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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1:01-11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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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 이른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어 나귀 새끼를 풀어 끌고 오도록 하여 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 하시니 사람들이 호산나 찬송하며 환영합니다. 그리고 성전을 둘러보시고 제자들과 베다니로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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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절 예수님은 모든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은 제자 둘을 맞은 편 마을로 보내셔서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풀어 끌거오라 합니다. 혹 왜 그리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고 하니 그 주인이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끌고가기를 허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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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로 가라고 하니 갔고,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풀어오라 하니 그렇게 했고, 누가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고 하니 그대로 했더니 나귀 주인이 끌고가는 것을 허락합니다. 주님이 하신 명령들 하나하나 설명 없이, 이해없이 순종하며 나아간 상황입니다. 가라하니 간 제자들도, 그리고 끌고 오려 할 때 그 주인도, 그리고 그렇게 순순히 끌려오는 나귀도 모두다 순순히 순종하는 모습에는,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의 주인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짐승도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은 예수님께서 이미 모든 것을 계획했다는 것을 암시해 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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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도 소유도 내 의지대로, 내가 이해하고, 내가 용납되는 부분까지만 순종하고 내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작 들어야하고, 나눠야 하는 상황에서는 애써 납득하기를 힘들어하고, 당연히 나눔을 아까워하며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기 일쑤입니다. 정말 내가 가진 모든 소유가 주님의 것이며, 주님의 말씀이 거역할 수 없는 왕의 명령이라는 것을 참으로 믿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온전한 순종과 드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주님이 너무도 오래도록 내게 주어진 것들을 내 마음대로 쓰도록 허락하심에 대해서 어느새 내것인양,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익숙해져서 왕이신 주님의 것을, 주님의 명령을 어느새 가벼이 여기고, 애써 외면하고, 내 편한대로 내 마음대로 생각하며 살고 있지 않나 돌아봅니다. 예수님은 모든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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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0절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시며 모든 만민의 구주이십니다. 

제자들이 끌고온 나귀 새끼에 겉옷을 얹자 예수님이 타십니다. 사람들은 겉옷과 벤 나무가지를 길에 펴며 앞뒤로 가고 따르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며 환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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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예수님께서 평화와 겸손의 왕이시라는 스가랴(9:9-10) 말씀을 성취하는 행위입니다. 더불어 애굽의 속박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유월절에 이와 같이 입성하시는 것은 역시 지금 압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실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들이 기대했던 로마의 개선장군과 같은 폭력과 전쟁과 힘으로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겸손과 평화와 사랑으로 섬길 왕이시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예수님과 함께한 사람들이 겉옷과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 늘어 놓으며 ‘호산나’를 외칩니다. 이러한 행위들은 왕을 맞이하는 행위이고, 왕의 자비를 구하는 찬송이 호산나입니다. 이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오해했듯이, 예수님을 다윗 왕국을 재현할 정치적 메시아로 오해한 것입니다. 더불어 자신들만의 메시아로 환영했지만 예수님은 모든 만민의 구주이십니다. 

제자들과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힘과 무력으로 다스리는 왕, 정치적인 지배와 해방을 이뤄줄 왕, 다윗 왕국을 재현할 왕으로 오해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퍼포먼스는 이들의 잘못된 메시아에 대한 이해와 기대를 완전히 뒤집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익숙한 예언의 이미지인 유다 지파의 통치자(창 49:11), 솔로몬과 같은 왕(왕상 1:38), 공의와 구원과 겸손의 왕(슥 9:9)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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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이전에 주님을 잘 몰랐을 때에는 그런 주님인줄 알았습니다. 우리의 욕망을 성취해주고, 우리의 소유를 부요케하고, 우리의 질병을 치료하고, 우리의 대적을 물리치며, 우리가 원하는 일들을 이뤄주는 그런 메시아를 기대했습니다. 그렇게 만사형통을 허락하리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다 세상의 권력자와 지도자와 왕들의 모습이고, 결국 그런 왕들은 모두 백성들을 지키고 보호하고 사랑하는 대상이 아니라 착취하고 군림하고 지배하는 그런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래 신앙생활을 하고서도 여전히 그런 주님을 기대하고 있으며, 그런 성취를 맛보며 하나님이 그런 분이라고 믿는 것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주님의 세상의 왕과 다릅니다. 주님의 방법 또한 세상과 다릅니다. 주님의 나라 또한 세상 나라와 다릅니다. 나의 꿈과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라, 주님의 꿈과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세상의 폭력과 힘과 무력으로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사랑과 섬김과 평화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낮은 곳에 임하신 주님의 나라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보다 앞서 가시면서 그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 만들어 주시는 평화의 나라입니다. 그것도 로마의 속박을 벗어나는 일시적인 평화가 아니라 죄와 죽음에서 영원히 해방되는 샬롬을 주실 왕이십니다. 

평화의 왕 만민의 구주 되시는 주님을 온전히 알고 주님의 인도를 따라, 주님의 방식으로, 주님의 뜻을 이뤄가는 신자 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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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절 예수님은 성전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셔서 모든 것을 먼저 둘러 보시고 열두 제자들을 데리고 베다니에 나가십니다. .메시아가 "그의 성전에 임하리라"(말 3:1)는 예언대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마자 맨 먼저 성전을 둘러보십니다. 성전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자기 소유의 집을 점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성전을 척결하고 새 성전을 예비하고 세우시기 위해서 점검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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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주님의 몸된 성전입니다(고전 3:16-17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새롭게 지음받았기에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으로 내주하시기에 주님이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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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은 거룩해야 합니다. 주님이 거룩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성령의 내주를 허락하셨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부어주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와 내주와 역사에 가장 중요한 것은 거룩입니다. 심신의 거룩은 주님의 대속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습니다. 그런 주님으로 옷입고 살아가는 자만이 거룩한 주의 백성, 몸된 성전임을 드러냅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우리 가족들이 주님의 임재로 충만한 거룩한 성전으로 부족함 없길 빕니다. 그래서 날마다 주의 말씀이 이 성전에 선포되고 묵상되고 순종하게 되는 거룩함의 능력이 흘러 넘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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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평화의 오신 주님

연약한 우리의 모습 가운데서 

불순종의 요소를 다 버리게 하기 위해서 

온전히 주만 바라보며 살기 원합니다. 

어두워진 이 세상 가운데서 

소망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나갈 수 있도록 

주님 우리에게 믿음의 눈을 뜨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 이 고난의 시간들을 온전한 순종으로 걸어가신 주님을 바라보며

오늘 우리가 걸어가야 될 길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분별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토록 어렵고 고난의 쓴 잔들을 묵묵히 마시면서 

결국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주신 주님의 은혜를 묵상하면서 

오늘 이 땅에서 주어져 있는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되는지 

다시금 돌이킬 수 있는 귀한 시간 중보의 시간 묵상의 시간 기도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만왕의 왕 되사 우리를 위해서 나귀를 타고 오셔서 

고난의 쓴 잔을 기꺼이 순종으로 맞아서 

구원을 이루어 주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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