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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9:21-35 사랑받지 못한 자의 눈물, 그 눈물을 담으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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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얻어야만 내 존재가 증명된다는 세상의 거짓말에서 돌이켜, 소외된 자리에서도 나를 먼저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맹렬한 사랑 안에서 찬양으로 일어서는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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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아의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십니까. '지쳐 있는 자', 혹은 '약한 눈을 가진 자'라고 합니다. 성경은 라헬이 곱고 아리땁다고 소개하면서, 레아는 눈이 약하였다고만 전합니다(창 29:17). 그 짧은 대비가 오래 마음에 걸립니다. 레아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비교 속에 놓인 사람이었습니다. 더 아름다운 동생 곁에서, 자신은 무언가 모자란 사람으로 살아가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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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레아를, 아버지 라반은 딸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레아는 거래의 수단이었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원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둠을 틈타 레아를 들여보낸 것(창 29:23)은 아버지의 행위라고 부르기 민망한 일입니다. 라반은 두 딸을 자신의 부를 늘리기 위한 도구로 썼습니다. 레아도, 라헬도, 그에게는 인격이 아니라 자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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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야곱은 레아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담담하게, 그러나 잔인하게 말합니다. "야곱이 라헬을 레아보다 더 사랑하고."(창 29:30) 레아는 남편이 있었지만 사랑받지 못했습니다. 가정이 있었지만 따뜻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낳아도, 남편의 마음은 늘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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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레아의 세계였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이용당하고, 남편에게는 외면당하고, 동생과는 끝없이 비교되는 세계. 우리는 이것을 먼 옛날의 이야기로 읽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낯설지 않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와 비교되며 자란 사람, 사랑받기 위해 온갖 것을 증명해야 했던 사람, 곁에 사람이 있어도 깊이 홀로인 사람, 그런 레아의 얼굴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 얼굴이 우리 자신의 얼굴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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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아는 아이를 낳을 때마다 이름을 지었고, 그 이름들이 그녀의 속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르우벤을 낳고는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다."(창 29:32) 시므온을 낳고는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받지 못함을 들으셨다."(창 29:33) 레위를 낳고는 말했습니다.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창 29:34) 세 번의 고백을 읽으면서 저는 레아의 심정이 느껴집니다. 하나님을 언급하면서도, 그 마음은 여전히 야곱을 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남편의 마음을 얻으려는 간절함과 뒤엉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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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어찌 레아만의 이야기겠습니까. 우리도 자주 그렇습니다. 기도하면서도 실은 사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신앙을 말하면서도 실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을 찾으면서도 실은 사람의 사랑이 채워지기를 기다립니다. 레아의 눈물은 그 오래된 인간의 목마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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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넷째 아들을 낳았을 때, 무언가 달라집니다.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창 2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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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제는’. 이 말이 중요합니다.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마음을 돌린 것이 아닙니다. 라반이 변한 것도 아닙니다. 상황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달라진 것은 레아의 시선이었습니다. 남편의 닫힌 마음을 향해 애원하던 눈이, 비로소 하늘을 향해 열린 것입니다. 사람의 사랑에서 존재의 근거를 찾던 삶에서, 나를 있는 그대로 보고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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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성경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침묵 속에 하나님이 계셨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이미 앞서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창 29:31) 하나님은 보고 계셨습니다. 야곱이 외면한 레아를, 라반이 이용한 레아를, 세상이 비교하고 깎아내린 레아를, 하나님은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보고 계셨습니다. 레아가 그것을 알게 된 순간, 찬양이 나온 것입니다. 찬양은 좋은 조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느끼던 자리에서, 나를 보고 있었던 눈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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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희 교수는 묵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묵상이란 "하나님의 생각으로 내 생각을 교정하는 것"이라고. 레아가 넷째 아이를 낳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레아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시선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로 자기 이해가 바뀌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이 묵상이 하는 일입니다. 세상의 비교와 판단으로 굳어버린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조용히 다시 써 나가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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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못한 레아에게서 유다가 태어났고, 그 유다의 계보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외면한 자리에서 구원의 이야기를 시작하십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역설입니다. 화려하고 사랑받는 자리가 아니라, 철저히 소외된 그 자리가 하나님의 통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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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레아처럼 오래 사랑받지 못한 채 살아온 분이 계십니까. 비교 속에서 늘 모자란 쪽에 서 있었던 분이 계십니까. 곁에 사람이 있어도 깊이 홀로인 분이 계십니까. 그 자리가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자리를 보고 계십니다. 레아를 보셨던 그 눈으로, 지금 당신을 보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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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인정을 받아야 내 존재가 완성된다는 그 오래된 거짓말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그 거짓말이 우리를 얼마나 오래 지치게 했는지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받을 만한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우리를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외면당한 레아를 택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있는 그대로 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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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순간, 레아에게 찬양이 터져 나왔듯, 우리 안에서도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내가 이제는. 그 말이 우리 입술에서도 나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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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못한 자리에서 찬양이 나왔습니다. 거기서 구원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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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인드글라스를 생각합니다. 가까이서 보면 제각각 깨진 유리 조각들입니다. 날이 서고, 불규칙하고, 혼자로는 아무 형상도 이루지 못합니다. 레아의 삶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 조각들이 장인의 손에서 이어 붙여지고, 그 틈새로 빛이 투과될 때, 비로소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묵상이란 그 빛이 내 삶의 조각들을 통과하도록 가만히 창을 여는 일입니다. 내가 아름다운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빛이 통과하면, 이미 거기에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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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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