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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04:12-20 너희도 나와 같이 변화되라


바울사도는 거짓 교사들의 미혹에 빠진 갈라디아교회를 향하여 자신과의 관계를 회상하며 처음 복음을 들었을 때와 이후에 달라진 모습들을 언급하고, 거짓 교사들의 목적에 대해서 간파하며, 이후로 갈라디아교회를 향하여 자신이 어떻게 행할 것인지 고백한다. 


* 변론의 내용 (1:11~4:31) : 바울은 총 네 가지 변론을 차례로 이어간다. 

 1. 변론 1(부차주제) : 복음의 출처 - 인간/하나님 (1:11~2:14)

 2. 변론 2(주요주제) : 복음의 내용 - 율법의 행위/그리스도의 신실함 (2:15-4:11)

 3. 변론 3(부차주제) : 거짓 교사 - 나(바울)를 따라 변화되라 (4:12-20)

 4. 변론 4(주요주제) : 율법 아래 - 율법으로 볼 때, 자유있는 여자의 아들 (4:21-31)

 - 바울의 변론은 크게 두 가지 변론 주제를 다루는데, 먼저 부차적인 주제는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유대주의자)에 대한 것이고, 주요 주제는 바른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율법과 관련해서 다룬다. 


# 12a절 너희도 나(바울)와 같이 되기를 구한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교회를 향하여 이전에 복음을 전할 때 자신이 그들과 같이 되었으니 이제는 그들이 자신과 같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바울 사도가 그들과 같이 된 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동화(identification)의 의미로서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없는 자에게는 율법없는 자처럼 유대인이지만 이방인처럼 살며 그들을 건지길 원했습니다(참조 갈 2:14). 둘째는 유대인이면서 이방인 사이의 갈등문제에 있어서 이방인들에게 다른 조건(유대인처럼 할례와 음식규례와 절기 등)을 제시하지 않고 살았던 것을 의미합니다(이전에 게바에게 책망했던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방인 그리스도인과 거리를 두지 않고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살아왔던 바울을 향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바울은 그들이 자신처럼 되기를 구합니다. 관계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음 받은 것을 다 포함하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라는 부분입니다.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어지는 모습처럼 너희도 다시 태어나길 원한다는 것입니다. 4:19에서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이 모든 여정을 “해산의 수고”라고 표현합니다. 

바울 사도가 이렇게 자신과 같이 되기를 구하는 태도는 자신이 먼저 살아온 삶의 모습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언행일치, 신행일치된 삶의 여정 뿐 아니라 자신이 지금 가지고 전하고 살아내고 있는 복음에 대한 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게 복음이 아니라면 다른 누군가에게도 복음이 되리라 확신하며 전할 수 없습니다. 내게 복음이 능력이었다면 다른 누군가에게도 그렇게 능력이 되리라 확신하며 증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울은 복음을 알고 복음으로 살고 복음을 증거했으며 복음으로 초대하며 자신이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갈라디아 교회를 향하여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 12b-15절 복음은 메신저의 결함에도 복음이 된다

바울이 처음에 갈라디아교회에 복음을 전했을 때 자신의 육체의 약함을 업신여기지도 버리지도 않고 오히려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해 주었다는것을 상기합니다. 심지어 바울의 약함을 도우려고 적극적으로 섬겼던 것도 기억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런 복(음으로 인한 기쁨과 행복)이 어디 있느냐고 묻습니다. 

바울의 연약함은 첫째 눈이 좋지 않음, 둘째 간질, 셋째 말에 어눌함 등으로 추정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데 충분히 걸림이 될 수 있었지만 바울 자신에게는 오히려 겸손함을 가져왔고, 바울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섬김의 역할도 했었습니다. 이러한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능력은 오히려 이 복음을 전하는 메신저의 결함에도 훼손되지 않고 더 큰 능력으로 나타났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약함이 오히려 강함이 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만일 바울이 완벽했다면 오히려 복음이 드러나기보다 바울이 더 드러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연약한 자신을 들어서 쓰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복음을 통해 더 분명하게 드러난 것입니다. 갈라디아교회는 처음에는 이렇게 복음의 능력으로 바울의 결함을 문제삼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아픈 바울의 연약함을 채워주려고 노력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에도 결코 훼손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약함이 오히려 복음의 능력과 강함을 더욱 빛나게 합니다. 내게 있는 다른 능력이 복음을 빛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 그 자체보다 다른 무엇인가에 더 의존하는 순간부터 복음의 능력은 빛을 잃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약함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고, 우리의 강함을 자랑해서도 안됩니다. 오직 복음만이 우리의 자랑이요 능력임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 16-18절 좋은 일에 좋은 뜻으로 열심을 내라

바울의 연약함을 문제삼지 않던 이들이 이제는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 배후에는 거짓 교사들이 있다는 것을 바울사도는 간파합니다. 그들(거짓 교사들,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열심은 좋은 뜻이 아닌데, 그 뜻은 이간질과 자신들의 추종자를 만드는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일에 대한 열심은 언제든 좋은 것입니다. 

갈라디아교회는 지금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들의 미혹으로 참된 복음을 전한 바울을 원수처럼 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갈라디아교회를 향하여 열심을 내고 다른 복음을 전하는 데는 좋지 않은 저의가 담겨 있었습니다. 결국 바울과의 관계를 이간시켜 바울이 전한 복음을 문제삼으려는 것입니다. 더 깊은 저의는 갈라디아교회가 복음과 하나님께 집중하게 하고 열심을 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열심을 내어서 자신들의 추종자로 만들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그토록 유명한 이들의 이름을 들먹였고, 예루살렘교회의 정통성을 이어 받은 다른 복음의 출처와 전통을 내세웠던 것입니다. 그것은 복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고 자신들의 세를 확장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기 위한 탐욕적 행동이었습니다. 좋은 일에는 언제든지 열심을 내어야 하지만 그러나 이러한 것에 열심을 내는 일은 결국 교회도 신앙도 스스로 무너 뜨리게 되는 결과를 양산합니다. 거짓 교사들이 결국 바울에게서  떠나서 자신들을 추종하도록 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의 의도가 분명히 잘못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바른 복음을 전할 때 교회에서 인정받지 못할 때가 종종생깁니다. 그 때 거짓교사들이 등장해서 자신들에게 집중하도록 사람들을 유도하고 이간질 시킵니다. 그래서 참지도자가 오히려 비방을 받거나 쫓겨나는 일들이 생깁니다(이러한 수법을 이단들이 사용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복음 곧 예수님께 집중해야 한다. 또 복음 곧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사람을 추종하게 하거나 의지하게 하거나 섬기게 하는 가르침과 규례들은 심각하게 고민하고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니 말씀을 맡은자는 가르키는 방향을 성도들이 잘 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자신이 드러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성도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하고 말씀앞에 나아가기를 힘쓰도록 말씀을 옳게 분변하고, 가르치는 사람의 의도를 선악간에 잘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영적 감각과 지식과 지혜를 성령을 통해 충만하게 가져야 합니다. 아울러 복음 그 자체의 능력이 드러나지 않고 복음 외적인 것들을 강조하거나 포장하거나 드러난 것에 현혹되지 말고 복음의 능력을 소유하도록 구해야 합니다. 


# 19-20절 해산의 수고를 통해 교회가 세워진다 

갈라디아교회를 향하여 바울은 다시 해산의 수고를 통해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수고할 것을 다짐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언성을 높여 서신을 쓰는 것은 갈라디아교회의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드러내고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사도가 결국 바른 복음을 통해서 갈라디아교회를 양육해 가는 목표는 그들에게서 잃어버린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지금 바울은 갈라디아교회가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정도로 다른 복음으로 말미암아 심각한 상태에 있다는 진단을 한 것입니다. 복음은 진노 아래 있던 인간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사 구원하시기로 한 계획을 따라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실하게 순종하여서 자신을 대속물로 내어주어 십자가를 지시고 속량하여서 우리로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되게 하신 역사(믿음의 법)를 이루셨다는 소식입니다. 이러한 역사 이전에 우리는 진노 아래, 죄 아래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안에 있던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과의 교제와 관계를 잃어버리고 사망가운데 있었다는 것입니다. 살아 있어도 죽은것과 마찬가지였던 인생입니다. 그런 소망없던 인생을 향하여 하나님의 의(사랑과 자비)와 예수님의 신실하심이 다시 하나님의 형상을 찾고 하나님을 만나고 나아가고 믿고 섬기며 따를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백성이 되는 것을 바울은 지금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룬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 영혼이 주께로 돌아오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데는 해산의 수고와 같은 희생이 필요한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 이전에 우리 주님의 그 해산의 수고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 있었음을 기억하고 바울은 축복의 통로가 되는 십자가를 기꺼이 지겠다고 하는 것이다. 갈라디아교회를 향하여 쓴 이 서신이 이토록 격렬한 이유는 다른 복음으로 인한 폐해는 결국 모든 믿음의 근간을 흔들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릴 만큼 복음의 능력을 훼손하는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의 자녀로, 새백성으로 새이스라엘로 새사람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데는 우리 주님의 해산의 수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께서 우리를 낳으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이 우리를 자녀삼으시고 복있는 자로 주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 큰 사랑 앞에 우리가 다른 무엇을 더할 수 있겠습니까? 복음은 그 자체로 능력이 되어서 우리를 구원합니다. 그것 외에 다른 무엇을 더하는 순간 복음의 능력을 훼손하고 불신하며 폄훼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복음을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복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복음이 우리 삶의 이유와 방향과 내용이며 전부이어야 할 정도로 복음의 능력을 소유하길 바랍니다. 


# 거둠의 기도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위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해산의 수고를 기억합니다. 

그렇게 우리를 주님의 몸된 교회로 택하고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복음의 능력을 온전히 기억하고 소유하길 원하오며

여기에 다른 무엇으로도 가감하지 않는 믿음 주옵소서. 

주님의 제자 되는 일에 열심을 품게 하옵시며

사람의 제자 사람의 추종자 사람이 왕노릇하지 않게 하는 

영적 분별력을 갖게 하옵소서. 

주님의 그 수고와 우리 믿음의 선진들의 그 수고를 기억하여

오늘 나도 누군가를 복음을 통해 교회로 세워가는 일에

오직 복음의 능력의 거룩한 전달자가 되게 하옵시며

받은 만큼 그 수고를 아낌없이 또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복음의 사람, 복음의 일꾼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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