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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4:18-34 묵상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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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축문장] 창세기 44:18-34

출처: 창세기 44:33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동생을 은화 스무 닢에 팔았던 그 손이, 이제 동생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밉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희생양을 만들어 얻는 평안은 거짓 샬롬이고, 내가 희생양이 되어 형제를 살리는 것이 참된 샬롬입니다. 폭력의 고리는 더 강한 폭력으로 끊기지 않습니다. 오직 한 사람의 자발적인 대속으로만 끊깁니다. "나를 대신 종이 되게 하소서." 이 한 문장이 창세기의 모든 어둠을 뚫고 십자가를 향해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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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출처: 창세기 44:18-34, 창세기 37:26 (유다의 변화 전체 서사)

하나님은 동생을 팔았던 자를 동생을 위해 목숨을 거는 자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인간의 가장 추악한 이기심을 재료로 삼아 가장 숭고한 대속의 이야기를 빚어내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포기한 사람을, 우리가 외면한 관계를, 우리가 불가능하다 선언한 화해를, 하나님은 아직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수직적 섭리는 우리의 수평적 파탄을 뚫고 기어이 구원의 길을 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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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문장] 창세기 44:18-34

출처: 르네 지라르(René Girard), 폭력과 성스러움·희생양 메커니즘 이론

르네 지라르는 말했습니다. 인간의 문화는 희생양을 만들어 공동체의 폭력을 해소해 왔다고. 그러나 유다는 그 메커니즘을 정면으로 깨뜨립니다. 베냐민을 희생양으로 넘겨주는 대신, 자신이 그 자리로 걸어 들어갑니다. 지라르가 복음서에서 발견한 그 뒤집힘, 즉 희생양이 아닌 대속자의 자발적 낮아짐이 여기 창세기 44장에 이미 예비되어 있습니다. 폭력의 고리를 끊는 것은 더 강한 힘이 아니라, 기꺼이 가장 약한 자리로 내려가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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