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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4:1-17 디나는 어디에 있느냐, 침묵당한 자를 찾아오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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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신앙이란, 종교마저 폭력의 무기로 삼는 인간의 비루함을 직면하고, 성경을 나에게 불리하게 읽는 묵상을 통해 내 이기심을 교정받으며, 짓밟힌 이웃의 곁으로 다가가는 거룩한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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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나는 어디에 있느냐."

학자들이 창세기 34장을 읽으며 던지는 이 질문이 오래 마음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 장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사람은 디나가 아닙니다. 세겜과 하몰이 있고, 시므온과 레위가 있고, 야곱이 있습니다. 협상이 오가고, 분노가 끓어오르고, 칼이 휘둘러집니다. 그런데 정작 이 모든 일의 중심에 있는 디나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녀의 말은 한마디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무엇을 느꼈는지, 무엇을 원했는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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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이 이야기의 가장 서늘한 부분입니다. 폭력을 당한 사람이 이야기의 주변으로 밀려나고,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분노와 계산이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합니다. 세겜은 디나를 원했지만 그것은 욕망이었습니다. 하몰은 두 가문의 정치적 동맹을 원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복수를 원했습니다. 야곱은 타향에서의 안전을 원했습니다. 디나가 원하는 것을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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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겜과 하몰이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우리와 통혼하여... 이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여기서 거류하며 매매하여 여기서 기업을 얻으라."(창 34:9-10) 이 말에서 디나는 두 가문의 이익을 교환하기 위한 물건으로 등장합니다. 그녀의 상처는 협상 테이블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고통은 흥정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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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아들들은 어떻게 응했습니까. 할례를 받으면 통혼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이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속임수로 대답하였다."(창 34:13) 할례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몸에 새기는 가장 거룩한 신앙의 표지입니다. 그런데 야곱의 아들들은 그 거룩한 예식을 적들을 마비시키고 학살하기 위한 전술로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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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것이 타락하면 마성적인 것으로 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이 그 장면입니다. 신앙이 무기가 된 것입니다. 정의의 이름으로, 거룩함의 이름으로, 사실은 자신들의 분노와 복수심을 정당화한 것입니다. 그 칼 앞에서 세겜 성의 남자들이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디나는 여전히 어디에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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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디나의 자리에 서거나 시므온과 레위를 판단하는 자리에 섭니다. 그러나 묵상이란 그 자리에 오래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차준희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을 나에게 불리하게 읽어야 한다"고. 그 말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나에게 불리하게 읽는다는 것, 그것은 이 이야기에서 내 안의 야곱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딸의 고통 앞에서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던 야곱이, 내 안에 있는지 묻는 것입니다. 내 안의 시므온과 레위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정의의 이름으로, 신앙의 이름으로, 실은 내 분노를 정당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묻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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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물음 앞에 서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꾸 심판자의 자리에 서고 싶어합니다. 세겜을 정죄하고, 라반을 정죄하고, 시므온과 레위를 정죄하는 자리. 거기 서면 편합니다. 그러나 묵상은 그 편한 자리에서 우리를 불편한 자리로 데려갑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라는 질문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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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침묵했다"는 표현이 성경에 있습니다(창 34:5). 딸의 고통 앞에서 침묵한 것입니다. 아들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 침묵의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타향에서의 삶, 불안한 위치, 거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 그것들이 야곱을 침묵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 침묵이 디나를 더 외롭게 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런 침묵을 선택합니까. 타인의 고통 앞에서, 내 안위를 먼저 계산하는 침묵. 불편한 자리를 피하기 위한 침묵. 그 침묵이 어떤 이를 더 깊은 고독 속으로 밀어 넣는지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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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참담한 이야기의 끝에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라."(창 35:1)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망가진 가정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할례를 무기로 삼은 아들들의 죄, 침묵으로 딸을 외롭게 한 아버지의 죄, 그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일어나 벧엘로 가라"고 하십니다. 처음에 당신이 나타나셨던 곳으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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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은총입니다. 우리의 거룩함이 무기가 되는 순간에도, 우리의 침묵이 이웃을 고독하게 만드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처음 자리로 부르십니다. 더 이상 폭력이 아닌 곳으로, 더 이상 침묵이 아닌 곳으로, 벧엘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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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이란 그 부름에 응하는 것입니다. 내가 세웠던 편리한 구도를 내려놓고, 성경이 나를 향해 날아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디나는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이 나를 향한 질문이 되도록 허락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 곁에서 목소리를 잃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찾는 것입니다. 내 안위를 위해 침묵하는 자리가 어디인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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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내 곁에 디나가 있습니까.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사람, 고통받고 있지만 그 고통이 협상의 언어로만 다루어지는 사람,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지워진 사람. 그 사람이 내 가정 안에, 내 공동체 안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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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지금 야곱의 침묵 자리에 있습니까. 불편한 것을 알면서도, 내 안위를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까. 벧엘로 가라는 부름이 지금 우리에게도 오고 있습니다. 처음 자리로, 하나님이 처음 나타나셨던 그 자리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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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 주간, 내 신앙이 무기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조용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 침묵이 누군가를 외롭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나에게 불리하게 읽는 그 불편한 자리가, 실은 우리를 살리는 자리입니다. 디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 질문이 우리를 바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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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 여정은 메마른 광야에 서 있는 나무가 가장 깊은 곳을 향해 **'뿌리를 내리는 일(Deep Rooting)'과 같습니다. 찰스 링마가 말했듯,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려도 넘어지지 않듯이... 광야에 필요한 것은 물길이다. 그 물길에 뿌리를 대고 있어야 생존할 수 있고 큰 나무로 자랄 수 있다". 세상은 폭력과 탐욕이라는 거센 바람으로 끊임없이 우리를 흔들고 메마르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눈에 보이는 세상의 폭력(세겜)이나 거짓된 방어기제(레위와 시므온의 칼)에 기대어 버티려는 헛된 수고를 멈추고, 보이지 않는 가장 깊은 수맥, 곧 하나님의 은총의 말씀(묵상)을 향해 묵묵히 영혼의 뿌리를 뻗어 내릴 때, 우리는 비로소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죽어가는 세상에 시원한 생명수를 길어 올려주는 가장 푸르고 넉넉한 은혜의 나무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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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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