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06 11:06

인재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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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31 - 인재등용


실재하진 않는 상상의 동물이지만 의외로 그림이나 여타 문양으로 많이 쓰이는 동물 중에 용(龍)이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 이 용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데 보통 서양에서는 날개가 달린 용에 대한 이야기가 있고, 또 이 용이 알을 낳아서 그 알에서 깨어나서 바로 용이 되는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중국에는 서양과 좀 다른 것이 있다. 우리말에 미꾸라지가 용이 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유래들을 곰곰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중국에서 용은 성인이나 군자, 천자를 상징하는데 중국의 용 이야기에서 중국인들의 민중 사상이 들어 있다. 용은 새끼를 낳지 않는다. 미꾸라지가 용이 되고, 뱀이 용 된다. 이 뱀이 용이 되다 만 것을 ‘이무기’라 한다. 하여 날 때부터 용은 없다. 있어서도 안 된다.


용은 대하장강에서 나지 않고 개천에서 나고 연못에서 난다고 말한다. 달리 말하면 훌륭한 인물은 좋은 가문, 좋은 여건에서만 나는 것이 아니다. 아비가 훌륭한 것과 자식이 훌륭한 것은 별개이다. 망나니 같은 아비에게서 성인 군자가 나올 수 있으며 왕후장상의 가문에서도 사람 구실 못하는 이들이 나올 수 있다. 역사의 인물들 중 대단한 위인들이 대단한 가문에서 난 이들이 별로 없다. 대개 보면 어려운 여건 속에서 난 이들이 많다. 하지만 오늘 우리 현실들은 이제 미꾸라지가 용되고,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여건들이 자꾸만 차단되고 가로 막혀지는 형국이다.


세상 사람들 중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쓸모없어 보이는 이라도 그 안에 쓸모 있음을 발견하여 등용할 수 있는 이가 유능한 지도자 이다. 훌륭한 지도자는 인재를 등용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이다. 훌륭한 인재를 발굴하고 양성하여 자신의 무겁고 큰 짐을 기꺼이 넘겨줄 수 있는 사람이 정말 훌륭한 지도자다. 사람들의 능력을 간파하여 적재적소에 등용하면 일의 능률도 오르고 일하는 이도 신나게 일할 수 있다. 그러나 못된 지도자(독재자)는 자신의 자리에 연연하여 자신을 대신할 만한 능력 있는 사람들을 오히려 제거한다. 그래서 독재자가 물러난 자리에는 그 자리를 이을 인재가 없어 혼란이 야기되고 또 다른 독재자가 뒤를 잇는 악순환이 계속되기가 십상이다.


인재도 인재가 되려면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고 이끌어줄 지도자가 필요하다. 공자는 제자들의 장점과 단점을 꿰뚫어 보셨다. 그래서 그들에 맞는 교육을 할 수 있었고 적합한 일에 추천할 수도 있었다고 한다. 제자들 역시 공자라는 대인을 보았으니 반대로 지도자를 제대로 본 것이다. 그들이 공자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던들 필부로 세상을 살았든지 아니면 작은 벼슬에 연연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학연, 지연, 혈연의 관계들이 중요하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챙겨주고 함께 자라가는 것을 나무랄 순 없다. 문제는 그런 연에 이끌려 인재를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인재를 알아보고도 등용하지 않고 ‘연연해’ 한다면 미꾸라지는 평생 그곳에서만 살아야 한다. 타고난 재능도 중요하지만 노력과 훈련을 통해 연마된 실력자들을 볼 줄 알고, 길러낼 줄 아는 사람도 필요하고, 그런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널리 이롭게 할만한 정사와 대사를 치뤄가는 그런 지도자가 정말 존경받을 수 있는 지도자이다.


오늘 우리 사회의 단면들을 오래전 축구라는 그림으로 그려본 적이 있다(2014년 6월22일자 ‘전쟁과 게임’ 칼럼). 우리는 반 년 만에 지도자 한 사람으로 인해 얼마나 공동체의 판도가 달라 지는 지를 제대로 보았다. 여러 ‘연’에 연연하다 명예로운 선수로서의 영광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지도자, 그런 상태에서 오래 전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처럼 재 등용된 외국인 감독으로 인해 ‘연’이 아닌 ‘인재’를 보는 안목과 ‘실력’을 따라 선수를 선발하고 기용해서 최고의 성적을 내고 모두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 일을 보았다. 마치 남은 12척으로 수많은 적을 물리친 명랑해전의 이순신장군을 보는 것 같은 그런 감동을 멀리 호주에서 보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제 지도자 한 사람에게만 모든 책임을 전가 할 수 없는 시대가 된 듯 하다. 민주 사회에서는 국민들의 정서 또한 인재를 볼 줄 알고 인정하며 세워줄 수 있어야 한다. 이율배반과 이기적으로 말과 행동과 결과가 달리 한다면 우리는 지난 수 년 동안 있었던 어처구니 없는 이들을 지도자의 자리에서 군림케하고 고스란히 그 피해를 떠안게 된다. 이런 역사적 교훈들을 되새기며 배워서 다시는 어리석은 전철을 밟지 않고 인재가 제대로 등용되는 그런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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