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06 11:03

‘칠소회’(七笑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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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0 - ‘칠소회’(七笑會)


팔순이 훌쩍 넘으신 노모께서는 요즘 자서전을 쓰시는 중이라 하셨습니다. 야학에서 두 달 배우신 한글로 일평생 어머님만의 방식으로 글을 써 오셨습니다. 그렇게 쓰신 글을 많이 봐 오던 터라 읽어보면 소리 나는대로 쓰셔서 금새 그 뜻을 짐작할 수 있기에 소통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일제 강점기로부터 시작해서 고스란히 한국 현대사의 모든 여정들을 그대로 살아오셨던 어머니, 40 초반에 홀로 되셔서 7남매를 홀로 키우셨던 그 삶이 얼마나 험난했는지는 어머니께 지혜와 연륜으로 체적된 듯 합니다. 여전한 총기로 7남매의 태몽을 그림으로 일일이 표현해 두시더니 이번엔 자서전을 쓰신다고 하셨습니다. 글을 쓰시는 방법이나 구성 더군다나 자서전이라는 말씀도 잘 모르시는 어머님의 글은 결국 살아온 일들의 굴곡들을 남은 총기로 글로 옮기신다 하셨습니다. 얼마 전 늦게 한글을 깨우치신 분들의 자서전 도전기에 대한 기사들을 접한 후에 어머님의 도전을 가족 모두 함께 칭찬해 드렸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늘 어머님의 옛날 이야기로부터 들려주신 가족사와 세상사 모두 녹음을 해 두거나 글로 쓰고 싶다 하셨는데 기어이 어머님이 시작하셨다고 하시니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집필을 잘 마무리 해 가시면 좋겠다는 기원을 했습니다.


스무살 위 큰 형님은 국민학교를 졸업한 후에 서울로 갔습니다. 그로부터 시작된 타향살이는 반세기를 훌쩍 넘어섰습니다. 워낙 아무것도 없던 기반 속에서 시작된 일들이라 안해본 일 없이 살면서 동생들과 어머니를 봉양하셨던 큰 형님은 사진과 관련된 일들을 하셨는데 여느 일들이 그렇듯 달라진 세상의 풍토를 따라 사양길에 접어든 일들 하나하나 내려 놓으셔야 했고, 지금은 비정규직으로 수목환경을 관리하는 일들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어느날 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그림을 배운적이 없으시면서도 수채화 물감으로 유화처럼 그림을 그리는 일들을 오래도록 해 오셨습니다. 전문과정을 밟으신 것이 아니시기에 전시회나 여타 어디 내놓을 만한 일들은 아니지만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인 작품들 가족들과 지인들의 빈 자리마다 하나하나 걸어주신 것 만도 수십 점이 넘어갑니다. 노후에는 고향에 돌아와 살고픈 그 바램이 잘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습니다.


그 아래 큰 누님도 일찍 객지로 나갔습니다. 공부를 잘했지만 선생님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안에서 뒷받침이 되어 주지 못했던 터라 결국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산업전선으로 뛰어들어 영등포 그 공단에서 오래도록 일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둘째 누님도 뒤이어 상경하여 함께 생활하면서 일했고, 열악한 노동현장의 그 모든 일들을 고스란히 겪으셨던 누님들은 좋은 분을 만나 지금은 각각 군산과 서울에서 살고 있습니다. 큰 누님도 남다른 손재주가 많은데 기어이 여기저기서 배우며 시작하신 수묵화의 실력이 국전과 여러 부문에서도 진출한 만큼 출중한 실력을 갖추며 살고 계십니다. 손이커서 가족모임이 있을 때마다 늘 아낌없이 갖은 음식들을 섬기는 그 사랑은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님을 향한 봉양과 여타의 가족들 모두에게도 세심한 배려와 나눔으로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평생을 가족들을 위해서 헌신했던 큰 누님의 그 섬김이 헛되지 않도록 형제 손들 모두 잘 살아가길 늘 기도하던 누님의 바램도 잘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둘째 형님은 중학교를 이모님 댁에서 서럽게 다닌 후에 상경하여 큰 형님과 함께 사진과 관련된 일을 하시다가 훌쩍 멀리 북아프리카 아이보리코스트(코트디부아르)로 사업이민을 가셨습니다. 디디에 드록바라는 유명한 축구선수가 간곡하게 요청하여 내전이 잠시 멈춘 일화로 유명한 일도 있는데, 그런 혼란한 내전 발발로 결국 한창 잘되던 사업을 결국 정리하고 귀국하셔야 했습니다. 형님은 늘 어딜 가더라도 독하게 일해 독립하길 잘했는데 지금은 전기관련 업종에서 일하며 살고 있습니다. 고생한 만큼의 보람들이 얼른 결실을 맺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 외 고위공무원 가정인 셋째 누님과 농사일을 하는 막내 누님 가정, 넉넉하진 않지만 모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려고 다들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7남매 모두 효와 형제 우애 가운데 웃음 잃지 않는 가정 세워가자고 ‘칠소회’(七笑會)라는 이름 지어 서로 의지하며 자주 모임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많은 재물을 소유하지 못했던 일이 부모에게 효하며 형제가 우애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넉넉하진 않지만 가족 모두 서로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네 사회의 많은 이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 이외에도 여러가지로 형성된 가족들 모두 섬김과 공경의 문화들 잘 세워가는 건강한 가족들이 잘 세워져 갈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가족과 가정이 잘 되어야 모든 일들이 잘되고 행복해지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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