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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2:06-21 보라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니

: 마지막 약속을 붙들고 사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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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요한계시록, 나아가 성경 전체의 대장정이 막을 내립니다. 새 예루살렘의 영광스러운 환상(21:9-22:5)이 끝나고, 이제 주님께서는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마지막 경고와 훈계, 그리고 가장 확실한 약속을 주십니다. 이 종언(Epilogue)은 1장의 서언(Prologue)과 아름다운 수미상관을 이루며, 요한계시록 전체의 핵심 메시지를 다시 한번 압축하여 우리 마음에 새겨줍니다. 그 메시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 책의 모든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주님은 약속대로 속히 오셔서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실 것이니, 교회는 깨어 이 말씀을 지키며 ‘마라나타’(아람어;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의 신앙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난받는 교회를 향한 최종적인 위로와 격려이며, 우리의 모든 기다림과 싸움의 목적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소망의 등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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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계시록의 서언과 종언은 서로 유사한 점이 일곱 가지가 있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1:1과 22:6; 16); (2) 계시를 듣고 증언한 요한(1:2과 22:16, 20); (3) 두루마리 예언의 복(1:3과 22:7, 9, 10); (4) 때가 가까우니라(1:3과 22:10); (5) 교회를 위한 증언 (1:4과 22:16); (6) 오시는 주(1:7과 22:7); (7) 하나님과 그리스도(1:8과 22:13). 

종언은 서언과 같이, 신실한 증언을 위한 동기를 부여합니다. 신실한 증언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땅에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성도가 받을 유업입니다. 


# 6-9절 두루마리의 예언은 신실하고 진실합니다. : 신실하고 참된 약속 - 흔들리지 않는 말씀의 권위

요한계시록의 모든 말씀은 변치 않는 하나님의 신적 권위를 가지며 반드시 성취될 것이기에, 성도는 이 말씀을 지키는 복된 삶을 살되, 그 경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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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요한에게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고 확증하며, 이 계시가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기 위해 주신 것임을 밝힙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직접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모든 것을 보고 들은 요한이 천사에게 경배하려 하자, 천사는 자신도 같은 종이라며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라고 단호히 제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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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실하고 참된지라” : 이 선언은 요한계시록의 모든 환상과 약속, 그리고 경고가 인간의 상상이나 추측이 아닌,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절대적인 진리임을 보증합니다. 세상의 모든 가치와 진리가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이 말씀 위에 굳건히 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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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드시 속히 될 일” : ‘속히’(soon/quickly)는 우리의 시간 개념으로 ‘가까운 미래에’라는 뜻이 아니라, 일단 시작되면 지체 없이 신속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신적인 긴박성과 확실성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재림은 언제라도 임할 수 있는 ‘임박한’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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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키는 자의 복 : 요한계시록의 복은 단순히 말씀을 ‘읽고 듣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말씀을 삶으로 ‘지키는 자’에게 약속됩니다(계 1:3). 이것은 행위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믿음은 반드시 순종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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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라 : 요한이 압도적인 계시 앞에서 천사에게 두 번이나 경배하려다 제지당하는 장면(19:10 참조)을 굳이 기록한 이유는, 교회를 향한 중요한 경고를 주기 위함입니다. 신실한 성도에게조차 우상숭배의 유혹은 미묘하게 찾아올 수 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영적 지도자나 신비로운 체험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경배 대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경배는 오직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만 드려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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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언의 주제는 두루마리 예언입니다. 요한은 두루마리 예언의 신적 권위를 확증하는 말로 화두를 엽니다. 다니엘 2장은 하나님 나라는 악의 제국에 궁극적인 승리를 하고, 이 땅에 세워질 것이라는 예언적 환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다니엘 2:45은 ‘이 꿈은 진실되고 그 해석은 신실하다’(데오도션역)고 확증합니다. 요한은 계속하여 다니엘 2:45을 활용합니다.

‘반드시 속히 될 일’은 다니엘의 ‘이 일 후에'를 '속히'로 변경한 주해의 산물입니다. 긴박성을 나타낼 뿐 아니라 개시성을 함축합니다. 두루마리의 예언은 다니엘에게는 후에 일어날 일입니다. 하지만 요한에게는 이미 시작되어 언제라도 실현될 수 있는 확실한 일입니다. 1:1에서와 같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그리스도는 천사를 통하여 요한에게, 요한은 교회에 전달한 예언입니다. 요한은 ‘선지자들의 영’을 대변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예언의 영을 주십니다. 

두루마리 예언의 신실한 증인으로 듣고 지키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서언은 계시에 순종하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을 선언하지만, 종언은 계시에 불순총하는 이들 모두를 저주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에 대한 최후 심판과 예수 그리스도의 최종 임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다시 자신에게 그리스도의 계시를 전달했던 천사를 경배하려고 합니다(계 19:10). 천사는 숭배를 금하는데, 이는 자신이 요한과 같이 하나님의 종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대신 천사는 요한에게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권면합니다. 요한은 자신이 착각한 것을 기록합니다. 자신의 실수를 통해 두루마리 예언의 궁극적 권위는 전달자인 천사가 아닌 하나님께 있음을 천명하기 위함입니다. 천사 숭배는 우상숭배입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에게조차 우상숭배는 미묘하고 난해한 문제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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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분별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신실하고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붙드는 것이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유일한 지혜입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빼앗는 수많은 우상들 앞에서, 우리의 경배가 오직 하나님만을 향하고 있는지 늘 점검해야 합니다. 주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그 약속을 믿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복된 삶입니다.

교회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요, 예언이요, 편지인 이 두루마리 말씀은 모두 약속있는 신실하고 참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반드시 이루어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 있는 교훈을 지키는 자 곧 순종하며 따르고 기다리며 인내하는 자가 복있는 자입니다. 오늘도 그리고 일평생 주의 말씀을 따라 주야로 그 말씀을 즐거이 묵상하는 복있는 자로 살아가기 원합니다. 그렇게 주님은 반드시 속히 오셔서 그들의 믿음과 순종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입증해 주실 것입니다. 

천사가 전해주는 감격적인 메시지 앞에 전율할 것 같은 은혜를 경험한 요한은 그에게 경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천사는 ‘그리하지 말라’고 단호히 만류합니다. 자신도 종에 불과하고 오직 경배 받으셔야 할 분은 하나님 한 분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우리는 하나님 이외에 어떤 인물에게도 경배해서는 안 되고 필요 이상의 존경과 대우를 받으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오직 우리의 경배는 하나님께만, 피조물은 용서와 사랑과 그리고 다스림과 관리의 대상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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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5절 두루마리 예언은 인봉하지 말고 선포되어야 합니다. : 인봉되지 않은 예언 - 마지막 때의 긴박성과 두 갈래 길  

이제 구원의 때는 가까웠기에 이 예언의 말씀은 모든 이에게 선포되어야 하며, 이 말씀을 들은 각 사람은 그 반응에 따라 영원한 운명이 결정될 것이고, 구원의 유일한 근거는 어린 양의 피로 죄 씻음을 받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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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요한에게 이제 때가 가까우니 두루마리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합니다. 오랜 시간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이들에게 그대로 불의한자는 불의를. 의로운 자는 의와 거룩을 행하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속히 오셔서 행한대로 갚아 주실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더불어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어린양의 보혈로 깨끗하고 거룩하게 된 자)는 복이 있다 합니다. 생명나무에 나아가고, 문들을 통해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악인(개들, 점술가들, 음행하는 자들, 살인자들, 우상 숭배자들,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은 성 밖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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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봉하지 말라 : 다니엘에게는 마지막 때까지 예언을 ‘인봉하라’(단 12:4)고 명하셨지만, 요한에게는 ‘인봉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구약의 모든 비밀이 이제 밝히 드러났으며, 지금이 바로 모든 사람이 듣고 회개해야 할 마지막 은혜의 때임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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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의한 자는 그대로… : 11절의 선언은 죄를 계속 지으라는 허락이 아니라, 회개의 기회가 끝나고 각 사람의 영적 상태가 고정되는 심판의 때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 순간이 오기 전에 결단하라는 촉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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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 ‘행한 대로’ 갚으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공의로움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것이 행위 구원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14절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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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 :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자격은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 14절은 이 옷을 빠는 물이 바로 ‘어린 양의 피’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즉, 성에 들어갈 유일한 자격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는 믿음(칭의)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필연적으로 의롭고 거룩한 삶(성화), 즉 ‘의를 행하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우리의 선한 행실은 구원의 근거가 아니라, 구원받았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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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밖에 있는 자들 : ‘개들’(부정한 자들)로 시작하여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로 끝나는 이 목록은, 그들의 정체성이 거짓의 아비인 사탄에게 속해 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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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12장과 일곱 우레의 메시지(10:4)는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는 왜 인봉하지 말라고 하는가? 다니엘의 경우에는 두루마리가 비밀로 감춰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뗄로 이미 성취되기 시작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예언들을 요한의 독자들은 엄청난 통찰력으로 이해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곱우레 심판으로는 우상숭배자들이 강팍해집니다. 회개를 유발하는 재앙은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재앙 대신에 두 증인의 신실한 증언을 통해 두루마리 예언이 선포될 필요가 절실했습니다. 이제 두루마리의 일곱 인은 개봉되었습니다. 때가 가까웠습니다.  

카이로스는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반응은 두 가지입니다. 두루마리 예언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영원한 운명을 결정 짓습니다. 다시는 회개의 기회가 없습니다. 이제는 강퍅한 자와 신실한 증인의 운명이 바뀌지 않습니다. 반응한 대로 보상합니다. 상은 종말론적 상급으로 구원을 말합니다(사 62:11). 

첫째는 불의하고 부정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개와 점술가와 음행자와 살인자와 우상숭배자와 거짓말쟁이들이다. 거짓이 그 특징입니다. 신앙공동체 내부에 들어와 있는 가짜 신자들입니다. 사탄의 영을 받은 자들의 특성입니다. 이들은 최후 심판을 위해 성 밖에 있게 됩니다. 성의 출입이 금지됩니다. 둘째는 정의롭고 거룩한 자들입니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씻음을 받은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새 예루살렘에 출입자격이 있는 자들입니다. 요한은 첫째와 둘째를 일종의 대차구조로 구성합니다. 

초점은 두루마리 예언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자들의 상급입니다. 불의와 부정은 정의와 거룩과 상반됩니다. 안식이 거룩의 근본이고, 희년이 정의의 기초입니다. 땅에서 안식과 희년을 지키는 신실한 증인들입니다. 말씀하시는 분은 역사의 처음과 끝을 관장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신적 권위로 확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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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이 마지막 때에, 우리는 더 이상 회개를 미룰 수 없습니다. 오늘 내가 어떤 길을 선택하고 어떻게 사느냐가 나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우리의 불완전한 행위가 아니라, 우리의 더러운 옷을 깨끗하게 씻어주시는 어린 양의 보혈에 있습니다. 이 은혜를 입은 자로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자리에 머물 수 없습니다. 날마다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죄를 씻고, 의와 거룩의 길을 행하며, 장차 들어갈 새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는 순례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언의 말씀은 비밀로 숨겨야 할 말씀이 아니라, 늘 듣고 보며 마음에 두고 삶에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어린 양이 인을 떼고 펼치셨으니, 악인은 악행의 대가를 치르고, 의인은 옳은 행실의 보상을 받을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생들을 그 행위를 따라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각 사람을 그 행실을 따라서 삯을 허락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심판주이신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으로서 창조와 완성을 온전히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악인과 의인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과 통치 안에서 그들의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어린양의 보혈의 피로 옷을 깨끗케 한 의인은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게 되지만, 온갖 죄악을 저지른 악인은 섀 예루살렘 성 밖으로 쫓겨나게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선택의 길에 대한 책임있는 삶이 요구됩니다. 우리가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어린양의 보혈의 피로 옷을 깨끗케 한 의인은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게 되지만 악이는 그렇지 않고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성 밖으로 버려지고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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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19절 두루마리 예언은 초청과 경고가 있습니다. : 생명수로의 초청과 말씀에 대한 경고

성경의 마지막 메시지는 심판의 위협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 그리고 교회가 함께 외치는 은혜로운 생명의 초청이며, 이 생명의 말씀을 지키기 위한 엄중한 경고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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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친히 자신이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고 증언하십니다. 그리고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고 초청하십니다. 이어서 이 예언의 말씀에 무엇인가를 더하거나 빼는 자에게는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받고,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겠다고 경고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창조와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다윗의 뿌리와 자손으로 오시고, 이 땅 백성의 광명한 새벽별이 되어 대적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통해 목마른 자는 다 내게로 오라(요 7:37-39; 계 7:17; 21:6)고 초청하신 후, 이제 성령께서 교회를 통해 그 생명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달하십니다. 이제 이 말씀을 가감하는 것에 대해서는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해 버리실 것이라 경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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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님의 자기 증언 :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구약의 모든 언약을 성취하신 왕(다윗의 뿌리)이시며, 어두운 밤이 끝나고 새로운 날이 밝아옴을 알리는 소망의 ‘광명한 새벽 별’이심을 선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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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주적인 초청 : 성경의 마지막 초청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회가 함께하는 합창입니다. 성령과 신부(교회)가 “오라!”고 외칩니다. 이것은 교회의 가장 본질적인 사명이 바로 세상을 향해 이 생명의 초청을 외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 초청은 자격 없는 모든 죄인을 향한 것이며, 그 대가는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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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씀에 대한 경고 : 이 생명의 말씀을 보호하기 위해, 그것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변질시키는 자에게는 가장 엄중한 저주가 선포됩니다. 이는 성경 말씀의 최종성과 완전성, 그리고 그 권위를 지키기 위한 하나님의 거룩한 울타리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에 대한 강력한 경고이며, 우리가 말씀을 얼마나 신중하고 두렵게 대해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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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최종적인 초청과 경고가 남아 있습니다. 예수와 성령과 신부가 초청합니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으로 초청하는가? 주 초청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교회를 위하여 예언자들을 보내 신실하게 증언하게 하십니다. 어린양 예수님은 증인의 모델이십니다(11장). 예수님은 다윗의 뿌리이자 자손, 곧 광명한 새벽 별이십니다, 요한은 ‘열방의 귀의 사상'을 강조하기 위해 당시 독자들에게 친숙한 구약 예언을 인유한다. 다윗의 뿌리는 이사야 11: 10의 인유입니다. 이사야는 다윗의 후손인 왕이 세워지면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고 모든 열방이 모여드는 비전을 이사야 11장에 그리고 있습니다. 다윗의 뿌리는 예수님입니다, 

광명한 새벽 별(민 24:17)은 신약에서 메시아 별과 같습니다(벧후 1:19). 여명과 함께 떠오르는 별은 어둠을 물리치고 종말론적 시대의 빛을 가져오는 별입니다. 이사야는 야웨의 영광이 예루살렘에 비치면 열방이 그 빛으로 나오는 비전을 예언합니다(60:1-3). 히브리어 자라흐는 보통 태양이 떠오르는 장면을 묘사할 때 사용되고, 예루살렘에 그의 영광으로 떠오르는 야웨의 이미지는 여명의 이미지입니다. 

요한은 두 가지 예언적 본문(사 11:10; 60:3)을 인유하여 예수님께 적용합니다. 열방은 구원을 위하여 예수께 모여드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열방의 구원자로서 예수는 요한에게 계시해왔습니다. 마지막 날에 그의 교회가 열방을 향한 자신의 증언에 참여하도록 요청합니다. 성령님도 열방을 초청합니다. 계시록에서 성령의 역할은 종말론적입니다. 성령은 환상과 예언적 신탁으로 하나님 백성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 백성의 기도를 인도하고, 세상을 향한 백성의 선교적 증언에 영감을 불어넣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미래를 미리 볼 수 있도록 함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의 관점으로 자신들의 현재를 볼 수 있도록 합니다. 신부도 열방을 초청한다. 신부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입니다(21:2). 즉 역사의 최종적인 완성 시에 있는 교회입니다. 신부는 어린양이 오실 때 혼인 준비가 되어 있는 교회입니다. 의로운 행위의 세마포를 입고 줄을 서 있는 교회입니다(19:7-8). 신부는 파루시아의 관점으로 보는 교회입니다. 

예수님과 성령님과 신부의 초청은 17절에서 네 가지 명령법을 구성합니다. 생명수로의 초청입니다. 신부 새 예루살렘으로의 초대입니다. 이 초청장은 그리스도인이 드리는 열방의 구원을 위한 기도입니(디다케 11:6). 파루시아(주님의 재림)의 기도는 두루마리의 예언을 따라사는 그리스도인 삶의 핵심이다. 두루마리 예언에 대한 경고가 마지막으로 선포됩니다. 요한계시록을 새로운 이스라엘을 위한 새로운 법조문으로 보고 있으며, 옛 율법 조문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신 4:1-2, 19-20). 계시의 말씀을 ‘더하거나' 제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신명기에 따르면, 거짓 선지자의 미혹하는 메시지에 대한 경고입니다. 신명기 4장이 모델로 삼고 있는 고대 근동 조약 문서들도 의도적인 변조에 대비하여 성문화된 규제와 저주의 수단으로 보호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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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메시지는 우리에게 두려움이 아닌, 벅찬 감격과 사명을 줍니다. 우리 역시 성령님과 함께 세상을 향해 “오라,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고 외쳐야 할 신부 교회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순전하게 지키고 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사탄은 말씀을 완전히 거부하게 하기보다, 작은 부분을 바꾸고 왜곡하여 그 생명력을 잃게 만드는 전략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이 생명의 말씀을 가감 없이 믿고, 전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신중히 다루어야 합니다. 예언의 말씀에 일점일획이라도 더하거나 빼거나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은 말씀이 스스로 말씀하시도록 수종드는 사람들이지, 하나님의 말씀을 임의대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탄은 말씀을 완전히 거부하도록 하지 않습니다. 작은 부분을 바꾸고 누락시켜 말씀의 가치를 잃게 만드는 것이 그의 전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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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말의 메시지가 ‘초청 ' 으로 종결되고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선언이자 자격을 묻지도 않고 대가를 바라지도 않는 초청이다. 그렇다고 초청에 기한이 없는 건 아닙니다. 주님 오실 날이 언제일지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 언제까지나 기회가 있을 것처럼 유보 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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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절 두루마리 예언은 약속과 축복이 있습니다. : “마라나타!” - 교회의 응답과 마지막 축복 

주님의 마지막 약속인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에 대한 교회의 유일하고 올바른 응답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간절한 사랑의 고백이며, 이 모든 여정의 끝은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의 축복으로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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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을 증언하신 이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약속하시자, 요한(교회)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화답합니다. 책은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라는 축도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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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 이것은 요한계시록, 나아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예수님의 최종적인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고난받는 교회를 향한 최고의 위로입니다. 그들의 고난은 끝이 있으며, 주님께서 오셔서 모든 것을 바로잡고 완성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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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마라나타) : 주님의 마지막 약속에 대한 교회의 올바른 응답은 두려움이 아니라,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간절한 사랑 고백, 즉 ‘마라나타’입니다. 이것이 바로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의 가장 핵심적인 신앙 자세입니다. 이 기도는 단순히 역사의 끝을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부터 주님의 통치가 온전히 임하기를 갈망하는 기도이며, 이 땅의 어떤 것보다 주님 자신을 더 사랑한다는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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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지막 단어, ‘은혜’ : 성경의 마지막 단어는 심판이나 진노가 아닌 ‘은혜’(Grace)입니다. 핍박과 심판, 영적 전쟁의 모든 과정을 통과한 교회가 끝까지 서 있을 수 있는 유일한 힘이 바로 이 ‘주 예수의 은혜’임을 선포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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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는 신실한 증인입니다. 두루마리 예언의 증언에 직접 참여합니다. ‘반드시 오리라'고 약속합니다. 주의 파루시아는 초림과 최후 임재 사이에 계속됩니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교회는 성찬에서 ‘마라나타'라고 외칩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와 '주 예수께서 오셨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완성될 때까지 둘 사이에 긴장은 계속됩니다. 파루시아를 위한 기도는 멈추지 않습니다. 교회는 제국이 해체되고 열방이 돌아오는 '그 날'을 향해 신실한 증언을 계속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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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음은 무엇을 향해 있습니까? 우리의 기도의 마지막은 무엇입니까? 이 땅의 성공과 안정입니까, 아니면 다시 오실 주님을 향한 거룩한 그리움입니까?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 고백이 우리의 매일의 기도가 되고, 우리의 삶의 방향이 되며, 우리의 마지막 소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모든 여정 가운데, 우리를 붙드시고 완성하실 주 예수의 은혜가 우리 모두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주님의 재림이 속히 임하게 될 것임을 한 번 더 강조함으로써 고난 받는 교회 공동체를 위로하십니다. 그분의 재림으로 공의로운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약속에 대한 교회의 대답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독자들을 향해 축복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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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참되고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속히 되어질 보여주시고 함께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신 말씀을 따라 즐거이 순종해 가게 하옵소서. 

의를 행하고 거룩한 길로 행하게 하옵소서. 

행한대로 보응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결하게 된 뜻을 따라서

날마다 주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말씀의 사람이게 하옵소서. 

우리 삶에 그 어떤 사신 우상을 두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이 우리를 부르사 생명수 샘으로

해갈하게 하시옵고

우리를 살리는 말씀을 주심 감사드립니다. 

가감하지 않게 전하고

가감하지 않고 이해하며

가감하지 않고 믿고 순종하게 하옵소서.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넉넉하게 참예하게 하옵소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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