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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06:30-44 광야의 천국잔치(마 14:13-21; 눅 9:10-17; 요 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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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파송사역을 감당한 제자들을 한적한 곳에서 쉬도록 합니다. 그러나 많은 무리들이 계속 오게 되니 목자 없는 양같음을 긍휼이 여깁니다. 이에 제자들은 그들에게 음식을 사먹이도록 주님께 요청하지만 주님은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합니다. 이에 난감해 하는 제자들에게 있는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축사하여 모든 이들이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과 물고기가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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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제자의 길을 헤롯왕과 사도요한의 이야기에 이어 계속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유심히 살펴 봐야 할 이야기들은 첫째 한적한 곳에서 회복과 충전을 갖게 하시는 부분입니다. 둘째 몰려오는 무리들이 목자 없는 양같아 긍휼히 여기시는 부분입니다. 셋째, 많은 무리들에게 천국잔치를 벌려서 광야에서 만나 사건을 비롯한 다양한 상징성(상징성(출16:4; 민 27:17; 왕하 4:42-44; 겔 34:5-6; 슥 13:7)을 내포하는 부분입니다. 마가는 이러한 이야기를 전개함에 있어서 출애굽 모티브를 계속 사용하고 있고, 예수님은 새출애굽을 완성하시고 천국잔치를 여는 분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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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32절 예수님은 제자들과 무리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파송을 받은 사도들이 다시 돌아와서 예수님께 모여서 자기들이 그동안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많은 사역으로 인하여서 또 피곤하고 지친 이들에게 한적한 곳에서의 쉼을 허락하십니다. 왜냐하면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예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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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의 사역 여정에서는 놀라운 이적과 기사들이 수반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뻤을 것이며, 그러한 소원들이 굉장히 놀래고 공격들도 아마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사역에서 내용들 열매들에 대한 또 내용들에 대한 이러한 일들을 묻거나 요구하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다시 쉬도록 배려하셨다 이렇게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지난번에도 예수님께서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시간을 가지셨던 것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한적한 곳에 대한 장소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곳은 광야로서 사단의 시험을 받았던 그러한 장소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하나님과 깊은 교재를 가질 수 있는 그러한 신과 회복과 충전과 또 위로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그러한 곳이 바로 한적한 곳입니다. 그 시간을 통해서 사단의 시험을 이길 수 있고 또 시간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이 쉼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바로 한적한 곳 또 한적한 시간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 우리의 묵상의 시간 또 기도의 시간이 그렇게 여기 제자들이 또는 예수님께서 한적한 곳에서 가질 수 있었던 그러한 신과 위로와 충전과 회복과 또 영적 싸움을 위한 충전의 시간 그래서 평감으로 가득 찬 시간이 되고 있는가 우리가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서 음식을 먹을 겨를도 없이 많이 분주하면서도 여전히 잊지 말아야 되고 늘 확보해야 되는 최대한 이 시간을 따로 떼어서 하나님께 드려야 될 그런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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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간들을 지금 잘 가지고 있는가 한번 생각해 봐야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음식을 먹을 겨를도 없이 이렇게 일을 하셨는데 이제 너무 많이 오니까 배를 타고 따로 또다시 한적한 곳으로 갑니다. 그래서 자꾸만 쉴려고 아둥바둥 거리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사회를 온전히 감당하게 하기 위해서는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면서 그분의 마음과 고민의 뜻과 그분의 교제와 그분으로 주시는 위로와 참된 쉼을 통해서 하나님의 바른 뜻을 따라서 사에게 가기 위한 그러한 시간들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물리치고 버리고 멀리할 그만한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살리고 우리의 인생 가운데서 가장 소중하고 우리 삶의 어떤 순서보다도 가장 최우선순위에 있어야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이러한 시간이다. 그것을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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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34절 예수님은 무리들이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동하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인 줄 알아 봅니다. 그래서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예수님게로 옵니다. 그들이 어디로 가야 될지를 이제 뻔히 알고 이제 그런 곳까지 찾아오게 되는 겁니다. 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무리들이 자신의 사역에 걸림이 될 수 있기에 귀찮다고 또 떼어 버릴 수도 있는데, 예수님께서 나가서 큰 무리를 보시고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겨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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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7장에 나와 있는 말씀과 또 에스겔 34장에 나와 있는 이‘목자 없는 양같이 되지 않도록 해 달라고 하는 민수의 기도 또 에스겔서의 그러한 표현들을 익숙하게 알고 있는 유대인들로서는 이 표현이 참 은혜로운 표현이고 감격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그러한 관계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길 잃은 모든 양들에게 목자와 같은 분으로 다시금 그려지고 있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많은 무리들이 말씀을 배우고 듣고 천국 복음을 들을 길이 없어서 거짓 왕과 대적들에 얽매이고 억눌리고 사단의 종노릇 하는 그런 데서 헤어나올 길이 없는 상태를 바로 목자 없는 양 같은 상태로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자를 만나지 아니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 이것이 바로 목자 없는 양 같은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여러 가지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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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수많은 종교 지도자들도 있었고, 또 헤롯이라고 하는 동봉왕도 다스리고 있고, 또한 이들 주위에는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과 전문가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들이 목자 없는 양같이 되어버렸을까요? 이렇게 지금 양에게 있어서 목자는 그들의 생명과도 같은 먹을 것, 입을 것, 그리고 분쟁을 해결하고 승량이나 늑대로부터 보호해 주는 그리고 질병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모든 것들이 목자 없이는 양 스스로 살 수 없는 그러한 관계가 목자와 양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은 자신을 쫓는 무리들을 보고 이와 같이 긍휼의 마음을 품으셔서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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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37 예수님은 우리 삶의 여정에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시간이 길어지자 때가 저물어 갑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사람들을 보내서 스스로 뭔가를 사먹게 하자는 제안에 오히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니 제자들이 계산해 보기를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어찌 사다 먹일 수 있는가 반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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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저물어 가니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이곳은 빈들이오 날로 저물어 가니 이렇게 말합니다. 빈들이라고 하는 것은 광야를 말합니다. 날도 저물어 갔다, 밤이 되어간다고 말합니다. 광야이면서 또 빈 들이면서 날도 저물어가는 상태는 지금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들의 상태를 은유합니다.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되고 또 밤으로부터 혼돈이 시작되는 그러한 곳이 광야입니다. 따라서 이 표현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떠한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그러한 상태에서 더군다나 밤이 된다라고 하는 것은 이제 거의 죽게 된 그러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전에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건널 때에 우리가 죽게 된 것을 왜 돌아보지 않습니까라고 하는 그런 표현을 쓰기에 딱 좋은 상태, 그래서 풍량을 만난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웠던 그런 상태와 같은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도 우리가 빈들이고 날도 저물어 가는데 무리를 보내서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기에 하옵소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 스스로 살 수 있는 길을 세상에 가서 찾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합니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이 왔을까요? 앞서 제자들은 여러 촌과 사방에 나아가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복음되신 주님이 지금 이곳에 계신다고 하니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올려온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인 너희가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고 이 모든 것을 했기 때문에 이제 먹는 것까지도 너희들이 책임져야 되는 거 아니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대번에 우리가 가서 어떻게 200데나리온의 떡을 사먹일까? 반문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전한 복음이 무엇이었을까요? 우리의 진정한 왕 우리의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참된 왕이 이제 오셨다. 그런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시작이 되었다고 하는 하나님나라의 복음이신 메시아가 오셨다 하는 복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들이 보이는 반응은 무엇입니까? 200 데나리온이면  대략 1000만 원 정도 됩니다. 제자들은 지금 그들이 전한 복음과 달리 이들의 배고픔이 돈이 아니고, 목자가 없어서인데 정작 그들의 계산 속에 주님은 없었던 것입니다.
문제 속에서는 답이 없는데 그들은 답이 있는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문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정작 예수님을 증거해서 귀신을 내쫓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물리쳤고, 주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고, 그리고 많은 사역을 감당하고 여기까지 왔는데도 정작 그들은 아직도 주님이 누구인지 주님이 메시아 되심을 아직 인식도 믿지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고 있지 못하는 상태가 바로 이러한 질문을 하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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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저물고, 빈들에서 살아가는 우리, 목자 없는 양과 같이 하나님 아닌 것들의 허탄한 것을 쫓고 매이고 종노릇 하면서 살아갔던 우리, 우리 스스로 구원할 힘도 없으면서 아둥바둥 우리 힘으로 뭔가를 할 수 있을 것처럼 살았던 우리들이 지금 간과하고 있는 것은 우리 곁에 목자 되신 주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믿고 듣고 묵상하고 기도할 때 들어주시고 응답해 주신 그 주님이 여기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며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우리의 앉고 서심과 우리의 처지와 상태와 정황과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런 주님을 왜 우리 삶을 계산하는 자리에 최우선으로, 아니 전부가 되는 자리에 두지 못하는가?입니다. 부디 우리 믿음이 우리 가운데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주님을 보고 깨닫는 지혜와 믿음이 있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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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44절 예수님은 생명의 떡으로 우리를 넉넉하게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당황하고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그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먹을 것을 확인하시고 제자들에게 명하여 사람들을 무리 지어 앉게 앉게 하십니다. 가져온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축사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눠 주게 하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였습니다. 이 양식을 먹은 이들이 남자만 오천 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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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44절 <매일성경 자료 발췌>

출애굽 후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먹였듯, 새 출애굽을 이루신 예수님도 광야(한적한 곳)에서 오병이어로 백성을 배불리 먹이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백성을 단위별로 묶어 관리했듯(출 18:21) 예수님도 광야의 백성을 백 명씩, 오십 명씩으로 정렬하시고, 목자가 푸른 풀밭에 양들을 누이듯(시 23:2)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를 '푸른잔디'에 앉게 하십니다(직역하면, 잔치 자리에서 기대어 눕는 자세). 예수님은 광야를 천국의 연회장으로 만드시고, 메시아 잔치를 베풀고 계십니다.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주는' 예수님의 네 가지 행동은 최후의 만찬 때(14:22) 그대로 반복될 것입니다. 거짓 왕 헤롯이 주재하는 왕궁 잔치는 화려했지만 방탕했고 세상의 권력자들만의 유흥이었으며 살기와 오만과 미움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참된 왕 예수께서 마련하신 광야의 밥상은 소박하지만 풍성합니다. 예기치 않은 은혜의 잔치이자 하나님 나라를 열망하는 소외된 자들의 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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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사복음서 모두에 나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서 선한 목자 되시는 분이라는 것을 여러가지로 보여줍니다. 먼저 사람들이 앉게 한 곳을 푸른 잔디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바로 시편 23편에 나와 있는 바로 그 푸른 초장과 같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목자로 표현하면서 목자 없는 양 같은 그들에게 참된 목자로 오신 분이시고, 그들의 모든 생사 화복의 문제의 주권을 가지고 계시고, 그들을 살리시고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말합니다. 바로 그분이 지금 우리를 푸른 잔디 위로 푸른 풀밭 위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에도 40절 말씀에 100명씩 50명씩 앉게 하십니다. 민수기에 보면 출애굽 했을 때 모세가 혼자서 모든 것을 다 담당하고 있을때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조언하면서 혼자 하지 말고 십부장 오십부장 백 부장을 세워서 그들로 먼저 문제를 처리하게 하고, 중요한 일들은 네가 감당하게 합니다. 지금 그와 유사하게 100명씩 50명씩 앉게 합니다. 그런데 10에서 100이 아니라 반대로 표현합니다. 이는 지금 이 잔치가 출애굽한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던 그러한 사건을 연상하게 아는 그 모습에 그곳에서 예견했던 또 예표로 보여줬던 상황들을 여기서 지금 예수님께서 온전히 이루시는 사건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그렇게 100명씩 50명씩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우리가 혹시 10명씩 이렇게 소그룹으로 앉았다. 소그룹이라 하기엔 굉장히 많은 숫자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많이 앉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앉았다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비스듬하게 식사할 필요 없는 그런 자세를 말합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 41절부터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하늘으로 축사하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눠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들에게 떼어서 주게 합니다. 이런 표현은 이제 성만찬에도 나오는 그런 동일한 표현입니다. 그래서 성만찬과 오병이어 사건은 이미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에서 만나와 매추라기를 먹이신 사건에서 예표한 일들을 온전하게 성취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왕의 잔치, 메시아의 잔치입니다. 그들이 주님과 더불어서 함께 먹고 마시는 그러한 풍성한 그 메시아의 잔치입니다. 우리 모든 것들을 구원하시는 생명의 떡이 되시는 그분을 마시고 그분으로 인하여서 살고 그분으로 인하여서 영원토록 영생을 얻게 되는 이러한 잔치가 바로 이 오병이어의 잔치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앞에서 나왔던 헤롯 왕의 잔치와 참된 왕이 되시는 이스라엘의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 곧 왕되신 메시아 왕 예수님의 잔치가 너무나 극명하게 대조가 됩니다. 헤롯 왕의 잔치에서는 생명을 빼앗아가는 그러한 잔치, 각종 화려한 음식과 풍성한 음식과 많은 고관 대작들이 모여서 화려하고 풍성하고 먹을 것 많고 음식도 기름진 음식이 있겠지만, 그곳은 생명을 잃는 잔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 이곳에 비록 빈 들이고 화려하진 않지만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먹고 마시기에 충분한 그래서 생명을 줄 수 있는 그러한 잔치 참된 생명을 공급해주는 이러한 왕의 잔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잔치에 참여하려고 그토록 몸부림치고 기도하고, 간구하고 또 살아가고 있는가 해로운 왕의 잔치에 가고 싶은가 아니면 메시아 되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왜 이 메시아 잔치에 참여하고 싶은가 우리가 지금 그토록 간구하는 그러한 내용들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왕의 잔치는 다 배불리게 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충분한 생명을 주기에 충분한 그러한 생명의 떡을 주님께서 주셨고 그것을 제자들이 또 나누어주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주님께서 여전히 이 떡을 떼라고 말씀하시고 우리도 나누라고 말씀 우리도 먹고 또 우리도 누군가에게 나누라고 말씀하십니다. 승리의 떡을 말하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12가구니 차게 거두었다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은 생명이 떡이신데, 다시 만나가 주어졌고 목자 없는 양 이스라엘을 새 이스라엘을 먹이시고 구원하시고 난 이후에 열두 바구니를 거두었다 라고 하는 것은 12라는 숫자에 의미가 있습니다. 12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곧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그런데 이제 새롭게 택하시고 부르시고 살라 하시며 세우신 새 이스라엘이 넉넉히 먹고도 남을 만한 그러한 양식을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는 주님이 새벽성된 우리를 구원하시기에 충분하다고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바로 주님이 우리의 참된 왕이요. 목자요 생명의 주요 생명의 떡이 되시는 분이심을 충분히 보여주는 그러한 사건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성만찬에서 다시 분명하게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친히 십자가에서 물과 비를 다 쏟으시면서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어서 주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고, 내가 문 밖에 서서 들이노니 누구든지 내 음정을 듣고 문을 열면 그는 나로 더불어 먹고 나는 그런 함께 먹으리라고 하는 이런 메시아 잔치에 함께 참여할 것이라고 하는 말씀을 이제 이들이 이곳에서 직접 경험하게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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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에게 생명의 떡으로 오신 주님을 인하여 감사하고 그러면서 날마다 영생에 거하게 하는 한적한 곳에서의 시간들을 우리가 잘 가지고 우리 자신을 돌이켜 볼 때, 지금 헤롯 왕의 그러한 잔치에 자꾸만 참여하려고 하고 있는가? 아니면 난 지금 거기에서 정말로 먹고 마시면서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잘못 오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나는 비록 세상의 눈으로 봤을 때 볼품 없어 보이는 그러한 상태이지만 진정 메시아의 잔치에 자기를 부인하면서 생명에 떡이 되신 계신 주님만을 바라보며 그분으로 인하여서 먹고 마시고 그분으로 인해서 위로를 받고 그분으로 인하여서 삶의 이유와 소망과 살아가는 기쁨을 얻는 그러한 왕의 잔치 천된 메시아의 잔치에 나는 삶과 나는 이 땅에서 지금 무엇의 통치를 받고 누구의 왕의 전지에 참여하고 있고 어떤 삶을 지금 나는 살아가며 안에서 기쁨과 참된 신앙고백을 드리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오늘도 위하루의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참된 목자 되신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베풀어 오신 이 새로운 살 길 새 이스라엘을 먹이시는 그분의 길 안에서 우리가 진정한 우리의 왕 대신 우리의 목자 대신 그분의 음성을 쫓고 그분을 따라가고 그분으로 통화해서 얻어주는 주시는 그러한 모든 평강과 위로 가운데서 정직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

# 거둠의 기도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신 주님 

모든 것을 다 주시면서 

우리에게 참된 양식, 영생하는 양식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신 귀한 말씀을 먹고 마시고 

우리도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에게까지 배불리 먹고 나눌 수 있는 

넉넉한 믿음의 소유자 될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 날마다 이 묵상의 시간 한적한 곳에서의 시간을 잘 만들어 가고 

세상 왕의 잔치에 참여하며 분주한 가운데서 이 한적한 시간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고,

이 빈들과 밤 같은 이러한 세상 가운데 살아가면서 

우리 주님과 함께하면 주님과 더불어 먹고 마실 수 있는데, 

그 안에서 정말 영생하도록 하는 양식을 먹으며

평강과 위로 가운데서 배불리 먹고 맞을 수 있는데, 

자꾸만 세상으로 나가서 두루 촌과 마을로 다니면서 

우리의 양식을 얻으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봅니다.
주님 우리의 눈을 뜨게 하여 주옵소서 

참된 양식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주님의 통치하신 아래에 있음을 기억하며 

메시아의 잔치에서 날마다 먹고 마시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참된 길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고 바로 깨닫고 변함없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저희가 될 수 있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오늘도 우리에게 귀한 생명 양식 허락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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