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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05:01-12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고 자유하라


변론을 마친 바울은 이제 갈라디아교회를 향해 바른 복음의 진리를 따라 어떻게 살것인지에 대한 권면을 시작한다. 우리의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무엇인지, 그리고 제거하고 붙잡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언급한다. 


• 참고1 - 갈라디아서 전체 문맥구조 

  I. 머리말 (1:1-5)

  II. 몸말 (1:6-6:16)

      1. 본론의 도입: 그리스도의 복음 vs. 다른 복음 (1:6-10)

      2. 본론: 변론과 권면 (1:11-6:10)

(1) 변론 (1:11-4:31)

(2) 권면 (5:1-6:10)

      3. 본론의 맺음: 할례가 아니라 VS 그리스도 사건 (6:11-16)

  III. 끝말: 마지막 인사 (6:17-18) 


• 참고2 - 5:1-6:10 문맥과 배경

  - 문맥 : 이 부분은 앞선 변론(1:11-4:31) 이후의 권면에 해당된다. 

  - 배경 : 갈라디아 교회에 문제가 되었던 것 

   첫째 : 갈라디아 교회 안에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교인 그룹이 있었다. 이들이 엉터리로 살고 죄를 지으며 살아서 교인들 사이에 어려움이 있었고, 이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의문을 가진 상황이 있었다. 

  둘째, 이들의 삶을 문제삼고 꼬투리 삼아 교회에 문제제기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래서 예수로 말미암아 새 인류된다는데 왜 저렇게 엉터리가 되느냐?라고 이의를 제기하면서 결국 바울의 가르침이 엉터리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우리가 율법의 행위를 따라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할례를 행해야 하고, 그리스도가 아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바울 사도는 ① 할례 주장을 극렬 반대하고, ② 바른 삶을 살 것 권면한다. 

  - 권면을 하면서 다루야 하는 문제는 먼저 할례 문제 의미 밝혀 주면서 반대해야 하고,  원래의 근본적 문제가 되었던 엉터리로 사는 신자들 때문인데 그들을 염두해 두면서 그들의 삶을 회복하는 문제를 다뤄야 한다. 그래서 엉터리 신자의 문제와 거짓 교사의 문제를 다 다뤄야 한다. 


• 참고3 - 5:1-6:10 권면 방향

 1. 소극적 권면 : 다시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할례 주장을 따르지 말 것 (5:1-12) - 거짓교사를 막는 것

 2. 적극적 권면 : 자유를 통해 성령을 좇아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할 것 (5:13-6:10) - 근본적인 원인인 거짓 신자의 문제 


• 5:1~6:10 권면 단락 구조

  5:1-12 소극적 측면의 권면(할례를 받지 말라) - 신학적 권면

  5:13-26 적극적 측면의 권면(사랑의 삶을 살라) - 원리적 권면

  6:1-10 실제적 측면의 권면(사랑의 종노릇 실현하는 방법/지침 제시) - 현실적 권면




# 1절 그리스도께서 자유를 주셨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하게 서서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는 먼저 죄와 사망의 법 곧 율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신 것입니다. 이 율법이 말하는 것은 우리의 범죄함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욕망을 따라 살았던, 육체를 따라 살았던,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믿고 살며 죄와 사망의 종노릇 하며 살았던 데서 우리를 해방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이전의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고 새백성 된다고 믿으며 스스로 종의 멍에를 멘다면 이는 자유케 하신 주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십자가를 무력화하며 우리의 공로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다시 종노릇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입니다. 이 종의 멍에는 율법을 말하는 표현이고, 이어서 나오는 할례를 이 율법을 대표하는 제유법적 표현이다. 즉 할례를 받지 말라는 것은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하게 했으며, 우리의 인생이 욕망의 노예로, 죄와 사망의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선하신 통치와 인도를 따라 가장 복있는 자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자유민이 되었음에도 다시 종의 멍에를 메는 일은 스스로 자신을 결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이 주는 참 자유를 내가 어떻게 알고 믿고 살고 누리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여전히 복음 곧 주님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새피조물과 새백성으로서의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주님은 나를 해방하셨지만 나는 여전히 종의 멍에를 내려놓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자유케 하신 그 복음을 믿는 믿음위에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 2-4절 (논리)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 

만일 할례를 받는다면 그리스도가 필요없다. 앞선 것처럼 그리스도의 죽음이 헛된 것이 되고 아무 유익이 없게 된다. 할례를 받으면 율법 전체를 지켜야 할 의무를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자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집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할례는 그 자체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제유법적으로 율법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율법 전체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를 가지는 것과 연관되는 것이고,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결국 율법의 행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됩니다. 율법의 행위가 새이스라엘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바울사도는 단호하게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가 된다고 경고합니다. 할례 곧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한다면 결국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새이스라엘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할례가 효험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런 신학적 틀을 통해 주장하는데, 그 할례를 받아들이면 그들의 모든 주장(율법으로 새이스라엘 되고 율법 전체를 행해야 하는)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곧 신실함으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우리가 그 은혜로 말미암아 선한 일을 하는 새 백성(사람, 이스라엘, 인류)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율법을 통해 의롭다 함 얻으려 한다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지게 됩니다. 


# 5-6절 (근거)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라

바울 사도가 이렇게 권면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아 의의 소망(곧 의롭게 될 것)을 기다립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와 무할례는 상관없고 (하나님의 의 곧) 사랑으로써 (성령님을 통해) 역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신실함)이 있습니다. 

우리가 의롭게 됨 곧 새 이스라엘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다.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아 예수 안에서 성령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할례(율법)나 무할례는 의롭게 되는 것에는 아무런 효력이 없으니 받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예수 안에서 우리가 의롭게 되는 효력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역사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함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우리가 가지고 붙잡고 행동해야 할 동력이요 이유요 방향이 되는 것입니다(참고 : 5절의 의의 소망에 대해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구속을통해 이미 받은 칭의는 물론 미래에 받을 칭의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칭의의 성격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도래와 미래의 완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열심으로 행한다고, 그리고 율법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지킨다고 한다해도(사실 다 지킬 수도 없지만) 결국 의롭게 되고 새이스라엘이 되는 데는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 역사해야만,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신실한 순종으로 대속하신 역사로 말미암아, 성령의 깨닫게 하심과 영접하게 하심과 적용케 하심이 마침내 우리를 의롭게 하며 새피조물로 새백성으로 새이스라엘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바라고 소망하고 살아가는 것이며, 겸손히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가져야 하는 삶의 덕목이기도 합니다. 오늘 나의 삶의 동력은 하나님의 사랑에 기인한 믿음과 소망으로 인함인지 돌아봅니다. 


# 7-10절 거짓 교사들을 따라가지 말라

그동안 갈라디아 교회가 잘 해 왔는데 누가 미혹하여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했는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아주 작은 부분이라 할지라도 교회 전체에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교회가 다른 마음 품지 않기를 권하고 확신하면서 만일 누구든지 교회를 요동하는 자는 심판을 받으리라고 경고합니다. 

신앙 여정은 오래 달리기입니다. 그 자체로도 쉬운 길은 아니지만 그 길을 막고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세력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러한 세력들을 잘 분별하고 싸우고 경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소한 부분에서 시작된 문제가 교회 전체를 어지럽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의심과 죄의 확산은 늘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니 거짓 교사들의 누룩을 주의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확신을 나누면서 갈라디아교회가 두 마음을 품지 않기를 기도하고, 다시한번 다른 복음을 전하려는 자들을 경계하면서 심판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복음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미치는 파급력이 크고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의 신앙 여정에 함께하는 동행은 가장 든든한 성령님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붙여주신 믿음의 동역자들입니다. 또한 우리 내면적으로는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와 말씀을 통해 날마다 주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순종해 가는 바른 복음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래서 진리의 선한 싸움을 싸워가는 힘과 동력을 얻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늘 깨어 기도하면서 우리를 미혹하고 두 마음을 품게하고 혼돈케하고 믿음을 잃게 만드는 것들을 경계하면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주님을 믿음과 소망과 사랑가운데 바라보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분을 기억하고, 우리를 사랑하사 의롭게 해주신 주님의 뜻을 상기하며, 우리가 살아갈 이유와 목적과 방향이 복음과 하나님나라에 있음을 기억하는 일을 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11-12절 잘못된 것은 스스로 베어 버려라. 

바울은 앞서 말한 내용을 다시한번 간략하게 반복 정리합니다. 자신이 할례 곧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전했다면 이렇게 유대인들로부터 박해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복음을 전하는 데 걸림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아예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단호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할례 곧 율법의 행위를 의의 조건으로 주장하는 자들은 문제 그룹이고 엉터리입니다. 그러니 그런 주장을 하는이들은 베어 버리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이 ‘자르다’는 말은 중의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먼저는 문제의 가르침을 전하는 이들을 출교하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할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기 때문에 표피만 자르지 않고 아예 잘라버리라는 조소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복음의 심각성이 얼마나 큰 것인지 바울사도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자신이 그동안 복음을 전하는 여정 속에서 숱한 박해와 어려움들이 있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할례에 대해서 전했다면 사람들이 복음(십자가)에 대한 걸림돌이 제거되어서 이렇게까지 박해를 받지 않았을 거라 말합니다. 

우리는 자꾸만 십자가의 복음을 희석하고 타협하고 변질 왜곡시킵니다. 사람들의 편리와 욕망에 맞추고 주님이 우리에게 지고 따르라는 그 복음을 외면한 채 십자가 없는 영광만, 신령한 복이 아닌 세상의 복만 추구하면서 주님을 믿는다 하고 따른다 하고 그리스도인이라고까지 말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신앙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욕망이 투여된 우상숭배와도 같은 죄악입니다. 눈을 빼어 버리고 신체의 일부를 잘라 버리라 할 정도로 우리의 잘못된 욕망의 위험성을 이미 예수님께서도 경고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복음, 바른 복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왜곡하는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복음, 성령의 복음을 훼손하거나 가감하거나 왜곡하는 거짓 가르침들을 경계하고 날마다 바른 복음위에 굳건하게 서서 요동치 않는 믿음으로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 거둠의 기도

우리를 자유케하신 은혜와 사랑의 주 하나님 아버지

종의 멍에에서 해방하사 자유를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베풀어 주시고

우리 또한 그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 살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삶의 이유와 동력을 사랑으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신앙 여정의 영적 전쟁에서 온전히 진리에 순종하길 원하오며

요동치 않는 굳건한 믿음 가지고

거짓되고 왜곡된 가르침들을 단호하게 배격하고

순전한 복음 붙들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온전히 행케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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