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09:01-22 언약의 하나님께 드리는 백성들의 자발적인 역사 회고와 대규모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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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초막절을 마친 후 일곱째 달 이십사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하고 굵은 베옷을 입으며 티끌을 무릅쓰고 이방 사람들과 스스로 분리하여 모인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들은 낮 사분의 일은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의 일은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며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이후 레위 사람들에 의해 시작된 긴 기도문(9:5-38) 중, 9:6-22은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서론으로 시작하여, 아브라함과의 언약, 애굽에서의 구원(출애굽), 그리고 광야 40년 동안의 하나님의 신실한 공급과 인도하심을 회고합니다. 이 회고의 핵심은 이스라엘의 계속된 교만과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크신 긍휼로 말미암아 백성이 버려지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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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적 배경 : 본문은 예루살렘 성벽 완공(느 6:15)과 말씀 대각성 집회 및 초막절 준수(느 8장) 직후에 발생했습니다. 이 모임은 지도자들의 강압이 아닌, 백성들의 자발적인 결단으로 이루어진 성회(聖會)였습니다. 칠월은 이스라엘에게 중요한 절기의 달로, 1일(나팔절)과 15일(초막절)을 보낸 후 24일에 다시 모인 것은, 백성들이 말씀을 듣고 자신들의 죄를 깨달았기에 진정한 언약 갱신을 위해 준비했음을 보여줍니다. 백성이 굵은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쓴 행위는 애도와 통회(痛悔)를 상징하는 전형적인 제의적 행위였습니다.
신학적 배경 : 느헤미야 9장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역사를 회고하는 것이 곧 신앙을 회복하는 길임을 제시합니다. 이 긴 기도문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포괄적인 역사 설교 중 하나로, 과거 조상들의 불순종과 죄악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긍휼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강조합니다. 특히 이방인과의 분리는 포로 생활의 원인이 되었던 혼합주의(마알)를 단절하고,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거룩하고 순수한 정체성을 재확립하려는 결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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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절 진정한 회개를 위한 결단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죄악과의 타협을 단호히 끊고(분리), 과거와 현재의 모든 허물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며(자복), 말씀에 근거하여 진실로 통회할 때(경배) 영적 회복을 허락하시는 거룩한 심판자이시며 구속주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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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칠월 이십사일, 이스라엘 자손은 다른 성읍에 있다가 모여 이방 사람과 절교했습니다. 그들은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고 서서, 사분의 일은 율법책을 낭독하고 사분의 일은 자기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며 여호와께 경배했습니다. 레위 사람들이 나무 단에 서서 큰 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이들은 백성들에게 일어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하나님을 송축하고 찬양할 것을 촉구했습니다(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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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8장에서 말씀을 듣고 울었던 백성들의 감정적인 반응은, 9장에 와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이 바로 '분리'(절교)와 '자복'입니다. 이방 여인과의 통혼(느 7:70-73에서 암시)이나 이방 문화와의 혼합(마알)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근본적인 죄악이었기에, 이들과 절교하는 것은 곧 거룩한 언약 백성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단호한 결단이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단순히 자신들의 죄만이 아니라 "조상들의 허물"까지 자복했는데, 이는 현재의 고난이 과거의 불순종의 결과임을 역사적으로 인정하고, 공동체적 책임을 통감했음을 보여줍니다. 회개는 지도자 중심의 이벤트가 아닌, 공동체 전체가 율법을 듣고 깨달은 결과입니다.
이들의 회개는 다니엘의 기도(단 9:3-19)처럼 지도자(느헤미야)와 백성이 자신을 동족의 죄와 동일시하며 드린 중보 기도였습니다. 신약의 관점에서 볼 때, 참된 회개는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사함을 받았음을 깨닫고, 죄된 삶의 방식을 단호히 끊어내는 구체적인 행동이 뒤따를 때 완성됩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 권면한 것처럼, 성도는 세상의 죄악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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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회개는 감정적 후회나 뉘우침에 그치는 구태의연함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느헤미야의 백성들처럼, 말씀 앞에 비춰 볼 때 하나님의 거룩을 더럽히는 모든 관계나 습관(예: 음란한 영상에 몰두하는 시간, 이웃을 시기하고 혐오하는 마음, 불의한 재물 축적)과 "절교"해야 합니다. 특히 내적 신앙과 외적 행동의 불일치(위선)를 경계하고, 죄의 유혹을 단호하게 차단하는 구체적인 실천(예: 중독 유발 매체 접근 금지, 부정직한 이익 포기)이 필요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거룩한 분리'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합니다. 이는 배타적인 율법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의 가치관(물질주의, 권력 숭배, 탐욕)에 혼합되어 영적 나태함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함을 뜻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백성들의 죄를 자신의 죄처럼 끌어안고 선한 모범을 보이며 회개의 역사를 이끌어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공동체의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역사적/구조적 죄악(예: 불공평한 재판, 약자 착취)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인정하고,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기 위한 공동체적 고백과 개혁을 추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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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절 창조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천지의 만물을 홀로 보존하시며, 온 하늘의 경배를 받으시는 유일무이한 창조주이시며, 당신이 선택하신 백성과 언약을 맺고 그 약속을 성실하게 지키시는(성취하시는) 의로우신 주권자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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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인들은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오직 주님만이 여호와이심을 선포합니다. 주님은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그 모든 군대,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드시고 보존하시며, 하늘의 군대가 주께 경배합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시며,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내시고, 그의 이름을 아브라함이라 바꾸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시며, 그 언약을 이루시어 가나안 땅을 그 자손에게 주셨으니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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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도문은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에서 시작함으로써,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가 우주의 질서 안에 놓여 있음을 확증합니다.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초월성과 지고하신 권위를 강조하며,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능동적으로 보존(유지)하시는 분이야말로 그들의 예배 대상임을 고백합니다. 이어서 초점은 창조에서 구속의 역사로 이동하여 아브라함에게 맞춰집니다. 이 기도에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들(택하다, 이끌어내다, 이름을 주다, 언약을 맺다, 성취하다)은 모두 하나님이 주어가 되어 행동하셨음을 강조하며,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성실한 언약 이행의 결과임을 신학적으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특히 언약을 뜻하는 '카라트'(כרת)는 짐승의 사체를 가르고 그 사이를 지나 계약을 맺는 의식을 나타내며, 하나님이 자기 목숨을 걸고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심을 암시합니다.
이스라엘은 이 역사 고백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이 거룩한 언약에 뿌리내리고 있으며, 모든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만이 구원의 근거임을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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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이 겪는 실존적 불안과 허무주의는 '나는 누구에게 속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이 단락은 우리의 삶이 우주적 창조주의 계획 안에 있으며, 그분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통해 나를 선택하셨다는 구원의 족보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함을 가르칩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세상적인 지위나 성취(흙으로 돌아갈 유한한 것들)가 아닌, 영원하신 하나님의 선택에서 찾아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광대하신 주권을 강조하며, 이 세상의 모든 권세와 권력(정치적 지배, 경제적 권력)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회의 불의에 맞서는 교회의 영적 힘이 됩니다. 또한, 교회 공동체는 세대를 이어 언약의 이야기가 계승되도록 힘써야 하며, 자녀들에게 우리가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손임을 명확히 가르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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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2절 광야에서 나타난 구속주의 긍휼
하나님은 백성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이적과 기사로 구원하시는 구속자이시며, 백성의 완악한 반역에도 불구하고 넘치는 인자함(헤세드)과 긍휼로 그들을 포기하지 않고 40년 동안 신실하게 돌보신 자비와 사랑의 공급자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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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애굽에서 우리 조상들이 고난 받는 것을 감찰하시고 부르짖음을 들으셨으며, 바로와 그 나라에 이적과 기사를 베푸사 그들을 구원하셨고, 홍해를 갈라 육지처럼 지나가게 하셨습니다. 시내 산에 강림하시어 정직한 규례와 진정한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조상들은 거만하고 목을 굳게 하여 명령을 듣지 않고, 심지어 우상을 만들고 이집트로 돌아가려 지도자를 세우기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용서하시는 하나님, 은혜로우시며, 너그러우시며, 사랑이 많으셔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으로 인도하시고, 굶주림과 목마름을 면하게 하셨으며, 40년 동안 옷이 해어지지 않고 발이 부르트지 않도록 돌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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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22은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를 회고하는 핵심으로, 하나님의 끝없는 긍휼(헤세드)과 인간의 끈질긴 반역이 대조됩니다. 백성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격노하게 하고 명령을 배반했으나(9:16-18), 하나님은 그들의 패역에도 불구하고 언약을 파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광야 40년은 이스라엘에게 심판의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구름 기둥과 불 기둥, 만나와 물 등 필요한 모든 것을 물질적, 정신적으로 풍성하게 공급하셨습니다. 특히 옷이 해어지지 않고 발이 부르트지 않았다는 표현은, 이스라엘의 생존이 인간의 노력이나 생산성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섭리와 보호 덕분이었음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문학적 장치입니다.
이 광야 역사의 회고는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예표합니다. 이스라엘이 죄인이었을 때도, 하나님은 인애를 베푸셨듯이, 신약성경은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음을 선포합니다 (롬 5:8). 예수 그리스도는 '흠 없는' 속죄 제물이 되시어(히 9:14), 죄의 대가를 단번에 갚으심으로써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고, 우리가 광야 같은 세상에서 살더라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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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동안 옷과 발을 보존하신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의 일상적인 생존과 안전, 그리고 영적인 필요까지도 세밀하게 붙들고 계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하는 '광야'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겸손한 자세로, 우리의 모든 필요를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구태의연하게 '이 정도는 내 힘으로 해결해야지'라는 교만을 버리고, 우리의 죄와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전적인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는 이 '광야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화려한 성전 건물이나 외적인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분의 지속적인 공급을 경험하는 것이 진정한 공동체의 힘입니다. 교회와 사회 지도층은 이스라엘 조상들처럼 교만함과 목이 뻣뻣함 (아집)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던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말씀을 통해 자기 성찰을 해야 합니다. 특히, 약속의 땅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처럼, 우리가 물질적인 풍요 속에 살면서도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가난한(종 된)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 중심의 가치를 회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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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광대하시고 의로우시며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느헤미야의 백성들처럼,
저희 삶에 만연한 죄악의 허물과 조상들의 죄까지도 겸손히 인정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엎드립니다.
저희가 세상의 혼합주의와 거짓된 가치관으로부터 단호히 분리하여,
거룩한 언약 백성의 정체성을 굳게 지키게 하옵소서.
주께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까지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며,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성취하시는 영원하신 분이심을 믿습니다.
저희가 광야 같은 세상에서 목이 뻣뻣하고 교만하여
주님을 거역하고 반역했던 저희의 모든 불순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넘치는 인자하심으로 저희를 구원하시고,
저희가 마땅히 받을 진노 대신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저희의 삶을 세밀하게 인도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격합니다.
저희가 여호와를 기뻐하는 힘으로 살게 하시고,
이 구속의 기쁨을 저희 이웃과 세상에 나누며,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순전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과 회개의 결단을 통하여,
저희 개인과 가정과 공동체가 온전히 회복되기를 간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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