공허한 외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위치에서 구체적인 전략과 행동 계획을 마련하고 그것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능동적인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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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중대한 사안 앞에서 막연한 기도에 머물거나, 기도를 회피한 채 자신의 능력에만 의존하려는 이분법적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일상적 직분과 영적인 비전을 완전히 연결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술 관원'의 위치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회사의 직책, 가정에서의 역할, 공동체 내의 영향력, 혹은 재정적인 안정일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적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직장에서의 영향력 : 우리는 느헤미야처럼 우리의 직장 상사나 동료의 마음을 감동시켜, 우리가 추진하는 정직하고 공의로운 일(프로젝트, 윤리적 경영)에 협력하도록 형통을 위한 기도를 구체적으로 드려야 합니다. 

② 가정에서의 역할 : 무너진 관계의 성벽 앞에서 '언제 회복될지 모른다'는 절망 대신, 하나님의 언약(사랑)을 붙잡고 관계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대화의 기회나 행동할 용기를 왕에게 은혜를 구하듯 간절히 청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정도면 됐다'는 안일함에 젖어 타협할 때까지 기다리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지금 우리의 작은 순종을 사용하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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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하늘의 하나님, 크고 두려우시며 영원히 긍휼을 베푸시는 주님. 

저희의 연약함과 저희 조상의 범죄함으로 인해 

저희가 마땅히 고난을 당하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를 주의 종이요 주의 백성이라 부르시며 끝까지 붙들어 주시는 

주의 신실하신 언약(토라)을 저희가 마음에 깊이 새기게 하옵소서. 

느헤미야처럼, 저희의 편안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무너진 심령과 황폐한 공동체를 끌어안고 애통하며 금식 기도할 수 있는 

거룩한 슬픔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저희의 일상과 직분을 하나님의 나라 재건을 위한 도구로 삼아 주시고, 

저희의 작은 순종과 헌신이 

주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구속 역사의 발판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저희가 어떠한 방해와 어려움 속에서도 

오직 주의 선한 손길만을 신뢰하며, 

저희 삶의 여정을 주님께 온전히 맡기고 

담대히 나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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