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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02:26-35 공의가 이루어지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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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니야에 이어 함께 반역에 동조했던 제사장 아비아달은 제사장직을 박탈하여 추방하고, 요압은 성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뿔을 잡고 살려 하지만 이전에 의로운 이들을 친 죄를 물어 단호하게 처벌합니다. 이에 브나야는 군사령관으로, 사독은 대제사장으로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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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27절 정치적 반역에 종교적으로 부역한 것이 더 심각한 죄입니다. 

아비아달은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된다고 했을때 함께 했던 제사장입니다. 솔로몬은 아비아달을 고향 아나돗으로 추방합니다. 반역에 가담했기에 죽어 마땅하지만 아버지 다윗을 도운 제사장 집안이기에 감안하여 직분을 파면하고 추방만 합니다. 이는 엘리 집안에 하신 여호와의 말씀을 응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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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 국가 체제에서 대제사장은 아도니야의 잘못된 정치적 판단에 대하여 오판을 지적하고 바른 길을 제시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비아달은 제재는 커녕 함께 동참하여 안수하는 등의 적극적인 참여로 반역에 동참하고, 아도니야에게는 신적 정통성을 합리화하는데 이용하게 됩니다. 아비아달의 조상은 다윗이 사울에게 쫒겼을 때 그에게 먹을 것을 주고 숨겨주는 등의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용기있던 사람들의 자손들이 이제 눈에 보이는 반역자들의 위협에 굴한 것인지, 아니면 아도니야가 왕이 되면 자신들에게 오는 유익에 눈이 멀어서인지 반역에 부역하고 실제적으로는 이용당하고 만 것입니다. 

제사장이 시대를 분별하는 눈이 어둡고, 영적으로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이와 같은 눈멀고 어리석은 자신의 언행심사와 선택이 얼마나 심각한 죄악인지 모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보는 안목 또한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심각한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80년대 독재정권에 부역하며 조찬기도회등을 하면서 독재자를 찬양하고 축복하던 소위  자칭 기독교 종교지도자란 이들이 있었습니다. 수년을 이어온 이와 같은 행태들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으며 대선 후보(그의 이력이 하나님나라의 가치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데도 불구하고)를 지지하는 발표를 하면서 극우적 행태를 일삼았고, 이와 같은 일들은 여전히 진행중이며, 최근에는 은밀하게도 아니고 아예 대놓고 노골적으로 극우적 망동과 주장과 선택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대한 무지이면서, 세상 정치에 대한 무지와 시대를 보는 안목이 부족하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인정할 지 모르지만 이미 하나님은 그런 지도자들을 청산하고, 부역한 죄에 대한 책임도 반드시 물을 것입니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 교회가 그랬고, 우리 현대사의 독재정권 하에서도 그랬으며,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이며,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권력의 콩고물에 양심도 진실도 정의와 공의도 내팽계치고 불의한 일에 숟가락을 얹는다면 그는 이미 신앙인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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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옳게 분별하며 진리의 말씀위에 굳건하게 서서 살아갈 뿐 아니라 맡겨준 양무리들을 선한 길로 인도하고, 주의 말씀의 가치를 바로 제시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공동체로 잘 세워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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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30절 심판대에서는 그 어떤 변명도 소용 없습니다. 

아도니야와 아비아달에 대한 소문을 들은 요압은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뿔을 잡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솔로몬은 브나야를 보내서 치도록 합니다. 요압은 이전에 아도니야처럼 자신도 제단 뿔을 잡으면 위기를 모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처신하지만 솔로몬은 그가 이전에 의롭고 선한 두 사람(아브넬과 아마사)을 죽인 죄를 물어서 처형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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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압은 다윗왕을 도와 여러가지 어려운 도피의 여정에 함께한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군대를 통솔하는 사람으로 실력을 겸비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도 아도니야의 반란에 동참하고 맙니다. 비록 다윗을 도운 사람이었지만 아도니야의 반란에 동참하므로 말미암아 그가 사람을 볼 줄 모를 뿐더러, 그동안 다윗을 도운 저의에 대해서 의심하게 만든 행동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운 다윗을 도운 일은 잘 했지만 다윗이 늙어 힘이 없어지니 지금 아도니야의 반란에 동조하므로 말미암아 그의 저의는 결국 자신의 이권과 탐욕을 채울 권력을 얻기 위해서 다윗과 여타의 사람들에 줄을 대고 이용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한때 군대를 호령했던 사람이 이제는 비참하게 자격도 안되면서 성막의 제단 뿔을 잡고 목숨을 구걸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고 성막에서 죽겠다고 하면서 적반하장의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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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나 힘 그리고 재력등은 그것을 허락하신 분의 뜻을 따라서 사용해야 합니다. 더욱 마음속에 품은 탐욕으로 인한 섬김과 헌신은 결국 그 본색이 마침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지금 우리의 헌신과 섬김은 과연 이기적 탐욕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나 가식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사람을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그 섬김이 신앙적이든 세상에서의 부역이든지 위로부터 오는 뜻과 무관한 개인의 영달과 탐욕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면, 마침내 심판의 순간에는 그 어떤 변명으로도 그 거짓은 숨길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날을 생각한다면 오늘 품고 있는 가식과 거짓된 충성은 내려 놓고 진심으로 주 앞에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간접적인 살인, 사회적인 살인, 인격을 짓밟는 행동, 익명 속에 숨어서 하는 언행들에 대해서도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죄악인지 둔감해지기 쉽습니다. 

마 5:21,22 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요일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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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35절 여호와께서 세울 나라는 공의가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목숨을 구걸하며 성막의 제단 뿔을 잡고 있는 요압을 향해 솔로몬은 브나야에게 처단할 것을 명합니다. 그 이유는 자기보다 의롭고 선한 아브넬과 아마사 군사령관을 죽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그렇게 할지라도 그 피가 다윗의 자손과 집과 왕위에는 돌아오지 않고 오히려 평강이 있을것이라 확신합니다. 이어서 솔로몬은 브나야를 군사령관을 사독을 제사장으로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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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에서 죽자고 저항하는 요압의 말대로 그곳에서 처단하라고 솔로몬은 말합니다. 지금 부정한 자가 불법하게 제단 뿔을 잡고 율법을 오용하는 것을 처단하는 일이 더 우선했습니다. 부정한 자의 불법한 성막의 접근이  성막의 거룩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제단의 뿔을 잡는다고 모두 다 사면되고 죽음을 모면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다윗시대에 요압이 다윗을 많이 도왔다고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남용하여 다윗이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명을 어기고 사람을 함부로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다윗은 당대에 그런 요압을 제재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그런 불의한 요압의 행위를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이런 요압을 계속 살려 둘 경우에는 다윗을 무서워하지 않는 그가 솔로몬에게는 큰 걸림돌이 돌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결정들이 결국은 솔로몬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힘을 실어주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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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을 도왔으나 불의한 일을 행한 것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또한 처음 마음과 달리 나중 마음이 변절된 것에 대한 책임도 져야 했습니다. 마음에 품은 탐욕은 결국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솔로몬이 새롭게 세워갈 나라는 아버지 다윗의 유언대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나라여야 했기에 이러한 과거의 잘못된 불의들을 정리하고 가야 했습니다. 마침내 솔로몬은 처단되고 추방된 이들을 대신하여 사독을 제사장으로, 브나야를 군사령관으로 삼게 되어 나라를 견고하게 세워갈 기반을 마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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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정리

아도니야와 제사장 아비아달과 군사령과 요압을 숙청하는 것같은 기사를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초기에 상세하게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하게 새로운 정권에서는 이전 정권에 대한 심판과 부역자들을 숙청해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정치적 수단과 모델을 제시하기 위한 것일까요? 만일 그렇다면 여호와께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나라와 인류 역사에 부정적으로 군림했던 제국주의와 사회주의와 여타의 독재자들과 하나님나라는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정치보복과 숙청 그리고 숙적의 제거등에 대해서 성경적이다 라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불의한 자들에 대한 조치는 이제 하나님께서 다윗의 뒤를 이은 솔로몬을 통해 세워가길 원하시는 나라가 어떤 나라이어야 하는지 그 기틀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으로 다스리는 나라이기는 하지만 그런 사랑 이전에 잘못된 죄악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해결하고 가야 합니다. 바로 불의한 일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심판을 행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의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잘잘못은 분명하게 정리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이렇듯 숨겨진 불의함에 대해서 정리하므로 앞으로 솔로몬이 세워가야 할 나라는 하나님나라의 모형으로서 공의와 사랑이 잘 이루어지는 나라여야 한다는 것을 이 사건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을 근거로 정치적 보복과 숙청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정작 주님이 꿈꾸시는 나라가 공의와 사랑의 나라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하기 위한 가르침의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라와 공동체의 리더를 세우는 데 있어서도 우선은 민주국가에서 누가 주인인지 바로 알고 그동안의 삶이 과연 그런 국민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고, 정치적 야욕이 아니라 진정으로 소외되고 어려운 국민을 위해서 일해온 사람, 그런 삶의 여정을 가진 투명한 사람이 세워져야 합니다. 우리가 세워가야 할 하나님나라에는 못 미치지만 적어도 민주국가의 기본적 가치를 충분히 알고 또 아는대로 살아온 언행일치된 삶의 궤적으로 그려온 이가 세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수백년 역사동안 이어온 불의한 세력들이 잡은 부정부패의 온상인 것들을 청산하고 다시 새로운 나라를 세워갈 희망의 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가정과 교회공동체를 하나님나라의 공의와 사랑의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지게 할 뿐 아니라 그런 가치를 가지고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책임이 있기 때문에 국민으로서도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백성과 왕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있기에 주어진 권리를 선한 길로 선용되어지도록 지혜로운 판단과 처신을 그 어느 때보다 잘 감당해야 할 때입니다. 

최근 자신들의 정통성 없는 상황과, 부정부패를 가리기 위해서 역사 왜곡과 극우적 정치, 그리고 오랜 시간동안 이어왔던 불의한 가문의 역사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어리석은 외교를 행하고 있는 현 시국이 개탄스럽습니다. 그런 일에 여전히 기독교는 방조를 넘어 동조하고 있고 왜곡의 선두에 서서 뉴라이트라고 하는 극우적 망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교계  또한 탐욕스런 무리들이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고 천년만년 살것처럼 불의한 일을 버젓히 자행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역사 앞에, 자녀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행동하는 양심과 신앙이 무엇인지 불의한 시대에 우리는 어디에 있었으며, 그런 시대 속에서 마땅히 걸아가야 할 길을 바로 행하고 있는지 돌아봅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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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공의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종교지도자들의 어리석은 부역활동을 안타까워하며,

지금도 우리의 무지한 역사인식 부재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로

탐욕에 점철하고 부역하는 어리석음 범하지 않도록 

시대를 옳게 분별하고 말씀에 굳건하게 서는 지혜 주시옵소서

행한대로 보응하시며 불의에 대해서는 결코 용납치 않으시는 하나님을

늘 기억하며 살아가게 하옵시며

주님이 세우신 공의의 사랑의 하나님의 나라를 바로 알고 바로 살 뿐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통로로서의 사명을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 참 빛과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온전히 잘 감당하며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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