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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6:12-33 르호봇의 너른 품, 빼앗긴 우물가에 차려진 평화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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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내 몫의 우물을 지키려 타인과 다투는 세속의 투쟁적 관성을 버리고,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며 평화의 공간(르호봇)을 열어가는 '수평적 환대'를 통해, 상처 입은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 나라의 '대안적 아비투스'로 새롭게 빚어내는(묵상) 은총의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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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대지가 웅크렸던 몸을 펴고 경이로운 연초록의 생명력으로 호흡하며, 숲과 들판이 저마다의 다스운 빛깔을 뿜어내는 2026년 4월의 눈부신 봄날입니다. 생존의 쳇바퀴 속에서 쉼 없이 흔들리면서도 영혼의 중심을 잃지 않으려 오늘이라는 순례의 길에 오르신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막막한 현실 앞에서 짙은 회의를 안고 진리를 묻고 계신 모든 분께 평화의 주님이 주시는 넉넉한 위로가 스며들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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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은 늘 우리에게 자신의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철저히 무장하고 방어하라고 다그칩니다. 한병철 교수가 일찍이 『피로사회』에서 진단했듯, 현대인들은 무한 경쟁의 굴레 속에서 타인을 잠재적 적으로 여기며 끝없는 피로와 불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구약성경 창세기 26장 중반부의 그랄 골짜기 풍경은, 그토록 지독한 인간의 경쟁과 시기가 어떻게 평화를 파괴하는지를, 그리고 끝없는 양보와 포기를 통해 기어코 평화를 빚어내시는 하나님의 낯선 은총을 묵직하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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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랄 땅에 거류하던 이삭은 농사를 지어 그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마침내 거부가 되었습니다(창 26:12-13). 그런데 이 넘치는 축복이 뜻밖의 비극을 불러옵니다. 이삭의 부유함을 시기한 블레셋 사람들이 아브라함 때에 팠던 모든 우물을 흙으로 메워버린 것입니다(창 2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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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원 교수는 그의 책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에서,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위계적 질서나 단순한 복 주심이라는 '수직적 관점'으로만 읽으려는 습관에서 벗어나,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얽히고 충돌하는 삶의 실재에 주목하는 '수평적 관점'으로 읽어낼 것을 제안합니다. 이삭이 거부가 되었다는 수직적 축복의 기사는, 수평적으로 볼 때 이웃과의 극심한 불화와 폭력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나 혼자만의 부유함은 결코 온전한 샬롬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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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그랄 왕 아비멜렉의 추방 명령을 받고 골짜기로 물러난 이삭은 다시 우물을 팝니다. 그러나 물을 얻을 때마다 그랄 목자들이 달려와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며 폭력을 행사합니다. 첫 번째 우물은 다툼이라는 뜻의 '에섹'이 되었고, 두 번째 우물은 적대감이라는 뜻의 '싯나'가 되었습니다(창 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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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에는 힘으로 맞서는 것이 제국의 논리이자 세상의 상식입니다. 거부가 된 이삭에게도 사병과 무력이 있었을 터이니 한바탕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억울함을 머금고 묵묵히 짐을 꾸려 다음 장소로 이동합니다. 볼테르는 일찍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인간이라 불리는 티끌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 모든 사소한 차이들이 증오와 박해의 구실이 되지 않도록 해 주소서". 이삭은 우물이라는 세속의 이익을 형제에 대한 증오와 박해의 구실로 삼지 않았습니다. 그는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포기하는 '수평적 환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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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세 번째 우물을 팠을 때 더 이상 다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삭은 그곳의 이름을 '르호봇'이라 부르며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창 26:22)라고 고백합니다. 내 것을 꽉 움켜쥐려 할 때 삶의 지경은 비좁아지지만, 기꺼이 양보하고 틈을 내어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가장 넓고 자유로운 '르호봇(넓은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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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경이로운 사건은 그다음에 일어납니다. 이삭을 쫓아냈던 아비멜렉이 군대 장관을 이끌고 굳이 이삭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들은 적대감을 품고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창 26:28) 평화의 조약을 맺자고 청합니다. 칼과 창이 아니라, 끝없이 양보하는 이삭의 그 바보 같은 삶의 태도 속에서 이방인들은 비로소 살아계신 하나님의 현존을 똑똑히 목격한 것입니다. 그때 이삭은 복수의 칼날을 꺼내는 대신, 그 낯선 원수들을 위해 따뜻한 '잔치'를 베풀고 함께 먹고 마십니다(창 26:30). 빼앗고 빼앗기던 적대적 관계가 마침내 평화의 식탁에서 온전한 수평적 연대로 피어나는 눈부신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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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넉넉한 르호봇의 품을 우리 일상에 모셔 들이기 위해 절실히 요청되는 거룩한 몸부림이 바로 '묵상'입니다. 『묵상을 다시 생각하다』의 저자들은 묵상이 단순한 지적 활동을 넘어 우리의 습성을 뜯어고치는 치열한 과정임을 역설합니다. 인간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지불식간에 이기적인 '아비투스(Habitus, 습관적 성향)'를 몸에 새기게 됩니다. 경쟁해서 이겨야 하고, 내 우물을 빼앗기면 앙갚음해야 한다는 세상의 낡은 관습 말입니다. 묵상은 그 폭력적인 세계관에서 탈피하여,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우리의 본성을 재편하는 '대안적 아비투스의 형성' 과정입니다. 내 권리를 내려놓는 것이 손해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길임을 깨닫고, 적의와 다툼(에섹과 싯나)으로 가득 찬 내면을 비워 하나님의 넓은 품(르호봇)으로 나아가는 위대한 내적 혁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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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왜 세상 사람들은 다들 자기 우물을 차지하고 승승장구하는데, 나만 손해 보고 뒤처지는 것 같을까?" 하며 짙은 우울과 회의에 빠진 분이 계십니까? 내 몫을 챙기지 못하면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이라 여기며 율법적인 성공의 강박에 짓눌려 계시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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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싸워서 기어코 내 영토를 지켜내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십자가 아래 가만히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의 투사가 되어 피 흘려 승리하기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때로 손해를 보고 억울하게 쫓겨나는 그 나약한 순간조차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물을 몇 개나 더 차지했느냐는 얄팍한 성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자신의 모든 생명수마저 다 내어주시며 우리의 원수 된 것까지 품어 안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압도적이고도 맹렬한 은혜에 잇대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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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 주간, 타인을 밀어내며 내 욕망의 우물을 파려던 피곤한 수고를 멈추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잃어버린 권리조차 평화의 지경으로 넓혀 주시는 주님의 다정한 섭리를 묵상하며, 내 곁에 다가온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르호봇의 넓은 자리를 내어주는 참된 자유와 은총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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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 여정은 상하고 으깨어진 포도알이 캄캄한 항아리 속에서 위대한 '포도주로 발효(Fermentation)'되는 시간과 같습니다. 작가 박완서 선생은 일찍이 "포도주는 포도를 땅에 버린 것이 시간이 지나 발효하여 술이 된 것"이라고 갈파했습니다. 세상의 눈에 이삭의 양보는 그저 내 권리를 땅에 내다 버리는 바보 같고 헛된 상실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억울하게 버려진 그 포도알(양보와 희생)을 하나님의 섭리라는 거대한 항아리 속에 담아두고 고요히 기다릴 때(묵상), 그것은 그저 썩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과 상실의 아픔마저도 온전히 껴안으시어, 마침내 원수의 닫힌 마음마저 활짝 열어젖히고 세상을 취하게 만드는 가장 향기롭고 진한 평화의 포도주로 바꾸어 내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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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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