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4 22:32

요한계시록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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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결론

우리는 길고도 깊었던 여정의 마지막에 섰습니다. 여러 날에 걸쳐, 때로는 두려움으로, 때로는 벅찬 감격으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 마지막 마침표까지 함께 걸어왔습니다. 이 여정을 시작할 때, 우리 마음 한편에는 막연한 두려움이나 어려움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요한계시록은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비밀스러운 예언과 무서운 재앙, 그리고 혼란스러운 상징으로 가득 찬, 섣불리 열어보아서는 안 될 책처럼 여겨져 왔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이단과 사이비 종교들이 이 책을 자신들의 교리를 위한 도구로 왜곡하여, 많은 성도들이 이 귀한 말씀을 아예 멀리하게 만드는 안타까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여정을 통해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우리를 겁주기 위한 비밀 암호 책이 아니라, 핍박받는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가장 강력한 위로와 소망의 편지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책의 첫 구절이 선포하듯,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그 목적은 장차 일어날 일들을 보여주어 우리를 불안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모든 역사의 주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시며, 그분의 승리가 얼마나 확실한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이 땅에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로서 참된 ‘복 있는 자’로 살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마지막 시간에, 우리가 함께 주워 모았던 계시의 보석들을 한데 모아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위해, 그리고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바로 우리를 위해 그려주신 위대한 소망의 그림을 완성하고자 합니다. 이 말씀이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길을 비추는 등불이 되고, 지친 영혼을 일으키는 생명수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1. 우리가 본 것 : 역사 너머의 실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드라마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 눈에 보이는 현실이 전부가 아님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의 눈을 열어, 세상 역사의 무대 뒤편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영적 드라마를 보게 하셨습니다.

먼저 우리는 영광스러운 우리 왕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1-3장). 밧모섬의 외로운 유배지에서 절망하던 요한 앞에 나타나신 주님은 힘없고 나약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일곱 금 촛대, 즉 교회 사이를 거니시며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분의 불꽃같은 눈은 우리의 모든 행위와 수고, 인내뿐만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처음 사랑까지도 꿰뚫어 보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강함을 자랑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말씀을 지키고 그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신실함을 가장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이 일곱 교회의 모습은 바로 오늘 우리 자신의 자화상이며, ‘이기는 자’가 되라는 주님의 부르심은 시대를 넘어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거룩한 초청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늘 보좌 앞으로 나아가, 역사의 주관자가 누구신지를 확인했습니다 (4-5장). 온 우주 만물이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 장엄한 예배의 중심에,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담긴 일곱 인으로 봉해진 두루마리가 있었습니다7. 하늘 위나 땅 아래에 아무도 그 두루마리를 떼기에 합당한 이가 없어 요한이 크게 울었을 때, 바로 그 절망의 순간에 역사의 주인공이 등장했습니다. 그는 포효하는 ‘유다 지파의 사자’가 아니라, 놀랍게도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어린 양’이셨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희생을 통과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의 운명이 담긴 역사의 두루마리를 펴실 자격이 있으심을 보며,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혼돈과 비극마저도 결국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 어린 양의 손안에 있음을 믿고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어린 양의 손에 의해 펼쳐지는 이 땅의 심판과 그 속에서 신음하는 피조 세계를 보았습니다 (6-16장). 일곱 인과 일곱 나팔, 그리고 일곱 대접으로 이어지는 심판들은 하나님을 떠난 세상이 겪는 전쟁과 기근, 재앙과 죽음의 필연적인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무서운 심판의 이야기 속에서조차,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세심한 보호의 손길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바람을 붙드시며 당신의 종들의 이마에 구원의 ‘인’을 치셨고, 세상이 교회를 짓밟는 ‘마흔두 달’ 동안에도 교회의 영적인 생명은 안전하게 ‘측량’되어 보호받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말씀을 먹고, 두 증인처럼 죽기까지 증언하는 사명을 받았으나, 그 끝은 패배가 아닌 부활과 승리의 영광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고난의 배후에 있는 거대한 영적 전쟁의 실체를 보았습니다 (12-14장). 하늘에서 그리스도께 패배하여 땅으로 쫓겨난 용, 사탄은 자신의 분노를 ‘여자’, 즉 교회에게 쏟아냈습니다. 그는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폭력적인 세상 권력)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기만적인 거짓 종교와 문화)을 동원하여, 온 세상이 자신을 경배하게 만들고 성도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핍박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이 새겨진 십사만 사천이 시온 산 위에 서서 승리의 ‘새 노래’를 부르는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모든 악의 세력의 허무한 종말과 그리스도의 최종적인 승리를 목격했습니다 (17-22장). 온 세상을 취하게 했던 화려한 음녀 바벨론, 즉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모든 시스템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한 시간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땅의 왕들과 상인들은 회개 대신 자신들의 이익이 사라진 것을 슬퍼하며 애가를 불렀지만, 하늘에서는 마침내 이루어진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찬양하는 우렁찬 ‘할렐루야’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신랑 되신 어린 양을 위해 단장한 신부, 교회를 위한 영광스러운 혼인 잔치가 예비되었고, 백마를 타신 만왕의 왕께서 오셔서 모든 대적을 멸하시고 당신의 영원한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사탄과 사망마저 불못에 던져지고, 크고 흰 보좌 앞에서 모든 사람이 행위대로 심판받는 최후의 심판을 지나, 우리는 마침내 눈물도, 죽음도, 슬픔도 없는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성전과 빛이 되어주시는 새 예루살렘의 영광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

2. 오늘 대한민국의 바벨론 속에서 깨어 살아가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장엄한 드라마가 오늘 대한민국, 이곳을 살아가는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우리는 더 이상 로마 황제의 핍박 아래 살고 있지 않은데 말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보면, 우리는 여전히 거대한 바벨론의 한복판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바벨론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돈’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물질만능주의입니다. 요한계시록 18장에서 상인들이 사람의 영혼까지 상품으로 삼았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 사회는 끝없는 경쟁 속에서 사람을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소유의 크기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합니다. 이 바벨론의 시스템은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하다. 더 높이 올라가야 인정받는다.” 이 목소리에 취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대신, 재물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죄에 빠지기 쉽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바벨론은 또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는 극단적인 이념 대립입니다.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 신성모독적인 이름을 가졌던 것처럼, 오늘날 정치 이념들은 마치 절대 진리인 것처럼 행세하며 우리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요구하고, 반대편을 악으로 규정하며 증오를 부추깁니다. 교회마저 이 이념의 전쟁에 휩쓸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야 할 형제자매가 서로를 정죄하고 미워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를 미혹하는 땅에서 올라온 짐승의 목소리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린 양 같이’ 온유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세속적 인본주의와 종교다원주의입니다. “모든 길은 다 통한다. 굳이 예수님만이 길이라고 고집할 필요 없다. 사랑과 관용이 중요하지, 진리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이 달콤한 용의 목소리는 교회의 거룩한 경계선을 허물고, 세상과 타협하게 만들어 우리를 맛 잃은 소금으로 만들려 합니다.

이러한 바벨론의 한복판에서,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동일하게 외치십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이것은 세상과 담을 쌓고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 살되,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지 말고, 구별된 하늘의 백성으로 살아가라는 거룩한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이 부르심 앞에 깨어 반응해야 합니다.

*

3. 에덴을 꿈꾸는 교회

그렇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떻게 하늘에 속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비전은 우리에게 그 길을 보여줍니다. 교회는 장차 임할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이 땅에서 미리 보여주는 ‘천국의 모델하우스’요, ‘하늘나라의 대사관’으로 부름받았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살아있는 성전’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새 예루살렘에는 성전 건물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이 친히 우리의 성전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는 우리의 모든 일상을 거룩한 예배의 공간으로 변화시킵니다. 여러분이 일하는 직장, 병원과 학교, 그리고 가정이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지성소입니다. 우리의 정직한 노동과 따뜻한 섬김이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사입니다.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왕답게 산다는 것은, 바로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며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세상에 ‘빛을 나누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며,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나아옵니다. 우리의 교회들은 이 도시를 밝히는 영적인 등대가 되어야 합니다. 치열한 산업 현장에서 지친 영혼들에게 참된 안식을 주는 빛, 무너진 가정에 회복의 소망을 주는 빛, 다음 세대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진리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물질과 시간, 재능의 부요함은 우리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상처 입은 이웃을 치유하며, 만국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의 도구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생명을 흘려보내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새 예루살렘의 중심에는 하나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강이 있고, 그 강가에는 만국을 치료하는 생명나무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 메마른 땅에 하나님의 생명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의 생명수로 영혼의 갈증을 해소시키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상처 입은 마음을 싸매주는 치유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잃어버렸던 왕적 통치권을 회복한 자들로서, 우리에게 맡겨진 모든 영역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랑과 정의로 다스리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고 섬겨야 합니다.

*

(결론)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긴 여정을 마칩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역사의 마지막에 웃는 자는 로마 황제도, 바벨론의 상인도, 용과 짐승도 아닙니다. 최후의 승리자는 바로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셨으나 다시 살아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피로 옷을 씻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그분의 백성,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이 세상의 밤은 깊어 보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깝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친히 자신을 “광명한 새벽 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마지막 약속을 주십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이 약속 앞에서 우리의 응답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두려움이 아니라,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벅찬 설렘과 그리움이어야 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 ‘마라나타’의 고백은 현실을 도피하는 주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오늘을 가장 의미 있고 능력 있게 만드는 기도의 고백입니다. 이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어둠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불의 앞에서도 타협하지 않으며, 이 땅에서부터 천국을 꿈꾸고 천국을 살아내게 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고난과 싸움의 여정 끝에, 성경의 마지막 단어는 ‘심판’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5 바로 이 은혜가 우리의 시작이었고, 과정이며,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이 은혜를 힘입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이기는 자로, 빛의 자녀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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