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14 23:57

산감과 연습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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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8 - 산감과 연습림


지리산 산골 오지에서 돈이 되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담배를 재배하거나 여타 곡물을 통해서 돈을 사는 일이나 남의 집 허드렛일을 거들어 받는 것 이외에 유일하게 돈이 되는 일이 큰 나무를 베어 파는 일이었습니다. 동목을 벤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6~70년대 시골에서는 함부로 나무를 하는 일도 잘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녹지 조성을 위해서 삼림을 보호한다는 목적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큰 산 아래에 살면서 밥과 난방을 나무로 하던 이들에겐 이런 산림 보호 정책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땔나무를 해다 금불(난방)도 넣어야 하고 쇠죽도 쒀야 하며 매일 밥을 하는 일도 나무로 불을 넣어서 하는 이들에게 그런 나무도 제대로 못하게 하니 난감할 노릇이었습니다. 산촌 오지에 석탄이 있을리 만무하고…


그렇게 산림을 보호하기 위해서 세워진 이들이 있었는데 ‘상감’이라고 불렀습니다.(나중에야 이 말이 ‘산감’(山監 ; 산림감수(일제 강점기에, 산림을 지키고 관리하던 공무원)인 것을 알았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이 사람들은 여전히 이 일을 이어 왔던 것으로 압니다. 필자가 땔나무를 할 때에는 그런 일이 없었지만 형님 누나들에겐 뼈아픈 기억들이 있었습니다. 애써 해온 나무를 빼앗기는 것은 둘째 치고 어떤 산감은 나무를 지고 여러가지 시골에선 요긴하게 쓰이는 지게마저 빼앗아 부숴 버리기도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땐 울컥 분노도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런 시골에 먹고 사는 기본 생활 도구마저도 왜 그래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봄이 오면 고로쇠를 채취하기 위해서 마을 사람들은 물권을 사야했습니다. 국립공원에 있는 국유림에서 채취하기 때문에 당연히 세금처럼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 그런 산들이 모두 서울대 연습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땐 어린 마음에 그렇게 멀리 있는 학교가 어찌 이 지리산에까지 땅을 갖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외곡에는 여관같은 건물 하나가 있었는데 연습림을 관리하는 곳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또한 수년이 지난 후에야 그 진위를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토지 수탈은 산간오지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시골에는 소위 일본놈 땅이라고 일본인 명의의 땅(적산지 땅)이 여기저기 있습니다. 일부 수탈로 빼앗긴 땅이 해방 이후에 국가에 귀속되었고 그 땅을 서울대가 관리해 오면서 서울대 연습림이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토착민들의 땅을 빼앗아 엄한 이에게 줘버리고 정작 원래의 주인들은 자기 땅임에도 불구하고 객이 되어 물권을 사고 여러가지 불편을 감수하는 억울한 일을 당했던 것입니다. 가끔 학생들이 한 두차례 오는 것 빼고는 그들이 지리산 백운산에까지 와서 뭔가를 관리하고 지역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은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원시림에 대해 인간이 관리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는 일이고 말 그대로 자연이 스스로 생존하고 형성된 삼림을 인간은 그저 수혜만 입을 뿐인데 소유권만 주장하며 어떤 혜택을 가져갔는지는 잘 모릅니다.


정작 제대로 관리를 한다고 하면 그 지역에 사는 이들이 자연과 더불어 공존해 가는 일이 더 자연스럽게 관리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국립공원으로 지정해서 좀 더 국가적인 관리가 진행된다면 좋을 일이지만 실상 국립공원이 되면 지역민들에겐 오히려 불편함이 가중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지리산에서도 어느 날 산 입구에 세워진 관리소에 일일이 검문하는 사람이 생기고, 입장료를 내거나 아랫 마을에 사는 이라고 말을 하고 지나야 하는 불편함에서부터, 외지인들이 관광이라고 찾아와서 온갖 쓰레기들을 버리고 가는 바람에 산림과 자연이 훼손되는 것을 볼 때면 개발이 곧 훼손이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습니다.


최근 백운산에도 지리산과 더불어 이 연습림 문제로 소란스럽습니다. 국가로부터 무상 양도된 산을 손도 안대고 코를 푸는 격으로 몇 년 전 날치기로 끼워져 제대로 검증도 안된 법인화 법이 통과 되면서, 이런 당들이 국유림화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유화 되어가는 양상에다가, 원래의 주인이었던 지역민의 민심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소유권을 행사하려는 학교의 행태는 그 옛날 산감들의 행동처럼 무모하고 이해하기 힘듭니다. 결국 역사의 문제였던 것을 제대로 청산도 정리도 안된 후유증의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민이 당하고 있습니다. 서로 재고와 한발 물러서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함과 동시에 역사적 과정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더불어 원만한 해결책이 협의되어  상처받은 토착민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공생해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웃는사람 라종렬

광양시민신문 쉴만한물가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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