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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8:21-36 부끄러움 너머의 손길

우리의 견고함이 아닌 연약함의 고백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는 통로가 됩니다.

*

우리의 삶은 어쩌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긴 여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저마다의 보물을 지닌 채 아하와 강 가에 서 있는 순례자들입니다. 익숙하지만 낯선 땅을 떠나 본향을 향해 나아가는 길, 그 길에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것들—우리의 자녀들, 우리가 이룬 삶의 성취들, 그리고 깨어지기 쉬운 우리의 영혼—을 노리는 ‘대적과 매복한 자’(스 8:31)가 광야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길 어귀에 선 에스라를 만납니다. 그는 무방비 상태의 백성들과 막대한 보물을 이끌고 그 험한 길을 떠나야 합니다. 그의 마음은 무겁습니다. 그에게는 세상적인 방패막이가 될 수 있는 페르시아 제국의 군대와 마병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왕에게 그 도움을 구하지 못합니다.

그는 "부끄러웠기"(스 8:22) 때문입니다.

이 부끄러움은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그는 이미 왕에게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신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펄펄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의 보호자시라고 증언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믿음의 길을 떠나려 하자, 그의 실존은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눈에 보이는 칼과 창의 보호가 절실해진 것입니다. 자신의 고백과 나약한 현실 사이의 깊은 간극, 에스라는 그 사이에서 정직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이것이 어찌 에스라만의 부끄러움이겠습니까. 우리는 주일에는 드높은 신앙을 고백하지만, 월요일의 문을 열며 밀려드는 삶의 무게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집니다. 영원을 노래하지만 당장의 손해 앞에서 전전긍긍합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다 하면서도,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불안에 잠 못 이룹니다. 우리는 모두 이 고백과 현실 사이에서 부끄러워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에스라가 이 부끄러움을 외면하거나 위선으로 포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자신의 연약함을 직시합니다. 그리고 그 연약함을 들고 백성들과 함께 '스스로 겸비하여'(스 8:21) 금식을 선포합니다. 강한 척하는 대신,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의 고백이 무색할 만큼 두렵습니다. 주님의 손이 아니고서는 이 길을 갈 수 없습니다"라고 정직하게 엎드린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신앙의 심오한 비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완벽함이나 강인함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그 부끄러움을 끌어안고 주님 앞에 나아올 때, 그분의 일하심이 시작됩니다. 우리의 힘이 빠진 그 자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개입하시는 무대입니다.

그들은 금식하며 간구했고, 마침내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성경은 그 여정을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의 손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스 8:31). 그들의 길에 대적과 매복자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위험은 실재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위험 속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그들을 건져내셨습니다.

우리의 삶이라는 광야에도 여전히 대적은 있고 매복한 자는 있습니다. 삶은 여전히 아슬아슬하고 때로 버겁습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연약함을 솔직히 인정하며 그분의 도우심을 구할 때, 세상의 군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덮으십니다. 그 손은 우리의 부끄러움 너머에서 일하며, 가장 연약한 순간에 가장 강력한 보호가 되어주십니다. 그러니 우리의 나약함에 절망하지 마십시오. 그 나약함이야말로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을 붙잡는 겸비의 자리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


에스라 8:21-36 비무장의 순례길 위에서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비무장 상태에서 비로소 깨닫는 가장 연약하고도 강력한 신뢰의 모험이다.

*

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평안을 빕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중심의 부재로 인해 끊임없이 허청거리는 시간입니다. 세상의 분주함 속에서, 우리는 삶의 벼랑 끝에 서서 헛헛한 느낌을 위안할 무언가를 찾지만, 참된 안식은 늘 저만치 가물거립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에스라의 여정(에스라 8:21-36) 역시 그러한 혼돈과 불확실성 속에서 출발합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길, 그들은 막대한 성전의 예물을 짊어진 채 위험한 광야를 통과해야 했습니다(8:26, 31).

에스라에게는 군대와 호위병을 요청할 수 있는 세속적인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아닥사스다 왕 앞에서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라고 선언한 터였습니다(8:22). 이제 왕에게 호위병을 청하는 것은, 마치 자신이 선포한 진실을 스스로 부인하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고 고백합니다(8:22). 이 부끄러움이야말로 에스라를 진정한 신앙의 모험으로 이끈 단초였습니다.

그의 고민은 신앙의 본질을 꿰뚫는 철학적 질문과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힘(말과 호위병)을 의지할 것인가,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헤세드(인애)를 온전히 신뢰할 것인가? 자본과 권세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 역시 종종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하며, 자기 삶의 확신이 부족하여 누군가의 인정을 구하려 합니다. 에스라의 부끄러움은, 우리가 진리를 알면서도 현실의 안전에 대한 욕구 때문에 믿음의 길에 성큼 뛰어들지 못하는 비애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결국 에스라는 비무장(非武裝)의 길을 택합니다. 그들이 택한 무기는 오직 금식과 간구였습니다(8:21, 23). 이 금식은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종교적 행위가 아닙니다. 이는 스스로의 힘과 자원을 비우고, 연약한 존재로서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기다리는 ‘자기 부정’의 훈련이며, 삶을 단순하게 바꾸는 연습입니다.

놀랍게도 성경은 이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이유를 우리의 헌신이나 능력에서 찾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의 손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을 면하게 하셨다"고 증언할 뿐입니다(8:31). 우리의 안전은 우리의 잘 짜인 계획이나, 우리가 쌓아 올린 지식이나, 소유의 넉넉함(부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에 있습니다.

신앙에 회의를 느끼거나 삶의 중압감에 짓눌리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있음 그 자체'로 귀한 존재임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넘어지고 비틀거릴지라도, 은총 바깥으로 넘어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하기를 요구하시기보다, 욥의 고난처럼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라도 오직 그분만을 향해 흔들리며 저항하기를 원하십니다.

에스라의 여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우리가 사는 이 땅의 모든 순간이 바로 하나님의 은총이 유입되는 자리이며, 우리의 '일상 순례'는 홀로 고독하게 가는 길이 아니라 주님과 동행하는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비무장의 순례길에 나설 때, 하나님의 따뜻하고도 강인한 손길은 비로소 우리를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마치 연약한 잎새가 여러 그늘을 만들면서도 다시 하나의 잎새가 되어 순하게 몸을 내어주듯, 우리도 상처와 연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품고 평화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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