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18 15:09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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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8 - 죄와 벌


요즘 제목만 알고 있는 고전들을 다시 읽는 재미에 빠져 있다. ‘재미’라고 표현했지만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다. 혼자서 읽어내기가 여간 쉽지 않고, 워낙 숙제처럼 읽어온 것이 오랜 시간 동안 몸에 배인지라 시간을 두고 마음대로 천천히 읽어 나가다가 마냥 늘어지는 경우들이 더 많은 듯 싶다. 하여 함께 책을 읽어가는 이들만 있다면 서로 독려하며 그나마 좀 더 읽는데 박차를 가할 수 있는 듯 하다.


무슨 책을 읽든 책을 읽는 목적이 있다. 여러 목적들 가운데 지혜를 얻고자 하는 목적이 많음을 본다. 그래서 단순한 정보의 습득만이 아니라 그런 정보의 연결 고리를 통해 드러나는 원리를 통해 세상도 사람도 알게 되고 그렇게 지혜가 쌓여가면 삶과 세상에 대한 통찰이 자연스레 확대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책을 통해서 또 다른 세상과 사람들을 만나가는 일이니 곱씹어 먹다 보면 빠르게 지나는 여타 미디어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맛이 책을 통해서는 훨씬 더 풍성하게 다가온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요나스 요나손 저)이라는 책이 요즘 눈에 띈다. "세상 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란다" 주인공 100세 노인 알란의 어머니가 했던 말이다. 알란이 자신의 100세 생일날 요양소를 탈출하여 여행을 시작하면서 겪으며 살아온 기막힌 100년의 삶의 여정을 회고하는 이야기다. 그가 100세임에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야 마는 삶을 사는 것을 보면 어떻게 보면 삶에 있어서는 단순하게 사는 것 같은데, 사회적으로는 지극히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고, 처세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약삭빠르고, 인간적으로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마는 타입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가 그런 인생을 살게 된 배경에는 자라온 환경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고 무엇보다 어머니의 말에는 복잡한 세상사에 얽매이는 것이 결코 편치 않다는 처세를 반영한다. 더 읽어봐야 하겠지만 이 책이 많은 이들에게 재미와 공감을 주는 것은 우리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러한 처세를 하는 인간이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알란은 요양소 탈출 직후 도둑질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시작된 삶의 여정에 대한 이야기다.


"평범한 사람들은 순종하며 살아야만 하고, 법률을 어길 권리를 지니고 있지 않아. (중략) 비범한 사람들은 모든 종류의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권리와 법률을 어길 권리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비범하기 때문이라는 거야.“ <죄와 벌>(토스토예프스키)에서 주인공 라스꼴리니코프가 전당포 주인 노파 자매를 살해하면서 가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말이다. 사람들을 비범인과 범인으로 나눠서 비범인은 살인이나 여타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에 일반인은 그런 혜택 속에 살아야 한다는 것이며 그걸 실험해 보기 위해 노파를 죽인 것이다.


우리 사회의 비극은 소위 지금 지도자라 하는 이들의 특권 의식 내지는 우월의식이 문제다. 마치 <죄와 벌>에 나오는 라스꼴리니코프처럼 자신들이 비범인이며 영웅으로서 난세의 세상을 구할 지도자라 생각하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진 책임과 의무를 특권으로 생각하고 사는 듯 하다. 그래서 국민을 가르치려 들고 개화와 교정의 대상으로 보면서 철저한 복종과 순종을 요구하며 이에 조금이라도 벗어나거나 불편해 지면 여지 없이 밥줄을 끊어 낸다. 자신들이 아무리 어마어마한 부도덕함과 비리를 저질러도, 속으로는 자신들의 탐욕을 이뤄낸 것이지만 겉으로는 공공의 안녕과 국가를 위한것이라 들먹인다. 민주주의라 말하면서 행동은 독재와 전체주의로 가고 있고, 말은 위로와 격려이지만 속내는 무지와 망상으로도 대변된다.


라스꼴리니코프는 다행스럽게도 소냐를 만나서 자수하고, 옥살이를 통해 죄값에 대한 벌을 받고 다시 재기한다. 살아온 모든 것을 전환할 수 있는 더 강력한 영향이 올 때 그는 이전의 트라우마나 굴레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강력한 영향 중에 제일은 ‘사랑을 받거나 사랑해야 할 누군가를 만날 때’이다. <레미제라블>(빅토르 위고)에서 장발장이 자신을 용서한 신부를 만나고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 그 여인에게 태어난 딸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인생의 혁명적 전환을 맞이 했던 것이 그 한 예라 할 수 있다.


죄에 대한 형벌로만 모든 것이 바뀌지 않으리라. 지금 우리 사회가 겪는 모든 일들이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로 자리한다.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에게 치명적인 상처로 자리해 간다. 치료할 절대적 사랑이 너무도 간절한 때다. 이 난세를 분열 시키는 사이비 사상들이 아닌 보듬어 넉넉하게 품어 갈 수 있는 사람과 지혜가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그래서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품어주며 풀어줄 이들 말이다.


웃는사람 라종렬

광양시민신문 쉴만한물가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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