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11 22:12

하얀 수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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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9 - 하얀 수건

 

봄 어머니!

지금처럼 연초록 수채화 물감이 온 산천을 물들인 봄은 여든 번이 넘게 맞이하신 거죠? 학교에 갔다 돌아와서 어머니 계시지 않으실 적엔 마을 어귀 도랑 끝 신작로 옆에 있던 아버님 묘소 옆에 유일하게 있었던 우리 밭에서 풀을 매시던 어머님께 찾아가 “엄마”하고 부를 때면 머리에 쓰셨던 흰 수건을 걷고 송글 거리던 땀을 닦으시면서 환하게 웃어주시던 그 미소가 봄 햇살에 얼마나 환하시던지요. 신발을 벗고 폭신하고 부드러운 흙에 맨발이 닿았던 그 감촉은 어머님 품 만큼이나 향기로웠습니다. 아주 오래전 부터 늘 혼자였던 어머님의 모습이 너무도 익숙했던 것은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어린 시절 그렇게 아버님께서 일찍 떠나셨기에 제겐 늘 홀로이신 어머님의 모습 그대로가 너무도 자연스럽고 익숙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고 그 시절 어머님 연배의 아내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그 빈자리의 외로움이 얼마나 컸을 지 짐작케 되었답니다. 결코 내색치 않으시고 애비 없는 후레자식 되지 않으려거든 웃어른을 향한 인사와 바르게 자라야 함을 때론 잘못 행하던 때 혹독하게 나무라시면서까지 강조하셨었지요. 제겐 그런 어머니의 말씀이 늘 자랑스러웠습니다. 부족해도 부족함 없이 자부심을 가지며 자랄 수 있도록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머님은 제 인생의 도덕 교과서이셨습니다.

 

여름 어머니!

무논에 물을 잡고, 윗동네 용범이 짐센 놉(품)을 얻어 남들 다 모내기 준비를 끝낸 후에야 남자 어른 일손이 없었던 우리 집 시양답 서 마지기는 그제서야 모내기 준비를 마칠 수 있었지요.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농사일 안팎을 감당하셨어야 될 그 분주함 속에서도 우리에겐 공부가 우선임을 늘 강조하셨었지요. 철부지 어린 시절 그해 모내기가 한창이던 즈음 내일이 우리집 모내기 날이었던 그날 큰 일이 있었지요. 동네 정거장 집에 유일하게 있었던 텔레비전 본다고 그네집 아들과 놀아야 그나마 방에 들어가 볼 수 있었기에 그날도 산으로 함께 놀러 갔다가 큰 바위 위에서 떨어져 이마에 큰 상처가 나서 쑥으로 막고 산을 내려와 이장님댁 임시 약국에서 응급조치를 하고 있었을 때 상기된 어머님 급히 들어와 놀란 모습으로 제 팔을 잡았었지요. 품앗이 해 둔 일, 써래질이며 놉을 얻어 준비를 해 두었어도 음식장만하고 여러가지 일에 종일 준비해도 부족할 그 시간에 모든 것을 놓고서 머리에 쓰시던 그 수건을 벗어 이마에 계속 흐르던 그 피를 계속 닦으며 읍내까지 가는 내내 아픈 자식보다 더 아파하시며 신음하시던 그 모습도 눈에 선합니다. 아픈 저를 위해 수많은 밤을 하얗게 지새우셨던 어머님은 제 모든 상처의 치료자이셨습니다.

 

가을 어머니!

화려한 형형색색의 오색 단풍이 물들어 가는 가실에는 눈만 붙으면 다 일해야 될 만큼 바쁜 계절이었지요. 추수를 위해서는 부득불 학생 노동력도 동원되어야 했기에 꼭 쉬는 날이어야 했습니다. 옆집 탈곡기 빌리고 어른도 오는 그 때에는 나락다발 하나라도 옮겨주어도 도움이 되었기에 어머닌 우릴 부르셨었지요. 머리에 쓴 수건 위로 나락 검부적이 뿌옇게 쌓여도 부지런히 갈쿠리질이며 음식 준비하시며 일하셨던 어머니는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수건의 먼지 털어 버리시며 밤 늦게까지 단도리 하고 방에 들어 오셨지요. 큰 일을 치른 뒤 안도하셨던 그 모습 볼 때면 많은 도움이 못되었어도 덩달아 좋았었지요. 쪽머리였던 그 머리를 어느 날 파마를 하고 오셨을 때 신기하기도 했었지만 여전히 일하실 때면 여지없이 흰 수건을 두르시고 하셨었지요(그 일도 돈 때문이었음을 뒤늦게 알았었는데..). 가끔 그 수건을 벗어 제 얼굴을 닦아 주실 때면 어머님 땀 냄새 만으로 한없이 포근했었답니다. 어머님 향기는 세상에서 제일 향기로웠습니다.

 

겨울 어머니!

땔나무 마련을 위해서 겨울날은 늘 산으로 갔었지요. 처음으로 지게를 만들어 주셨을 때에 장작용 통나무 하나 제대로 지고 오지 못해 몇 번이고 넘어지기도 했었지만 오래지 않아 익숙해 졌었지요. 어깨로 짊어져도 힘들 터인데 어머님은 당신 몸보다 더 큰 나무 다발을 똬리 튼 받침대를 대고서 흰 수건을 쓰신 머리 위로 이고 나르셨었지요. 여느해 산에서 다쳤던 저를 데리고 오실 때에도 나무를 포기할 수 없었기에 머리에 이고 있는 나무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론 저를 달래고 달래서 데려오셨었지요. 혹독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굶지 않고 따뜻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땔감과 쌀을 떨어져서는 안되다고 준비해 둬야 하는 거라고 갖은 수고에도 그렇게 행하셨던 어머니 덕이었습니다. 겨울같은 어려운 일들이 있을 때 안된다고, 어렵다고, 할 수 없다고 할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제게 용기를 주면서 잘 될 거라고, 잘 할 거라고 믿어주고 격려해 주시던 어머님은 평생토록 제게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셨습니다.

 

어머니!

이젠 팔순이 넘어 그런 일들은 다 추억이 되어 버린 듯 한데, 새까맣던 머리가 하얗게 되어서 흰 수건을 쓰시지 않아도 머리가 이젠 하얗게 새어 있습니다. 까마득한 어린 시절로부터 늘 기억되던 어머니 그 머리에 쓰시던 흰 수건은 아마도 힘겨웠던 그 눈물을 가리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제는 하얗게 새어버린 그 머리가 면류관처럼 보입니다. 부족한 저를 여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길러주신 그 은혜의 면류관 말입니다. 그런 어머님은 여전히 제겐 하늘입니다. 오래도록 내내 강건하세요. 어머니 고맙습니다.

 

웃는사람 라종렬

광양시민신문 <쉴만한물가>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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