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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4 - 춘(春) 삼월 꽃이 피면


정월 대보름이 지나면 상머슴은 썩은 사내끼를 가지고 산으로 올라간다 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되는 계절이기에 일하기 싫어서 가는데 죽긴 싫어서 썩은 것을 가져 간다는 해학적인 이야기입니다.  농사일을 하는 이들에겐 더 없이 분주해 지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시설이 좋아졌기에 농한기가 따로 없다 하지만 그래도 봄이 오면 농부들은 괜스레 맘이 분주해지고 땅도 깨우고 씨도 깨우고 나무도 깨워서 물이 오르는 것을 맞아 한해 농사를 시작해야 합니다. 싹이 돋아나는 보리밭도 가봐야 하고, 밭 작물을 재배하기 위한 종자들도 살펴야하고, 바람에 쓸려온 낙엽들도 여기저기 치워주어야 하고, 매실밭, 배밭 여기저기 손 볼 곳이 많아집니다. 한해 농사를 가늠하는 더없이 중요하고 설레는  시간들이 삼월이라 하겠습니다.


잎이 피기 전에 꽃부터 피우는 매화, 산수유꽃, 벚꽃, 배꽃들이 피기 시작할 때면 맘이 설레어 꽃놀이를 가지 않고는 못배기는 때입니다. 가족이랑 연인들이랑 지인들이 원근각처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꽃보다 더 화려한 옷을 입고서 꽃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계절이기도 합니다. 선인들의 화전놀이처럼 사색과 어우러짐이 차분히 진행되는 상춘객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예쁜 꽃을 보면서도 이기적 행동들로 눈살을 찌뿌리는 모습들로 한껏 부푼 봄의 기운을 스러지게 하는 이들이 간혹 있습니다. 상술에 눈이 멀어 소란스럽게 하는 이들로 부터 마구 꽃을 꺽어 제 혼자 다 차지할 심보로 훼손을 서슴지 않는 이들도 있고, 여러 추태로 인해 꽃길의 유유자적을 불편하게 하는 이들도 간혹 있습니다. 꽃을 보고 설렘 가득함으로 술잔을 기울이며 붉그스레 홍조띤 얼굴로 꽃에 취한 것인지 술에 취한 것인지 모를 얼굴을 하고선 넌지시 먼 산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어 보기도 하고, 속삭이듯 깨어난 꽃나무를 물끄러미 오래도록 바라보는 사색하는 여정이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사람에 밀리고 차에 밀리고 소란스러움에 밀려 꽃을 본 기억은 없이 돌아가는 아쉬움이 없는 여정이 되길 바란다면 욕심일까요?


꽃피는 봄엔 그렇게 또 돌아오는 이들이 많습니다. 멀리 떠난 님이 죽은 나무에서 다시 싹이 나고 꽃이 피는 것처럼 돌아오는 것이라 생각했던 시인의 노래처럼 봄엔 알게 모르게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맘이 가득합니다. 요즘엔 결혼도 시즌이 없다 하지만 그래도 이 아름다운 계절에 결혼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매화 꽃 벚꽃처럼 화사하고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혼부부들의 모습 속엔 여느 계절보다 더 아름다움이 넘칩니다. 그러고 보면 식물의 꽃도 암수 짝짓기를 위해 춤추는 꽃잎이기에 봄의 결혼은 더 없이 제철이란 생각이 듭니다. 따뜻한 봄 햇살,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길에서, 화사한 면사포와 고운 한복 고름이 꽃처럼 흩날리며 새로운 행복을 열어가는 그런 결혼하는 이들이 많은 계절도 지금입니다.


벚꽃이 한창 흐드러질 때 쯤엔 섬진강엔 황어가 돌아옵니다. 멀리 바다로 나갔다가 산란을 위해 다시 강을 낮은 황어들이 봄에 돌아올 때 쯤엔 지느러미가 붉은색으로 혼인색을 띠게 됩니다. 이 색은 수컷이 더 아름답게 빛납니다. 그렇게 강을 거슬러 부지런히 돌아와서 다시 산란을 하고 사라집니다. 회귀어들의 여정들을 보면 어떻게 그리 먼 길을 돌아서 다시 떠났던 곳으로 돌아오는지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다시 깨어나고 돌아오며 꽃피우는 아름다운 계절이기에 더 가슴아픈 이들도 있습니다. 아직도 올아 오지 않는 이들을 기다리는 이들도 있고, 이미 떠난 아이들을 가슴에 묻고서 그 시절이 돌아오기에 꽃처럼 아름다운 그 모습들이 사무치도록 그리워지는 계절이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아직도 문을 나서면 떠날 때 그 모습 그대로 금요일이면 돌아올 것 같은 아이들과 그리운 이들. 부디 떠난 그들이 돌아 올 순 없어도 왜 그렇게 떠나야만 했는지, 왜 떠난 그들을 건지고 붙잡고 돌아올 수 없게 했는지 그 진상이라도 밝혀져야 할 것입니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어느새 해를 지났건만 아직 그 진상도 원인도 책임도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고 가슴은 휑하니 비워져 갑니다. 부디 춘 삼월 꽃피는 이 계절에 봄이 오는 소식 속에 반가운 소식도 함께 와서 아직도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온몸을 뉘어 몸부림치고 사방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노란 리본의 기원이 꼭 성취되길 소망해 봅니다.


웃는사람 라종렬

광양시민신문 쉴만한물가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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